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김훈 지음 / 학고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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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 환궁하면... 환궁하면... 그래 환궁하면 너희들에게... - 그리고 그들은 환궁했다. 어찌되었든간에. 임금이 나아가 적의 발아래 엎드려 이마를 땅에 찧었든지 말든지 어찌되었든 그들은 환궁했다. 그리고 그들은 백성들에게 환궁하면...이라고 말하며 가져다 썼던 것들을 갚았을까? 단지 임금을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임금이 있는 곳으로 따라가지 않고 제 삶의 길로 되돌아간다는 이유로 목에 칼을 맞아야 했던 백성들이었다. 그 백성들이 말했다. 봄에는 조정이 나가는 것이옵니까? 조정이 비켜줘야 소인들도 살 것이온데.... (-319쪽)  그랬다. 나라의 근본이 백성이었음에도 그들은 그것을 몰랐다. 아니 모른체 했다. 그래야만 저희들 뱃거죽에 기름이 낄테니 말이다. 그래야만 저희들이 편하게 살 수 있었을테니 말이다. 책을 읽는 내내 한숨만 나왔다. 소설이라고 치부해버리기에는 너무도 많은 것들이 울부짖고 있었다. 그토록 강한 문체처럼 그 때의 그들도 그렇게 살았다면 차라리 나앗을 것이다. 그렇게만 했다면 그토록이나 험난한 여정을 백성들에게 강권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나라가, 임금이, 나라일을 한다는 사람들이 백성들에게 하나의 걸치적거림으로 보이지는 않았을 게다. 어찌 그리도 영악스럽지 못했는가 묻고 싶었다. 그 세월을 살아낸 백성들은 오롯이 몸을 낮추고 입을 닫았다.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야만 생목숨이나마 부지할 수 있다고 깨달았을 것이다. 그런 그들이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책을 읽는 내내 그들이 가여워서 눈물이 났다. 그들의 후손이 분명 우리일진저...

전하, 지금 성 안에는 말(言)먼지가 자욱하고 성 밖 또한 말(馬)먼지가 자욱하니 삶의 길은 어디로 뻗어 있는 것이며, 이 성이 대체 돌로 쌓은 성이옵니까, 말로 쌓은 성이옵니까. (-197쪽)
어찌된 일인지 모를일이다. 아니 나도 모른체하고 싶을 뿐일게다. 전쟁이 나도, 태평성대를 누려도 말(言)이 너무 많았다. 전쟁이 나면 제 살길 찾느라고, 제 방패막이가 되어줄 희생양을 찾느라고 말(言)이 많았고, 태평성대에는 제 가진 것을 지키려고, 제 가진 것 빼앗기지 않으려고, 제 가진 것보다 남 가진 것이 더 많아보여서, 그래서 또 말(言)이 많았다. 그들이 나랏일을 했다. 그런 그들이 백성의 안위를 생각할 리가 없었다. 그랫기에 저희들끼리 속삭였을 것이다. 소설속의 구심점은 두개였다. 화친은 곧 죽음이라고 일컫는 자와 화친만이 살길이라고 외치는 자.. 누가 옳다 누가 그르다를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닐 것이다. 길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야 길을 만날 수 있는지 다 알고 있었던 까닭이다. 단지 명분이 문제였다. 현실을 배재시킨 뜻없는 명분만이 살아 숨쉬고 있음이었다. 입만 열면 그들은 말했다. 전하, 아니되옵니다... 차라리 신을 죽여주시옵소서.. 내가 임금이었다면 그들을 죽일 수 있었을까? 입만 나불대는 그들을 등에 업고 가야 할 임금의 처지가 애처로웠다. 제 자신의 생각조차도 제것이 아닌 것이 임금이었다고 말한다면 너무나도 치졸하다. 

