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 스님의 인도 성지 순례
송강 지음 / 도반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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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지순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가끔 이런 생각도 했었다. 성지순례를 나서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떠나는 것일까? 그저 종교적인 의무여서?  신의 은총과 축복을 받기 위해서?  자신이 믿고 있는 종교의 뿌리를 찾아보려고? 그것도 아니라면 자기성찰이나 자기수행의 한 방법쯤?  그 마음이 어떨지 잘은 모르겠지만 세계적으로도 성지순례를 나서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기독교성지, 천주교성지, 불교성지... 하기사 종교적인 성지를 들라하면 수없이 많지 않을까 싶다. 성지순례라는 말 하나로 검색해보니 엄청나게 많은 성지가 보인다. 이스라엘성지, 스페인성지, 터키성지, 인도성지....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성지라는 말조차도 어쩌면 우리가 만들어놓은 틀은 아닌지 되묻고 싶어지기도 한다. 언제 어느곳에 있든 항상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이 아닐까 싶어 하는 말이다.

 

스님이 성지순례를 떠난다면 그것은 자기성찰이나 수행쯤일까? 책의 소개글을 보면서 아마도 그럴 거라고 나는 지레 짐작했었던 것 같다. 아니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그것도 아니라면 자신의 종교가 어떤 것인지 속깊은 데까지 들여다보고 싶어서일거라고. 그런데 책의 서문을 보고나서 그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왠지 무의미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여러말 할 필요없이 내가 순례길을 떠나봐야 그 속을 알겠구나 싶어서였다. 이 책은 글보다 사진이 더 많다고해도 틀린 말은 아닌 듯 하다. 그만큼 생생한 느낌을 전해주고 싶었던 마음일거라고 나는 느꼈지만... 송강 스님이 인도로 성지 순례를 떠나는 순간부터 돌아오는 날까지의 여정을 따라가고 있으니 어찌보면 인도 답사처럼도 보여진다. 엘로라 석굴사원, 아잔타 석굴사원, 산치대탑, 타지마할, 마하보디사원, 수자타 마을, 죽림정사, 나알란다 사원, 바이샬리 근본 사리탑, 쿠시나가라, 열반당, 사르나트, 그리고 갠지스강... 여정을 살펴보면 잘 알겠지만 고타마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답습하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많은 사진이 그 길을 함께 하고 있어 불현듯 내가 그 답사길에 동행한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불교는 종교가 아니라 수행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름대로 공감하는 바가 있어 고개를 끄덕거렸었는데 그렇다고 내가 불교신자는 아니니 종교적으로 크게 어떤  울림을 받았던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를 면면히 살펴보면 확실히 수행이라는 말이 맞긴 맞는듯 하다. 지금이야 너무나도 세속적인 맛을 내고 있지만. (어디 불교뿐일까? 기독교나 천주교도 마찬가지다. 오죽했으면 지금은 세상이 종교를 걱정하는 시대라는 말이 생겼을까? 말하면 입만 아프다흔한 예로 자신의 어리석음을 참회하고 자신을 낮추면서 부처님께 최대의 존경을 표현하는 방법이라는 오체투지나 백팔배, 참선이나 좌선과 같은 형식은 모두 수행의 한 단면임엔 분명하다. 신체의 다섯 부분이 땅에 닿도록 절을 하기 때문에 오체투지라고 한다는데 가끔 그 오체투지를 실행하는 사람들을 TV를 통해 보게 될 때는 어떻게 저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싶어 나도 모르게 마음이 조마조마해질 때도 있었다. 그 절절함이, 깊은데서 우러나오는 그 어떤 것들이 종교의 속성은 아닐런지. 그리하여 힘겨운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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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 버리기 연습 - 100개의 물건만 남기고 다 버리는 무소유 실천법
