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니커 마니아를 사로잡은 스니커 100
고영대 외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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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후'라는 말이 있다. 어떤 분야에서 전문가 못지않은 열정을 가진 사람을 뜻한다. 한동안 오타쿠라고해서 그다지 좋은 의미는 아니었지만 지금은 상당히 긍정적인 의미로 바뀌었다. 나에게 있어서 의식주를 바라보는 첫번째 관점은 편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활하기 위한 동선이 편해야 하고, 신었을 때 발이 편해야 하고, 입었을 때 움직임이 편해야 한다. 그 다음이 모양이다. 깔끔하고 단정한 모양새라면 오케이다. 화려하거나 수수하거나 튀는 스타일의 좋고 싫음은 완벽한 개인의 취향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 책에서 스니커를 소개하고 있는 이들은 분명 '덕후'다. 우리는 그들이 하는 행위를 '덕질'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의 '덕질'에는 만족감과 성취감이 있으며 거기에 즐거움과 기쁨까지 들어 있다. 그래서 조금은 놀라웠다. 하지만 그 스니커를 신었을 때의 느낌이나, 발의 편안함 정도는 알 수 없었다. 말 그대로 스니커를 위한, 스니커에 의한, 스니커의 이야기였다. 신발은 신는 것임에도 왠지 소장품으로서의 역할만 강조한 것 같아 아쉬움도 남았다. 모든 것은 본연의 역할에 충실할 때 완벽하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 책을 읽고나면 운동화를 보는 눈이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진짜 그 열정에 감동했다. 나이키 에어 맥스의 디자인이 비가 자주 내리는 나이키 본사의 지역적인 특성을 담고 있다는 것을 이 책이 아니면 어디서 알겠는가 말이다. 흙길에서 러닝을 해도 쉽게 더러워지지 않도록 회색 계열의 색상을 사용하고 빗물에 번져가는 그라데이션 형상으로 디자인했다는 말을 들으면 아마도 한번쯤은 그 스니커가 궁금해지지 않을까?

 

나이키, 아디다스, 퓨마, 리복, 뉴발란스, 언더아머, 반스, 발렌시아가 등 많은 브랜드가 있지만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스니커는 아무래도 나이키 조던과 에어포스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들은 말한다. 만화 <슬램덩크>를 보았다고. 그 역동적인 모습에 매료되었다고. 그렇게 누군가에게 강한 이미지로 다가선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보는 관점에 따라 주제가 달라진다는 게 참 흥미로운 일이다. 그들은 운동화라고 말하지 않고 끝까지 스니커라고 말한다. 그러니 스니커 마니아들에게 있어 스니커란 단순히 신는 것 이상의 의미가 분명 존재할 것이다. 이 책에는 10명의 스니커 마니아가 각각 10개의 스니커를 소개하고 있다. 100켤레의 운동화! 대단한 열정이 느껴진다.  스니커 마니아라 자부한다면, 스니커가 가진 스토리가 궁금하다면 한번쯤은 읽어봐도 좋을 흥미로운 주제임에는 분명해보인다.

 

