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평화를 짝사랑하다 - 붓으로 칼과 맞선 500년 조선전쟁사 KODEF 한국 전쟁사 1
장학근 지음 / 플래닛미디어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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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조선시대에 대마도를 정벌한 후 그들의 말처럼 조선에 귀속시켜 관리인을 두었다면 지금의 우리는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만약에 흥선 대원군이 나라의 대문을 꽁꽁 걸어 잠그는 쇄국정책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우리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만약에 우리의 선조들께서 자신의 안위만을 챙기기 위한 당파싸움을 저멀리로 내던질수만 있었다면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어떤 미래를 안겨줄 수 있었을까?

중국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책이었던 것 같다. 얼마전에 읽었던  책속에서 나에게 너무도 강하게 다가왔던 한줄의 글귀가 있었다. 한국처럼 우리의 유교주의를 제대로 이어받은 나라는 없는 것 같다던... 그래서 한번쯤은 한국을 방문하여 그것을 다시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던... 지식층의 말을 보여주던 부분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던가?  대의명분만을 내세울 줄 아는 그런 학문에 어쩌면 그리도 심오한 철학을 심었어야 했는지 나는 가끔씩 되묻고 싶었었다. 이 책의 저자는 마치는 말을 통해 결코 유학의 책임이 아니라고, 단지 조선의 사대부들이 유교의 다양성 중에서 명분론과 예론만을 취했을 뿐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어찌되었든 득과 실을 제대로 따져보지 않고 제게 필요한 것만을 받아들여야 했던 상황들이 나는 미운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쯧쯧.. 혀를 차기를 몇번, 제대로 받은 것도 없으면서 어쩌면 그리도 충성스러운 사대주의에 물들어 살아야 했는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스스로가 제 안위를 책임지려 하지 않고 그야말로 손 안대고 코풀려는 듯한 그런 태도들을 보인 것은 정말 맘에 안든다. 때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긴 하였지만 대부분의 경우가 안타까움이니 하는 말이다.

책속에서는  조선시대의 군사적인 규모나 형태 혹은 무기류의 실정들, 전쟁에 대처하는 자세 또는 전략 전술에 대한 이야기들을 아주 세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한바탕 조선시대의 전쟁사에 대한 특강이라도 들은 것 같은 느낌이랄까?  너무 장황한 설명앞에서 조금은 따분하기도 하였지만  이런 얘기는 차라리 듣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앞서는 대목들이 있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의 상황 묘사를 보면 그야말로 속이 탄다. 탁상공론에만 치우쳐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는 근시안적인 모습들은 답답하기조차 하다. 오죽했으면 예고되어진 전쟁이라고까지 말하겠는가 말이다. 그런 와중에서도 이순신과 같은 명장이 역사속에 살아 있었다는 것은 그야말로 천만다행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임진왜란의 뒤를 이은 전쟁들이 수도없이 일어났다.  그 전쟁들에 대한 작가의 설명을 듣다보면 아이구, 소리가 저절로 나오기도 한다. 내 나라의 안위보다도 친명배금정책을 써가면서까지 오직 명나라의 안보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던 말은 가히 충격적이기도 하다.  우리는 저멀리 만주벌판까지 우리의 땅으로 만들 수 있는 기회도 있었고 그렇게 할 수도 있는 저력도 충분히 있었다. 그랬음에도 식민지가 되어 우리의 역사에 빨간 줄을 그어야 했다는 것은 정말 통탄할 일이 아닐수가 없다.

만약에 임진왜란을 일으켰던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쟁중에 병사하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아 그 전쟁을 지휘했다면 우리의 조선은 어찌 되었을까?
만약에 쓸데없는 친명배금 정책과 같은 사대주의를  앞세우지 않고 시기적절하게 실리를 챙길 수 있는 외교를 할 수 있었다면 우리의 조선은 어찌 되었을까?
만약에 조선의 문을 열기 위하여 끝도 없이 다가왔던 열강들에게 조금씩이라도 문호를 개방했더라면 우리의 지금은 어떤 모습으로 보여지고 있을까?