말을 접지 말라. 말을 구기지 말라. 말을 펴서 내질러라. (-284쪽)
청의 왕 '칸'의 일성에 내 속이 다 뚫리는 것만 같았다. 접지도 말고, 구기지도 말며, 펴서 내질러라! 이 얼마나 호탕한가.. 여우새끼처럼 제 속으로는 저 살 궁리만 했던 시대의 충신들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성벽으로 올려놓으니 손과 발가락이 얼어 터져 떨어져나가는 군졸들 앞에서 솜두루마기를 걸쳐입었던 그들이었다. 성 밖으로 내몰려 일전을 치루는 군졸들을 내려다보며 아이쿠, 그럴 때는 오른쪽으로 빠져야지...무릎을 치며 입으로 전쟁을 치루던 그들이었다. 힘겹게 싸우고 다친 병사를 챙겨 돌아온 군졸에게 곤장을 치던 그들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임금이 말했었지. 경들이 알아서 하라.. 참다못한 군졸들이 임금앞으로 밀려왔다. 임금을 에워싸고 말만 앞세우는 그들에게 말했다. 승지가 칼을 빼니 산천이 떠는구려. 그 칼을 들고 적 앞으로 나아가시오. 우리가 따르리다. (-337쪽)  그랬지만 그들은 결코 앞장서지 못했다. 적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적을 향해 함성 한번 내지르지 못했다. 그들이 내뱉는 말(言)들은 모두 죽어 있었고, 그들을 움직이게 할 말(馬)들도 모두 죽어 있었다. 그들은 말(言)만 있고 말(馬)이 없어서 앞장서지 못했던 것일까?

말로써 정의를 다툴 수 없고, 글로써 세상을 읽을 수 없으며, 살아 있는 동안의 몸으로써 돌이킬 수 없는 시간들을 다 받아내지 못할진대, 땅으로 뻗은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으리.(- 작가의 말)  작가가 그리고 있는 소설 <남한산성>안에는 살아 있는 것들도 있었다. 그들만이 義였고 그들만이 生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제가 죽인 사공의 어린 딸이 아비를 찾아 성 안으로 들어올 것이라고는 생각치 못했을 게다. 저야 임금을 따라 성 안으로 들어왔다지만 제 아비의 온기를 찾아 성 안으로 들어 온 계집아이를 보면서도 백성이 근본이라는 생각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던 예판 김상헌의 그 옹골진 외고집이, 그 터무니 없는 얍삽함이 너무도 미웠다. 그 계집아이를 아무말없이 이어받아 온기를 나누어 주었던 대장장이 서날쇠를 통해 희망을 보여주고 싶었을 게다. 꽁꽁 동여매어진 임금의 문서를 가지고 성을 나와 산천을 휘돌던 서날쇠를 우리의 가슴속에 심어주고 싶었을 게다. 그렇게 서로를 받아들여주는 거라고, 그렇게 서로에 대하여 조금씩은 인정하면서 살아가는 거라고..

너무 쉽게 생각했었다. 그래서 이제사 읽은 <남한산성>.. 자책하고야 말았지만 지금이라도 읽을 수 있었으니 이 얼마나 다행이랴.. 숱하게 떠돌아다니는 그 남한산성일거라고 생각했었다. 그 꼴도 보기 싫었고 눈도 마주치기 싫었던 남한산성일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김훈이라는 작가가 채색한 남한산성은 느낌이 너무나도 달랐다. 힘이 있었고 감히 내치지 못할 그 무언가를 품어 안고 있었다. 일갈하지 않고도 조용하게 깨우침을 전해주었던 작가의 문체에 마음을 온통 빼앗겨버리고 말았다. 너무도 흔한 것을 통하여 너무도 흔하지 않는 것을 전해줄 수 있는 그런것들이 있었다. 남한산성에 한번 올라보리라 한다. 다음에는 꼭 가야지 하면서 별렀던 그곳에 이번에는 정말 무슨 일이 있어도 가리라 한다. 그 숨결이 머무는 곳으로. 가서 서날쇠의 그 義를 찾아보리라. 발걸음이 무거울 것 같다. 남한산성을 한가슴 가득이 안고 올라야 할테니...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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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요리책
엘르 뉴마크 지음, 홍현숙 옮김 / 레드박스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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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향수>와 비교를 했다는 것이 일단은 흥미로웠다. 악취를 없애기 위해 생겨났다는 향수.. 보다 더 환상적인 냄새를 찾아내기 위하여 살인도 마다하지 않았던 한 남자의 시간들을 따라갔던 <향수>속에 뿌리칠 수 없는 한사람의 욕망이 내재되어져 있었다면, <비밀의 요리책>속에서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의 욕망이 숨겨져 있는 권력의 역사쯤이라고 할까? 그것도 아니라면 종교의 허울을 쓴? 이라고 말을 바꾼다해도 결국은 권력이 핵심이다. 힘을 갖는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현실속의 안녕을 추구하기 위한, 좀 더 나은 쾌락으로의 지름길일테니 말이다. <비밀의 요리책>이 담고 있었던 승리한자의 역사가 참으로 안스러웠다. 창칼을 앞세워 무력으로 싸우지 못했던 지식의 전달자들이 선택했던 하나의 방법이었겠지만 그들에게 찬사를 보내고 싶어진다.