메리 램버트 지음, 이선경 옮김 / 시공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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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건이 당신의 삶을 어지럽히고 있다고 말한다면 거기에 수긍할 사람 몇이나 될까?  무소유를 실천하셨다는 법정스님의 말씀을 빌리지 않아도 우리는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소유욕이 있는지 이미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자꾸 소유하고자 하는 것일까? 책표지에 보이는 한줄의 글귀가 자꾸만 시선을 끌어당긴다. 잡동사니에 둘러싸여 인생을 낭비하지 마라!  조용히 내 주변을 둘러본다. 역시 많다! 버려야 할 것들, 버리고 싶은 것들, 버리자고 마음먹었던 것들... 버리자고 마음먹었는데 아직까지 버리지 못하고 있는 건 왜일까? 미련때문에?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다. 버려도 괜찮을까? 언젠가는 쓰게 되지 않을까? 수도없이 번복되어지던 말들 때문에 슬며시 웃음이 난다. 함께 사는 나의 반쪽이 바로 잡동사니 수집가(?)인 까닭에 20년 넘게 끊임없이 싸워왔던 주제다. 나?  솔직히 말해 버리는데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다. 특별히 애착이 가는 몇 개를 빼고 왠만한 건 바로바로 버린다. 왜? 신경쓰이는게 싫어서다. 일단 마음에서 멀어진 것들은 다시 들여놓지 않는 성격인지라 한번 눈밖에 나면 바로 버려버린다. 사람도 그럴진대 물건이야 더 하지 싶어서. 그런 내가 왜 이런 책을 보느냐고? 답은 간단하다. 100개의 물건만 남기고 다 버리는 무소유 실천법이란 말에 이끌려 손을 내밀게 되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는 그다지 많은 물건이 필요치 않다고 한다. 사실이 그렇다. 내가 보더라도 굳이 그렇게 많은 살림도구는 필요치 않은 것 같다. 최소한의 물건, 혹은 꼭 필요한 물건만 갖고 살아도 그다지 불편하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0개의 물건이라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버리는 데에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공감한다. 버리기만 해도 삶이 바뀐다는 말에도 백퍼센트 공감한다. 얼마전 TV에서 버리지 못하고 쌓아놓다가 그 물건들에게 집을 내준 사람을 본 적 있다.  자원봉사자들이 그 집을 치우고 깨끗하게 다시 꾸미기까지 아마 사흘이 걸려다지? 처음 나의 반쪽이 잡동사니 수집가(?)인 걸 알았을 때는 그저 취미려니 생각했었지만 살면서 자꾸만 쌓여가는 물건들 때문에 툭탁거리기를 몇 번, 설득 끝에 그 많은 것을 버리게 되었던 날이 생각난다. 그 후로도 수집(?)의 습관을 버리지 못한 채 쟁여놓으면 버리고 쟁여놓으면 버리고... 아직까지도 현재진행형이지만 예전처럼 심하지 않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이 책은 크게 4Part로 구분되어져 있다. 어떻게 버려야 하는지,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체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사실 책의 부제처럼 쌓아놓았거나 어질러진 물건들을 버리고 정리하면 그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바로 깨닫게 된다. 氣의 흐름도 원만해진다는 말을 곧바로 실감하게 된다.  복잡한 수식어를 쓰지않아도 깔끔하게 정리된 풍경이 바라보는 사람의 기분을 상큼하게 만들어준다는 걸 금새 알 수 있다.

 

