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의 집
가토 유키코 지음, 박재현 옮김 / 아우름(Aurum)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참 좋다. 마음이 편안하고 산듯하다. 책장을 덮고 잠시 눈을 감아본다. 꿀벌의 집을 찾아 떠났던 리에의 마음을 따라서 나도 꿀벌의 집을 찾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꿀벌의 집에서 조금씩 아픔을 치유해가던 그곳 사람들의 모습들이 그려진다. 산다는 것은 결국 관계의 고리인데 그 고리를 어쩌지 못하고 서로에게 아픔을 주면서 상처를 내면서 그렇게 살아간다. 그것도 사랑한다고, 아껴주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서.. 가장 가깝게 머무는 사람들에게서.. 무슨 까닭일까? 버리지 못하는 아집 때문이려니 한다. 영영 버리지 못할 자신만의 잣대를 심어둔 까닭이려니 한다. 내 안의 우물이 너무 깊어서 다른 이들이 퍼올릴 수 없는 까닭이려니 한다.

가토 유키코라는 작가와 처음 만났다. 책날개를 통해 그녀를 탐색해보자니 일본 태생이면서도 중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농학부를 졸업하고 농림성 농업기술연구소에서 일을 했고 자연보호협회에서도 근무를 했다. 그리고 지금은 작가다. 그러니 그녀가 쓰는 글속에 자연이 녹아 있는게 지독히도 자연스러울 것이다. 도대체 자연이라는 것이 무엇이길래 우리는 저멀리에 있는 환상을 바라보듯이 하는 것일까?  이 책뿐만 아니라 자연을 상대로 말을 걸고 어깨 한번 툭쳐보곤 했던 책들은 많았다. 너무나도 커서? 그것도 아니면 다가가기가 쉽지 않아서? 그런 것만은 아닐것이다.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아마도 자연에게 지은 죄가 많은 탓이려니 한다. 

모든 짐승들, 동물들은 병이 나면 자연속에서 치유를 찾는다고 한다. 아프면 약이 될 풀을 찾아 뜯어먹기도 하면서 말이다. 유독 인간만이 그야말로 자연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고 태어났을 인간만이 자연을 등진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편리를 위해서 야금야금 자연을 갉아먹는 쥐처럼 말이다. 그런 우리에게 작가는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해주고 있다. 문명이 우리를 발판으로 저들만의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는 지금 우리가 마음에 입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자연의 법칙을 이해하고 마음 깊이 받아들여야만 한다고 외치고 있음이다.

"너희 엄마는 지금 다이빙대 위에 서 있으니까"... 리에를 바라보면서 꿀벌의 집 운영자가 했던 말이다. 리에의 엄마만이 다이빙대위에 서 있을까? 아니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모두일것이다. 그 다이빙대의 높이가 얼만큼인가는 자신만이 알 것이다. 아버지의 자살로, 엄마의 아집으로 리에에게는 떠나고 싶었던 현실이 있었지만 어쩌면 모두가 가해자이며 모두가 피해자라는 점을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꿀벌이라는 아주 작은 곤충을 통하여 보여지는 삶의 이치는 참으로 신선하게 다가왔다. 때로는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서로가 뭉쳐 하나의 덩어리가 되는 따스함으로, 때로는 의무를 다한 숫벌을 밀어내야 하는 현실적인 냉혹함으로, 때로는 또하나의 여왕벌이 분봉을 하는 차가움으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꿀벌과 인간의 다른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 같다. 철저하게 자연속에서 자연의 이치를 따르는 꿀벌과 저마다의 욕심을 먼저 채우기 위하여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인간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이다.

