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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사회 - 사회를 만나는 철학 강의
장의관 지음 / 미지북스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생각하는 사회라는 제목이 왠지 낯설게 다가왔다. 지금의 사회는 어떨까? 생각하는
사회일까? 생각을 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복잡하다. 생각을 한다는 건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닐거라는 결론이 나왔다. 생각해보건데 작금의
사회는 생각하지 않는 사회다. 생각을 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사회일지도 모르겠다. 오로지 하나만을 위해 달려가는 것 같아 가끔은 씁쓸해지기도
하지만 사회속에는 소수의 힘이라는 것도 있으니 한숨만 쉴 것도 아니다. 그 소수의 힘이 뭉쳐 가끔씩은 엄청난 일을 벌이기도 하니 말이다. 책속의
주제는 민감하다. 그러나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해보거나 힐끗거려보았음직한 주제들임엔 분명하다. 내가 왜 이런 것까지 생각해야 해? 라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겠으나 그 여덟가지의 질문에 나는 답을 하고 싶어졌다.
첫째, 안락사는 금지되어야 할까? 아니다.
안락사는 허용해야만 한다.
안락사는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논란이 된 주제라는데 왜 지금까지 이렇게 시시비비가 많은
것일까? 사회는 발전하면서 인간 스스로가 만든 굴레를 통해 많은 것을 규제한다. 그런 잣대들이 인간의 본성까지 규제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안락사를 법으로 허용하는 나라가 전세계에서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뿐이라는 사실이 놀랍다. 모든 사람에게는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렇지 못한 상황이라면 주변에서 도와줄 수도 있다.(의무적으로라도!) 사람은 사람답게 살 수 있어야 사람이기
때문이다. 안락사를 반대하는 사람들이나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대며 아무런 희망도 없는 환자를 병실침대에 묶어두는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묻고
싶어진다. 그것처럼 이기적인 행위가 어디 있을까 싶어 하는 말이다.
둘째, 낙태의 자유는 제한되어야 할까?
그렇지않다.
낙태 합법화를 주도하는 대부분의 국가가 선진국인데 비해 불법화를 유지하는 국가는
개발도상국이나 저개발국가라는 점은 흥미롭다.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낙태를 하기 위해 약초나 약물을 사용하거나 자신의 몸을 학대하는 방식에
의존했다. 인류역사에서 낙태를 규제하기 시작한 것은 19C초중반에서 20C후반이라 한다. 법으로 금한다고 낙태가 사라질까? 오히려 역효과를 낼
뿐이다. 여성의 행복이 먼저일지 태아의 생명이 먼저일지를 따진다면 그것이야말로 愚問이 아닐까 싶다. 왜냐하면 현실이 그사람의 행복을 좌우하는
경우가 더 많은 까닭이다. 낙태반대론자들이나 낙태방지법을 제정한 국가가 그 아이를 책임지고 키워준다면 여성들이여 망설이지 말고 아이를 낳아
그들에게 맡겨라! 안락사를 지지하는 사람들이나 낙태를 선택해야만 하는 여성들에게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대지 말라. 명분과 이론에만 치우친
그대들보다 훨씬 현명한 사람들이니.
셋째, 마리화나의 규제는 정당한가? 이
부분은 어떤 것인지 모르기 때문에 솔직히 뭐라 답변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마리화나의 규제는 정당한가를 물으면서 처벌의 형평성을 이야기했던 부분이 이채로웠다.
폭력 또는 우발적인 사고나 범죄를 초래하고 알코올 중독으로까지 번지는 음주는 허용하면서 마리화나는 왜 안되는가를 묻고 있다.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라는 공리성의 정의도 공정치않다고 말한다. 일관된 원칙도 없이 실행되는 규제와 처벌이 국가의 임의적 폭력일뿐이라는
말에 공감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주제속에서도 도덕적 쟁점이 등장한다는 것은 또 어떤 의미일까? 자유주의라는 허울속에서 다수가 지지하는
것만이 정답인 것처럼 여긴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말에 공감한다. 과연 개인의 삶과 그 가치를 위협할 모든 여건속에서 국가가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은 어디까지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넷째, 동성 결혼은 잘못된 것일까? 아니
그렇게 보지 않는다.