책의 말처럼 버리지 못하면 채울 수도 없다. 비워내야 새로운 것이 담길 수 있기 때문이다. 잘 버리는 나 역시 이 책을 통해 배운 것이 많았다. 버리는 것이 아깝다고 느껴진다면 버리되 기한과 순서를 정해 버리라는 말은 설득력이 있다. 한꺼번에 많은 걸 버린다는 게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무조건 쓰레기통으로 보내지 말고 꼭 필요한 곳을 찾아 기브하라는 말도 새겨 들을만 하다. 버려보면 안다. 불편함보다는 불편할거라는 선입견이 얼마나 더 큰 불안심리였는지를. 책을 보면서 나도 하나하나 점검을 해 보았다. 잘 버린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착각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부엌, 침실, 욕실, 옷장 위 상자들... 나는 여전히 쟁여놓고 있었던 거다!  가장 골치거리로 여겨질만한 책들은 오히려 문제가 없었는데 허를 찔린 기분이랄까?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남편도 아들녀석도 함께. 아울러 나의 소비패턴에 대한 점검도 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혹여 무언가에 대한 보상심리로 물건을 구매하고 있는건 아닌지 다시 한번 돌아볼 기회다. Simple best!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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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세우는 옛 문장들 - 언어의 소금, 《사기》 속에서 길어 올린 천금 같은 삶의 지혜
김영수 지음 / 생각연구소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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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한쪽 벽에는 한자로 쓴 四字成語 두개가 큼지막하게 걸려있다. 가훈이다. 특별히 가훈을 만들고 싶어 만든 건 아니다. 오래전부터 이렇게만 살 수 있다면 그래도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조금은 도움이 되지않을까 싶어 결혼하기전부터 좌우명처럼 생각했던 말을, 아들녀석이 태어나면서 가훈으로 삼자고 결정했던 게 20년 가까이 눈만 돌리면 보이는 곳에서 나와 항상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말, 易地思之(입장을 바꿔 생각해볼 줄 알아야 한다) 와 知過必改(잘못을 알았다면 반드시 고치도록 노력하라).. 이 책을 접하면서 혹시나하는 마음에 유래를 찾아보았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라는 말이야 그렇다치고 知過必改에 대한 유래가 재미있다. 知過必改하고 得能莫忘이라... 허물을 알았다면 반드시 고치고, 고칠 수 있게 되었다면 잊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공자의 제자 자로와 자하에 관한 이야기로, 자로는 가난하고 천한 집안에서 부랑아처럼 살았던 사람임에도 공자의 제자가 되고 난 후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는 말에 화를 내지 않고 고쳤다는 말이 보인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실천을 강조한 말인데 결코 쉬운 말은 아닌듯 하다. 그렇다해도 내가 죽을때까지는 그냥 벽에 걸어둘란다^^

 

이 책은 제목에서 보여주듯이 故事成語에 관한 이야기다. 옛날부터 전해져내려오는 이야기속에서 나왔다는 비유적인 표현이지만 거기에는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무언의 지혜가 담겨 있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실천하기만 한다면야 그것처럼 좋은 일도 없겠지만 실천한다는 게 그리 녹녹치않다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끊임없이 들여다보면서 자신을 바꾸어나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래서 한번쯤은 그런 말들이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 알고 싶었다. 우리가 하는 말속에서 四字成語나 영어단어가 불쑥 불쑥 튀어나올 때 잘난척 한다는 생각보다는 그래도 조금은 멋져보인다는 생각을 하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쓰여질 때 그 말은 조금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잘못 알고 있었구나, 하는 문장이 꽤나 많다는 걸 알았다. 수박겉핥기식으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다. 살아가면서 그런 일들은 그야말로 비일비재하다. 그저 남이 쓰니 나도 쓴다는 식이거나, 어디선가 들은 듯한 말이니 주워다 쓰는 식으로 너무나도 피상적인 접근이 많았다는 것도 인정해야만 했다.

 

가장 흔하게 써왔던 九牛一毛라는 말속에 담긴 그 깊은 의미를 이제서야 바로 알게 되었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아홉 마리 소의 털 한 올.... 그저 많은 것중의 하나라는 뜻으로만 쉽게 사용했던 말속에 궁형을 당해야만 했던 사마천의 아픔이 그토록이나 절절하게 녹아있을 줄이야!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듯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도 고민해야 한다는 책 속의 말은 가슴 한쪽을 뜨끔하게 한다. 擧世混濁, 唯我獨淸 이란 말도 보인다. 세상은 탁한데 오직 나만 맑다는 그 말을 듣고 비아냥거렸다는 농부와의 일화는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擧世混濁, 唯我獨淸, 衆人皆醉, 唯我獨醒...세상은 온통 흐린데 나만 홀로 맑고, 모두가 취했는데 나만 홀로 깨어 있다는 말에서 나왔다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에 대해 한번쯤은 생각해 볼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이렇듯이 故事成語를 만들어낸 이야기속에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삶의 지표로 삼을만한 말들이 많이 보인다.