"하지만 치렁치렁한 스커트는 바지로 갈아 입어요. 그 번쩍거리는 블라우스도요"... 엄마를 향해 따갑게 말하는 리에의 음성이 들려오는 듯 하다. 모든 형식과 허울을 벗어던지고 자연을 대할 때, 자연을 우리가 살려내는 것이 아니라 자연속에서 우리가 살아가고자 할 때 모든 것이 순조롭다는 것을... 싱글맘으로써의 힘겨운 여정을 이겨내기 위해 삶을 향해 도전장을 던졌던 꿀벌의 집 운영자 기세의 손목엔 날카로운 상처가 남아 있었고.. 폭주족이었던 겐타, 거식증에 걸렸던 아케미, 심지어는 자신만의 성에 갇혀 살았던 리에의 엄마.. 상처받았으나 치유할 길을 찾지 못했던 사람들이 제각각 꿀벌의 집에서 모여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살아가는 모습.. 우리 모두에게는 그 꿀벌의 집과 같은 무엇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일본소설이 범람하는 출판계의 현실속에서 "또 일본소설이야?" 하면서 선택했던 아주 작은 책.. 꿀벌의 집을 만난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었다. 삐걱거리는 현실속에서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거기 모였던 사람들이 꿀벌을 향해 마음을 열고 꿀벌의 일상을 바라보았던 시선들에 대하여 다시한번 생각해 본다. 마음을 연다는 것, 타인을 향한 시선속에 있는 그대로의 모습만 담을 수 있다는 것.. 정말 멋지고 아름다운 일이 아닐까?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좋은 느낌을 전해받을 수 있었던 아주 작은 책..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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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드라의 그물 Nobless Club 12
문형진 지음 / 로크미디어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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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처음 경계문학이라는 것을 접하게 되었을 때 아주 단순하게 생각했었던 나의 교만을 알게 되면서 실소를 금했던 기억이 있다. <인드라의 그물>이라는 말 자체부터가 이미 불교를 안아들고 있었던 까닭에 아직 불교에 대해 서툰 시선을 가진 나로써는 다가가기가 조금 망설여졌던 것도 사실이다. 세상 모든것들이 서로 연결되어져 있다는 의미로 해석되어진다는 인드라의 그물.. 힌두교의 신이었지만 불교에 흡수된 신 중의 하나가 인드라라고 한다. 그 인드라의 궁전위에 걸려 있다는 거대한 그물에는 그물코 하나마다 구슬이 달려 있는데 그 구슬들이 서로를 비추며 보여준다고 한다. 인연이라는 말을 생각하게 하는 말이다.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면서 자신의 모습을 가다듬기도 하는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속에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담겨져 있는 듯 하다.  가끔씩 튀어나오는 <화엄경>이나 <반야경>을 인용한 문장들은 사실 쉬운 말들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그 뜻에 다가가기 위하여 다분한 노력이 있었음을 알게 해주는 내용들이다. 이 책의 중요 라인처럼 보여지기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크리스찬에게서 차크라chakra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가 생각난다. 물질적이나 정신적인 면에서 정확하게 규명될 수 없는 인간 정신의 중심부를 말한다는 단어. 신체수련에서 중요시되는 개념으로 육체적인 기능과 상호작용을 하여 커다란 힘을 발휘할 수도 있다는... 이 책을 읽는다면 차크라chakra라는 말을 이해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기에 하는 말이다. 자비로 중생을 구한다는 관세음보살을 세가지로 나누어 말하고자 했던 점은 특이했다. 결국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역설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듯 하다.