동성애라는 성적 취향이 유전적이거나 사회문화적 요인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지금에서야 알았다. 개인적 취향이 아니라는 게 놀라웠다. 왼손잡이와 동성애자의
차이는 무엇일까? 라는 한마디의 질문으로 동성애자에 관한 답은 더 말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왼손잡이에 대한 어떤 법이 제정된다거나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얘기는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다섯째, 부유세는 부당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책속에서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보인다. 갑, 을, 병이라는 세사람이 함께 집을
짓는다고 가정해 볼 때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보다는 힘을 합쳐야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다는 것인데, 각자 개인적으로 생산해내는 것보다 협력해서
이루어내는 사회적 생산력이 더 크다는 말이 틀린 것 같지 않다. 그렇다고 누구나 다 똑같이 분배를 해야한다는 건 아니다. 단지 '개인의 재산권
침해'라는 말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보자는 말일 뿐. 극심한 빈부 격차가 사회분열을 초래하고 협력의 분위기를 저해한다는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때문에 소득 재분배의 기능은 필요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여섯째, 사형 제도는 유지되어야 할까?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에 한표!
사형을 본격적으로 폐지하기 시작한 것은 19C 중반부터라고 한다. 현재 40여개국
정도만 사형제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걸 보면 많은 나라가 사형제도를 폐지하는 것에 동참하고 있다는 말일 터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현재 사형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인구가 많은 중국, 인도, 미국, 인도네시아, 일본등이 사형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까닭에 인구비율로 따졌을 때는
사형제가 적다고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볼 때 사형제를 폐지하는데 찬성하는 사람이 19%인데 비해
반대하는 사람은 70%나 된다고 하며, 유지해야 한다는 쪽의 비율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사회구조상 신분이나 계급에 따라 공정치
못하게 적용되는 것이 현실이다. 비슷한 수준의 범죄라 할지라도 백인보다는
흑인이, 부자보다는 가난한 사람이 사형선고를 받을 확률이 높다는 말이 많은 것을 시사해주고 있다. 감옥을 유지하는 비용과 사형제도를 유지하는
비용등은 차치하고라도 어찌되었든 사회정의를 위해서는 사형제도는 필요하다. 단
공정해야 한다는 원칙을 잊으면 안된다.
일곱째, 매춘은 처벌받아야
할까? 거두절미하고 아니다.
매춘자체가 문제라기 보다는 그것을 이용하여 착취하거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 더
문제이며,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그것을 대하는 일부 사람들의 태도가 문제라고 본다. 사랑없는 성적 쾌락이 비난받아야 한다면 단순히 매춘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닐 것이다. 성의식의 변화는 어느정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그 선택과 판단에 따른 결과는 자신의 책임져야만 한다.
그럼에도 매춘을 바라보는 시각이 삐딱한 것은 왜일까? 책속에서도 언급한 것과 같이 어쩌면 우리는 성가치관의 변화에 불편함을 느끼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여덟째, 과시적 소비는 비난받아야 하나? 왜
비난받아야 하지? 그럴 필요는 없어보인다.
물론 낭비적인 소비형태로 볼 수도 있겠지만 형편에 맞춰 살겠다는 데 그걸 비난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게 마땅찮으면 출세하면 된다. 과시적 소비를 한다고 해서 사회적으로 그 사람을 존경하거나 인정하지는 않는다. 값비싼 것들로
외모를 치장할 수는 있어도 '내면' 이나 ' 사람됨'까지 치장할 수는 없는 까닭이다. 그런 사람에게 다가가 비굴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나
자신의 형편을 무시한 채 터무니 없는 욕심으로 그들처럼 살고싶어하는 사람들이 문제인 것이다. 탐욕으로 자기 자신을 망가뜨렸으면서 사회탓이나
남탓을 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경제학자 애덤스미스의 말이 눈길을 끈다. 돈을 더 많이 모으고 소비할수록 행복해질거라는
믿음은 인간의 착각일 뿐이지만, 부의 효용에 대한 환상은 사람들을 계속해서 열심히 일하게 만드니 오히려 사회에는 득이 된다,는
그의 논리에 공감한다.
이 모든 질문에 대해
무엇이 옳은 것인가를 따지기에 앞서 생각해볼 게 있다.
계급과 신분, 지위의 구분을 통해 이루어지는 사회적 통제에 나는
나자신을 얼만큼의 강도로 묶어두고 있는가?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이기도 하지만
전체적인 답이 될수도 있는 말이 아닐까 싶다.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