그런데 신기하게도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작금의 현실과 비교해 보게 되었다. 무엇이 다를까? 그 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하나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작가의 말처럼 지도자의 오판과 정책적 오류가 때로는 얼마나 큰 재앙으로 연결되는지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그렇게 아픈 역사들이 있어 좀 더 나은 후세들이 되었어야 하는 건 아니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면 그 아픈 역사들이 주는 교훈은 모두 어디로 간것인지...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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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슬립 - 전2권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이수경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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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일의 기억>이란 영화를 본 적이 있다. 그 영화의 카피에는 한국판 <내 머리속의 지우개>라고 되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 카피만 보고 영화를 보았다면 아마도 실망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내일의 기억>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던 순간이 있었다. 아직은 젊다고 할 수 있는 나이에 알츠하이머병을 앓게 되는 주인공의 서글픈 스토리, 그리고 그런 남편을 위하여 마음을 쓰던 아내의 그 힘겨운 노력이 얼마나 가슴에 와 닿았는지 모른다. 그 섬세한 표현들을 보면서 책이었다면...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우연하게도 이 책의 작가 프로필을 보다가 <내일의 기억>이란 제목을 보게 되었다. 그렇구나, 그 영화도 책이 있었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이 작품에 대해 은근한 기대감을 갖게 되었다. 너무나 현실적으로 가슴을 울리던 작가의 필체를 영화를 통해서 이미 만나보았던 까닭이기도 하리라.

19살의 청춘.. 그 나이에 나는 무엇을 했었지?  책속에서 만나지는 두명의 주인공도 19살의 청춘이다. 하지만 똑같은 청춘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시대적 배경이 판이하게 다른 두사람의 삶속에서 어찌 같은 청춘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21세기의 청춘 겐타와 1945년도의 청춘 고이치가 시간이동을 통해 서로의 삶이 뒤바뀌게 되는 현상을 보면서 편견에 빠져들뻔 했다. 시공간을 넘나드는 그런 류의 이야기들이 우리곁에는 너무도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작품속에서 만날 수 있는 공간초월감은 뭔가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 시대가 만들어낸 이념과 삶의 모습이 아이러니 하다. 바다로 서핑을 나갔던 21세기의 겐타와 처음으로 단독비행에 올랐던 전쟁시의 소년병 고이치가 서로 몸이 바뀌어버리는 상황에서 이야기는 시작되어진다. 기억할 것은 단지 서로의 육체, 몸만 바뀌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지난 연말쯤에 본 영화한편이 생각났다. 부족할 것 없는 도시의 여자와 삶의 뒷편에서 늘 쓴맛을 보며 살아가던 시골의 여자가 자신이 처한 현실에서 비껴나 서로 집을 바꿔서 살아보기로 한다는 내용이었다. 우선적으로 나는 어느쪽이 더 현실에 쉽게 적응할 수 있을까, 혹은 어느쪽이 먼저 바뀐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어할까를 생각했었다. 쉽게 말하면 모든 편리와 편안함이 몸에 벤 쪽에서 먼저 항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는 말이다.  이 책속의 두 주인공 역시 그와 비슷한 점을 묻고 있을거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21세기에서 살았던 겐타의 눈에는  과거의 사람들 모습이 조금은 미개인스럽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21세기로 넘어온 소년병 고이치의 눈에 비친 미래의 사람들은 외계인처럼 보였을까? 하지만 우리의 두 주인공은 자신의 현실과 딱 맞아떨어지는 생각을 한다. 몰래카메라가 어디있는거지? 이 프로는 도대체 언제쯤이면 끝나는거야? 를 외쳐대던 겐타와 자신이 적군의 포로가 되었을거라고 믿어 병원에서 탈출을 시도하던 고이치의 모습에서 나는 왠지 서글픔이 느껴졌다.