책표지에 완전한 깨달음에 이른 자가 인간의 사랑을 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 있다. 타인이 행복하지 않으면 자신도 행복할 수 없다는 말은 다시한번 나를 돌아보게 한다. 종교적인 의미를 벗어나서 그 말이 주는 의미가 너무도 아름다운 까닭이다. 윤회를 말하고 인연을 말하지 않는다해도 우리가 추구하는 하나의 이념 또한 사랑이 아닐까 싶기 때문이다. 책중에서 관음보살의 현신으로 나타났던 '교'라는 여인이 끝까지 잃고 싶지 않았던 그 사랑의 정의는 무엇일까? 전생으로부터 현실에까지 석가모니에 대한 사랑을 놓고 싶어하지 않았던 그 여인의 갈망이 왠지 애처롭게 다가온다. 작가는 어쩌면 그렇게 애타는 사랑을 인간의 마음을 통해 맺어주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 관음보살의 세 현신이 이끌어갔던 세계.. 모든 것을 추구했으나 모든 것이 실체적인 모습이 없는 꿈이었다는.. 다시 비어있음 空으로부터 시작되어지는 윤회의 늪.. 어려운 설정임엔 분명하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불교라는 커다란 규칙앞에서 너무도 작게 그려지던 주인공들의 심리적 갈등구조였다.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가식처럼 다가온다. 일종의 반전이라면 반전일수도 있는 '나'라는 주인공의 정체가 드러나는 과정도 너무 밋밋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무대장치가 너무 황홀했던 것은 아닐까? 세밀하고 섬세하게 그려지던 그 무대를 배경으로 연기를 해야했던 배우들의 심리적인 묘사가 한쪽으로 치우쳐버린 듯한 느낌이 든다. 아마도 우리들의 작가를 통해 이런 류의 글을 많이 접해보지 않은 탓도 있으리라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쉽게 다가서지 못하는 아니 우리에게는 왠지 멀리 있는 것으로만 느껴지던 불교적인 인식을 모티브로 삼았다는 것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책장을 펼치면서 심호흡을 한번 한다. 하지만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뭔가 껄끄럽다는 느낌.. 자연스럽게 넘어가지 못한다. 왠지 억지스럽다는 느낌도 온다. 짜맞춘듯한... 아마도 그래서 경계문학이라는 말을 떠올렸을 게다. 젊은 이성이 뛰어놀기엔 불교라는 배경이 너무 방대했던 건 아니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불교에 대한 시선이 남다른 나에게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아니었나 싶다. 너무 어렵게만 다가오던 낯선 언어들이 조금씩은 풀이된 듯한 느낌을 전해받았다고나 할까?  작가 역시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불교 애호가라는 말이 와닿는다. 일단은 자기 수양을 목표로 한다는 것, 모든 것이 나로부터 비롯되어진다는 그 말이 나는 참 좋았다. 좀 더 서점에 가서 찾아봐야할 것 같다. /아이비생각


신을 내세우지 않으며 창조자나 정복자의 자세를 취하지 않는다, 지혜와 자비로 표현되어진다, 일반적으로 광신을 배척하고 관용과 일체의 평등을 추구한다, 현실을 직시한다, 모든 일에 집착과 구애를 갖지 않고 실천을 강조한다, 물론 불교에도 미래불이 있고  과거불도 있지만 그것은 오랜 역사를 거쳐오면서 다양성을 띠게 된 까닭이라는 것.. 내가 피상적으로나마 알고 있는 불교의 교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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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플랜 - 세계사를 지배해 온 슈퍼파워의 숨겨진 계획
짐 마스 지음, 전미영 옮김 / 이른아침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나쁜 소식이 있다. 그것은 이 책이 제시한 모든 이야기가 진실이라는 것이다. 좋은 소식도 있다. 지금 당신이 이 책을 읽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운명을 지배하려는 수세기에 걸친 음모가 아직 완전히 성공하지는 못했음을 뜻한다.(640쪽) 

'비밀'이라는 말을 쓰지 않으려했다는 이 책.. '음모'라는 표현도 일부러 피했다는 이 책.. 비밀이나 음모가 뒷이야기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에 결국 <다크 플랜>이라는 제목을 달게 된 이 책..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는 화두가 있다. 진정 역사는 만들어지는 것인가? 역사는 승자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는 말을 한번쯤은 들어보았고 한번쯤은 고개를 끄덕여보았을 것이다. 진실이 되었든 거짓이 되었든 먼저 나온 것에 대한 반박론이 뒤따라 나오는 탓도 있겠지만 무지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우리의 노력이 있는 까닭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과연 진실만을 말하고 있을까? 정답부터 말한다면 그렇다,이다. 이 책에 그렇게 쓰여 있으니까. 