모두에게서 버려져야 했던 사생아 그르누이에게는 냄새가 없었다. 그러나 자신에게는 아무런 냄새도 없으면서 세상의 온갖 냄새에는 비상한 반응을 보여주었던 <향수>의 그루누이처럼 <비밀의 요리책>을 이끌어 갈 루치아노 역시 음식과 관련된 어떤 특이함을 타고 났을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편견이다. 물론 이 책의 제목처럼 요리에 관한 이야기들이 쉴새없이 나열되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나열되어지는 레시피의 대목들을 보면서도 음식에 대한 호기심이 일지 않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부모에게서 버림받고 매춘부의 손에 잠시 길러졌던 루이차노에게는 그시절에나 있음직한 악마적인 표식, 모반이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모반으로 인하여 총독의 주방장 페레로에게 선택되어진 루치아노는 그 순간부터 새롭게 태어나기 위한 힘겨운 과정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오래전에 아들을 잃어야 했던 페레로 주방장의 아들에게도 커다란 모반이 있었다는 과거를 들추어내며, 읽는 내내 혹시나 하는 의심을 품게 만들었던 것이 이 책을 읽는 내내 하나의 모티브처럼 작용하는 것도 흥미롭다. 그들은 부자지간이었을까? 책의 말미에서 보여주었던 작가와의 인터뷰를 읽어본다면 작가의 심중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지금 생각해보아도 참으로 멋진 설정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사랑의 물약, 영원히 살 수 있거나 늙지않게 만들어주는, 혹은 연금술 따위의 허접한 욕망앞에서 한점 부끄럼도 없이 무너져 내리는 인간의 속성이 참으로 서글프다. 소리도 없이 찾아왔던 첫사랑의 설레임을 소유하고 싶어 사랑의 물약을 포기할 수 없었던 루치아노와 매독으로 인해 서서히 다가오는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해 불로불사의 약을 찾아헤맸던 총독의 욕망은 달랐다. 순수함도 영악함도 우리가 안고가야하는 인간의 속성인 것을... 경험해보지 않았던 것에 대하여 혹은 보지 못했거나 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믿음이 생겨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임에 분명하다. 끝도없는 의심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면서 가재미눈을 뜨고 세상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 어쩌면 우리의 세밀화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건 자연스러운 과정일 뿐이야. 모래 한 줌이든 포도 한 알이든 아니면 복음이든, 여기 뭔가를 첨가하거나 빼고 시간이 흐르길 기다리거나 인간의 간섭을 거치면서 변화는 일어나게 마련이란다"(-232쪽).. 중세의 배경을 이야기하자면 역시 복음이나 종교적인 색채를 버릴수가 없는 모양이다. 하긴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자면 그것을 피해갈 수 없다는 걸 인정해야만 하겠지만 말이다. 예수를 신으로써가 아닌 하나의 인간으로써 바라보았던 시선을 통해 지식의 전달자이자 스승인 선구자로써 평가했다는 것만으로, 손가락질 당하며 단두대위에 올라가 목을 내밀어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요리책속에 숨어 있었다는 게 놀랍기도 했지만 요리를 통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것 또한 신비로웠다.

