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 - 폐허를 걸으며 위안을 얻다
제프 다이어 지음, 김현우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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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산문집이라는 한마디때문에 손을 내밀었다. 여행서지만 장소에 관한 이야기는 들을 수 없다는 말도 상당히 유혹적이었다. 장소를 이야기하지 않는 여행기라는 게 뭐랄까 한번쯤은 책장을 넘겨보고 싶다는 호기심을 불러왔다고 해도 맞는 말일 것이다. 정말 그렇다. 어디론가 떠나기는 했으나 그곳에 관한 소개글이 없다. 작정하고 떠난 것도 아니다. 그저 일삼아 떠났을 뿐이고 마음 내켜서 가방을 꾸렸다. 일상적인 여행을 생각했다면 이건 뭐지? 싶은 마음에 다시한번 책표지를 훑어 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산문이라는게 상당히 주관적이다보니 공감대를 형성함에 있어서는 그리 크지 않을 듯 싶다. 보는 관광이 아니라 내면의 어떤 것을 찾기 위한 여행을 하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이 책 여행서 맞아? 이렇게 묻고 싶을 정도로 책속에 등장하는 배경은 그다지 많지 않다. 다만 그 몇 안되는 배경속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일상이 빼곡할 뿐이다. 거기 그 장소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만들어내고 있는 풍경이 이채로웠다. 여행이라는 게 그렇게 특별한 취급을 받을 필요는 없는거라고, 거기 그곳에서 느끼는 것들이 모두 여행의 한페이지라는 걸 알게 해 준다. 파리에 가서 베르사이유궁전이나 루브르박물관만을 보고 왔다면 그것은 파리에 가 본 것이 아니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파리의 뒷골목을 찾아가고 그곳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그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한번도 보지 못했으면서 파리를 보고 왔다고 말할수는 없는거라던 어떤 이의 말에 격하게 공감했던 적이 있었는데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그런 여행을 한다는 게 그리 쉬운일은 아니다.

 

앎에도 그 목적이 있을테지만, 짐작은 언제나 앎보다 재미있다. (-39쪽)

사람들은 왜 여행을 하는 것일까?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51쪽)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여행을 한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틀린 말도 아니어서 살풋 웃음이 나기도 한다. 안내인이 있는 여행과 안내인이 없는 나만의 여행의 차이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이 책에 적은 일들은 모두 실제로 있었던 일이지만, 그중 몇몇은 내 머릿속에서만 일어났다" 고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말하고 있는데 책을 읽다보면 가끔씩 이게 진짜로 일어났던 일인지 상상인지 헷갈릴 때도 있다. 신비로운 일이다. 그가 어디를 갔는지, 왜 갔는지는 묻고 싶지 않다. 그저 카메라 하나 둘러매고 가뿐하게 떠났을 것만 같은 그의 여행길에 조금이나마 공감하고 싶은 욕심이 있어서. 다시 오겠다고 다짐했던 곳에 다시 가본 적이 몇번이나 될까? 생각해보니 다섯손가락도 다 채우지 못한다. 좋았던 곳은 다시 가도 좋을까?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다시 가보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바다에 가면 해파리에 쏘이거나 무슨 일이 생길까봐 멀리까지 나가 수영하는 사람만 바라보며 수다떨기만 하고, 논두렁길을 걸으며 서로 앞지르기도 하고 넘어질까봐 서로를 잡아주기도 하면서 나무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성지에 가면 유적지가 뿜어내는 성스러움에 나를 동화시키려 애쓰는, 공놀이 할때는 온전히 공놀이에만 빠져들 수 있는, 그런 일들이 여행이라는 이름표 밑에서 속살거리고 있다. 캄보디아 프레룹 사원에서 콜라를 파는 소녀와의 신경전은 정말 흥미로웠다. 별것 아닌 일이라고 넘어갈 수도 있는 사건이었지만 옆에서 보고 있었던 것처럼 이상한 쾌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여행 산문집이라고는 하지만 철저하게 혼자만의 독백이다. 하지만 그 짧은 이야기속에서 함께 느끼고픈 뭔가가 있는 듯 한 여운을 남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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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로 떠나는 영성순례 - 이어령의 첫 번째 영성문학 강의
이어령 지음 / 포이에마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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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이란 작가의 글을 참 좋아했다. 학창시절에 우연히 방송으로 보게 되었던 문학강의때문이었는데 그 제목이 한국, 한국인을 말한다로 기억된다. 오래된 기억이라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인상 깊었던 강의였음에는 분명하다. 초대문화부장관으로 발탁되었을 때는 은근 자부심까지 생겨났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여전히 그의 이름앞에서 서성이는 버릇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가 다루었다는 문학작품들 때문에 마음이 움직였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말테의 수기>, 앙드레지드의 <탕자, 돌아오다>,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 라는 제목들은 나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지금이야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 학창시절에는 세계문학전집을 읽는 걸 당연시했다. 경쟁하듯이 책을 읽었던 것 같다. 나이가 들고 그 시절에 읽었던 책들을 다시한번 읽어보고 싶어 도전을 했었는데 그게 마음처럼 쉽지 않아 여전히 진행중이긴 하지만 말이다.