아담이 최초의 시험관 아기였다고 말한다면 당신은 믿을 수 있을까? 우리의 오래된 역사들이 인간의 파괴근성에 의해 사라졌다고 말한다면 어느정도는 인정할 것이다. 그런데 그 수많은 파괴성들이 단지 몇몇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면 믿을 수 있겠는가? 그것도 다분히 사적인 이익을 위해서라고 한다면? 학문의 세분화로 인하여 과학과 종교는 서로를 진지한 고려 대상으로 보지 않으며 고고학자는 언어학자나 지질학자, 역사학자와 교류하지 않았기에 인류 역사의 많은 부분들이 제한된 인식을 가진 사람들에게 맡겨져 있었다(-572쪽) 는 말은 정말 생각할수록 끔찍하다. 많은 것들이 대중에게 알려지지 못하는 이유가 권력과 통제력을 유지하려는 부유한 엘리트들의 음모때문이라면?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확실하게 말해주고 있다. 그런 것들이 모두 진실이라고.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당신이 그런 사실에 대하여 알려고 애를 써야 한다고.

이 책은 쉽게 말해서 세상을 움직이는 혹은 움직여온 소수의 힘을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들이 세상을 자신들의 손아귀에서 주무르기 위해 어떤 짓을 저질렀으며 그들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성장해가는 과정은 또 어떠했는지, 어떤 힘으로 지탱해나가고 있는지, 또한 그들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력은 얼만큼이나 되는지 밝혀내고 싶어한다. 또한 묻고 있다. 당신은 그런것들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있으며 관심이 있기나 한지.. 몇 안되는 비밀조직들이 서로 같은 이해관계로 얽혀있는 거미줄같은 망에 대하여 세세하게 밝혀내고 싶어한다. 삼각위원회, 빌더버그, 록펠러 가문, 모건 가문, 로스차일드 가문 등등등 많은 비밀조직들의 이름과 계보가 줄줄이 딸려 나온다. 지금 이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손들에 대하여..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 왔으며 와해된 듯 보여지지만 결코 와해되지 않은 채 지금까지도 여전하게 승계되어져 왔다는 것에 대하여.

1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히틀러를 지원했고,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게끔 그들이 각본을 만들었으며, 걸프전쟁으로 인하여 그들이 얻은 이득과 손실이 무엇이었고 왜 그들은 걸프전쟁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는지, 하다못해 이미 지나가버린 베트남전쟁이나 한국전쟁 또한 그들의 짜여진 각본에 의하여 충실하게 이행된 것에 불과하다는 것들.. 그 모든 것들이 대의가 아닌 소의를 위해서 일어난 일들이었다는 것은 가히 충격적이다. 전쟁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담보로 시작되어지는 전쟁이 나라를 위해서도 아니고 이념을 위해서도 아닌 단 몇몇의 이득을 위하여 생겨난 하나의 사건일 뿐이라는 말은 정말 묘한 배신감을 느끼게 만든다.

링컨을 위대한 지도자로 만들어 주었던 남북전쟁조차도 그들에게는 하나의 게임에 불과했다. 오래된 역사속에서 숨쉬고 있는 혁명 따위들도 잘 짜여진 각본에 의한 것이었다. 거기에는 우리에게 역사의 인물이라고 불리워지는 수많은 이름들이 존재했다. 그들의 조직력앞에 무릎꿇지 않은 자가 없었다. 아주 오래된 비밀조직들이 있다. 템플기사단, 프리메이슨, 시온수도회, 메로빙거왕조, 십자군등등 소설이나 영화속에서나 존재했을 법한 늬앙스를 풍기고 있지만 그 조직들을 이끌어왔던 이름을 거론한다면 정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먼로, 잭슨, 포크, 뷰캐넌, 트루먼, 하딩, 포드, 테디 루스벨트같은 역대대통령에서부터 벤저민 프랭클린, 샘 휴스턴, 더글러스 맥아더, 에드거 후버같은 미국인을 제외하고라도 윈스턴 처칠, 세실로즈, 존 무어, 주세페 가리발디, 하이든, 모차르트, 괴테, 볼테르, 푸슈킨같은 예술가들의 이름이 미국독립에서부터 오늘날의 세계주요사건을 담당한다는 프리메이슨이라는 비밀조직을 이끌어왔던 단원들이라는 사실이다. 더 무서운 사실은 그저 옛 비밀조직들이라고 치부해버리기에는 그들이 너무나도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이다. 과학의 힘으로 살아간다는 현재까지도 그들의 입김이 작용한다는 사실이다.