끝없는 의심의 샘물같았던 루치아노에게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음을 심어주었던 페레로 주방장의 존재는 어쩌면 우리가 꿈꾸고 있는 이상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결국 진실된 복음의 전달자로써, 가르치는 자로써의 삶을 살았던 페레로 주방장에게 루치아노의 존재는 넘어야 할, 그러나 껴안고 가야 할 역경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전통은 이어져야 한다던 페레로 주방장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제대로 된 진리가, 모든 전통이, 있었던 그 모습 그대로 변하지 않은 채 우리에게 전해져 왔다면 우리의 역사는 얼만큼이나 다른 모습으로 현재를 만들었을까? 그랬다면 속임수와 술수가 만연한 지금과 같은 모습을 보지 않아도 되었을까? 그건 아닐 것이다. 어차피 욕심과 욕망을 벗어난 인간의 속성은 없을테니 말이다.

"일단 현재의 순간에 사는 법을 배우면, 어느 누구보다 부자가 되기 때문이지. 
 우리는 매순간을 껴안아야 한단다"
"좋지 않은 순간도요?"
"좋지 않은 순간은 특히 더 그래야지. 우리가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시간이니까"(-495쪽)
정말 매력적인 책이란 생각이 든다. 인간에게 먹고 마시는 것만큼 절대적인 것은 없을 것이다. 작가의 아버지가 이탈리아인 요리사라는 것이 하나의 모티브로 작용했겠지만, 작가가 요리와 요리책을 통해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들이 페레로 주방장이라는 필터를 통해 루치아노에게 전해졌던 과정들은 정말 촘촘했다. 거미줄같이 정교하다.기억하고 싶은 메세지들이 징검다리처럼 놓여져 있었다. 삶을 살아내면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들이 무엇일까 다시한번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주기도 했다. 마지막 책장을 덮어야 한다는 게 너무나도 아쉬웠다. 거짓말같은 말이지만 참말이다.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조금만 더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을 남겨주었던 책이었다. 동서양의 온갖 지식을 요리에 암호화해 넣은 아주 위험한 요리사에 대한 팩션. 팩션이란 장르에 대해 잠시 생각해본다. 너무나 매력적인 말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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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진정 사랑했을까?  남자를 향해 여자는 외쳤지. 나도 누군가의 가슴속에 기억되고 싶었다고. 그남자는 그녀를 기억해줄까? 그토록이나 애절한 여자의 마음을 뒤에 두고서 어둠속으로 사라져야 했던 그 남자는 과연 그 여자를 기억해줄까? 알 수 없지.. 사람의 마음이란 건 정말로 장담할 수 없는 것일테니...

빨간망또 이야기는 참으로 많기도 하다. 같은 맥락으로 뻗어나가는 줄기가 너무도 많은데 그들이 얘기하고 싶어하는 주제가 신기할 정도로 너무 다른 것 같아 이 애니메이션이 주는 느낌 또한 색다르다. 패전후 다시 일어나기 위한 일본이란 나라의 절실함을 엿볼 수 있는 것 같다. 약간은 환타스틱한 분위기를 연출하면서도 철저하게 현실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 매력이지만 조금은 무겁게 다가온다. 그 무거움을 삭혀주기라도 하듯 후세와 그녀의 짧은 사랑은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내게 안겨주고 갔다.

이 애니메이션의 포스터를 언뜻 바라본다면 <로보캅>이 떠오른다. <로보캅>처럼 무지막지한 그야말로 인간의 감정을 배재시킨 인랑이 주인공이긴 하다. 인랑.. 인간 늑대.. 늑대인간이 아니라 인간이면서 늑대처럼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후세의 아픔은 그 당시의 일본과 맞아 떨어지는 이미지다.