 

문득 오래전에 항간에 떠돌던 黑猫白猫라는 말이 떠올랐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뜻으로 중국의 鄧小平이 했던 말이다. 가끔씩은 어디서부터 나온 말인지도 모르는 경우가 있어 당혹스러울 때도 있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번 찾아보았더니 猫頭懸鈴 '고양이(猫) 머리(頭)에 방울(鈴) 달기(懸)'로, 旬五志에 실려 있는 이야기란다. 고양이목에 방울달기라는 속담으로 불가능한 일을 논의할 때 쓰이는 말이라지만 그만큼 개혁을 향한 등소평의 강한 의지를 드러낸 말이란 생각에 모르는 새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주제가 좀 딱딱하기는 해도 곁에 두고 생각날때마다 읽어보면 더 좋을 것 같다. 우연히 마주친 <旬五志>...<十五志>라고도 한다는데 책이 보름만에 완성되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설화의 자료를 볼 수 있다하고, 그 책의 말미에 많은 양의 속담이 실려있어 그 뜻풀이와 함께 조선시대의 속담에 대해 알 수 있다는 말에 시선이 간다. 기회가 된다면 한번쯤 읽어봐야지 한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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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쩌자고 내 속옷까지 들어오셨는가 - 다큐PD 왕초의 22,000킬로미터 중국 민가기행
윤태옥 지음, 한동수 감수 / 미디어윌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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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문득 생각난 주제가 하나 있다. 바로 전통가옥이라는 말이다. 전통가옥이라 하면 말 그대로 전통적인 형태의 집을 말하기도 하지만 특정한 문화가 담겨있는 집이라는 의미도 함께 담고 있다. 그것을 우리는 韓屋이란 말로 부르기도 한다. 韓屋이라... 그렇다면 기와집이 한옥일까? 초가는 한옥이 아닐까? 그러더니 언제부터인가 古宅이란 말로 부르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지 않다면 民家라고 부르고 있다! 답사를 다니면서 내가 들어가 볼 수 있었던 전통가옥의 형태를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일전에 군산을 찾았을 때 보았던 일본식 가옥 또한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은데 그런 집들이라는게 대부분 일반적인 주택이라고는 볼 수 없는 형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하는 말이다. 군산거리에서 지나쳤던 장옥을 떠올려본다. 들어갈 수 없었지만 내부가 어떻게 생겼는지, 그 안에서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했을 일본사람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들여다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우리가 韓屋이라는 이름의 이미지를 떠올려보면 초가집보다는 커다란 기와집을 먼저 떠올리게 되는 건 사실이다. 오직 그것만이 우리 민족이 살아왔던 주거형태라는 듯이 말이다. 실제적으로 그 시대를 살아내면서 주거문화의 형태를 이루었던 것은 초가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런데 이 책속에서 볼 수 있었던 주택의 형태라는 건 조금은 특이했다. 어떤 특정인의 집을 지칭하는 게 아니라 그야말로 한시대를 거쳤던 다양한 민족의 삶이 오롯이 들어있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소수민족끼리 모여살다보니 저마다의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것도 흥미로웠다.

 

책을 소개하는 글을 보면서 혹시나하는 마음과 함께 알 수 없는 기대감이 생겼었다. 어쩌면 그 속에서 우리문화를 아우르는 어떤 것을 만날수도 있겠구나 싶어서. 다각적인 면으로 보았을 때 한,중,일 3국의 특징이 서로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고 보는 까닭이다. 중국을 크게 생각했다던 우리 역사속의 시각을 생각해볼 때 나를 찾아왔던 기대감이 그다지 잘못된 것만은 아닐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랬는데 뜻밖에도 정말 멋진 여행이 되었다. 단순히 집의 형태만을 보겠거니 했다가 그 많은 민족의 역사와 생활상, 그리고 그들의 삶을 주거형태를 통해 볼 수 있었으니 그야말로 대박! 일년의 반은 중국에서 살다시피 한다는 지은이의 삶이 엄청나게 부럽기도 했다. 눈으로만 보는 관광이 아니라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그런 여행이야말로 진정한 여행이 아닐까 하는 마음에 한 줄의 글귀도, 한 장의 사진도 허투루 넘길 수 없었음이다.

