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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우라 레스트레포 지음, 유혜경 옮김 / 레드박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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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걸어다니는 사람들의 1/3이 정신병자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다. 그런 말을 여과지를 통과하지 않고 그대로 듣는다면 정말 끔찍한 말이겠지만 그것은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비추어 말하는 것이라고 위안삼으면서 그 섬뜩함을 달래보기도 한다. 미쳐가고 있다는 말이 갖는 양면성에 대해 생각해본다.  한편으로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온 정신을 다 빼앗긴 채 살아가는 것이니 행복할 수도 있는 일일테고, 또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것으로부터의 회피가 아닐까 싶기도 하여 왠지 서글퍼지기도 한다. '이 미친 세상에서 미치지 않은 자, 과연 누구인가?' 라고 묻고 있는 이 책의 소개글을 보면서 범인은 우리가 아니라 사회라고 떠밀고도 싶어진다. 그러나 어쩌랴, 그렇게 미쳐가는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인 것을... 일단은  특이하다. 처음부터 문맥을 찾아 헤매느라 정신을 못차렸다.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면서 그저 이해하려고만 노력했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뭔가 보이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렇게 시작되는 책..

책속에서 주인공처럼 보여지는 미모의 여인 아구스티나는 어린시절부터 억압되어져 있던 감정의 소용돌이안에 갇힌 채 살아가는 정신병자이다. 가끔씩은 제 정신으로 돌아와 주변사람들에게 잠깐의 행복을 전해주고 가는 그런 안타까움의 존재.. 그런 그녀를 끊임없는 관심과 사랑으로 감싸며 감정의 소용돌이로부터 꺼내기 위해 노력하는 환상같은 남자 아길라르.. 아이러니하게도 그 두사람에게서 보여지는 공통점이 있다면 그러면서도 끝없이 서로의 사랑을 갈구하고 있다는 거였다. 차갑고 형식적이기만 했던 가족들. 그 틈새속에서도 일종의 모성애와 같았던 자신의 사랑을 어린 동생 비치에게 쏟아부을 수 밖에 없었던 아구스티나.. 단 한번도 거역하지 않은 채 자신이 처해진 상황안에서 사랑을 찾아야만 한다고 생각했었던 어린소녀 아구스티나는 어쩌면 이미 자신만의 광기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리저리 정신없이 왔다갔다하는 책속의 시선을 쫓다보니 내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타인의 시선으로 돌아가버린 듯 느껴진다. 같은 장소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나는 저만큼 떨어진 곳에서 두사람을 보고 있다. 듣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내가 말하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옮긴이의 말을 빌려보자면 내면과 외면의 세계를 동시에 왔다갔다 하는 까닭이라고 하지만 왠지 거북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구스티나의 행적을 자신과 제3자의 시선으로 혹은 제3자의 목소리를 빌려 나에게 들려주고 있으니 조금은 혼동스럽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불편함을 참으며 책장을 넘기다보면 어느샌가 아구스티나라는 여인의 광기에 대한 공감이 생겨나기 시작한다는 거다.

아구스티나를 향한 아길라르의 마음은 묘하다. 어느날 갑짜기 출장에서 돌아와 전화기에 녹음된 목소리를 듣게 되는 아길라르. 웰링턴 호텔에서 당신 부인을 찾아가시오... 이 뜬금없는 소리에 그 흔한 아내의 부정을 떠올리게 되는 남자. 미친 아내곁에서 자신도 서서히 미쳐가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결코 그것을 인정할 수 없었던 남자. 아내의 과거를 따라가면서 아내의 주변에 대하여 더 많이 알려고 하지 않았던 자신을 탓하는 남자. 그러면서도 언뜻언뜻 자신이 원하는 작은 행복의 고리를 놓치고 싶어하지 않는 남자.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는 모두 아구스티나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그리하여 아길라르와 같이 자신을 감싸안아줄 그런 존재를 기다리며 꿈꾸는 것은 아닐까? 하는.. 그러면서 나는 똑같은 질문에 부딪히게 되어버렸다. "이 미친 세상에서 미치지 않은 자, 과연 누구인가?"