과거와 미래로 서로의 시공간이 바뀐 두 사람의 삶이 어떻게 변해갈 것인지 궁금했다. 책이나 영화속에서만 보여지던 전쟁시의 군대에서 생활하게 된 겐타와 부시맨처럼 미래세상으로 툭 떨어져버린 고이치는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뒤 사실을 인정하게 되고 자신이 살았던 세계로 다시 돌아가기 위한 방법을 찾기 시작한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궁금했던 것은 고이치다. 삶의 편안함을 알아버린 그리고 사랑의 달콤함을 알아버린 과거의 고이치는 과연 어떤 쪽을 택하게 될까?  어느날 문득 바다라는 매개체를 통해 서로의 몸만 바뀌게 되어버렸던 두 사람의 1년은 과연 살아있는 시간이었을까? 그들이 다시 저마다 머물던 공간속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그들은 다시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렇게 살아갈 수는 있는 것일까?  중요한 것은 과거로 돌아가 이미 미래를 알고 있는 겐타와 과거에서 넘어와 미래를 알게 되는 고이치의 반응이 아닐까 싶다. 그들은 과거를 바꿔 미래를 흔들리게 하지 않았고 또한 앞서 달려와 만나게 되는 자신의 미래를 보면서 그 사실을 가슴으로 인정했다는 거였다.

삶이 뒤바뀐 두사람을 보면서 나는 문득 윤회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모든 것이 너무도 같기만한 두사람.. 그래서 그 두사람에게는 원래의 공간속으로 되돌아간다는 사실 자체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였던 건 아니었을까? 어쩌면 겐타는 고이치의 환생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그런 생각말이다. 겐타와 고이치를 통해 과거와 미래를 보여주었다면 그들이 함께 할 수 있도록 잡아주었던 미나미의 존재는 역시 사랑이다. 그 사랑을 향해 되돌아가기 위해 몸부림치던 겐타, 어렵게 받아들였던 사랑을 두고 떠나기 위해 가슴앓이를 해야만 했던 고이치.. 그들에게 있어 진정한 사랑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그들이 제각각 머물렀던 공간속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돌아간 후의 그들의 변화된 삶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세상을 너무 쉽게만 생각했었던 이 시대의 청춘 겐타에게는 분명히 자신의 삶을 바라봄에 있어 다시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왠지 과거의 공간속으로 다시 돌아간 고이치의 삶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가 않다.

시공간을 초월한 이야기, 시간이동이란 주제를 바라다보면 환상적이라는 느낌보다는 왠지 허무맹랑하다는 느낌이 앞서곤 했었다. 뭐랄까.. 좀 억지스럽다는 그런 느낌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내게 그런 느낌이 오면 어쩌지?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기우였음을 인정한다. 생각보다는 무거운 느낌으로 이 책을 읽게 되었으니 말이다.  자주는 만나고 싶지 않은 시간이동이란 껄끄러운 단어안에서 生과 死가 얽힌 삶의 모습, 因緣과 輪廻에 대한 의미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조금은 산뜻하게 시공간을 넘나들 수 있어 좋았던 시간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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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초
피에르 샤라스 지음, 홍성영 옮김 / 민음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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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9초.. 짧은 시간일까? 긴 시간일까?  묻는다면 대답은 알 수 없다,이다. 왜냐하면 저마다 처해진 그때의 상황에 따라 달라질테니까 말이다. 간혹 이런 질문을 받을 때가 있었다. 내일 세상이 멸망한다면 무엇을 하겠느냐고, 혹은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 나의 대답은 늘 이랬던 것 같다. 뭐, 별다르게 할 일은 없어. 그저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아내지 않을까? 사실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해서 내가 할 일이 뭐 있겠는가 말이다. 그러니 나는 그저 늘 해왔던 것처럼 그렇게 살아갈 뿐인 것을. 이 책속에서 말하고 싶은 19초는 어찌보면 엄청 길게 느껴지기도 하고 또 어찌보면 상당히 짧게 느껴지기도 한다. 노란 점퍼를 입은 남자가 스포츠가방을 두고 기차에서 내린다. 그 가방안에는 폭발물이 들어있지만 그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니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 또한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들에게는 늘 어제와 같은 오늘이 있을 뿐이다. 그런 상황을 작가는 이렇게 밀어붙인다. 이제부터 세겠다, 그러니 긴장하라. 19초, 18초,17초,16초,......5초,4초,3초,2초 그리고 1초... 하지만 폭발물이 터지는 그 순간까지도 거기에 있던 사람들은 저마다의 문제만을 가슴속에 안고 있을 따름이다.