반정부세력인 '빨간두건단'의 어린소녀를 차마 사살하지 못하고 자폭하게 만들어버린 후세의 마음은 다시한번 그를 늑대로써의 삶으로 더 깊이 들어가기를 강요한다. 무리지어 살지만 철저하게 혼자인 것이 늑대의 속성이었을까?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울부짖음이었을테지만 어찌되었든 우리가 겪어내야 할 현실은 냉혹하다. 냉혹할 수 밖에 없다. 이것 아니면 저것.. 선택은 오로지 자신만의 몫이다. 몰랐을 게다. 서로를 속고 속이던 만남속에서 사랑의 싹이 돋아날거라는 것을. 그들이 그것을 알았다면 시작조차 하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을게다.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았을 때에만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이 현실이니까.

빨간두건이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왜 그렇게 귀가 커요?
빨간두건이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왜 그렇게 입이 커요?
거기 있는 고기를 먹으렴.. 창가에 작은 새가 날아와 말했습니다. 그건 네 엄마의 살이야..
거기 있는 물을 마시렴.. 어디선가 작은 쥐가 나타나 말했습니다. 그건 네 엄마의 피야.. 

빌딩의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도시는 아름답다. 불빛이 휘황하게 빛나는 그곳은 마치도 환상적인 미래같다. 그녀는 그 환상적인 미래를 향해 달려가고 싶었을게다. 이렇게 끝내고 싶지 않다고 외치던 마음 깊숙한 곳의 소망을 놓치고 싶지 않았을 게다. 그래서 춥다고 점퍼를 벗어주던 남자와 함께 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함께 떠나요... 그녀의 말에 도리질 했던 후세는 결국 기억되고 싶었다고 울부짖던 그녀의 마음을 버려두고 가버렸지. 왜냐고 묻지 않아야 한다. 대답할 수 없는 물음일테니.. 

그리고 늑대는 소녀를 잡아먹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녀를 쏘았습니다... 그녀처럼 울부짖으면서...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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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욕의 매뉴얼을 준비하다 - 값싼 위로, 위악의 독설은 가라!
김별아 지음 / 문학의문학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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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소통법... 그녀의 책을 마주보면서 생각한다. 어떻게 살아야 제대로 사는 것인지, 어떻게 살아야 제대로 살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지. 하지만 어디에도 정답은 없다. 죽는 순간까지도 알지 못하는 게 삶이라던가? 죽는 순간까지도 배워야 하는 게 삶이라던가? 그런데 확실한 것은 그 와중에서도 좀 더 마음 편하게 살고 싶다는 게 모두의 소망이 아닐까 싶다. 성격적으로 나는 어지간하면 남들과 트러블을 일으키지 않는 편이다.  타인에 관해 이렇게 저렇게 말하는 것도 싫고 나 또한 타인들에게 이렇게 저렇게 말듣는 게 싫어 내 일만큼은 확실하게 하고 살자는 주의다. 애들말마따나 건드리지 않으면 조용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타인으로부터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아니, 그랬기에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사는 건지도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그래서일까? 언제부터인가 나는 나를 들이받는 사람들에게 함께 받아치기 시작했다. 그냥 괜히 나만 손해보는 것 같아서. 허허 웃으면서 그럴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돌아서고 나면 왠지 마음 한켠이 아팠다. 그 사람이 나한테 왜 그랬을까? 그러다가는 결국 내가 뭔가를 잘못했을거라고 자책하는 그 순간들이 너무나도 싫었다. 내가 같이 받아치기 시작하니 사람들은 내게 들이밀지 않았다. 그랬구나! 역시 내가 바보처럼 산거였구나!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이 책은 정말 시원하다. 사람이라고 일컬어지지 못하는 종류중의 하나가 '아줌마'다. 열외인간.. '대한민국 아줌마'는 못할게 없고 무서울게 없다지만 나는 못하는 것도 많고 무서운 것도 많다. 아직은 그 '대단한 아줌마'의 대열에 합류를 하지 못한 모양이다. 아니, 솔직하게 말한다면 나는 그 아줌마 대열에 합류하고 싶지 않다. 그악스럽게 현실을 살아내는 그 모습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일게다. 우스운 얘기 하나 하자. 언젠가 시외버스를 타면서  돈통에 차비를 밀어넣고 여유있게 뒤쪽으로 들어갔다. "아줌마, 차비 더 내세요!" 나는 뒤도 안돌아봤다. "아줌마, 차비 더 내시라고요!" ..."저요?" .. 묻고 생각하니 그 정류장에서 차를 탔던 건 나 혼자뿐이었다. 시외버스였던 까닭에 요금이 더 비쌌던거다. 돈을 더 내고 자리에 앉아 나는 순간적으로 가슴이 뻐근해져오기 시작했다. 그랬다! 내가 아줌마라는 걸 나는 왜 잊고 살아가는 것일까?  마음은 항상 이십대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나이에 대해 의식하면서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일게다.