색다른 시도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나를 헤매게 하고 지치게 했지만 말이다. 누군가는 말해야 하는 이 세상속의 불편한 진실과 마주친 그런 느낌을 전해주었던 책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형식의 옷을 하나씩 하나씩 벗어버리며 자신의 알몸으로 다가가고 있는, 그야말로 피하지 않고 부딪혀야 미치지 않을 수 있다는 경고의 울림이 전해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작가의 이력이 눈에 띈다. 소설속에서 마약거래나 돈세탁과 같은 상류층의 냄새나는 부에 대해 과감하게 칼을 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조국 콜롬비아의 비극을 외면할 수 없었던 정치인의 숨결이 거기에 살아 숨쉰다고 한다. 실제로도 작가는 대학원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고 하니 그 표현들이 모두 조국에 대한 절절한 작가의 마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 먼 자들의 도시>를 통해 인간의 숨겨진 내면을 시원하게 파헤쳐버렸던 주제 사라마구의 칭찬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에 대한 유혹을 이겨낼 수 없었다. 작가가 많은 영향을 받았다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라는 이름을 보면서 오랜동안을 나의 책장에 꽂힌 채 눈 앞에서 서성거렸던 <백년동안의 고독>을 떠올렸다. 이해하려 하지 않고 그저 흐름을 따라 가다보니 자연스럽게 와닿는 그 무엇과 마주치던 순간들, 그 기다림을 내게 알려주었던 작품들을 떠올렸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선택했던 내가 받을 수 있었던 선물로 충분했다. 조금은 거북스러웠지만, 나에게 인내심을 요구하기도 했지만, 읽고나니 후련하다. 그러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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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서 행복해 마음별에서 온 꼬마천사 2
쿠르트 회르텐후버 지음, 이승은 옮김 / 꽃삽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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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비오는 날 출근길에 갑작스럽게 불어 온 바람이 내 우산을 훌러덩! 뒤집어 버렸을 때, 비 개인 오후 화창한 날씨를 노래하며 걷던 거리에서 철퍼덕! 버스가 튕기고 가는 흙탕물을 고스란히 몸으로 받아내야 했을 때... 등 그런 황당한 상황들에 대처하는 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그 머피의 법칙이란 기가막힌 우연성에 대처하는 법에는 또 무엇이 있을까? 무슨 생뚱맞은 소리냐고?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못난 내가 반박하던 소리였다.  그런 작은 일들이 모여 내 모든 시간을 불만 투성이로 덧칠해가고 있어도, 그것이 덜마른 물감처럼 내 삶의 전체에 번질거라고는 전혀 상상조차 못하면서.. 아니 가끔씩은 번져가는 물감을 잡아보려고도 하지만 그것이 그만 또하나의 투정이 되어버리고 말았던 기억이 누구나에게 한번쯤은 있지 않았을까? 나는 이 책을 보면서 궁시렁거리고 투정부리고 왜 나만 이래야 하는 거냐고 짜증부리고, 내가 그렇게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늘 걱정만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건 아닌지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처음 마음별에서 온 꼬마천사를 만나게 되었을 때 어찌나 귀엽던지 깨물어주고 싶었다. 마음별 시리즈 1편 <행복은 어디에나 있어>를 통해서 우리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조건은 주변에 너무나도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2편 <사랑해서 행복해>는 그 행복을 지켜나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를 고민해보게 한다.  손으로 한 뼘 만큼의 거리안에도 행복은 있었고, 그저 눈을 크게 뜨고 있기만 해도 어디에서나 찾을 수 있는 것이 행복이었다면 사랑 또한 먼 곳에 있지 않다는 것을, 그러니 모두가 사랑의 열쇠를 찾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야 한다는 꼬마천사와의 두번째 만남 역시 소중하고 또 소중하게 다가온다.