구두를 신기보다는 운동화를 즐겨 신고 있어서 여러 운동화의 장,단점을 알고 싶었다. 시장표 운동화도 신어보았고 나름 비싸다는 브랜드 운동화도 신어보았지만 발이 영 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기대는 여지없이 빗나갔다. 이 책은 그야말로 운동화에 미친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 운동화가 안고 있는 과거와 현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들에게는 운동화라는 말 자체부터가 심드렁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스니커라는 말이 갖고 있는 의미에 대해 한번 찾아보았다. '살금살금 걷는 사람'이라는 뜻의 Sneaker에서 비롯되어 붙여진 이름, 발등 부분을 하얀 캔버스로 끈을 매서 신는 옥스퍼드형과 끈을 매지않고 편하게 신을 수 있는 슬립온형이 있다... 열심히 운동화를 신으면서도 이런 뜻이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요즘 사고 싶은 운동화가 하나 있다. 이 책에서도 잠깐 소개되었기에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반스다. 깔끔한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는데 어제야 그 이름을 알게 되었다. 저쪽에서 지름신이 달려오고 있다. 하지만 나는 스니커 마니아는 될 수 없을 것 같다. ^^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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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을 그리다 - 궐문에서 전각까지! 드로잉으로 느끼는 조선 궁궐 산책
김두경 지음 / 이비락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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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宮 경복궁, 婟宮 창덕궁, 呱宮 창경궁, 孤宮 덕수궁, 故宮 경희궁... 격이 높은, 연모하는, 울고있는, 외로운, 사연이 있는... 우리의 5대궁을 단순히 古宮이라 표현하지 않았다는 것이 책의 목차를 읽으며 상당히 흥미롭게 다가왔다. 궁을 보면서 이런 느낌을 갖는다는 건 그만큼 그 속을 들여다봤다는 말일 것이다. 지은이가 말하고 싶어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기 보다는 지은이가 무엇을 보았을까,가 더 궁금했다. 사실 우리의 고궁이나 유적지는 그 내용을 알고가야 제대로 보인다. 아는만큼 보인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 삶의 그 어떤 것인들 안그럴까? 하다못해 들에 핀 풀꽃도 우리가 모르고 있을 뿐이지 저마다의 이름과 사연 하나쯤은 갖고 있기 마련이다. 하물며 옛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문화재는 오죽하겠는가! 궁의 이름을 알고, 전각의 이름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속에 어떤 이야기가 깃들어 있는지 알고나면 다르게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 책은 상당히 깊이있게 느껴진다. 형식에 구애받지 않겠다는 듯 옆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다가오는 문체도 나쁘지 않았다.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그의 시선을 따라가니 심심할 겨를도 없다. 자주 가보았고 자주 들었던 古宮의 사연들이 새롭게 다가왔다.

 

그림으로 보여주는 古宮... 지은이는 그 많은 전각과 문과 볼거리중에서 과연 무엇을 그렸을까? 또 어떤 각도에서 바라보았을까? 궁금했었던 것들이 하나둘 껍질을 벗으며 내게 보여질 때마다 살포시 웃음이 났다. 지은이의 시선이 참 따뜻하게 다가와서. 어쩜 저리도 즐겁게 古宮속을 거닐 수 있을까? 長樂門을 바라보며 그림을 그리고 있었을 지은이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떠올라 또 웃게 된다. 관덕정을 바라보고, 석어당을 바라보고, 뻘쭘한 경희궁의 흥화문을 바라보던 지은이의 시선을 고스란히 따라가면서 함께 느낄 수 있었던 아쉬움과 안타까움. 지은이의 말처럼 우리 古宮의 옛모습을 하루빨리 제대로 찾아주어야 한다던 지은이의 말에, 덕수궁이 아니라 경운궁이라는 이름으로 제대로 불러줘야 한다는 지은이의 말에, 진하게 한표를 보태주게 된다.

 

나는 가끔 지인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 우리의 궁궐은 최소한 네번은 가봐야 한다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모습이 제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갈 때마다 다른 해설사의 말을 들어보라고 한다. 왜? 재미있으니까! 이왕에 간 거 시간을 핑게로 해설사의 해설을 놓치는 愚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균형있게' 관람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지은이의 말에 백번 공감한다. '어로'와 '어도'의 차이점을 논하는 부분에서 '기로'에 서고 말았지만 '진전'과 '선원전'의 쓰임새는 분명하게 달랐다는 것과, '드므'와 '부간주'는 확실하게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각각 28년과 25년동안 왕세자로 지냈던 문종과 인종이 만나 차를 마시며 신세한탄을 한다면 지나가던 영국의 찰스왕세자가 찻값을 내지 않을까, 라는 말에서 빵터졌다. 과연 그렇군! 늘 봐오던 것들임에도 새삼스러웠다. 이 책이 그만큼 신선함을 준다는 말일터다. 식상함이 느껴지지 않아서 좋았다. 비올 때 희우루나 한번 보러가야겠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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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디자인 1 지식을 만화로 만나다 1
김재훈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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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값이면 다홍치마, 라는 말이 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 는 말도 있다. 이왕이면 더 좋은 것을 택한다는 뜻이다. 어떤 물건을 사기 위해 마트를 가거나 백화점엘 가보면 아무래도 더 멋지게 혹은 더 예쁘게 포장을 하거나 전시를 해 둔 쪽이 시선을 끌게 마련이다. (가끔은 빈깡통이 요란할 때도 있긴 하지만...)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우리 생활에서 디자인은 필수요소로 보인다. 지나가는 자동차의 이름이나 제조회사를 바로 알아볼 수 있는 것도 자동차의 디자인때문일 것이다. 회사의 얼굴로 등장하는 엠블럼 역시 디자인의 하나인 까닭이다. 그런데 그 많은 제품, 그 많은 디자인 중에서도 스테디셀러로 분류되는 책들처럼 오래도록 하나의 문화인양 자리매김을 한 것들도 많다. 이 책이 바로 그런 디자인의 탄생배경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안내해주고 있다. 일단 흥미로웠다. 디자인에 대해 문외한인 내게도 재미있게 읽혔던 것은 어쩌면 만화로 다가왔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으나 그 안에 담겨있는 지식들은 가벼워보이지 않는다. 지은이가 궁금해져서 찾아보니 책날개에 이런 말이 보인다. 텍스트를 직관적이고 흥미로운 만화로 재가공하는 데 탁월하기로 정평이 난 만화가, 일러스트레이터 겸 저술가다... 그의 책도 여러권 보이는데 역시 모두가 만화로 되어있다.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일반인들에게는 쉽지 않은 종류의 지식을 이렇게 만화로 먼저 접하게 되면 아무래도 역기능보다는 순기능이 우선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만화를 통해 색다른 재미를 느끼게 해 줄 것이니 그야말로 일석이조의 효과가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좋아하는 만화스타일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자가 가진 의미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해주니 감사한 일이다.