1초가 지나갈 때마다 우리의 이야기는 하나씩 전개되어진다. 위기를 맞고 있는 중년의 부부, 가브리엘과 상드린이 그 1초속에 갇혀있고, 이제 막 사랑에 눈을 뜬 소녀 소피의 환상적인 사랑도 그 1초속에 머물러 있다. 책을 읽으면서 문득 나는 전철을 탔을 때를 떠올려 본다. 사람들의 모습을.. 저마다의 표정으로 저마다의 한순간에 몰두해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각양각색이다. 그러나 그 표정속에는 저마다의 아픔과 저마다의 기쁨도 함께 한다.  몸이 부딪힐 정도로 가까이 있지만 우리는 단지 그저 그 공간안에 함께 머물러 있다는 것일 뿐, 서로에게는 사실상 아무런 존재가치조차도 없음이다. 책속에 나타나는 소제목들에 시선이 머문다. 제우스,스틱스,하데스... 19초가 1초를 향해 달려가는 동안만큼은 제우스의 세상이다. 그리고 폭발물이 터지고 아비규환의 상태에서 작가는 우리에게 스틱스강을 건나가라고 한다. 이승과 저승사이를 흐르는 강이라고 했던가? 신화속에서 참 많은 이야기들을 잉태했었던 그 강을 건너 우리에게도 하나의 이야기가 되어달라고 말하고 있는 것만 같다. 그리고 하데스... 드디어 우리는 죽었다. 다시 시작하고 싶었던 사랑도 스틱스강의 저편에 두고, 꿈결같은 환상의 세레나데를 불러줄것만 같았던 그 처음의 사랑도 거기에 놔두고, 그렇게 우리에게 1초가 다가왔던 순간, 폭발물이 터지던 그 순간부터 우리의 이야기도 죽는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19초와 1초 사이에서 방황하던 이야기들은 이제 시작이냐 아니면 마지막이냐를 묻고 있다. 어쩌면 우리의 삶은 늘 시작이면서도 늘 마지막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만 같다. 잔인하게도.

이제 그녀는 오른쪽 다리가 없다. 피가 빠져 나간다. 목숨이 빠져 나간다... 식의 작가의 말투는 정말이지 건조하다. 폭발물이 터지고 그 고통과 절절한 회한이 머무는 순간에서조차 작가는 그 아픔과 고통을 절대로 알려주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다. 그저 고통과 아픔이 있었다,그리고 죽음이 찾아왔다, 라고 아주 간단하게 수첩에 빠른 메모를 하듯이 그렇게 적어두고 있을 뿐이다. 거기에 있었으니까 죽었을 뿐이라고 그렇게 담담하게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진다. 완전한 타인... 작가조차도 완전한 타인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다. 그 타인의 감정으로 테러리스트라 말할 수 있는 노란 점퍼의 남자조차도 죽음속으로 내몬다. 또한 그 기차를 그냥 떠나보냈던 남자 우리의 가브리엘을 통해 또하나의 노란 점퍼 사나이도 죽음으로 내몬다. 그리고 가차없이 작가는 어쩌면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었을 가브리엘을 다시 죽음앞에 세워둔다. 아무도 가해자가 될 수 없으며 또한 아무도 피해자가 될 수 없음이다.