책장을 열어 비밀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면 옛 이야기가 아닌 바로 지금의 순간부터 만나게 된다. 지금 이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보이지 않는 손들에 대하여 말해준다. 지금 우리가 체스판의 말처럼 어떤 사람들의 각본속에서 움직여지고 있는가부터 직시하게 한다. 그리고 그들의 존재를 가리기 위해 드리워졌던 장막을 하나씩 걷어낸다. 그러다보니 현재에서 과거로 타임머신을 타고 들어가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묘하게도 타임머신을 타고 들어간 과거가 우리의 현실과 손잡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사실 이 책속에서 거론되어지는 비밀조직이라거나 유명인사들의 이름은 아무런 느낌도 없이 다가왔고 나와는 별개의 존재일 뿐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간다는 말이 솔직한 말일게다. 그런데 팔뚝에 소름이 돋아나는 이 섬뜩한 느낌은 무엇때문일까? 권력은 이어지는 것일까? 어떻게 해서라도 한번 잡은 권력은 놓치고 싶지 않은 게 인간의 속성인 모양이다.

청빈을 앞세우며 자신들의 존재를 나타냈던 템플기사단.. 모든 템플기사단이 체포되었던 13일의 금요일이 그때부터 불길한 의미를 띠게 되었다? 속깊은 이야기야 어찌되었든 하나의 수단으로 자리잡아야 했던 종교의 허울이 비참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거기에 묻어갈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욕망이 참으로 덧없다. 만들어진 신보다는 만들어지고 있는, 누군가의 손에 의해 조종당하는 로보트처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 또한 참으로 서글프다. 모든 비밀조직들은 결국 같은 맥락으로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들의 힘은 강하다. 그들에게는 정부도 필요없다. 단지 그들만이 있을 뿐이다. 뒤로 갈수록 한편의 영화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것은 영화도 아니고 소설도 아닌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속에 분명하게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기에 그들의 존재를 알아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 뿐이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지도자들이 그들의 하수인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것들을 내가 믿어야 할까? 정말 그런 문제들에 대하여 깊이 인식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책의 말미로 달려가면서 내가 내게 질문을 하게 된다. 우리 속담에 아는게 힘이라는 말이 있다. 그 반면에 모르는 게 약이다라는 또하나의 속담도 존재한다. 어느 것이 옳고 그른가를 따지기 이전에 앞서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가를 우선적으로 쌩각한다면 답은 확실하지 않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사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뭐지 이건? 그래서 어쩌라구? 내가 알 필요가 있는 이야기일까? 아니 호기심을 가질만한 그런 이야기였을까?  이 세상을 이끌어가는 0.5%의 인간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앞으로 내미는 보기좋은 것들(거짓됨과 화려함)을 위하여 그들이 뒤에 숨겨두고 있는 것들(진실과 냉혹함)은 어떤 것들인지, 나는 단지 그런것이 궁금했을 뿐이었다. 내가 생각했었던 다크플랜은 그런거였다. 그런데 나의 생각이 얼마나 피상적이었는가를 느끼게 해 준 책이었다면 과장된 말일까?