사랑에 빠져버린 꼬마천사의 가슴은 뛰었고 해님과 내기라도 한 것처럼 환한 얼굴이 되었다는( 이 표현은 나에게 정말 기막히게 아름다운 표현으로 다가왔다) 그 말에 내가 그만 환한 웃음을 짓게 되어버렸다.  꼬마천사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던 제니의 웃음. 그 웃음이 전해 주었던 행복바이러스에 감염되어버린 꼬마천사를 통해 엄마도 할아버지도 모두가 기쁨 가득한 시간을 함께 나눌 수 있었다는 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모르겠다. 꼬마천사와 할아버지의 대화를 통해 알 수 있었던 사랑에 관한 짧은 의미들이 내게 어린아이같은 두근거림을 전해주기도 했다. 다른 사람의 행복을 함께 기뻐해 줄 줄 알아야 하고, 매일같이 정성껏 관심을 갖고 보살펴야 하며, 사랑하고 있는 바로 지금이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그렇게 마음속에 품고 있는 한 그 사랑은 영원한 것이 될거라고...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노력한다면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알게 될거라고.. 마음속에 있는 것들을 끄집어내어 큰소리로 말하고 싶겠지만 많은 말을 해야만 알 수 있는 게 사랑은 아니라고.. 사실 꼬마천사와 할아버지가 함께 나누었던 대화가 새삼스러울 것은 하나도 없었다. 늘 듣는 말, 늘 곁에 두는 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한번 읽게 되었던 것은, 이제 막 시작되는 꼬마천사의 순수한 느낌과 모든 것을 이미 다 알아버린 그러나 후회를 앞세울 수 밖에 없었던 할아버지의 성숙됨이 어울어져 조화를 이루고 있었기에 더 좋게 다가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사랑이란 서로에게 자유공간을 허락하고 상대방이 넘어지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거라는 것이다. 관심과 믿음이 밑거름이 되어 뿌리를 내리는 사랑이라면 집착도 소유도 날아와 앉지 않는 꽃을 피울 수 있을거라는 할아버지의 말씀은 기억해 둘 만하다.

마지막 장을 열었을 때 나를 기다려주고 있었던 그 작은 편지봉투를 기억한다. 과연 그 속에는 어떤 메세지가 들어있을까 내심 궁금하기도 했었다. 꼬마천사가 내게 전해줄 메세지는 무엇일까? 너무 조심스럽게 대하다보니 봉투의 한쪽이 조금 찢어지고 말았다. 한 장, 두 장, 석 장, 넉 장, 다섯 장... 모두 다섯 장의 작은 카드. 전해받은 메세지는 다섯 장뿐이었지만 내가 다른이에게 다시 전해주어야할 느낌은 그보다도 훨씬 많은 듯 하다. 

모든 것에서 사랑을 발견하려는 노력, 그게 바로 사랑의 열쇠야.
그러니까 모든 것에서 사랑을 발견하려는 노력을 멈추지마.
사랑해서 행복한 거니까.