19초는 우리가 살아내야 할 혹은 우리가 살아내고 있는 현실 그 자체가 아닐까 싶다. 늘 우리를 조여오는 현실감각이란 느낌... 그래서일까? 작가의 카운트다운을 나도 함께 센다. 19초,18초,17초..... 나의 1초는 어느순간에 올까? 나의 1초가 다가온 그 순간에 내 안에서 폭발하는 것은 무엇일까? 실제적으로 세계의 대도시에서는 테러리스트에 의한 폭발사고들이 많이 일어난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언론매체를 통해서만 볼 따름이다. 그러니 그 감각 또한 멀다. 그러니 완전한 타인일수 밖에는 없음이다. 나 역시도 함께 전철을 타고 한공간속에 머무르지만 완전한 타인인 것을 어쩌랴.. 누구에게나 19초의 헤아림은 올 수 있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도 느끼는 것도 나일 뿐이다. 이 세상속에는 타인들의 시선과 타인들의 발걸음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일까? 이 책의 제목 '19초'는 왠지 서글프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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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등 이펙트 - 지금 누군가 나를 조종하고 있다!
로빈 스턴 지음, 신준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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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우선은 가스등 이펙트란 말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두꺼운 책띠의 설명에 의하면 이렇다.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을 조종하려는 가해자와 그를 이상화하고 그의 관점을 받아들이는 피해자가 만들어내는 병리적 심리 현상을 뜻한다.. 가해자와 피해자란 말만 얼핏 보고 참 무섭다는 생각을 했었다. 살아가면서 얽혀지는 그많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속에서 상처를 받지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것일까? 작은 것들까지 일일이 신경써가며 살아야 한다면 그 또한 얼마나 피곤한 일인가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속에서는 어느정도의 진실이 있다 하더라도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비난은 듣지 말라고 말하고 있다. 얼마전에 있었던 일이다. 잘 알고 지내던 선배가 나를 불러 내가 만든 작품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도 이렇게 해봤지만 별로였다는 둥,너처럼 이런식으로 만드는 것에 대해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는 둥..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무슨 중요한 일이라도 되는양 불러놓고는 나를 자신의 틀에 맞추기 위해 애를 쓰는 모습이 안스럽기도 했지만 타인의 생각에 대해서는 아주 무시하는듯한 그 선배의 태도에 엄청 화가 났었다. 그야말로 머리끝까지 치고 올라온 화를 달래며 나는 이렇게 말했었다. 선배, 사람들마다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관점은 다른거 아닌가요? 모두에게 나와 같기를 원한다는 그 자체가 무리란 생각이 드네요... 그후 그 선배를 대하는 나의 태도는 180도로 확 달라져 버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때 나는 아주 심각할 정도로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고 그 모양새를 보고 있던 다른 동료들도 나를 위로하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나는 이건 아니다 싶은 경우 아주 무시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것에 대해서는 두번 다시 거론하지 않으며 또한 그렇게까지 몰고간 원인제공자에 대한 마음을 깨끗하게 거두어들인다. 나는 안다. 사람이 사람과 눈길을 마주치지 않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이후 선배의 태도가 달라졌지만 나는 그 선배를 용서하지 않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때의 일을 떠올렸다. 그렇다면 나는 가해자일까,피해자일까? 나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었지만 그 선배는 나에게 가해자였을까?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속에서 서로에게 알게 모르게 안겨주는 상처에 대해, 그리고 그 상처를 보듬어 안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심리적인 변화들을 꼬집어 주는 상황들을 이 책속에는 예제로 들어주고 있다. 사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치부해 버릴 수도 있겠지만 파고 들어가보면 왠지 나만 손해보면서 살아가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글쓴이의 경고는 자못 심각하기까지 하다. 결코 그냥 넘어가지 말라고, 그냥 넘어가서는 안되는거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가족끼리, 연인사이에, 그리고 친구 관계에서까지 일어나고 있는 정서적 침해를 그냥 묵과하지 말라고 말하는 거다. 

