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비치 - 꿈꾸던 삶이 이루어지는 곳
앤디 앤드루스 지음, 강주헌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장님 코끼리 만지기라는 말이 있다. 세사람의 장님이 저마다 코끼리를 만져본 후 제가 만진 느낌으로만 말하고 있는 상황을 머리속에 그려보기는 쉬운 일이다. 그러면서도 '그래, 그럴수도' 있지 하며 각각의 의견에 동조해주고 싶은 기분도 든다. 다리를 만진 사람, 코를 만진 사람, 몸을 만진사람.. 제각각 코끼리에 대한 정의는 달라도 코끼리를 만져보았다는 것은 같을테니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떨까? 같이 코끼리를 만져봤다는 전제하에서조차 그 '다름'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아니 내가 만져본 부분이 더 큰 의미를 차지해야만 뭔가 만족스러운 느낌이 든다. '다름'을 인정한다는 것이 그토록이나 어려운 일일까? 그렇다면 그 '다름'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무엇이 필요할까? 감히 이 책의 말을 빌려 말해보자면 '관점'이다. 저마다의 '관점'에만 머무르지 말라는 것이다. 좀 더 가까이 혹은 좀 더 멀리에서 바라볼 줄 아는 배려와 인정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배려한다'는 것과 '인정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그러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갖고 싶어하고 배우고 싶어하는 삶의 화두이기도 하다. 그만큼 나를 버려야 얻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를 버린다는 느낌은 곧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말도 될테다. 물질적인 손해보다는 '자존심'이라고 일컫는 감정적인 손해이다보니, 우리 스스로가 결코 포기하고 싶어하지않는 손해이다보니 그게 참 어렵다. 아주 조금만 비켜선 채로 바라본다면 쉬울텐데 우리는 왜 모든 것을 정면승부하려드는 것일까?

사실 이 책은 가까이 두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왜 선뜻 이 책을 집어들었을까? 간단하다. 책띠에 나와있던 문구하나 때문이었다. <폰더씨의 위대한 하루> 저자라는 말.. 그렇다면 내가 그 책을 읽어보았을까? 아니 나는 그 책을 읽어보지는 않았다. 그저 무성한 소문으로만 그 책의 제목을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어쭙잖게도 그 무성한 소문을 가진 책의 저자였다는 이유만으로 이 책을 집어들었으니.. 자기계발서일거라는 생각은 맞았다. 당연히 달갑지 않은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시오, 저렇게 하시오, 이렇게 하시면 됩니다. 저렇게 하시면 됩니다.. 명령조 혹은 부탁조의 말들이 쏟아질거라고 지레 짐작했으니 책장을 열면서 한숨부터 나오기 시작한다. 책읽는 고통의 시간과 싸워야 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앤디를 통해 존스를 만났다는 것도 하나의 행운일까? 아니 나는 실제로 존스를 만나보고 싶었다. 어느날 문득 내 곁에 다가와 손을 잡아주었으면 했다. 어쩌면 이미 내 곁에 머물다가 떠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앤디조차도 만나고 싶을 때 만날 수 없었던 존스의 존재가 너무 가깝게 느껴져 정말  기가막혔다. 결코 어렵지않게 그리고 결코 이론적이지 않은 말투로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해 주던 존스의 목소리.. "세상은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 거야" 가 아니라 "세상을 이렇게 바라보면 어떨까?" "네가 안고 있을 작은 가능성부터 시작해보는거야" 라고 말해주는 존스의 그 따스함과 친절때문에 가슴이 뭉클했다. '그런 것 같다'가 아닌 '그렇다'라는 단호함을 너의 가슴속에 키워보면 어떻겠느냐고 충고해주는 존스의 시선이 마치 내게 향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했다. 멋지다! 대충 빨리 읽어야지 했던 나의 마음을 단숨에 오래달리기로 바꿔치기한 존스의 마력앞에서 나는 무릎을 꿇어야 했다. 아니 '닫힌 마음의 빗장을 내려놓기 시작했다'가 맞을 것 같다.