아직도 사랑의 열쇠를 찾고 있다면 손 한 뼘만큼의 거리안에서 찾아보기 바란다. 사랑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고 꼬마천사가 가르쳐주었으니까. 그리고 그 사랑이 있어서 우리는 행복한 것일테니까. 사족같지만 2편 <사랑해서 행복해>의 주인공 꼬마천사와 제니의 모습이 너무나도 이뻤다. 그림 하나만으로도 그토록 난해한 사랑에 대하여 어쩌면 저렇게 잘 표현할 수 있는지 부럽기도 했다. 아주 짧지만 아주 긴 여운을 남겨주는 이야기...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알아채는 것'이 행복이라면, 저절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찾아내는 것'이 사랑일 것이다. 하나남은 마지막 이야기가 기대된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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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armony 조화로운 인생 - 진정한 부를 이루는 5가지 절대 조건
제임스 아서 레이 지음, 송택순 옮김 / 엘도라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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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 머니해도 머니가 최고! 라는 말, 흔하게 쓰는 말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우리가 웃으면서 쓰는 말이지만 그 뒷면은 참 씁쓸하기도 하고, 그다지 유쾌한 느낌을 전해받지도 못한다. 그렇다면  종종 마주치는 질문중의 하나이기도 한 이 말은 어떨까? 돈이 많으면 행복할까? 나는 속된 사람이라서 그런지 돈이 많으면 행복하냐고 묻는 질문에 무조건 yes! 를 외쳐댄다. 돈이 많으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 사람나고 돈났지 돈나고 사람났냐? 하고 물어오면 그래 너 잘났다, 이렇게 비꼬기를 예사로 한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모든 일상들이 돈으로 해결되고 있다고 해도 틀린말은 아닐 것이다. 그랬기에 금전만능주의가 생겨났을테고 좀 더 많은 부를 누리기 위해 돈에 집착하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돈이 건강을 잃고 난 뒤에 온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거다. 아주 가볍게 스쳐지나갈 아픔이라면 물론 돈이 해결해줄 수도 있겠지만 우리 주변을 흘러다니는 이야기의 대부분은 그 많은 돈도 해결해 줄 수 없는 것이 건강이라고 말해주고 있으니 그것 또한 부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진정 행복해 질 수 있을까? 

진정 행복해 질 수 있는 길은 자기 자신안에 있음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행복의 모든 원천을 밖에서만 찾으려고 한다. 이 책에서 말하고 싶어하는 그 조화로운 인생이라는 것도 어떻게 하면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는가를 안내해주고 있는 지침서이다.  금전의 풍요, 관계의 풍요, 정신의 풍요, 육체의 풍요, 영혼의 풍요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먼저 금전의 풍요를 다루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돈의 거짓말에 속지말고 돈 자체를 목표를 세우지 말라고 말하고는 있지만 그 돈을 떠나서는 나머지 네가지의 풍요를 충분하게 누릴 수 없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는 모양이다. 가난은 죄라는 말이 있다. 나는 그 말 역시 전적으로 동의한다. 물론 어쩔 수 없어서..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어찌되었든 가난은 죄임에 분명하다. (요즘의 실태를 바라보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가난이 죄일수 밖에 없도록 만들어가는 우리의 사회를 보라!)  돈은 내면을 드러내는 하나의 도구라는 말을 이 책속에서 만날 수 있지만 사실 그렇다. 돈이 없다면 그 내면을 표현한다는 것조차도 궁색해지는 까닭이기도 하다.

모든 계발서나 인생의 지침서에서 다루고 있는 공통분모는 아무래도 자기최면이 아닐까 싶다. 좋게 말한다면 의식의 변화쯤 되겠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충분히 그럴 능력과 자격이 있다, 이것쯤이야..하는 등의 자기최면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게해서 일단 의식의 변화부터 겪어야 한다고 한결같이 말하고 있음이다. 각설하고 이쯤되면 머리부터 아파온다. 또 그 타령이야? 하는 마음이 앞서는 까닭이다.  이런 지침서가 그야말로 지침서의 역할을 제대로 했던 사람들은 성공할 것이고, 나처럼 또? 하고 외친다면 성공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읽어내는 것은 변하고 싶은 욕구가 강한 탓일게다. 가장 먼저 자신과 친해져야 하고 스스로 사랑에 빠지고 싶은 사람이 되라고 말하는 관계의 풍요나, 생각이 바뀌어야 행동이 바뀐다(정신의 풍요)는 뻔한 진리를 다시한번 받아들일 수 있는 것도 변화에 대한 갈증때문일 것이다. 그런 와중에서도 깊이 각인되는 한마디를 찾아보자면 이렇다. 자신의 힘을 스스로 지배하고 싶다면 먼저 정서를 지배하라는 말이다. 정서를 지배하는 첫번째 단계는 인생의 경험이 외부 사건들과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인생의 모든 것은 당신이 그것에 부여하는 의미 외에는 다른 어떤 의미도 없다.(-172쪽) 사실 우리가 판단하는 모든 것들이 나로부터 비롯되어지는 주관적인 관점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정말 멋진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외부적인 요인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생활이 어디 그런가 말이다!

