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래 : 세상은 백성의 것이다 샘깊은 오늘고전 9
작자미상 지음, 윤기언 그림, 김기택 글, 강명관 해설 / 알마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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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어디에 가장 많은 관심을 갖게 될까? 그리고 그 사람을 살아 숨쉬게 하는 원동력은 어디서부터 비롯되어지는 것일까? 어린시절부터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생각을 고려해 볼 줄 아는 깊이를 가졌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인물감일까? 자라면서 무언가에 얽매인 채 살아가야 하고 세상의 부조리에 대해 억눌린 심정으로 살아가야 한다면 아마도 누구나 가슴속에 저마다의 칼자루 하나씩은 쥐고 살아가지 않을까?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런 현실이라도 받아들이며 안주하느냐, 그런 현실을 박차고 일어나느냐의 차이점이다.

일개 무지한 백성이 나라를 위해 빼든 칼자루였기에 그토록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을 것이다. 그것도 힘겨운 세상을 살아가는 백성들의 나라였다면 더더욱이나 그랬을 것이다. 누군가 나타나 이토록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세상을 한번쯤 뒤집어 엎었으면 하는 바램을 한번쯤은 가져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도 중요한 것이 하나 있다. 그들이 꿈꾸는 개벽이라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개벽이 일어나긴 하되 단, 나에게는 아무런 피해도 없어야 한다, 세상이 바뀌긴 하되 나에게도 떨어지는 것이 많았으면 좋겠다.. 뭐 이런 것 말이다.

일전에 읽었던 <홍길동전>이 생각난다. 하늘의 부름으로 태어나는 홍길동의 탄생배경은 가히 신화적이다. 하지만 현실이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던 탓에 그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없는 처지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분연히 일어난 그가 외쳤던 것은 당연히 신분제도였다.  적자와 서자를 가리지 않아야 하며 설사 서자라해도 벼슬은 물론 자식으로서의 온전한 대접을 받아야한다는 그런 것들.. 평민이 아닌 양반이어서 가질 수 있는 것을 가질 수 있었음에도 가질 수 없었으니 그의 한서림이 더욱 깊었을까?  분신술을 썼다느니 율도국에 들어갔다느니 하는 것들은 하나의 가림막일 뿐이다. 그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그야말로 명백했으니 말이다. 현실이었다. 그가 처해있던 그 부조리한 현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말하고자 하는 <홍경래>는 어떨까?  그저 평범했던 백성이었다. 다르다면 어릴적부터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 깊이가 깊었다고나 할까? ( 물론 인물들의 어린시절이야 누구나 다 똑똑하고 영리하다. ) 이제 가르칠 것이 없으니 집으로 돌아가라며 등 떠밀던 스승조차도 아비에게 이르기를 심히 앞날을 염려했다. 가르쳐주는 한줄의 글귀에서도 현실을 볼 줄 알았던 그를 염려했던 스승은 말했다. 똑똑하고 글재주가 남다르지만 말하는 것이 바르지 못하여 앞길이 크게 걱정됩니다... 홍경래가 열두살이었다고 하니 가히 신동이다. 하지만 앞에 말한 스승의 염려를 고려해 볼 때 원리원칙에 충실했던 그에게 부족했던 것은 수단과 널리보는 융통성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원리원칙만 고집하다보니 생각이 고루할 수 밖에 없다.

양반이 아니면 출세할 수 없었던 사회적인 현실이 그의 앞에 장애물로 나섰을 때 그는 일어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홀연히 고향을 떠나 세상을 주유하며 삶을 힘겨워하는 백성들의 모습을 보았고, 그 원인을 파악했다. 무엇이 문제인가를 알게되니 그와 뜻을 같이 할만한 사람들을 수소문했다. 그리하여 일으키게 되는 '홍경래의 난'.. 조선시대 민란중에서 가장 규모가 컸다는 '홍경래의 난'은 지배계층에 대한 저항이었다. 그 많은 민란중에서 참으로 오랜시간을 들여 계획되어지고 실천에 옮기게 되지만 다른 민란들처럼 끝이 참 허무하다. 물론 거기에서 찾는 의의야 다르겠지만 말이다. 우습게도 나는 이런 생각을 종종 한다. 지금 세상에서도 저와같은 민란이 일어난다면 어떨까?  성공하면 '혁명'이오 실패하면 '반역'이라는 명분이 지금 세상에서도 통할까?  그 때나 지금이나 한치도 변하지 않는, 아니 변하고자 하지 않는 정치세력들을 보면 한번쯤 일어났으면 하는 마음이 앞서는 걸 보면 나도 지극한 평민이라는 것을 어찌할 수 없다.

민란이라는 말을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순수한 농민저항이라고는 하지만 정말 그랬을까?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세상에 대한, 자신의 현실에 대한 만족도가 그리 높지 않았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그야말로 뜻이 있어 세상을 바꾸고자 했으나 힘이 없었던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을 것이다. 순수하다는 것은 그토록이나 힘겨운 일일테니 말이다. 세상이 진정 백성들의 것일까? 백성들이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삶을 영위하는 곳, 그것이 세상이오 그곳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 백성은 아닐까? 뜻이 너무 커서 감히 바라볼 수 조차 없다면 너무 어렵다. 어린이나 청소년을 겨냥해 만들어지고 있는 우리의 고전시리즈가 참으로 고맙다. 단지 학습적인 면을 떠나서라도 우리의 고전을 읽어본다는 것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해주고 싶은 까닭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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