 

우리는 흔히 이런 말을 한다. 여럿이 모이면 삼가해야 할 대화의 주제중 하나가 정치와 종교라고. 그러나 어쩌랴, 저자가 종교인으로 거듭나신 탓에 이 책 역시 영성에 관한 주제를 담고 있다. 그렇지만 나는 그가 말하는 문학적인 요소를 보기로 한다. 문학작품에 대한 저자의 새로운 해석이 이채로웠다. 그 작품이 나오기까지의 배경이라거나, 그 작품을 쓸 당시의 작가는 어떤 상황에 처해있었는지를 알게 된다면 작품에 대한 이해도나 깊이는 달라질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다섯명의 작가와 작품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보게 되었다. 그 전에는 그냥 읽었던 부분에 대해 다시한번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저자가 극찬을 했던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말테의 수기>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는데 책속에서 소개하고 있는 부분들이 작품의 분위기를 말해주고 있는 듯하여 왠지 마음이 끌린다. 꼭 읽어봐야지...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이나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는 영화와 소설을 비교해가며 그 안에서 우리가 보고 느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데 흥미로웠다. 기독교에 대해 그다지 좋은 생각을 갖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저자가 찾아내 설명해주고 있는 종교적인 색채가 어떤 의미인지를 보는 것도 싫지는 않았다. 현재 우리 곁에 머무는 종교, 특히 기독교의 폐단이나 작금의 기독교가 지향해야 할 바가 무엇인지를 아울러 보여주고 있는 저자의 마음이 보여 왠지 안타까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문득 오래전에 보았던 영화 <나니아 연대기>가 떠올랐다. 그 영화야말로 기독교적인 의미를 제대로 담고 있는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나중에야 그것을 알고 다시 보았던 기억이 있다. 숨은 그림 찾기도 아닌데 요소요소에 숨겨둔 의미들을 찾아낸다는 게 뜻을 둔 사람에게만큼은 의미있는 일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찌되었든 저자의 안내로 새롭게 보게 된 다섯권의 문학작품을 만나는 시간은 괜찮았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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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사회 - 사회를 만나는 철학 강의
장의관 지음 / 미지북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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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사회라는 제목이 왠지 낯설게 다가왔다. 지금의 사회는 어떨까? 생각하는 사회일까? 생각을 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복잡하다. 생각을 한다는 건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닐거라는 결론이 나왔다. 생각해보건데 작금의 사회는 생각하지 않는 사회다. 생각을 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사회일지도 모르겠다. 오로지 하나만을 위해 달려가는 것 같아 가끔은 씁쓸해지기도 하지만 사회속에는 소수의 힘이라는 것도 있으니 한숨만 쉴 것도 아니다. 그 소수의 힘이 뭉쳐 가끔씩은 엄청난 일을 벌이기도 하니 말이다. 책속의 주제는 민감하다. 그러나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해보거나 힐끗거려보았음직한 주제들임엔 분명하다. 내가 왜 이런 것까지 생각해야 해? 라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겠으나 그 여덟가지의 질문에 나는 답을 하고 싶어졌다.

