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사생활
이응준 지음 / 민음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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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동요를 배우면서 자랐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나 많이 불리워지지 않는 듯 하다. 왜일까? 간단하다. 그만큼 시대가 많이 변했다는 뜻일게다. 좀 더 차갑게 말하자면 통일이라는 것에 정감어린 늬앙스가 사라졌다는 말도 될게다. 잃어버린 공간이 아니라 따로 또 같이의 공간으로 치부되어져버리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해 보기도 했다. 통일이 되면 무엇이 좋을까? 과연 통일을 하긴 해야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통일이 되긴 되는 것일까?  간혹 호사가들은 동독과 서독의 통일이라는 거대한 물결을 거론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통일을 했다는 것에만 촛점이 맞춰져 있다는 거다. 통일이 되기 위한 과정들이나 통일이 된 후의 부조리함이나 부적절함 내지는 부적응의 현실은 까발리길 꺼려하는 것처럼 보여지기도 한다.

나뉘었던 한 국가가 다시 하나가 된다는 것은 정말 아름다운 일일게다. 현실적인 느낌이 멀기만한 이야기지만 말이다. 왜 먼이야기일까? 반추해보자면 이렇다. '누가 이사람을 모르시나요'라는 노래가 온나라를 떠들썩하게 하고 기네스북에까지 올랐다던  헤어진 가족찾기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 당시 방송을 보면서 울지 않은 사람이 있었을까? 그렇다면 그들은 왜 울었을까? 헤어졌던 가족들의 만남에서는 행복과 불행이 함께 묻어 났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들의 만남이 화면에서 그려질 때 그들의 눈물이 내 눈물샘을 자극했을 뿐이었다. 그들의 만남속에 있었던 행복과 불행을 함께 느낄 수 있어서 흘렸던 눈물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냉정하게 말해서...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은 조정래 작가의 <인간연습>이었다. 분단된 국가속에서 철저하게 버림받기 시작하는 이념의 환상들이 거기에 있었다. 허상과도 같았지만 그들에게는 버텨낼 수 있게 해주는 힘, 하나의 꿈같았던 그 이념속에서 뱀이 자신의 허물을 벗듯이 그렇게 훌훌 털어낼 수는 없는 일이었을게다. 주어진 현실을 인정하며 산다는 그 자체도 따지고 보면 쉬운 일은 아닐테니 말이다. 변화... <인간연습>을 읽으면서도 저멀리에서부터 일렁이며 다가오는 변화라는 물결을 바라보아야 했다. 그런데 이 책에서도 그 변화의 물결은 어김없이 밀려온다. 변화... 무엇에 대한?

아주 오래전 김진명 작가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라는 책이 있었다. 그 책을 읽으면서 내심 놀랍기도 했고 긍정적인 응원의 메세지를 보내고 싶어했던 기억이 있다. 핵무기라는 절대적인 힘을 앞에 두고도 그 힘을 갖지 못하는 현실이 가상이 아닌 정말 현실은 아닐까 싶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책속의 현실이 가상이 아닌 현실처럼 또다시 내게 다가왔다. 충분히 그럴수 있는 일이라고, 준비되지 않은 이념의 통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인정일지도 모르겠다. 21세기의 한국 작가가 상상할 수 있는 것들 가운데 가장 센 이야기를 가장 위험한 칼끝으로 점료해 내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이 왠지 깊숙하게 다가온다. 어쩌면 작가의 상상이 아닌 곧 다가올 미래처럼.. 옛날 같았으면 사상이 어쩌고 반공이 어쩌고 할지도 모를 소재가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주인공 리강剛은 강하다. 이름처럼. 하지만 그는 그 강함의 이미지를 떨쳐내고 싶어했던 것 같다. 외로움속에 숨겨져 있던 강함.. 어느 누구도 이해할 수 없었던 것.. 너는 너를 죽일것이다라는 장군도령의 말처럼 자기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당연한 일일것이다. 우회적으로 말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남과 북이라는 이름으로 갈라져 있다가 하나가 되었지만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필요의식만 앞세웠다면 그것도 커다란 문제일 것이다. 그래서 내부적으로 썩어들어가며 악취를 풍기는 그 미래가 있었을 것이다. 다행인 것은 염려했던 것과는 달리 주인공 리강이 죽지 않았다는 거였다. 일말의 희망처럼 말이다. 그래서일까? 주인공의 죽음으로 모든 것을 무마하지 않는 작가에게 왠지 신뢰감이 느껴지는 아이러니가 생겨난다.

상처받은 남쪽 여자 윤상희와 운명같은 만남을 가졌을 때도 회피하지 않는 리강의 모습이 왠지 아름답게 다가온다. 빠져들고 말았다는 얘기다. 젊은 작가의 통일에 대한 미망 속으로.. 그들이 떠안아야 할 그들의 숙제였던 까닭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미 지나쳐버린 세대들이 말하는 통일과는 다른 그들만의 통일 개념이었던 까닭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김진명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통일의 염원과 조정래 작가를 통해 바라보았던 통일의 이념과 이응준이라는 젊은 작가를 통해 듣는 통일 이야기는 정말이지 너무도 다른 느낌으로 내게 다가온다. 무엇이 옳고 그른가가 필요할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단지 그들이 살아왔고 살아가는, 그리고 살아가야 할 시대의 변화가 다를 뿐이라고.. 그리고 변화는 인정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기에..

제목만 보고는 이 책을 가늠하지 못하겠다. 촘촘하게 짜여진 그물처럼 이야기가 흘러간다. 앞으로 뒤로 그러나 그런 것들이 모두 하나로 엉키는 구조가 새삼스럽게 다가와 흠뻑 빠져들게 한다. 거기에 우리가 지금 처해진 현실을 가상처럼 그렸다면 더 흥미로운 게 맞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는 얘기다. 재미있게 속도감있게 읽혀졌다. 더 깊은 생각을 하기보다는 그가 들려주는대로 그저 이끌려갔을 뿐인데도 잘 읽혔다. 우리가 그리는, 혹은 꿈을 꾸는(누가 그리는 것인지, 누가 꾸는 꿈일지는 알 수 없다) 신세계는 과연 어떤 세상일까? 책장을 덮으니 맨 앞에서 한남자의 알 수 없는 시선이 보인다. 국가의 사생활이라는 제목 아래에서. 어디를 바라보는 것일까?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묻지 않기로 한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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