 

가장 먼저 소개하고 있는 사합원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우리의 옛주거형태와 비교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양반네들이 살았던 가옥과 비슷한 점이 없지않아 있어 보였다.사합원에 비해 한옥이 더 개방적이라고는 하지만 마당을 중심에 두어 반사되는 햇빛을 받았다는 것도 그렇고, 여자들의 공간을 뒤쪽으로 배치했다는 것도 그렇고, 대문을 들어서면 보이는 영벽(또는 조벽이라 함)을 보면서 우리네 양반가옥의 내외벽을 생각했다. 물론 우리의 한옥과는 현저하게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중국의 전통적인 주거형태로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것이 사합원이라 한다. 네 채의 건물이 모여서 가운데에 마당을 두고 이루어진 'ㅁ'자형 집이다. 집을 뜻하는 한자 '宮(집 궁)'도 사합원의 생김새와 유사하다고 하니 중국인들에게는 사합원의 의미가 남다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런 주거형태로 인해 자연스럽게 생겨난 골목은 우리문화속의 골목이라는 의미와는 왠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같은 말인데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느 나라가 되었든 역사라는 건 전쟁의 결과물이다. 오죽하면 이긴자들의 이야기라는 말도 있겠는가. 그래서인지 각각의 주거형태속에서 방어적인 의미가 담겨있는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촨디샤촌 산지 사합원, 베이징의 대원, 평방, 상하이 이롱주택, 안후이성과 저장성의 휘파건축, 둥양시의 노택, 강남의 구진 저택(이 집은 마치 요새같다!), 푸젠성의 객가 토루와 조루, 좡족자치구의 간란주택, 먀오족의 조각루, 안순의 둔보, 구이양의 석판방, 지금도 모계사회를 이루고 산다는 모쒀족의 목릉방, 동티베트의 조방과 조루, 동굴집, 초원의 게르, 어룬춘족의 사인주, 그리고 만주 조선족의 초가집.... 거칠었던 역사의 소용돌이속에서 살아남은 여러 민족의 집들이 현재까지 살아남았다는 건 정말 부러운 일이다. 그 이름만으로는 그들을 할퀴고 간 역사와 시대배경을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이 살았던 집의 의미는 단순히 '집' 하나만으로 보기엔 너무 크게 느껴진다. 살아남기 위해 그들이 견뎌왔을 삶의 질곡이 고스란히 느껴진다는 말이다.

 

제목이 참으로 도발적인 느낌을 불러왔던 책... 하지만 그 제목이 나오기 위한 앞의 글귀가 주는 느낌은 왠지 아련하다. 술을 마시기만 하면 옷을 벗어제끼는 사람에게 뭐라고 했더니 그가 했다는 말이 "나는 천지가 옷이고 집이 속옷인데 당신은 어쩌자고 내 속옷까지 들어오셨는가..." 였다. 그 한 줄의 제목속에 담긴 수많은 의미를 곰곰이 따져본다. 깊이 들여다보기를 힘겨워하는 현대인들에게 이런 제목을 주장했을 지은이의 속뜻이 참으로 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겉으로 보여지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겉으로 보여지는 것만이 전부인양 살아간다. 이번 여행을 통해 겉으로 보여지는 것과 자신을 위해 내세우는 명분만이 절대적인 걸 아니라는 걸 새삼스럽게 되돌아보게 된다. 한채의 집이 안고 있는 의미가 정말 크게 다가왔던 순간이기도 했다. 이런 멋진 여행을 함께 즐길 수 있게 해 준 지은이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이런 주제를 따라 걸으며 맛볼 수 있는 중국이라면 흔쾌히 떠나보고 싶다. 중국, 한번은 가봐야 할 나라....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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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 세트 - 전3권 샘깊은 오늘고전 15
유성룡 원작, 김기택 지음, 이부록 그림 / 알마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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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懲-지난 일을 뉘우치고, 毖-후세를 위해 앞으로의 교훈을 찾는, 錄-뼈아픈 역사의 기록' ... 제목에서부터 비장함이 묻어나는 책이다. 지금의 우리는 과연 그 뼈아픈 역사를 통해 어떤 교훈을 얻고 있는가? 그래서였을 것이다. 지은이의 말이 사무치도록 깊은 울림을 주는 까닭은. 일본을 탓하지만 말고 그 침략을 통해 우리의 잘못은 없는지 되돌아보아야 한다지만 부끄러움을 빨리 잊고 싶어하는 것이 사람의 심리인지라 그다지 큰 교훈을 찾지 못하는 것도 서글픈 우리의 현실임에는 분명하다. 잘못을 뉘우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고 용기를 내는 사람만이 진정한 승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그 누구도 승자가 되지 못한 임진왜란' 이란 3권의 부제에 공감하지 못하겠다. 진정한 패자는 말이 없는 법이다.  '징비록'은 두번째다. 무슨 재미로 같은 책을 두번이나? 하고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은 없겠으나 출판사마다 저마다의 특징을 갖고 있는 탓인지 나름대로는 재미있게 보았다. 고전이라 하니 원본이 바뀔리야 없을테고 3권으로 나누어 그 기록의 생생함을 보여주고자 한 듯한 마음이 전해져 왔다. 1권 유성룡이 보고 겪은 참혹한 임진왜란, 2권 달아난 임금 남겨진 백성,3권 그 누구도 승자가 되지 못한 임진왜란... 각 권의 부제만 보더라도 어떤 장면이 그려질지는 훤히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미로웠다.

