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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우화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2월
평점 :
조그만 창 밖에 펼쳐져있을 풍경이 궁금하다. 저 조그만 창으로 그녀는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저 조그만 창으로 그녀는 무엇이 보고 싶은 것일까? 쓸쓸히 앉아 작은 창으로 스며드는 햇빛을 느끼듯 그림처럼 앉아있는 그녀는 아마도 신경숙 자신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드는 건 또 왜일까? 신경숙... 그녀의 소설은 참 아프다. 아파도 그냥 아픈게 아니라 저 깊은 내면으로부터 천천히 끌려나오는 울음소리처럼 그렇게 무엇이라고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늘... 언제나... 그랬다. 이제쯤이면 세월도 지나 그 아픔이 덮혔을거라 생각했을 즈음 그녀가 발표했던 소설이 <엄마를 부탁해>였다. 사람들은 말한다. 작가는 작품속에서 자신을 표현한다고. 그 말은 다는 아니겠지만 어느 정도는 맞는 듯 하다. 같은 시간을 다른 공간속에서 느꼈던 사람들은 안다. 그것이 같은 시대를 살아낸 동질감이라는 걸. 그래서였을까? 그녀의 소설은 늘 나를 아프게 한다.
뒷부분의 해설에서 말했던 것처럼 그녀의 소설은 다분히 일상적이다. 그래서 특별하다고 말할 만한 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녀의 글은 이상하리만치 감성을 짓누르는 힘이 있다. '내적 독백, 혹은 방심의 문체' 라는 말이 보인다. 내가 처음 그녀의 글을 만났을 때 그 방심한 듯한 독백때문에 꽤나 오래도록 얼얼했었던 기억이 있다. 어떻게 이런 문체로 글을 쓸 수 있을까? 어떻게 이런 문체속에 이토록이나 절절한 감정을 담아낼 수 있는 것일까? 그 마력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나는 여전히 신경숙의 팬이라 자처한다. 작품마다 베어져 나오는 그 아련함이 싫어 잠시 딴청도 부려보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녀의 이름앞에서 다시 손을 내밀고 말았다.
신경숙의 작품을 읽다보면 금새 내가 그 주인공이 되어버리는 마술에 걸려버리고 만다. 아마도 나와 같은, 특별하지 않은 일상때문이겠거니 한다. '예쁘다'는 말과 '아름답다'는 말의 차이를 생각나게 하는 순간이다. 그녀의 소설은 결코 예쁘지 않다고 나는 생각하기에. 꾸며지지 않은 소소한 시간들이 그녀의 작품속에서 나를 기다린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작가는 그녀말고도 많다. 작품마다 내가 함께 살았던 같은 시대를 그리고 있으니 공감대가 큰 것은 당연하다. 어쩌면 그것은 시대가 만들어낸 아픔이겠지만 마술에 걸린 듯 유독 그녀의 문체에 빠져드는 것은 그 안에 숨겨진 그녀의 모습을 몰래 훔쳐보고 있는 듯한 착각 때문은 아닐까? 가끔은 그 모습속으로 내가 들어가 숨기고 싶은 나의 또다른 모습을 타인에게 들켜버린 듯한 느낌이 들게도 하지만 말이다.
솔직히 말해 나는 이런 소설집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잘 팔리는 작가의 이름을 빌어 잠시 잇속을 챙겨보자는 속내가 느껴져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다시 만난 <외딴방>은 반가웠다. 잊고 있었던 무언가를 다시 찾아낸듯한 그런 느낌이랄까? 그리고 다시 떠오르는 단어, 결핍... 그녀의 작품을 늘 흥건하게 적시는 그 결핍의 깊이. 우리가 그리도 절실하게 찾아헤매야 할 것이 무엇인가 묻고 있는 것만 같다. 그러나 그녀는 우리가 희망을 놓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행복과 불행이 함께 손을 잡고 오듯이 결핍과 희망도 역시 그런거라고. 안일하게만 살 수 없는 게 우리의 일상이라고. 그러므로 우리는 늘 무엇인가를 찾아헤맬 수 밖에 없는거라고. 채워지지 않는, 채울 수 없는 그 무엇인가를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우리는 그래서 늘 외로운지도 모를 일이다. 한동안 다시없을 외로움이 곁에서 서성대겠다.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