어렵지 않다. 제목처럼 시원하고 상큼하다. 왜? 우리가 일상속에서 겪어내야하는 가려움증을 아프지않게 긁어주기 때문이다. 그거 하나도 못하느냐고 호통치지 않는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을 믿지 못했던 비뚤어진 나에게조차.. 단 한가지 초장부터 힘겨운 사람에게 위인전을 내미는 생뚱맞음을 제외하고. 그렇고 그런 이야기일거라고 생각하며 들어갔던 곳에서 환하게 웃고 나오는 또하나의 나를 본다. 읽어보니 뭐 그렇게 새로울 것도 없구만...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수많은 명령과 부탁과 심지어는 협박성 멘트를 날려대던 계발서들에 상처를 입었던 내게는 너무도 따스하게 다가왔던 책이라고 말해주고 싶을 뿐이다.

덕분에 꼭 읽어야 할 책의 목록에 하나를 더 첨가하게 되었다. 그것이 저자에 대한 예의라고 나름 생각하면서. 저자 앤디 앤드루스의 작품이라던 <폰더씨의 위대한 하루>는 꼭 한번은 읽어보리라 다짐한다.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폰더씨의 하루가 어떻게하여 위대한 하루가 되었는지.. 어쩌면 존스는 실제하는 인물이 아닐 것이다. 누구나의 가슴속에 살아있을 또하나의 자신일 수도 있을테니까. 생각하는 관점,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다른 모습, 다른 느낌을 표현하는 또하나의 자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다름'을 인정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생각한다. 다시 존스의 목소리를 빌려 얘기하자면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구나.. 변화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생각하지만 변화는 순식간에 일어나는 거라고 존스는 말하고 있다. 단지 변하겠다고 결심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뿐이라고..

사랑에 대하여, 우정에 대하여, 믿음에 대하여, 결혼에 대하여 그리고 희망에 대하여 정말 쉽고 편하게 이야기해주고 있는 존스와의 만남은 정말 좋았다.  단 한가지 자신의 '관점'만 바꿀 수 있다면 나를 힘겹게 했던 모든 것들이 나를 편안하게 만들어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듣기 편하게 잘 설명해주고 있음이다. 젊은이라면 꿈과 희망에 대하여 그리고 가슴속에 품어안은 저마다의 사랑에 대하여, 조금은 다르게 한번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결혼한 사람이라면 남편이나 아내를 향했던 그 첫마음을 다시 찾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을게다. 부하를 거느리고 상사를 모시는 직장인이라면 자신의 사회생활을 다시한번 돌이켜 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도 있을거란 생각이 든다. 어쩌면 우리가 사소한 것들이라고 밀쳐냈던 것들에 대하여 소중한 마음을 갖게 될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한번 더 존스의 목소리를 빌릴까 한다. 갈매기 다섯 마리가 부두에 앉아 있네. 그러다 한 마리가 딴 데로 날아가겠다고 결심했지. 그럼 몇 마리가 부두에 남아 있나?" 존스가 당신에게 이렇게 물었다면 당신은 과연 몇마리라고 대답했을까? 궁금하다면, 아니 궁금하지 않다해도 내 대답에 따른 존스의 설명을 들어보기 바란다. 행동하지 않는 의도는 모욕이라던 존스의 목소리가 울림처럼 남아있다. 남들은 행동으로 판단하면서 유독 자신만은 의도만으로 판단하는 습관에 대하여 질책하던 존스의 말에 마음이 아팠다. 오렌지 비치의 모든 사람들에게 씨앗을 남겨두고 떠나간 존스의 존재.. 그 씨앗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사람들은 눈치챘다. 그리하여 그 씨앗을 심고 항상 곁에 머물 존스를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아직 남은 그 끝내주는 것을 위하여 화이팅을 외칠 것이다. 그날에 나도 그들과 함께 하고싶다는 욕심이 생겨난다. 책장을 덮어야 한다는 것이 또하나의 고통으로 다가오는 날도 있다. 오늘처럼..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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