마지막으로 영혼의 풍요편을 통해서 알게 된 인간은 신보다 자신의 내면을 따른다(-274쪽) 는 말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놀라웠다. 사람들 대부분은 스스로를 종교적이라기보다는 영적이라고 정의할 뿐이고, 종교 지도자의 권고를 따르기 전에 자기 내면의 인내를 따른다고 하니 이 얼마나 자기주관적인가 말이다. 아니 바꾸어 말하면 신에 대해 알기를 원하지만 그다지 크게 기대하며 살지는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을까? 또하나의 불편한 진실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영혼의 풍요를 위하여 하나의 수단이 되는 종교조차도 자의식에 밀린다면 역시 모든 것은 자기 자신안에 있음을 역설하고 있는 것만 같아 왠지 서늘하기도 했다.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는 다섯가지의 풍요는 모든 것이 조화롭게 이루어져야만 제대로 된 것이라고, 그러니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문득 인간이 완벽하다면 신이다, 라는 말이 떠오른다. 완벽하지 않기에 완벽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는 말도.. 글쎄, 잘 모르겠다. 그리고 너무 어렵다. 역시 나는 小人인 모양이다. 백만장자가 되고 싶다는 욕심이 없어서 그런 것인지.. 내 주어진 조건에서 작은 행복을 느끼며 아프지 않고 잘 살아가는 것만이 나만의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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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이레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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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결국 관심이다. 관심은 곧 배려일테다. 그리고 배려는 곧 사랑일테다.  그리고 '한동안 다른 책은 읽고 싶지 않다' 라는 책띠의 구절은 누가 보아도 설레일테다. 이 책을 처음 대하면서 나는 책띠의 저 말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동안 다른 책은 읽고 싶지 않다.... 얼마나 크게 가슴을 울렸으면 저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얼마나 깊이 각인되어졌으면... 하지만 나는 곧 마음을 접는다. 같은 글을 읽고도 느껴지는 감정이 다르다는 걸 부정하지 않는 까닭이기도 하지만 그 말 한마디에 내가 느낄 모든 것들을 묶어버리고 싶은 않은 까닭이기도 했다. 제목처럼 이 책은 수학적인 공식이 눈에 띈다. 하지만 그 수식이라는 것이 숫자를 대표하지 않고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감성을 대표한다면 믿을 수 있을까? 내가 본 바로는 그랬다. 박사가 일러주는 숫자들은 하나하나마다 사람의 감성이 묻어났고, 하나하나마다 사람이 느껴야 하는 마음이 숨쉬고 있었다. 내 기억은 80분밖에 지속되지 못한다,라는 쪽지를 양복의 앞섶에 붙여두고서 자신을 자각해야만 했던 박사의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지금의 내 자신을 보는 것만 같아 가슴 한쪽이 짠해졌다. 잊기 위해 노력하는 것들, 잊혀지는 것들, 잊고 싶지 않은데 잊어야만 하는 것들, 머물지 못하는 그 수많은 것들은 기억이라는 테두리를 두른 채 우리에게서 조금씩 멀어져 간다. 그런데 그 기억의 한계가 80분이라면?

