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의 집
가토 유키코 지음, 박재현 옮김 / 아우름(Aurum)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참 좋다. 마음이 편안하고 산듯하다. 책장을 덮고 잠시 눈을 감아본다. 꿀벌의 집을 찾아 떠났던 리에의 마음을 따라서 나도 꿀벌의 집을 찾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꿀벌의 집에서 조금씩 아픔을 치유해가던 그곳 사람들의 모습들이 그려진다. 산다는 것은 결국 관계의 고리인데 그 고리를 어쩌지 못하고 서로에게 아픔을 주면서 상처를 내면서 그렇게 살아간다. 그것도 사랑한다고, 아껴주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서.. 가장 가깝게 머무는 사람들에게서.. 무슨 까닭일까? 버리지 못하는 아집 때문이려니 한다. 영영 버리지 못할 자신만의 잣대를 심어둔 까닭이려니 한다. 내 안의 우물이 너무 깊어서 다른 이들이 퍼올릴 수 없는 까닭이려니 한다.

가토 유키코라는 작가와 처음 만났다. 책날개를 통해 그녀를 탐색해보자니 일본 태생이면서도 중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농학부를 졸업하고 농림성 농업기술연구소에서 일을 했고 자연보호협회에서도 근무를 했다. 그리고 지금은 작가다. 그러니 그녀가 쓰는 글속에 자연이 녹아 있는게 지독히도 자연스러울 것이다. 도대체 자연이라는 것이 무엇이길래 우리는 저멀리에 있는 환상을 바라보듯이 하는 것일까?  이 책뿐만 아니라 자연을 상대로 말을 걸고 어깨 한번 툭쳐보곤 했던 책들은 많았다. 너무나도 커서? 그것도 아니면 다가가기가 쉽지 않아서? 그런 것만은 아닐것이다.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아마도 자연에게 지은 죄가 많은 탓이려니 한다. 

모든 짐승들, 동물들은 병이 나면 자연속에서 치유를 찾는다고 한다. 아프면 약이 될 풀을 찾아 뜯어먹기도 하면서 말이다. 유독 인간만이 그야말로 자연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고 태어났을 인간만이 자연을 등진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편리를 위해서 야금야금 자연을 갉아먹는 쥐처럼 말이다. 그런 우리에게 작가는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해주고 있다. 문명이 우리를 발판으로 저들만의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는 지금 우리가 마음에 입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자연의 법칙을 이해하고 마음 깊이 받아들여야만 한다고 외치고 있음이다.

"너희 엄마는 지금 다이빙대 위에 서 있으니까"... 리에를 바라보면서 꿀벌의 집 운영자가 했던 말이다. 리에의 엄마만이 다이빙대위에 서 있을까? 아니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모두일것이다. 그 다이빙대의 높이가 얼만큼인가는 자신만이 알 것이다. 아버지의 자살로, 엄마의 아집으로 리에에게는 떠나고 싶었던 현실이 있었지만 어쩌면 모두가 가해자이며 모두가 피해자라는 점을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꿀벌이라는 아주 작은 곤충을 통하여 보여지는 삶의 이치는 참으로 신선하게 다가왔다. 때로는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서로가 뭉쳐 하나의 덩어리가 되는 따스함으로, 때로는 의무를 다한 숫벌을 밀어내야 하는 현실적인 냉혹함으로, 때로는 또하나의 여왕벌이 분봉을 하는 차가움으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꿀벌과 인간의 다른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 같다. 철저하게 자연속에서 자연의 이치를 따르는 꿀벌과 저마다의 욕심을 먼저 채우기 위하여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인간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이다.

"하지만 치렁치렁한 스커트는 바지로 갈아 입어요. 그 번쩍거리는 블라우스도요"... 엄마를 향해 따갑게 말하는 리에의 음성이 들려오는 듯 하다. 모든 형식과 허울을 벗어던지고 자연을 대할 때, 자연을 우리가 살려내는 것이 아니라 자연속에서 우리가 살아가고자 할 때 모든 것이 순조롭다는 것을... 싱글맘으로써의 힘겨운 여정을 이겨내기 위해 삶을 향해 도전장을 던졌던 꿀벌의 집 운영자 기세의 손목엔 날카로운 상처가 남아 있었고.. 폭주족이었던 겐타, 거식증에 걸렸던 아케미, 심지어는 자신만의 성에 갇혀 살았던 리에의 엄마.. 상처받았으나 치유할 길을 찾지 못했던 사람들이 제각각 꿀벌의 집에서 모여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살아가는 모습.. 우리 모두에게는 그 꿀벌의 집과 같은 무엇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일본소설이 범람하는 출판계의 현실속에서 "또 일본소설이야?" 하면서 선택했던 아주 작은 책.. 꿀벌의 집을 만난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었다. 삐걱거리는 현실속에서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거기 모였던 사람들이 꿀벌을 향해 마음을 열고 꿀벌의 일상을 바라보았던 시선들에 대하여 다시한번 생각해 본다. 마음을 연다는 것, 타인을 향한 시선속에 있는 그대로의 모습만 담을 수 있다는 것.. 정말 멋지고 아름다운 일이 아닐까?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좋은 느낌을 전해받을 수 있었던 아주 작은 책..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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