설명과 절충의 덫이란 소제목으로 말하고자 했던 작자의 의도는 나를 놀라게 했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모습들이 그안에 녹아 있었던 까닭이다. 아니 따로이 나라고 말하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아마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수도 있는 문제를 너무 들춰내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냥 좋은게 좋은거 아냐? 하는 식의 반론을 제기하고 싶다는 생각마져 들었다.  우리는 지나쳐가는 시간속에서 너무나 많은 것들을 잃고, 또한 너무나 많은 것들을 잊기 위해 애를 쓰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잊어서 혹은 잃어서 편한 것이 있을테고 잊어서 혹은 잃어서 불편하고 힘겨운 경우도 있을테지만 그런 것들의 경계를 확연하게 그을 수 없다는 것이 또한 문제인 듯도 싶은데.... 타인과의 관계를 지속시키기 위하여 그 사람이 내게 행하는 언행에 대해 변호하듯이 설명하는 그리고 무언가를 두고서 서로에게 양보하듯이 절충하는 그런 덫에 걸려들었을 때 우리의 가슴은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절충의 과정 또한 스스로 느끼는 현실에 눈감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에 대해 물어보라고 작자는 충고하고 있는 것이다. 가슴 깊이 느끼고 있는 확고한 진실을 찾아내야 한다고..
 
우리를 아프게 하고 우리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가까운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것은 사랑이란 의미안에서 이루어지는 폭력이다. 사실 나는 사랑을 폭력이란 말로 대신하고 싶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니 사랑도 더할나위 없는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았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럴수 있는거라고, 사랑하니까 이해해야 하는거고, 사랑하니까 다 받아들여야 하는거 아니냐고 아주 자연스럽게 말하고 있는 자체가 바로 그런것이다. 더이상의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 혹은 더이상의 말다툼을 하기 싫어서 어느 한쪽이 지고 만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한다. 내가 지금 원하고 있는 것을 정확하게 말해야만 한다고 말하고 있음이다. 다시말하자면 그렇게 상황을 접어버리는 것만이 사랑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정확하게 자신을 내보이며 상대방으로 하여금 나의 정체성에 대해 인식하게 해주는 것이 옳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 아니러니가 아닐 수 없다. 자신의 감정을 정확하게 표현함으로 인해서 서로에게 더 나은 관계를 지속시켜줄 수 있다면 어쩌면 더 멋진 일일수도 있겠구나 싶다. 무조건적으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혹은 상대방의 관점만을 받아들이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편이란 생각도 든다. 
 
책속에 예로 들어주었던 사람들의 모습속에서 내 모습을 보았다. 때로는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책장을 넘기기도 했다. 가해자의 입장에서 혹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내 속에 잠재되어져 있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두 모습을 생각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가해자로 치자면 나는 정말이지 치사한(?) 매력적인 가해자인 셈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내가 나를 보는 시선과 타인이 나를 보는 시선에 대해 재정리를 하는 시간도 갖게 되었다. 혹시? 설마? 아니겠지, 뭐 이런 반응이 내 가슴속에서 살아나는 걸 보면 나 역시도 남을 많이 아프게 했고 또한 아픔을 당해왔던 것 같다. 특히나 가족인 경우와 부모와 자녀간의 경우에는 더욱 더 심각하게 보인다. 피해자가 자신을 보호하지 못하는 아직 어린아이일 경우에는 정말 심각하다. 책의 서두에도 나와 있던 말, 부모라면 이 책을 꼭 봐야한다던.. 세상 모든 일들이 자로 잰듯이 그렇게 반듯하기만 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가도 피식 웃음으로 무마시켜 버리고 만다.
 
