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표해록 : 조선 선비가 본 드넓은 아시아 ㅣ 샘깊은 오늘고전 10
방현희 지음, 김태헌 그림 / 알마 / 2009년 6월
평점 :
참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의 고전을 대할 때마다 이 부끄러움앞에서 그저 먹먹하다. 말로는 우리의 것을 가까이하자고 하면서 과연 나는 얼만큼을 받아들이고 있는가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뿌듯한 것은 이렇게라도 우리의 고전과 마주할 수 있다는 다행스러움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부제처럼 이 책은 조선 선비가 본 드넓은 아시아에 대한 이야기일까?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책을 읽다보니 좀 더 크게 아우르는 것은 역시 중국기행이다. 세계 3대 중국견문록중의 하나라는 이 작품은 실망스럽게도 우리에게서가 아닌 일본에서 먼저 인정을 받았다고 한다. 에도 시대 일본에서 '당토행정기唐土行程記' 라는 제목으로 일본어로 번역되어 널리 읽혔다는 책. 국제 상황과 정세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써의 가치를 우리에게보다 일본에게서 먼저 인정받았다는 것은 정말 서글픈 일이 아닐수가 없다.
성종 18년 추쇄경차관으로 제주에 갔던 조선 선비 최부가 이듬해 부친상을 당했다는 전갈을 받고 고향인 나주를 향해 배를 출발 시킨다. 그다지 좋지 않은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급한 마음에 배를 띄웠지만 그만 풍랑을 만나 배는 바다를 표류하게 된다. 어떻게 되었을까? 그 와중에서 위기에 닥쳤을 때 문제해결을 하기보다는 누군가를 원망하고 좌절해버리는 조선의 근성을 여기서도 보게 된다는 건 왠지 씁쓸했다. 그렇게 바다를 표류하던 중 해적을 만나 고충을 겪기도 하고, 왜구로 오인을 받아 중국땅에서도 죽음을 당하기 전까지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우리의 선비 최부는 함께 배를 탔던 몸종과 군인들을 통솔할 줄을 알아 힘겨운 여정속에서도 멋진 통솔력을 보여준다. 마흔세명의 일행이 단 한명의 낙오자도 없이 되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기치와 벼슬아치로써의 곧은 의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 책은 최부의 여정을 따라가는 도중 고비마다 설명을 해주는 친절함을 잊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이해하기 쉽도록 다시한번 요점을 설명해주는 대목이 참 좋았다. 어른인 나조차도 그 설명이 꽤나 유익했다는 말이다. 왜구로 오인을 받아 죽임을 당할 뻔한 최부는 몰래 빠져나와 그때부터 중국땅을 기행하게 된다. 계획하지 않은 일이기에 가는 곳마다 공포와 두려움이 따라오지만 그 때마다 그의 박학다식함이, 그리고 조선인이라는 자부심이 그를 구해낸다. 중국관리들로부터 인정을 받기까지, 그리하여 외국관리로써의 예우를 받기까지 참으로 힘겨운 여정을 지난다. 결국 중국의 황제까지 만나게 되고 무사히 조선으로 돌아오게 되는 최부.
최부의 표류기를 듣고 난 성종은 그것을 기록하라 명하고 드디어 최부의 표해록이 만들어진다. 본래 제목은 '중조견문일기中朝見聞日記'였는데 뒤에 간행할 때 이름을 표해록으로 바꿨단다. 일본 스님 엔닌이 쓴 <입당구법순례행기>, 이탈리아 사람 마르코 폴로가 쓴 <동방견문록>과 함께 세계 3대 중국 여행기로 꼽는다는 표해록에는 주변국들, 중국 내륙에 관한 지리적, 군사적인 면이나 중국의 생활양식, 인심, 풍속들을 아주 자세하게 설명해주고 있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간략하게만 설명되어져 있다). 물론 최부 혼자서 쓴 글이 아니라 수행했던 아전 정보, 김중, 이정, 손효자가 틈틈이 기록해 놓은 자료가 바탕이 되었다고 한다.
조선으로 돌아온 최부는 높은 벼슬을 하게 되지만 안타깝게도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로 인하여 귀양을 가게 되고 제대로 능력을 발휘해보지도 못한 채 사형을 당한다. 귀양살이를 하면서도 교육에 힘을 쏟았다는 최부.. 그가 죽고 난 후 그의 인물됨을 높이 평가하여 죽임을 당했다는 것에 대하여 애석해 했다고 한다. 늘 그렇다. 그 쓸데없이 허울만 좋은 말싸움에 우리의 인물들은 하릴없이 스러져 갔다. 그래도 그가 남긴 작품이 있어 그 후대의 자손들이 뿌듯함을 느낄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이랴 싶다. 이런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것 또한 다행스러움이 아닐까? 정말 멋진 이야기였다.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