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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가는 비둘기 똥구멍을 그리라굽쇼? - 디자인, 디자이닝, 디자이너의 보이지 않는 세계
홍동원 지음 / 동녘 / 2009년 6월
평점 :
일단은 재밌다. 가까이 있는 사람이 내게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거부감없이 다가온다. 디자인에 대해서 뭔가 알 것도 같은 착각이 드는 것은 그래서일까? 하지만 이 책속에 디자인이 이런 것이다,라거나 이렇게 하는 것이다 따위의 정의는 없다. 단지 디자인을 하는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볼 뿐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디자인을 하는 사람들이 무엇을 꿈꾸며 살아가고 있는지 잘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참 안타까운 현실을 살아내야하는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봐야 한다는 경고 또한 잊지 않는다. 요즘처럼 디자인을 외쳐대는 세상도 없었을거란 생각이 든다. 디자인 혁명이라고 해도 과하지 않을 듯이.. 디자인을 고려했다는 수많은 작품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런데 나는 왜 속은 안보이는건지 모르겠다. 거죽만 있고 속은 텅비어버린 듯한 그런 느낌들...
비둘기 똥구멍을 본 적이 있는가? 아니 비둘기뿐만이 아니라 날아가는 새의 똥구멍은 구경조차 하지 못했다는 게 정답일게다. 제목을 보면서 왠지 비뚤어진 심사를 엿보게 된다. 너같으면 그 날아가는 비둘기 똥구멍을 그릴 수 있겠냐? 하는 그 묘한 표정이 떠오른다. 제대로 알지 못한채, 혹은 상대방의 여건은 생각지도 않은 채 자신들의 뜻만 관철시키면 그만이라는 듯이 밀어부치는 우리들의 구태의연함을 비꼬는 말이라는 것을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그리곤 이내 고개를 끄덕거리며 공감하게 된다. 아주 사사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면서도, 아주 사적인 시간에 대하여 말하면서도 하고 싶었던 말은 꼭 하고 넘어가는 저자의 그 능청스러움이 부럽기까지 하다. 아마도 일에 대한 자신감이 그만큼 크기 때문일테지만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크게 공감할 수 있었던 부분은 두가지였다. 그 하나가 우리문화를 대하는 어리석음을 꼬집어주었던 대목이었다. 우리의 문화는 근대화를 거치며 두 번 죽었다고 한다. 첫 번째는 일제하에서, 그리고 두 번째는 새마을 운동으로 인하여.. 그런데 나는 그 새마을 운동때문이라는 말에 의문점을 찍었다. 왜? 간단하다. 먹고 살기 위해 문화를 내다 버린 것이다,라는 저자의 말을 곰곰 생각해보니 과연 그렇다. 우리것은 좋은 것이다,라고 외쳐대면서도 정작 우리것이라는 이유로 홀대를 당해야 했던, 아니 지금도 홀대를 당하고 있는 우리문화의 현장.. 얼마전 종로 피맛골을 개발한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나왔던 아주 작은 외침을 기억한다. 그것뿐이랴?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혹자는 디자인 도시를 꿈꾼다는 이유로 많은 것들이 사라져가고 있으니 정말 통탄할 일이다. 세계 어느곳을 가더라도 제 나라의 문화재 머리 위로 고가도로가 생겨 자동차가 씽씽 달려가는 곳은 우리뿐이라던가? 세계 어느곳을 가더라도 제 나라의 문화재 아래로 지하철이 쉭쉭 소리를 내며 달려가는 곳이 대한민국말고 또 있다고 했던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보물1호인 동대문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다. 보수공사를 한다한들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얼마전 남한산성 일주를 하며 동문앞을 지날 때 차도로 인하여 끊어져버린 성곽을 바라보니 가슴이 아팠었다. 우리의 편리를 위하여 스스럼없이 맥이 끊어져버리는 우리 문화의 숨결은 어딜가나 가녀리기만 하다.
그리고 두번째는 저자가 말하는 한글의 진화론이다. 왜 파워포인트에서 멋있게 보이는 글자는 만들지 않느냐던 아이의 말에 우리나라는 아직 돈이 있는 곳에 뜻이 없고, 뜻이 있는 곳에는 돈이 없는 나라란다,고 말하던 저자의 안타까움에 왠지 가슴 한쪽이 서늘해져왔다. 너희들이 크면 가능할 것이라고 말하던 저자의 목소리가 안타까운 절규처럼 들려온다. 세종대왕이 만드신 스물여덟자의 한글이 어떻게 진화를 하였는지 만천백칠십자가 되었다는 것, 그나마도 타자기에 들어가기 위해 다이어트를 해야했던 그 스물여덟자의 한글이 열일곱 개의 자음 중에 열네 개만 살아남았고, 열한 개의 모음 중에서 한 개가 사라져 온전히 남아있지 못하다는 것.. 놀라웠다. 한글로 쓰고 말하고 듣는 생활을 하면서 단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책임을 통감한다던 저자의 말을 쉽게 넘길일은 아니지 싶었다. 우리의 것이라고 명패를 달고 있으면서 환영받고 대접받는 것들이 얼마나 될까? 정말 씁쓸한 일이다.
이 책속에도 나오는 말이지만 어릴 때 그야말로 환장할만큼 좋아했던 만화영화들이 모두 일본것이었다는 걸 알았을 때 얼마나 허탈했었는지 모른다. 그러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또하나의 사실은 세계 애니메이션의 50%가 우리나라에서 그려진다는 거였다. 그렇게 잘 그리는데 왜 우리는 우리만의 만화가 없는 것일까? 이쯤에서는 진정한 우리의 캐릭터가 없다는 저자의 말이 장난스럽게 들려오지 않는다. 그렇구나, 그런거였구나 싶다. 어쩌다 커다란 행사의 상징물처럼 생겨나는 캐릭터들은 그 행사가 끝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사라져버리던 우리의 캐릭터들.. 슬프게도 냄비근성이라는 말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디자인을 매개체로 하여 저자가 들려주던 이야기들은 속아픈 부분들이 참 많았다. 수다처럼 들려오는 저자의 목소리를 통해 막연하게나마 디자인이 만들어지기 위한 여정들에 대하여 들을 수 있었고, 단 하나의 상징을 만들어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준비되어야 하는지를 알 것 같았다. 군데 군데 보여주고 있는 작은 일러스트라거나 도안들을 바라보면서 살며시 웃음지을 수도 있었던 시간.. 하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역시 디자인은 배부른 자의 전문성쯤으로 여겨진다. 많은 것을 담을 수 있겠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인 사람들에게는 그림의 떡처럼 느껴질 게 뻔한 일인듯 보여지는 까닭이다. Made in Germany의 뼈저린 아픔을 통한 성공이야기는 깊이 새겨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패전국이면서도 선진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그들의 이야기.. 그 성공처럼 거죽만 있고 내용은 없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실속있게 성공하는 Made in Korea 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아주 조금만 의식의 변화를 가져온다면 될 듯도 한데 어려울까?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