마지막 장에서 다루었던 고대 미스터리를 통해 평소에 설마했거나 혹시? 했었던, 순전히 개인적인 욕심으로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던 것들에 대하여 알게 되었던 부분도 참 많았다. 그런 것들이 모두 사실이었다는 것에 또한번 놀라기도 했다. 인류의 역사에 대하여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던 부분이기도 했지만 책을 읽으면서도 정말일까? 싶었던 부분이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먼저 말했던 것처럼 이 책의 모든 것들이 다 사실이라는 말을 믿어야만 할 것 같다. 뒤로 갈수록 흥미진진하게 느껴졌지만 시간을 할애하여 체크해 두었던 부분에 대하여 다시한번 읽어볼 요량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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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게 길을 묻다 - 희망 더 아름다운 삶을 찾는 당신을 위한 생태적 자기경영법
김용규 지음 / 비아북 / 200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숲에게 길을 묻다'라는 제목부터가 이미 나에게는 유혹이었다. 자기계발서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선택하게 된 것은 숲이라는 말에 대한 호감때문이다. 숲.. 과연 그는 숲에게 무엇을 물었을까? 등산을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감히 숲에게 어떤 것도 물을 수 없었던 나의 경우를 생각해본다. 단지 그 숲이 주는 느낌, 푸르름이 주는 안정감, 그리고 같은 곳을 몇번씩이나 찾아간다해도 언제나 다른 얼굴로 환하게 맞이해주는 그 나무가 좋았고, 그 나무를 품고 있는 숲의 인상이 좋았다. 내 돌덩이같은 마음을 아무데나 버려도 말하지 않고 다 받아주기만 하는 그 숲이 나는 좋았었다. 그러니 이 책의 저자가 숲에게 물었을 그것이 나는 정말로 궁금할 수 밖에..

작가의 이력은 특이하다. 마흔줄에 그 잘나가던 현실을 박차고 숲으로 들어가 오두막을 짓고 다시 새로운 삶과의 인연을 맺는 사람.. 어쩌면 풍족했을 그의 도시의 삶과 CEO라는 명함을 버리기까지 그가 겪어야 했을 생각의 시간들은 참으로 힘겨웠을테고 또한 길었을 게다. 그런 생활을 말렸던 주변사람들에게도 엄청 미안하고 죄스러웠을 게다. 하지만 이 책속에서도 말하고 있지만 작가의 품은 뜻은 단순했다 나답게 살고 싶다는 것.. .(어찌 생각해보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화두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숲에 들어갔을 때조차도 그는 자신이 의심스러웠다. 내가 정말 나답게 살 수 있을까? 이 새로운 길을 끝까지 걸어가면 내가 닿고 싶은 곳에 닿을 수 있을까? 하지만 그는 숲의 목소리를 들었고 숲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작정하고 들어갔으니 숲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한들 그가 다시 나오지는 않았으리라 생각되어지지만 어찌되었든 그가 들려주는 숲의 이야기는 장황하고 길다.

숲을 통하여 인생을 본다고 한다면 너무 거창할까? 아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이 태어나고 자라고 또한 자의식에 눈뜨는 과정, 그리고 다시 죽음을 통해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는 그 순환의 고리를 숲을 통해 아주 천연덕스럽게 보여주고 싶어한다.  숲의 모든 것은 자기답게 살 힘을 가지고 태어나며 저 태어난 자리를 억울해하지 않고 숙명을 받아들인다.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살고자 할 때 출발할 수 있음을  1장의 태어남을 통하여 숲과 더불어 인생의 길도 그런게 아니겠느냐고 묻고 있다. 2장, 3장을 통해서 바라볼 수 있는 것도 숲의 길과 인생의 길이 다르지 않음을 역설하고 있다. 나무에게는 빛이 필요하듯이 사람에게는 꿈이 필요하며, 버려야 할 것과 잃어야 할 것들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라고 한다. 상처를 입는다해도 제대로 다퉈야 하며 그 안에서의 관계, 그야말로 성장을 위한 아름다운 관계를 잊으면 안된다고 말해준다.

그렇다면 작가가 말하고 싶어하는 나답게 산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나로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책을 읽는내내 궁금했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나는 책속에서 그 답을 찾아내지 못했다. 숲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만 느껴질 뿐이다. 숲을 통해서 그동안 자신이 걸어왔던 삶에 대한 반추라고나 할까? 하지만 3장에서 말해주고 있는 것들이 나를 황홀하게 만들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제대로 된 소통을 어찌하면 되는 것인지 꽃들의 대화를 통하여 말해주고 있으며, 좁은 공간에서 옆의 나무와 부딪히지 않도록 그쪽의 가지를 서로가 양보하며 상생을 하는 혼인목과 연리목의 이야기는 정말 멋졌다. 나무가 씨앗을 떨어뜨리고 새가 알을 낳아 자식을 품듯이 인간의 자식 사랑에 대하여 다시한번 생각해보게도 한다. 일도 좋지만 휴식도 꼭 필요하다고 충고한다. 세상은 숲처럼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것이라고. 자신을 아낌없이 주어야만 하는 것이라고.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줍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는 친구의 말에 타고 있는 차로 말해주었습니다"
"20대 재테크에 미쳐라"
"여러분! 부자 되세요"