 

첫째, 안락사는 금지되어야 할까? 아니다. 안락사는 허용해야만 한다.

안락사는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논란이 된 주제라는데 왜 지금까지 이렇게 시시비비가 많은 것일까? 사회는 발전하면서 인간 스스로가 만든 굴레를 통해 많은 것을 규제한다. 그런 잣대들이 인간의 본성까지 규제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안락사를 법으로 허용하는 나라가 전세계에서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뿐이라는 사실이 놀랍다. 모든 사람에게는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렇지 못한 상황이라면 주변에서 도와줄 수도 있다.(의무적으로라도!) 사람은 사람답게 살 수 있어야 사람이기 때문이다. 안락사를 반대하는 사람들이나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대며 아무런 희망도 없는 환자를 병실침대에 묶어두는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묻고 싶어진다. 그것처럼 이기적인 행위가 어디 있을까 싶어 하는 말이다.

 

둘째, 낙태의 자유는 제한되어야 할까? 그렇지않다.

낙태 합법화를 주도하는 대부분의 국가가 선진국인데 비해 불법화를 유지하는 국가는 개발도상국이나 저개발국가라는 점은 흥미롭다.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낙태를 하기 위해 약초나 약물을 사용하거나 자신의 몸을 학대하는 방식에 의존했다. 인류역사에서 낙태를 규제하기 시작한 것은 19C초중반에서 20C후반이라 한다. 법으로 금한다고 낙태가 사라질까? 오히려 역효과를 낼 뿐이다. 여성의 행복이 먼저일지 태아의 생명이 먼저일지를 따진다면 그것이야말로 愚問이 아닐까 싶다. 왜냐하면 현실이 그사람의 행복을 좌우하는 경우가 더 많은 까닭이다. 낙태반대론자들이나 낙태방지법을 제정한 국가가 그 아이를 책임지고 키워준다면 여성들이여 망설이지 말고 아이를 낳아 그들에게 맡겨라! 안락사를 지지하는 사람들이나 낙태를 선택해야만 하는 여성들에게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대지 말라. 명분과 이론에만 치우친 그대들보다 훨씬 현명한 사람들이니.

 

셋째, 마리화나의 규제는 정당한가? 이 부분은 어떤 것인지 모르기 때문에 솔직히 뭐라 답변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마리화나의 규제는 정당한가를 물으면서 처벌의 형평성을 이야기했던 부분이 이채로웠다. 폭력 또는 우발적인 사고나 범죄를 초래하고 알코올 중독으로까지 번지는 음주는 허용하면서 마리화나는 왜 안되는가를 묻고 있다.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라는 공리성의 정의도 공정치않다고 말한다. 일관된 원칙도 없이 실행되는 규제와 처벌이 국가의 임의적 폭력일뿐이라는 말에 공감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주제속에서도 도덕적 쟁점이 등장한다는 것은 또 어떤 의미일까? 자유주의라는 허울속에서 다수가 지지하는 것만이 정답인 것처럼 여긴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말에 공감한다. 과연 개인의 삶과 그 가치를 위협할 모든 여건속에서 국가가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은 어디까지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넷째, 동성 결혼은 잘못된 것일까? 아니 그렇게 보지 않는다.

동성애라는 성적 취향이 유전적이거나 사회문화적 요인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지금에서야 알았다. 개인적 취향이 아니라는 게 놀라웠다. 왼손잡이와 동성애자의 차이는 무엇일까? 라는 한마디의 질문으로 동성애자에 관한 답은 더 말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왼손잡이에 대한 어떤 법이 제정된다거나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얘기는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다섯째, 부유세는 부당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책속에서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보인다. 갑, 을, 병이라는 세사람이 함께 집을 짓는다고 가정해 볼 때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보다는 힘을 합쳐야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다는 것인데, 각자 개인적으로 생산해내는 것보다 협력해서 이루어내는 사회적 생산력이 더 크다는 말이 틀린 것 같지 않다. 그렇다고 누구나 다 똑같이 분배를 해야한다는 건 아니다. 단지 '개인의 재산권 침해'라는 말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보자는 말일 뿐. 극심한 빈부 격차가 사회분열을 초래하고 협력의 분위기를 저해한다는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때문에 소득 재분배의 기능은 필요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여섯째, 사형 제도는 유지되어야 할까?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에 한표!