여전히 인생의 깊은 뜻을 깨닫기는커녕 일상의 희로애락에 꺼둘려 애면글면하는 사이, 어라, 나는 얼결에 사십 대에 접어들었다, 고 말하는 여자 김 별아.. 이 아줌마의 수다가 꽤나 괜찮다. 작가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그리 화려하지도 그렇다고 무지렁이처럼도 아닌 아주 평범한 엄마이고 아줌마인 그녀의 모습이 그려진다. 가끔씩은 그녀 스스로가 배부른 소리라고 하는 말조차도 그리 배부른 소리로 들리지 않는다. 아줌마라면, 적어도 아줌마의 오지랖이라면 그정도의 배부른 소리는 해도 괜찮다. 나라걱정은 애국자만 하는게 아닐테니 말이다. 자식을 키우면서 일어나는 일들, 이웃과 부딪히면서 일어나는 일들, 자신과 관계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속에서 벌어지는 일들... 모두가 日常이다. 日常에 대한 短想쯤이라고 생각하면 딱 맞을 이 책의 내용들은 그다지 튀지 않는다. 이렇다하게 내세울만한 것도 없어보인다. 그런데도 이 책을 읽는 내내 왠지 마음이 따스했다면 그녀와 내가 같은 아줌마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는 말일수도 있겠다. 어떤 말을 해도 함께 느낄 수 있는 조건들이 많았다는 말일수도 있겠다.

이 책을 쓴 별아아줌마의 말처럼 내 이익과 상관없는 일에는 침묵하며, 내게 필요하다면 행여 손해라도 볼까 목소리를 드높이는 세상이다. 예전에는 (뭐 그리 오래전 얘기도 아닌 것 같은데 돌아보니 나도 벌써 지천명을 바라본다) 하고 싶은 말 다하면서 사는 '주부'들이 그리 많지 않았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하고싶은 말 다하고, 하고 싶은거 왠만큼 하면서 살아가니 그 또한 격세지감이 아닐까 한다. 주부습진이나 명절증후군에 휘둘리지 않는 '주부'의 모습이 그래도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자신만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보여지는 까닭이겠지 한다. 누구나 다 똑같이 사는 것이 다람쥐 쳇바퀴 돌리는 일같다고 한다. 매일 시간에 쫓기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고 소리지른다. 그러면서도 내 안의 외로움과 쓸쓸함을 달래기 위하여 무언가를 찾아헤맨다. 그런 것들을 얼마나 잘 다스리며 살아가고 있는가가 관건이다. 얼만큼 자기관리를 잘하느냐에 따라 좀 더 다른 평가가 나오는 세상인 듯 하다. 아니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세상이기도 할게다.