마지막 문구때문에 저 위의 네가지 문장들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눈치챘을 것이다. 비록 욕망이라는 힘으로 살아갈 수 있는것이 우리라 할지라도 건강하지 못한 욕망들이 난무하는 세상은 아니라고.. 자신뿐만이 아니라 사회를 병들게 하고 우리 모두를 병들게 하는 그 욕망을 부추키고 있는 저 광고문구들은 무엇이냐고.. 저렇게까지 해야하는 우리네 욕망과 숲을 지키기 위한 나무의 초록빛 욕망의 차이는 정말이지 우리를 부끄럽게 만드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가 버렸던 것은 이런게 아니었을까? 어쩌면 그 치욕스러울만큼의 크기로 다가오는 욕망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4장에서 보여주는 순환의 고리는 참으로 명쾌하기까지 하다. 죽음이 삶의 끝자락에 배치된 이유는 무엇일까? 죽음에 앞서 정리하며 남겨야 할 것들은 또 무엇일까? 남겨서 아름답지 못한 것들은 과감히 버려야 한다고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놓음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한다.  비움의 철학을 이야기하던 법정스님의 말씀을 떠올리게 했던 부분이기도 했다. 꼭 필요한 것만을 가지고도 사람은 살아갈 수 있다던... 어쩌면 작가는 참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산다는 것 자체가 행복한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말이다.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첨부된 사진들에 대한 것이다. color사진이 아니라해도 조금만 더 크게 볼 수 있었다면 하는 마음에 못내 아쉽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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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움직이는 기술 히든 커뮤니케이션 - 상대를 단박에 사로잡는 '고수'들의 심리 테크닉 38
공문선 지음 / 쌤앤파커스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히든이란 말은 남에게 보여주지 않고 예상할 수 없는 비장의 그 무엇을 뜻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 책의 제목대로 사람을 움직일 수 있게끔 하는 비장한 그 기술은 무엇일까? 한편으로는 오싹해지는 느낌이 다가오기도 한다. 그 많은 사람들이 상대방을 움직이기 위하여 저마다의 히든카드를 쥐고 가재미눈처럼 옆눈질 살살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도 참 못할짓이지 싶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이런 책에 시선이 가는 것일까? 상대방을 이기기 위하여 저토록이나 많은 기술을 가르쳐주었던 책이 단지 이 책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끝도없이 당하고 살기만 할까?  왜 자꾸만 마음에 상처를 입으며 살아가는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상대방의 마음에 상처를 주면서까지 살아 남아야 한다는 종족본능일까?  누가 얼마나 더 잔인하게 상대방을 이겨먹느냐하는 서바이벌 게임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모습인 듯 하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아닐까 한다. 그 관계를 원활하게 혹은 내게 좋은 쪽으로 끌어가려고 하다보니 아마도 저런 방법을 제시해주는 책들이 그야말로 쏟아져나오는 것일게다. 속된 말로 점점 뒤통수치는 방법도 교묘해지고 있는 듯 하다. 더 속된 말로 점점 더 사람위에 군림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실험중인 듯 하다. 어떻게하면 내 앞의 사람을, 내 옆의 사람을 내 손아귀에 휘어잡을 수 있는가하는 방법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책들이 너무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말하고 있는 나 자신조차도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많은 걸 보면 나 역시도 이 각박한 현실을 살아내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하나의 인간인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은 상대방에게 당했거나 혹은 상대방을 무너뜨렸던 경험이 있다는 말도 될테니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사람이 참 무섭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저자가 제시해주는 사람을 움직이는 기술 38가지를 모두 제 것으로 만들고 싶어 안달하는 그런 부류도 있을 것이다. 왜 나는 안되는거지? 수도없이 가슴을 때렸던 사람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때때로 상대방이 진실을 말하고 있지 않다고 느껴질 때 그사람의 보이지않는 말까지 알아차리고 싶어하는 것, 그럴때는 상대방의 심리를 이렇게 이용하시오... 그런게 이 책의 핵심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너무 치졸한 생각일수도 있겠지만)  물론 상대방을 넘어뜨리지 않고서도 이길 수 있는 방법또한 있을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모든 사항들이 자신의 관점에서부터 시작되어진다는 것이다. 상대방의 관점에서부터 시작되어지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세상이 더 각박해지는 것일까? 알 수 없다.