 

코카콜라의 광고를 보면서 돈 안드는 모델을 쓰는데 탁월하다고 한 말에 나도 모르게 오호! 하게 된다. (코카콜라를 마시고 있던 불곰이 생각나 베시시 웃는다) 'I♥뉴욕'과 같은 디자인을 왜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걸까?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하고. Chupa Chups 라는 막대사탕을 싸고 있는 그림이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이었다는 걸 전혀 몰랐다. (그래서 찾아보았던 그의 작품세계는 역시 어려워!) 대체적으로 오래도록 우리 곁에 머무는 작품이 많았지만 강하게 단 한번만의 등장만으로 존재감을 과시한 채 사라져버린 작품도 꽤 있는 듯 하다. 책을 읽다가 가만히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만큼 오래도록, 혹은 강한 느낌으로 다가왔던 디자인이 있었나? 어쩌면 강한 느낌을 남긴 작품도 있었겠지만 오래가지 않아서 기억을 못할 수도 있고 관심을 갖지 않아서 잘 모르는 것일거라고 생각은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한세기를 넘은 노포조차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만큼이라는데 삼대이상을 이어 온 진정한 노포를 찾는다는 게 우리나라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만큼 먹고 살기에도 힘겨웠다는 말로 위안을 삼을 수 있으려나? 잘 모르겠다. 모더니즘이니 다다이스트니 아방가르드니 하는 말들이 뭘 말하는지는 잘 모른다. 물론 사전을 찾아보면 그 뜻이야 알겠지만 그 말이 품고 있는 여러가지의 의미를 이해하는 건 아닌 까닭이다. 책의 말미에 보이는 디자인의 변천사가 시선을 끈다. 자본주의사회라는 건 기업이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생활용품을 만들어낸다. 그러자면 생산품이 팔려야 하고 그것을 팔기 위해 마케팅을 한다. 그 과정속에서 디자인도 한몫한다. 그러니 디자인의 역사는 시대에 따라, 혹은 수입에 따라 무구한 변천사를 거쳤을 것이다. 그럼에도 저자의 말에 공감하게 된다. 이름을 남기려 애쓰기보다 누구나 부담없이 누릴 수 있는 디자인을 하나라도 더 하려고 노력하는 디자이너. 일확천금을 꿈꾸기보다 합당한 대가에 감사와 보람을 느끼며 주어진 일이 좋은 성과를 거둘 때마다 기뻐할 줄 아는 디자이너, 남들과 차별되는 멋을 위해 아낌없이 거금을 투척하는 특별한 소수의 취향을 위해 재주를 헌납하기보다 작은 희망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절대 다수의 대중에게 도움이 되어주는 디자이너. 그런 디자이너들이 앞으로도 계속 사람들과 함께 직업의 터전을 꾸리면서 자칫 불순한 의도를 지닌 자의 아방가르드 전략이 생활디자인의 공간을 혼탁하게 만들지 못하도록 대중과 함께 보편적인 감성으로 상식의 방패를 마련해주기를. (- 274쪽) 물론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겠지만 저자의 바램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유행에 민감하지 못한 탓인지 브랜드라는 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소수의 사람들만을 위한 것보다는 다수의 사람을 위한 것이 좋다. 그저 내가 쓰기에 편하고, 내가 입어서 예쁘고, 내가 먹어서 맛있으면 그만이다. 그런 까닭으로 이 책은 상당히 이채로웠다. /아이비생각