사람은 결국 사람에게 닿기 위해 말을 하고 향기를 풍기고 자신을 보기 좋게 꾸민다. 그럼에도 때로는 말이 불필요하거나 말할 수 없고, 향기로 내뿜어 맡게 할 수 없고, 다 보여 줄 수 없는 일들이 있다. 그때 사람들은 가만히 손을 잡거나 포옹을 한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에 눈길이 머물렀을 것이다. 결국은 사람인데, 결국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인데, 결국은 사람과 사람이 얼만큼이나 소통할 수 있는가인데.. 싶었다. 그러자면 남들이 들이민다고 무조건 밀리기보다는 적당하게 받아쳐야하는 굳센(?) 마음과 기술(?)이 필요할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이 책을 쓴 별아아줌마 역시 그렇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 내심 반갑다. 정당해야한다는 거다. 필요없이 혹은 이유없이 상대방의 잣대에 휘둘려서는 안된다는 거다. 하지만 별아아줌마의 충고도 잊으면 안될것 같다. 남들이 얕잡아보지 못하도록 냉정하고 사무적인 표정을 짓는 동안 마음은 황무지가 되어가고, 남들에게 행여 '우습게 보여서' 한 치라도 손해를 볼까 전전긍긍하는 사이 누구의 입가에도 빙그레 미소를 떠올리게 만들 수 없는 삭막한 사람이 되어가지만... 그래도 여전히 웃음만큼 부드러운 무기가 없다는 말. 많이 웃을수록, 남을 많이 웃게 만들수록 부자라는 말. 정말 멋지지 않는가?  사람과 사람사이에 웃음이 없다면 정말로 이 세상은 못살 세상이다. 백프로 공감하는 말이기도 하다. 

싸우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에서 그야말로 잘 싸우기 위해 머리를 싸맸을 별아아줌마의 이야기가 참 멋스럽다. 그래서 오늘도 모욕에 대한 매뉴얼을 만든다는 별아아줌마의 생각에 동참하기로 한다. 어떻게 하면 효율적이고 적절하게 맞받아칠 수 있는지 함께 고민해보기로 한다. 별아아줌마의 지적처럼 잘못 싸워서 공연히 죄책감과 자괴감만 쌓이는 순간들이 너무 싫었던 까닭이기도 하다. 별아아줌마 화이팅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이런 넋두리를 책으로 엮어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던 별아아줌마의 마음이 안스럽기도 하지만 이렇게까지 만든 세상이 아니 그런 세상을 만들 수 밖에 없는 우리의 모습 또한 안스럽다. 그래도 세상은 내가 살아가야 할 순간인 것을... 그리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살면서 생각해보니 적당하다는 게 참으로 어렵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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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에 미치다 - 현대한국의 주거사회학
전상인 지음 / 이숲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언제부터인가 내가 한옥을 바라보는 시선속에 알 수 없는 느낌들이 담겨지지 시작했다. 일부러 옛가옥들을 찾아가 둘러보기도 한다. 뭐 그렇다고 내가 옛가옥을 좋아한다거나 예찬론자이거나 한 것은 아니다. 단지 그 가옥들과  주변의 풍경이 안고 있는 느낌이 좋아서다. 골목길 접어들때에 내가슴은 뛰고 있었지~ 하던 노래가 생각난다. 잃어버리고 있는 것에 대한 일종의 향수가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어쩌면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어린시절에 대한 향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최근의 일이다. 엄마라는 말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그 포근함과 따스함을 그 옛스런 모습으로 옹기종기 모여있던 골목길이 내게 주는 것만 같아 참 좋았다. 그런데 우리 곁에서 소리도 없이 옛스런 가옥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어 참으로 안타깝기만 하다.