말하기 전에 먼저 군불부터 지피라는 요크스 다드슨 법칙부터 격차효과, 백드래깅, 프라이버시 이펙트등 이름도 낯선 기술들과 눈동자의 움직임을 통해 알아볼 수 있다는 눈동자 심리, 인간적인 약점을 드러내어 상호의존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방법까지 상대방을 만났을 때 경계를 허물기 위해 접근하는 기술이 많기도 하다. 그 외에도 나를 한번 더 돌아보게 만드는 첫인상의 기술 또한 만만찮다. 맞은편 아니면 오른쪽에 앉아야 한다는 스틴저 효과, 긍정적인 단어부터 시작하라는 선행효과, 자기 표현을 할 때는 투명인간식을 버려라, 옷이나 외모쪽으로 효과를 볼 수 있는 이미지 효과, 목소리, 제3자, 전화... 하여튼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다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그 기술들... 참 많기도 하다. 가장 커다란 Part들만을 모아본다면 이렇다. Part 1 상대의 경계를 허무는 접근의 기술, Part 2 나를 한 번 더 돌아보게 하는 첫인상의 기술, Part 3 긍정을 끌어내는 호응의 기술, Part 4 원하는 바를 관철시키는 카리스마의 기술, Part 5 소중한 사람에게 전하는 감동의 기술.. 

많은 것들 중에서 그래도 개인적으로 이런것들은 배워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던 기술은 있었다. 'you'보다는 'we', 우리를 강조해야 한다던 호응의 기술이 그것이다. 너와 나이기보다는 우리라는 말이 주는 어감이 왠지 따뜻하지 않은가! 너를 밟고 또 나를 밟기 보다는 우리가 함께 무엇인가를 해냈을 때의 기쁨은 아마도 상당할 것이다.  거기에 시간을 조금이라도 아낄 수 있으며 자신의 존재감을 좀 더 크게 어필할 수 있는 끝수 효과는 정말 많이 와 닿았던 부분이었다. 상대의 말에 바로 대꾸하지 말고 3초정도 생각해보고, 무슨 말을 할 것인지 3가지중에 골라 말하며, 상대가 무슨 말을 하는지 3초 기다려주어라..말하기의 333효과는 이미 우리 주변에서도 많이 회자되고 있다. 노력은 하는데 잘 되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내가 살아가면서 느껴본 결과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을 참 좋아하는 것 같다. 아마도 서로가 제말만 들어달라고 목청을 높이는 세상이기 때문일것이겠지만 차분하게 남의 말을 들어주면서 가끔씩은 고개도 끄덕거려준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각설하고 히든이든 아니든 인간의 관계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자주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타인을 인정해주는 마음, 그것이 곧 관심과 배려겠지만 정작 필요한 것은 바로 그 부분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 앞선다. 저 많은 방법들을 먼저 배우기보다는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아직 사람이 덜 된 것일까? 아니면 아직 어른이 못 된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것일까? 왠지 떨떠름한 감정으로 책장을 덮었다. 아직은 서로가 서로를 짓밟으며 피흘리는 끝없이 경쟁만 하려하는 사회보다는 서로가 서로의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는 그런 세상을 꿈꾸고 있는 탓일게다. 바보처럼...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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