'Less is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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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권력은 간신을 원한다 - 한명회부터 이완용까지 그들이 허락된 이유
이성주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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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와 신하의 이해는 다르기에 진정한 충신이란 있을 수 없다. 신하의 이익이 늘어나면 반드시 군주의 이익은 줄어든다." - 한비자 책띠에 보이는 말이다. 찾아보니 법치주의를 주장했던 한비는 저서 한비자에서 '이 세상은 경제적 원인에 의하여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과거에 성립된 정책이 반드시 현세에 적용되지 않는 것이다. 유가나 묵가의 주장과 같은 空論에 흔들리지 말고 시세에 따라 법을 적용하고 관리들을 관리 감독하여 상벌을 시행하고...' 라는 말을 했다고 하는데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나라는 국내외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병자호란과 같은 침략으로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모든 침략들에는 전조 현상이 있었다. 그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을 포함한 위정자들은 그 전조 현상을 부인하거나 외면하기에만 급급했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공익보다는 사익이 앞섰던 까닭이다. 손에 쥐고 있었던 것들을 내려놓아야 하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틈새에서 충신 혹은 간신이 생겨난다. 그렇게 본다면 충신도 간신도 시대가 만드는 셈이다.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는 말처럼 간신도, 역적도 시대가 만든다는 말일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은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너무나 많이 들어서 각인되다시피 했을지도 모르는 이름들이다. 홍국영, 김자점, 윤원형, 한명회, 김질, 이완용, 임사홍, 유자광, 원균... 그 이름들 뒤에 깔리는 배경을 살펴본다면 역시 여러가지로 불안정한 시대였다. 책의 말처럼 어쩌면 이들은 간신이 아니라 처세술에 능했던 사람들인지도 모를 일이다.

 

저들은 모두 자신의 욕망에 충실했을 뿐이었다. 처음부터 그들이 간신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강직했거나 혹은 총명하기까지 하여 한때는 인정받았던 인물들이었다. 그들의 강직함이나 총명함이 시대와 어울리지 못해 간신이 될 수 밖에 없었던 배경을 갖고 있는 것도 비슷하다. 마치 처음에는 성군의 모습을 보였으나 결국 폭군의 모습만으로 기억되어지는 연산군처럼. 그렇다면 우리는 왜 잘한 일은 외면하고 못한 일만 더 크게 들춰내는 것일까? 알다시피 역사는 後代에 의해 쓰여진다. 前代의 치적을 높게 사게되면 당대의 치적이 과소평가될 수도 있기에 위정자들은 앞다퉈 자신이 한 일이 만천하에 드러나기를 바란다. 앞선자들의 발자취가 선명할수록 그보다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들은 힘들어진다. 昨今의 상황에서도 분명하게 보여지는 행태이다보니 서글픈 생각마저 든다.

 