사형을 본격적으로 폐지하기 시작한 것은 19C 중반부터라고 한다. 현재 40여개국 정도만 사형제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걸 보면 많은 나라가 사형제도를 폐지하는 것에 동참하고 있다는 말일 터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현재 사형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인구가 많은 중국, 인도, 미국, 인도네시아, 일본등이 사형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까닭에 인구비율로 따졌을 때는 사형제적다고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볼 때 사형제를 폐지하는데 찬성하는 사람이 19%인데 비해 반대하는 사람은 70%나 된다고 하며, 유지해야 한다는 쪽의 비율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사회구조상 신분이나 계급에 따라 공정치 못하게 적용되는 것이 현실이다. 비슷한 수준의 범죄라 할지라도 백인보다는 흑인이, 부자보다는 가난한 사람이 사형선고를 받을 확률이 높다는 말이 많은 것을 시사해주고 있다. 감옥을 유지하는 비용과 사형제도를 유지하는 비용등은 차치하고라도 어찌되었든 사회정의를 위해서는 사형제도는 필요하다. 단 공정해야 한다는 원칙을 잊으면 안된.

 

일곱째, 매춘은 처벌받아야 할까? 거두절미하고 아니다.

매춘자체가 문제라기 보다는 그것을 이용하여 착취하거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 더 문제이며,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그것을 대하는 일부 사람들의 태도가 문제라고 본다. 사랑없는 성적 쾌락이 비난받아야 한다면 단순히 매춘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닐 것이다. 성의식의 변화는 어느정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그 선택과 판단에 따른 결과는 자신의 책임져야만 한다. 그럼에도 매춘을 바라보는 시각이 삐딱한 것은 왜일까? 책속에서도 언급한 것과 같이 어쩌면 우리는 성가치관의 변화에 불편함을 느끼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여덟째, 과시적 소비는 비난받아야 하나? 왜 비난받아야 하지? 그럴 필요는 없어보인다.

물론 낭비적인 소비형태로 볼 수도 있겠지만 형편에 맞춰 살겠다는 데 그걸 비난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게 마땅찮으면 출세하면 된다. 과시적 소비를 한다고 해서 사회적으로 그 사람을 존경하거나 인정하지는 않는다. 값비싼 것들로 외모를 치장할 수는 있어도 '내면' 이나 ' 사람됨'까지 치장할 수는 없는 까닭이다. 그런 사람에게 다가가 비굴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나 자신의 형편을 무시한 채 터무니 없는 욕심으로 그들처럼 살고싶어하는 사람들이 문제인 것이다. 탐욕으로 자기 자신을 망가뜨렸으면서 사회탓이나 남탓을 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경제학자 애덤스미스의 말이 눈길을 끈다. 돈을 더 많이 모으고 소비할수록 행복해질거라는 믿음은 인간의 착각일 뿐이지만, 부의 효용에 대한 환상은 사람들을 계속해서 열심히 일하게 만드니 오히려 사회에는 득이 된다,는 그의 논리에 공감한다.