나는 아파트를 엄청 좋아한다. 그리고 나는 아파트의 그 서늘함을 미치도록 싫어한다. 이 무슨 모순일까? 문 하나만 닫아걸면 모든 것들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그런 점들이 내게는 정말 좋으면서도 싫은 이중성을 띠고 있다. 어느 겨울날 아파트 건물들 사이로 맹렬하게 불어대던 칼바람의 기억이라니.. 그 네모난 구멍속으로 하나 둘 사라졌다가는 그 네모난 구멍을 통해 하나 둘씩 나타나는 한개의 점들이 우리 모습일게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 책을 처음 만났을 때 강한 호기심을 느꼈다. 아파트.. 유행가를 만들어내기도 했던 그 아파트라는 존재에게 지은이는 어떤 의미를 부여해주고 싶어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고개만 돌려도 아무 거리낌없이 시선속으로 들어오는 수많은 아파트들.. 그 아파트에 갇히기 위하여 우리는 끝도없이 삶과 싸워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그토록 아파트를 갖지 못해 애를 태워야 하는 것일까? 이미 들어 알고 있겠지만 선진국의 경우 잘사는 사람들보다는 못사는 사람들이 모여산다는 그 아파트에 우리는 왜 그토록 목메는 것일까? 그것은 간단하다. 돈이 되기 때문이다. 집이란 것이 우리에게는 이미 오래전부터  소유의 대상이었고 또한 부의 상징처럼 보여지던 의식때문이기도 하다. 주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야말로 이것저것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은 채 날림으로 '찍어내던 것'들이 우리나라 초기의 아파트였다고는 하지만 지금의 아파트들은 이미 지위가 높아져 우리들을 지배하고 있음이다. 아파트 평수로 그 사람을 평가하고, 타고다니는 자동차가 어떤 것이냐에 따라 자신의 이미지가 격상되는 그런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리고 그것에 따른 신분상승의 효과까지도 다분히 누릴 수 있는 것이 우리 대한민국의 현실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후우, 깊은 숨을 들이키기도 하고 풋,하고 웃음짓기도 한다. 아파트라는 존재의 모든 것들에 대하여 정말 이해하기 쉽도록 우리를 잘 안내해주고 있는 까닭이다. 세계적인 전문가들에 의해 혹평을 받고 있으며 멀지않은 시기안에 사장될 것이라는 우리나라의 아파트 문화를 지은이는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우선은 잘 모르는 나도 거기에 공감하게 된다. 그 사람들이 살고 있는 나라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의 문화는 엄연히 다른 때문이다. 이 책속에선 아파트가 어떻게 대한민국을 덮어버렸는지 그리고 부의 원천으로써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아파트로 인한 신분의 차별에 대하여 혹은 새로운 사회공동체로써의 역할에 대해 세세하게 잘 설명해주고 있다. 

그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한 아파트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볼 수 있게 주었던 8장. 아파트의 한국적 토착화 를 다루었던 부분은 참으로 놀라웠다. 마당이 있던 우리의 옛가옥형태를 고스란히 아파트로 옮겨오고 있다는 것이 놀랍기도 했지만 한편 안스러운 느낌까지도 들게 했다. 모든 것을 통하게 해주는 옛날의 마당역할을 거실이 해주고 있다는 것도 그럴듯했다. 온돌식 아파트 역시 그렇다. 여성들의 주활동 무대인 부엌이 부엌에서 주방으로 주방에서 키친으로 변해가는 모습은 정말 대단하다. 하지만 핵가족화를 넘어서 이제는 한 집안에서조차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안에서 문을 잠궈버리는 단절감을 어찌 풀어야하는지는 아파트가 안고 있는 커다란 숙제가 아닐수가 없다. 이웃사촌이 아니라 그 공간을 채워주고 있는 가구들이 '또하나의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는 것도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자칫 딱딱해보일수도 있는 주제였지만 왠지모를 신선함을 느낄수도 있었고 그래서인지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 책을 통하여 아파트에 대한 역사를 배울 수 있어 좋았다. 이 후로 아파트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조금은 부드러워질 것 같다. 당신도 넓~은 아파트에 살고 싶으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연코 아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적당하다는 말을 생각해볼 때 우리나라의 아파트는 필요이상으로 넓게 만드는게 아닌가 싶다. 가뜩이나 몸 부딪히는 걸 싫어하는 현대인들에게 가족간에 부딪히며 살아가야 할 정마져도 떨어져나가게 하고 있는 듯하여 안타깝기도 하다. 그러자면 하루빨리 우리의 의식이 바뀌어야 하리라. 보여지는 것만으로 평가하기보다는 진정한 그 사람의 모습으로 평가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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