우리는 공익을 기준으로 역사와 정치를 바라본다. 그러나 그 역사와 정치를 만드는 것은 사람이다. 우리는 사람의 이기심과 욕망을 너무도 쉽게 잊어버린다. 그래서 욕망을 엄격하게 다스리고 오로지 공익을 기준으로 삼아 판단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에게 권력을 맡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분명하게 말하지만, 자신보다 타인을 우선하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반듯한 사람을 찾아 '국가의 일꾼'으로 삼는 일은 불가능하다. 플라톤이 주장한 철인정치에서나 가능할 법한 발상이다. (-152쪽) 이 말은 서두에서 말했던 한비자의 글귀처럼이나 시선을 끈다. 이 말에 아니라고 반박할 사람 몇이나 있을까? 간혹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역사의 한귀퉁이를 차지하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책의 말처럼 특별한 경우일 것이다. 이완용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우리가 몰랐거나 외면했던 말은 이완용이 독립협회의 회장을 지냈고, 독립문의 현판까지 쓴 사람이라는 것이다. 당시 친러정책을 보였던 고종에 의해 반러성향을 보였던 독립협회가 해산이 되었고 이때 이완용도 밀려났다. 그가 파직되자 독립협회에서 그를 제명하였고 그런 배신을 겪게 된 이완용은 결국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라는 말까지 듣게 된 것이다. 물론 나라를 팔아먹은 것이 잘한 짓이라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조선의 왕통이 지켜졌으며 당시의 사회 지배계층들이 그 신분을 유지하기도 했다. 이처럼 우리가 몰랐거나 외면했던 일은 비일비재할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왜 그들이 간신이 되어야 했는가, 그들이 왜 간신으로 낙인찍혔는가,를 낱낱히 파헤치고 있다. 그렇다고해서 특별한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다. 늘 들어왔던 역사의 단면들이지만 바라보는 시선이 이채롭다. 다소 식상할수도 있겠으나 책장은 잘 넘어간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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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 서커스 - 2,000년을 견뎌낸 로마 유산의 증언
나카가와 요시타카 지음, 임해성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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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나카가와 요시타카는 도쿄대학교 대학원에서 토목공학 석사 과정을 마쳤다. 세계적 교각으로 평가받는 세토대교등의 설계및 시공의 총책임을 맡기도 했다. 자신의 전공을 살려 고대 로마 제국의 흥망성쇠를 역사학의 시각이 아닌 토목건축학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연구를 수행하면서 로마에 대한 책을 출간했다. 그의 저서로 고대 고마 번영사를 3부작으로 엮은 <수도로 보는 고대 로마 번영사>, <도로로 보는 고대 로마 번영사>, <오락과 휴식으로 보는 고대 로마 번영사>가 있다. 이 책은 그 세권의 책을 한권으로 묶은 게 아닌가 싶다. 옮긴이의 말을 빌면 이 책은 일본에서 출간된 원서를 번역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한국에서의 출판을 목적으로 집필한 것이라 하는데 고대 로마의 문명이나 로마인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토록 세심하게 관찰하는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는 게 쉽진 않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역사학이나 토목건축학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느정도는 흥미를 끌지 모르겠지만 너무 세세한 부분까지 다루고 있어 살짝 지루한 맛도 없지않았다.

 

영화 <벤허>의 전차 경주,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검투사 경기는 상당히 자극적인 장면으로 기억되어진다. 죽음을 각오한 전차 경주의 스피드와 검투사의 잔혹한 경기 장면을 많은 사람이 기억할 것이다. 굳이 이 책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영화속에서 우리는 위정자들의 간악함을 볼 수가 있다. <빵과 서커스>라는 책의 제목은 빵은 식량이요, 서커스는 오락을 뜻한다. 당시의 위정자들이 시민들을 위해 내밀 수 있었던 최선의 조치이기도 했다. 전승에 따르면 로마는 기원전 753년 왕정으로 시작했다. 공화정과 제정을 거쳐 오현제 시대를 겪다가 나중에는 동서로 분열돼 476년에 서로마 제국이 먼저 멸망했다. 오현제 시대에 현재의 유럽연합 영토보다 더 큰 영토를 갖고 있었다. 제국시대만으로도 500년을 지속했다는 로마는 세계유산으로 남겨진 유물, 유적이 1052건이 된다고 한다. 약 2000년의 세월을 버텨냈다는 말인데 그만큼 로마는 인류문명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대표주자였다. 그토록이나 풍성한 문화를 가졌던 로마의 멸망이 지금까지도 역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주제라고 하니 그들이 얼마나 거대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바로 그 시점에서 시작한다. <빵과 서커스>는 고대 로마의 시인 유웨날리스가 오락을 일삼던 대중을 풍자한 표현이기도 하지만 로마의 흥망성쇠가 담겨있는 말이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튼튼한 성곽도시에서는 높은 성벽으로 둘러 싸인 좁은 땅에 많은 사람이 살았다. 로마가 번성할 때는 100만명의 사람들이 사는 초과밀 도시였다. 좁은 땅에 많은 사람이 모여살게 되면 아무래도 불평불만이 쌓이게 된다. 그들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대책으로 내세운 방침이 눈길을 끌었다. 첫째, 화재의 위험에 대비해 석조건물을 지을 것. 둘째, 도시내 교통 혼잡을 없애기 위해 상하수도를 지하화 할 것. 셋째, 고층 주택과 포장도로로 효율성을 높일 것. 넷째, 폐쇄된 공간인만큼 오락거리를 제공할 것. 다섯째, 고도의 건축기술(석재나 콘크리트)로 성곽을 만들 것..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고대 사람들의 생각이었음에도 현재의 우리 생활과 무엇이 다른가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도 로마의 주민들은 이민족의 침입이 있을 때마다 저항하기 보다는 성문을 열어주었다고 한다. 무슨 이유로 그랬던 것일까?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의 시선으로 본다면 그랬기 때문에 먼 훗날의 우리가 그 시대의 모습을 보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일단은 앞에 언급한 다섯가지의 방침만 보더라도 당시의 문화가 상당한 수준이었다는 걸 미루어 짐작하게 된다. 