 

이 모든 질문에 대해 무엇이 옳은 것인가를 따지기에 앞서 생각해볼 게 있다. 계급과 신분, 지위의 구분을 통해 이루어지는 사회적 통제에 나는 나자신을 얼만큼의 강도로 묶어두고 있는가?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이기도 하지만 전체적인 답이 될수도 있는 말이 아닐까 싶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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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말해줘
존 그린 지음, 박산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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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자고 한 얘기에 정색하고 달려든다는 말을 생각하게 한다. 적어도 나한테는 그랬다는 말이다. 소설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건 부쩍 무거워진 마음을 달래볼까 하는 심정때문이었는데 도무지 입구를 찾을 수가 없었다. "이토록 소깊은 러브스토리라니!"라는 책띠의 말을 지워버리고 싶었다는 게 아마도 솔직한 표현일게다. 정색하고 들이대는 공식 따위에 가려져서 이제 막 사랑을 배워가는 아이들의 풋풋함을 느끼기에는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그런데 우습게도 책을 읽으면서 사랑을 그래프와 공식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럴수 있다면 과연 어떤 공식, 어떤 그래프가 만들어질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어버리고 말았다. 어쩌다가 우리는 사랑이라는 감정에서조차 공식과 그래프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것일까? 그냥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며 살아가면 안되는 것일까? 이별이 단순히 한사람만의 잘못도 아닐진데 내탓, 남탓 한다는 그 자체도 우스운 일일터다. 그야말로 발칙한(?) 상상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사랑에는 서툰 똑똑한 천재라고 소개되어지는 주인공 콜린의 모습속에서 사랑과 자아를 찾아가는 고뇌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결론은 역시 세상속에 존재하는 사랑의 의미와 다르지 않다. 쉽게 올 수 있었던 걸 일부러 먼길로 돌아온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뭐, 이건 순전히 나혼자만의 감정일테지만 말이다. 문득 크게 이슈가 되었던 우리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가 다른 문화속에서는 어떻게 읽혀졌을까 궁금해진다. 그 나라, 혹은 그 작가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는 공감하는 바가 크지 않겠구나 싶어서. 어설픈 나의 이런 감정이 싫어서 아무래도 존 그린의 다른 작품을 한번 더 읽어봐야 할 것 같다.

 

드디어 공식과 그래프가 완성되었다! 사귀는 두 사람 중에 누가 언제 상대방을 찰지를 예측하는 수학 공식과 초등학고 4학년의 러브 스토리에 어울리는 완벽한 그래프.. 그래놓고는 천연덕스럽게 그걸로 미래를 예측할거라고 말하는.. 어쩌면 현실성 있는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한다. 만약 누가 먼저 찰지를 예측할 수 있다면 서로 먼저 차려고 하거나 차이기 않기 위해 무언가를 할지도 모를테니까 말이다. 이런 말을 하면서도 뭔가 찝찝한 기분이 드는 것은 이중적이고 가식적인 우리의 속성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 공식을 만든 진짜 이유는 관계의 기복을 예측할 수 있느냐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는 주인공의 말은 빈말이 아닌 듯 하다. 관계의 기복이라..... 많은 것을 담고 있는 한마디였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캐서린이란 이름에게 열아홉 번을 차이고 린지라는 이름과 다시 만나게 되는 콜린은 과연 어떤 사랑을 꿈꿨던 것일까? 콜린이라는 이름에게 차이고 또다시 콜린이라는 이름과 사랑에 빠지게 되는 린지의 사랑공식은 또 어떤 형식이었을지.... 미완성이 주는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성장하는 아이들의 고뇌치고는 참 복잡하게도 꼬였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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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부여의 기술 - 평범함을 위대함으로 바꾸는 8가지 코드
인터브랜드 지음 / 엔트리(메가스터디북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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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PROPOSITION, IDENTITY, STORY, NETWORK, POLITICS, SPACE, TIME.... 책표지의 깡통 그림속에 보이는 글자들이다. 복잡하다. 일단 브랜드란 말부터가 거창해보이지만 쉽게 말해 상표다. 상표는 다른 제품과 구별하기 위해서 만드는 것일수도 있지만 그 회사의 얼굴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중요한 건 맞다. 그 상표를 앞세워 더 많은 이득을 얻기 위해 애쓰는 것이 마케팅일 것이다. 그러니 광고의 힘은 정말 대단할 터다. 광고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소비자 혹은 고객이 느끼는 온도의 차이는 엄청날 것이다. 그 수많은 광고중에서도 아주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광고가 있는가하면 그런게 있었나 싶게 금방 잊어버리는 광고도 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상표에 어떤 의미를 담는가에 따라 회사나 제품의 이미지가 달라진다고 말하는 것 같다.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 아주 지독한 현실주의자인 까닭인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어떤 브랜드를 선호한다고도 말 할 수 없이 어떤 때는 회사를 믿기도 하고 어떤 때는 그 제품 하나만을 믿기도 한다. 그저 내가 편하고 나한테 잘 맞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목차를 훑어보면서 머리 아프겠군, 했다. 너무 쉽게 생각하고 덤벼들었던 탓이다. 사실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들려오는 유명한 이름들, 혹은 그 회사가 어떻게해서 생겨나게 되었는지 그 유래나 전설(?)쯤을 들려주는 책일거라고 짐작했었다는 말이다. 뭐, 책의 말미에서 피자헛이나 스타벅스, 나이키, 루이뷔통, 프라다와 같이 유명한 이름들에 관해 잠시 언급해주기는 했지만.... 떨떠름한 느낌으로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지만 나름 흥미로웠다. 지금처럼 나 자신조차도 상품화시켜야 한다는 세상을 살면서 한번쯤은 생각해보아야 할 주제들이 눈길을 끌었다. 단지 브랜드라는 것에 제한을 둘 필요가 없었던 거다. 이 책이 말하고 있는 것에 나를 대입시켜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거라는 확신이 생겨나기 시작했다는 거다.