많은 사람들이 현재의 필요성만이 아니라 과거를 치유하고자 하는 소망을 가지고 사랑,우정,직업,가족 등의 관계를 갖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보살핌과 이해 그리고 인정에 목말라하는 것 같다. 그리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은 어쨌든 그러한 것을 제공하기를 약속한다(357쪽).. 이 말을 보면서 참으로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관계를 거부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믿고 다가가기 위해 자신을 보여주는 과정에서 하나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되는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은 그렇지가 않은 모양이다. 그러니 어쩌랴.. 작자가 말하고 있는 것을 명심할 수밖에 없겠다. 상대방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첫째,현실감을 가져야 한다. 불행은 매우 실재적이고 현실적이며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내가 처해있는 지금, 바로 현실이라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둘째, 기꺼이 도움을 받아야 한다. 우리의 문화는 혼자 어려운 일을 이겨내는 것에 높은 가치를 두는 경향이 있지만 절대로, 모든 일을 혼자서 하려고 하지 말고 진심으로 자신을 걱정해주는 사람과 함께 하라고 한다. 취미생활을 한다거나 운동을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셋째,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바라는대로 모든 것이 한순간에 변화된다면 좋겠지만 그 또한 내맘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니 숨을 돌리며 재촉하지 않아야 한다. 넷째, 동정심을 가져라. 상대방과 스스로에게 동정심을 보이는 것이 상처를 치유하는데 좋다고 한다. 나에게 선물을 하고 나를 칭찬해주어야 한다는 어떤 이의 말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참으로 많은 것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갖게 해준 책이다. 상대방에 관한 나의 생각을 다시한번 재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기도 했다. 무섭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던 책이다. 

가해자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상황을 좀더 통제한다는 느낌을 준다(169쪽)
자신이 옳더라도 타인의 생각을 지배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라(305쪽)
다른 사람의 영향력을 배제하는 삶을 영위하는 비결 중 하나는 자신의 삶의 방식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363쪽)
245쪽에 보면 누구를 당신의 세계에 들어오게 할 것인가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긴 이야기라 여기에 다 옮기지는 못하지만 나의 손과 마음은 어느새 거기로 달려가고 있다. 기회가 된다면 아니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내 마음속에 그 이쁜 상상의 집을 지어보고 싶다. 그리고 작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들에 대해 다시한번 꼼꼼하게 생각을 다듬어보고 싶다. 심리서의 마력에 흠뻑 빠져들게 했던 책, 가스등이펙트의 작자에게 감사한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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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 세종대왕 - 조선의 크리에이터
이상각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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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조선시대의 크고 작은 일들이 책으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결국은 급작스럽게 대왕열풍이다. 시대가 바뀌는 싯점이라서라는 말도 있겠지만 뺏고 빼앗기는 악의 구축점에서 이제는 슬슬 선을 구축으로 하며 한숨 돌리고 싶어하는 현대인들의 마음이 담겨있는 현상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쩌면 누군가가 나타나 그 험난한 삶의 쳇바퀴속에서 잠시 일탈할 수 있게끔 만들어주기를 바라는 그런 거 ... 아니, 이건 순전히 나 혼자만의 생각이다.(뭐, 아님 말고!) .. 세종대왕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한글을 생각하게 되지만 나는 정말이지 부끄럽게도 한글이란 이름이 세종 이후의 먼 후대에 와서야 한글이란 이름이 붙여졌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다지 깊은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다는 말도 되겠다.  '한글'이란 이름이 최남선과 주시경 선생의 발상이란 말에 그랬었나? 그랬었구나! 하다가  한글의 '한'이 하나 또는 크다의 뜻이란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거리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그많은 세월을 지나오면서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안타까움이 밀려오기도 했다.