 

지금까지도 남아있는 당시의 수도교는 견고했다. 그만큼 상수도 시설이 잘 되어있기도 했다. 수도사용료는 기본적으로 무료였지만 개인주택으로 수도관 시설을 끌어들였을 경우에는 사용료를 받기도 했다. 일반 시민들을 위해 도로변에 공동수도를 마련하기도 했고 말이나 가축을 위한 음수장도 있었다고 한다. 반면에 하수도 시설은 그렇지 않은 듯 하다. 상하수도의 처리가 용이했던 고층주택의 1층은 임대료가 높았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이 고층에 살았다. 그들은 폐수와 분뇨를 항아리를 이용해 지하배수로에서 처리해야 했는데 법으로 금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창 밖으로 투기하는 일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쯤에서 우스운 생각이겠지만 하이힐이 탄생하게 된 배경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어 살풋 웃음이 나기도 한다. 지나가던 사람에게 웬 똥벼락이람! 어찌되었든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후 로마의 영토가 분할되면서 기술의 전승이 끊기게 되고 로마의 수도 기술은 사라졌다.

 

그 많던 오락과 휴식시설은 결국 기독교 사상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점점 쇠퇴하기 시작했다. 공공욕장도 나체조각상도 기독교가 힘을 얻게 되자 자취를 감췄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 이후의 문화는 어찌되었을까? 만신전에서 유일신신전으로 바뀌었으며 종교건축물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기독교는 네로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에 의해 큰 박해를 받기도 했지만 마침내 313년 공인을 받게 되고 이후 수많은 교회와 성당이 세워졌다. 이탈리아, 터키, 아르메니아, 이집트등..... 전세계 어디를 가도 우리는 로마인의 흔적을 찾을 수가 있다. 세계유산으로 1052건이나 남아 있다고 하니. 빵과 서커스에서 서커스에 해당하는 오락의 형태로 투기장, 극장, 전차 경주장이 있었다. 휴식시설로는 공공욕장이 있었는데 그것들의 대부분이 정치가들의 인기몰이에 이용되었다는 것은 주목해 볼 만 하다. 상당히 저렴했던 휴식시설의 이용료조차 부족분은 모두 국가가 부담할 정도였으니. 로마가 검투사 경기를 중시한 까닭조차 시민에 대한 통치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렇게 정리가 될 것 같다. 고대 로마에는 수많은 철학자와 작가 그리고 기술자가 있었다. 로마인들은 민족이나 국가에 상관없이 좋은 문화라면 모두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를 세상에 전파하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많은 국가와 민족을 통치하기 위해 실용적인 문화를 발전시켰다. 콘크리트를 발견했으며 로마법에서 서양법률을 가져왔다. 로마의학의 영향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영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등도 그들의 말 라틴어와 관련이 있다. 그리고 그들은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겨놓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의 기록을 토대로 지금의 우리가 반복된 역사를 쓰고 있다는 것이다. 나 역시 愚問을 하게 된다. 만약 로마가 망하지 않고 지속되었다면 인류의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라고.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의 愚問은 항상 잘나갔던 역사의 끄트머리에서 시작하는 듯 하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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