 

SPACE... 많은 주제중에서도 공간부분을 이야기할 때는 정말 좋았다. 문득 떠올랐던 것이 '남이공화국'이란 말을 만들어냈던 남이섬의 신화였다. 아주 오래전 별 볼일 없었던 남이섬이 남이공화국이란 이름으로 바뀌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그저 그런가보다 했었는데 작년 겨울에 한번 찾아가 본 남이섬에서의 하루는 정말 괜찮았었다. 더구나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훌륭한 기업이 되기 위한 조건들을 갖추기 위해 노력했던 곳이라는 생각에 과연 '신화'라는 말을 들을 만 하지 싶었다. 그런 반면에 많은 아쉬움을 남겼던 동대문운동장에 관한 이야기는 지금 생각해보아도 안타까움을 지울 수가 없다. 버스를 타고 지나가면서 옛서울시청사를 바라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거기 그 자리에 남아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과거를 소홀히 하지 않은 외국 유명도시를 방문했을 때 늘 부러웠다던 말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도 가져보게 된다.

 

많은 기업이 이익만을 위해 애쓰지 말고 소비자가 공감하는 가치를 이해해야 한다는 말에 공감한다. 그러나 작금의 광고를 보면 광고 따로 제품 따로인듯한 느낌이 들때가 많다. 그럴때마다 나는 속으로 외친다. 광고는 광고일뿐이니 넘어가지 말자고. 어떻게해서든 많이 팔기만 하면 된다는 얄팍함이 그 광고속에 녹아 있는 것만 같아 씁쓸할 때도 있다. 브랜드 하나만을 생각하지 않고 그 안에 많은 것을 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새삼스럽게 경이감마저 느끼게 된다. 視而不見 聽而不聞... 보고 있으되 보지 못하고, 듣고 있으되 듣지 못한다, 는 말을 메모한다. 일상속에 많은 것이 있다는 뜻일게다. 소소함속에 대단함이 숨어 있는데도 우리가 찾지 못하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을지.... 지레 겁먹고 읽기 시작했는데 읽으면서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게 만들어 준 책이다. 마지막으로 97쪽에 보이는 말을 되뇌인다. 바쁘다는 핑게로 실행을 미루는 이들에게 한 말씀 전한다면? '사유하는 시간'과 '생활 속 여백'을 만들어보길 바란다. 물론 쉽지 않겠지만 꼭 필요한 일이다. 좋은 책을 읽되 읽으면서 생각한 것을 글로 기록하라는 말도 함께.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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