이 책은 '세종대왕'이라 불리웠던  한사람과, '이도'라고 불리웠던 또 한사람을 다각도로 비춰주고 있는 것 같다. 왕으로써의 입장과 왕이란 직무를 떠나서 바라보는 시선은 너무 다르다. 세종대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던 것 같다. 처세술에 능한 기회주의자라고.. 실제적으로 장남도, 차남도 아니었던 세째가 왕이 된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것도 장남과 차남에게 이변이 일어나지도 않은 상태에서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이미 만들어진 반석위에서 시작한 세종의 입장에서 보면 성군이 되는 것이 당연할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 책속에서도 왕이 아닌 한 사람으로서의 세종은 자신의 속내를 숨길 줄 알아 그 때 그때 자신을 변호할 줄 알았던 것 같다. 살기 위한, 혹은 자신의 욕망을 위한 길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책속의 내용이야 별다를 건 없다.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인 흐름을 재조명한 것에 불과해 보인다. 단 중심축을 세종대왕에 두었다는 차이점이 있을 뿐이다. 책장을 넘기던 중에 나는 문득 책표지의 글자가 떠올랐다. 조선의 크리에이터... 크리에이터라는 말에 호기심이 생겨 찾아보니 게르만 신화속 파괴의 괴물이란 설명이 보였다. 파괴의 괴물이라.. 낡은 것으로부터, 혹은 백성을 위하는 일을 위하여, 혹은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기 위하여 세종대왕이 버려야 했고 타파해야 했을 많은 것들을 떠올려보니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일전에 읽었던 책속의 최만리가 한글창제를 두고서 이런 말을 했었다. 백성들이 글을 알게 되면 백성을 부리는 자들이 힘들게 될 것이라고... 글을 알게 되면 얼마나 많은 말들이 생겨나겠느냐고... 그랬던 최만리의 그 기막힌 대목을 이 책속에서 또 만나게 되니 나는 문득 진시황의 분서갱유를 떠올리게 된다. 분서갱유라는 사건이 일어나게 된 동기도 진시황이 벌이고자 하는 일에 대해 자신들이 공부해왔던 책들의 문자들을 들이대며 사사건건 반대를 했던 유생들에 대한 진시황의 분노였음이다. 무엇이 부족하여 한글을 만들어야 하느냐고 세종에게 따져 묻던 최만리의 모습을 보며 나는 왜 엉뚱하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후반부에서 보여주던 세종시대의 인물들에 관한 글은 이채롭다. 정치면에서 이만하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황희 정승이나 맹사성, 과학과 천문학쪽에서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던 이 천이나 이순지 혹은 장영실등의 이야기등을 읽으면서 과연 세종대왕이구나 싶기도 했다. 과학이면 과학, 음악이면 음악, 문학이면 문학..그만큼 다방면에 관심을 가지고 모든 것들을 현실속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애썼던 왕이 있었을까?

"나는 조선에 올인한 사람이니 자식들을 생각해서 자중하시오. 오버하면 당신과도 남남이오"
"왕권을 무시하는 자들은 다 저렇게 된다. 너도 함부로 냄새피우지 마라"
"임금도 공부하고 신료들도 공부한다. 땡땡이치면 용서 없다"
무슨 말인가 하면 책속에 나타나는 대화들이다. 처음에는 역사를 다루는 내용과 저런 대화체가 너무 어울리지 않아 짜증스럽기도 했다. 이게 뭐야! 하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책을 읽어가면서 나도 모르게 그 대화체에 동화되어가는 걸 보며 슬며시 웃음이 났다. 짐짓 무거울수도 있는 책속의 내용들이 너무 쳐지지 않게 묶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까닭이다. 정말로 왕과 세자가 혹은 신하가 서로 마주보며 오버하지 마시오, 냄새 피우지 마라, 땡땡이치면 국물도 없다... 이런 식으로 대화를 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니 오히려 재밌기도 했다. 그야말로 모순 투성이인 이 인간의 마음이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인터넷용어라는 말 자체를 싫어하니 다음에는 이런 대화체의 역사서를 만나고 싶지 않음이다.

책의 말미에 따로이 주석을 달아놓아 이 책을 보기에 한결 용이했다. 나름대로 역사에 대한 소소한 지식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된듯도 하니...  어찌보면 속국으로써의 면모보다는 자주적인 국가로서의 면모를 세우기 위해 한글이 창제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과 나라를 굳건히 세우고자 하셨던 세종대왕의 뜻이 한글이 만들어지던 그 순간에 더욱 더 불탔을 것이다.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한글을 쓰는 우리가 과연 한글에 대한 생각을 얼만큼이나 하고 있는지 그것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컴퓨터가 지배하는 세상을 살면서 그 안에서 필연적으로 만날 수 밖에 없는 망가진 한글의 모습들은 정말 많은 것 같다. 한사람, 한남자의 가슴앓이로 만들어졌던 한 시대의 모습을 보았다.  참주인을 잃어버린 채 세계 여러곳을 떠돌고 있다는 그가 만든 '우리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잊어서는 안될 것 같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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