 

유성룡은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이었으며 도체찰사라는 벼슬을 하고 있었다.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군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혹은 외교적으로 많은 힘을 썼던 사람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잘 알다시피 임진왜란의 주역들을 발탁했다는 커다란 의미를 지닌 인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전쟁을 끝낸 뒤 부끄러움을 무릎쓰고 후세에 똑같은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기록을 남겼다. 남한산성의 역사를 그린 <산성일기>처럼 담담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정유재란때 일본에 잡혀갔던 강항의 기록인 <간양록>처럼 간절함이 묻어나기도 한다. 왕과 나라를 향한 징하디 징한 충정 또한 담겨 있으니 그 시대가 과연 왕조시대였구나 싶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음이다.

 

책을 읽으면서 간혹 보이던 그림들이 무슨 의미일까 싶었다. 조금은 낯선 기법의 그림이었음에도 그게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 수는 없으나 강한 느낌을 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다행히 책의 말미에서 그림에 대한 해설을 해주고 있다. '이야기 너머, 상상의 이미지들' 이란 제목이 왠지 아련하다. 불에 달군 인두로 목판에 밑그림을 그린 뒤 채색을 입힌 '채색 인두화'라고 하는데 그 말조차도 낯설었다. 하지만 예전에는 인두화를 그리는 사람이 종종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다시한번 되돌아가 꼼꼼하게 그림을 살펴보다가 그림만으로도 한권의 책이 될 수 있겠구나, 조금은 놀랍기도 했다. 하나하나의 그림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생각이 있었을까? 그림이 안고 있는 상징성이 이토록이나 큰 것이었구나 싶었다. 숨고 숨기고 숨쉬고 숨막히는, 모두 한 목소리의 처량한 털들, 비좁은 구멍-막힌 산, 비어있는 주인의 얼굴, 아무도 치료할 수 없는 바람, 무뎌진 칼춤, 이빨 자국같은 흔적, 녹슨 칼... 그림마다 붙여진 제목이 비장하다. 어떤 그림은 조금 무섭기도 하고, 어떤 그림은 조금 해학적이기도 하지만 그림속에 우리의 전통이나 일본의 전통을 숨겨놓았다고 하니 그림의 의미에 대해 한번쯤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도 괜찮을 것 같다. 각 권마다 전쟁사를 연구하는 분의 해설이 있는 것도 이채롭다. 당시의 상황을 청소년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어렵지 않게 풀어쓴 글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해설을 붙인 까닭은 무엇일까? 어쩌면 우리에게는 너무나 피상적인 전쟁의 이미지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3권이지만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다시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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