수식.. 숫자를 보면 우선 문제가 생각나고 그 문제를 풀어야하는 어떤 공식부터 생각난다. 그렇다고 수많은 문제와 숙제가 이 책속에 산재되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소설에서 만날 수 있는 약수, 정수, 소수, 자연수, 완전수, 우애수 등 수학용어들과 묘하게 얽혀드는 인간끼리의 접촉, 즉 정情에 대한 의미는 정말 대단하다. 무엇이 되었든 숫자와 얽혀야만 마음을 놓는 박사의 머나먼 기억속에서 숫자는 살아숨쉬는 하나의 따스함이다. 나는 파출부. 어느날 요주의 인물로 찍혀진 박사의 집을 방문하면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되어진다. 생면부지의 박사와 할 일만 하면 되는 파출부 사이에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0'의 상태였지만 그 '0' 이라는 숫자가 안고 있는 무한의 의미를 무리없이 부여해주는 작가의 낱말들이 정말이지 기가 막히도록 좋았다.

"신은 존재한다. 왜냐하면 수학에 모순이 없으니까. 그리고 악마도 존재한다. 왜냐하면 그것을 증명할 수 없으니까."(-142쪽)  박사와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부터 생각지도 않게 숫자에 연연하게 되는 파출부와 그의 아들 루트의 행적이 참으로 아름답게 다가온다. 짧은 박사의 기억을 위하여 그들이 희생을 감내하는 시간들이 우리곁에서 이미 멀어져가고 있는 타인을 위한 배려이기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파출부의 손길을 거치며 먼지처럼 풀풀 일어나 풀어헤쳐지는 박사의 지나간 기억들.. 박사의 숫자를 하나 둘씩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하나의 추리소설을 읽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 들기도 했다. 박사가 영원히 기억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박사의 기억속에서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사랑'이었다. 그리고 그 사랑이 늘 곁에 머물고 있음에도 느끼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니 가질 수 없었던 그 사랑의 흔적들.. 어쩌면 인간이란 존재의 속성속에서 끝없는 모순과 대립이 끝나지 않을 싸움을 계속하고 있지는 않은지.. 증명할 수 없다던 그 악마의 존재를 우리가 몸소 보여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문득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물질이나 자연현상, 또는 감정에 좌지우지되지 않는 영원한 진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야. 수학은 그 모습을 해명하고, 표현할 수 있어. 아무것도 그걸 방해할 수는 없지."(-164쪽)  파출부의 아들 루트와 한없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던 박사. 그 박사가 사랑했던 것은 어쩌면 순수粹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아무것도 끼어들지 않는,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그런... 그리고 그들 셋이서 만들어낸 관심과 배려가 일회성에 그치지 않았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다. 기회주의적인 마음이 끼어들지 못하는 그 순수粹함이 있었기에 그들의 인연이 그토록이나 오랜 시간동안 기억되어질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해주고 받아들이는 관심과 배려가 사랑의 또다른 이름임을 아주 담담하게 말해주고 있어 읽기 시작했던 순간보다는 책장을 넘겨 가면서 더 많은 공감을 형성할 수 있었던 듯 하다.

옮긴이의 말을 보면서 불현듯 떠오른 생각이다. 그의 말속에서 거론되어지던 일본작가들의 이름.. 꽤나 익숙한 이름들이 많이 보였다. 그런데 일본출판계의 흐름속에서 저들처럼 저들의 입속에서 불리워질 우리의 작가는 몇이나 될까 하는 생각... 가보지 않았으니 잘 모르겠다. 그런데 자꾸만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왜일까?  단 한줄의 글귀때문에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던 책 한권의 느낌이 아직은 희미하다. 이 책, 다시한번 도전해보고 싶어진다. 시간과 마음만 허락한다면... 제대로 느껴보고 싶으니까...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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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할머니와 산다 - 제3회 세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최민경 지음 / 현문미디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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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한달전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내 속으로 들어왔다!  내 몸을 빌려갈 생각은 하지도 말라며 할머니의 빙의를 부정했던 은재에게 예지력과 같은 능력이 생겨나기 시작하면서부터 은재는 할머니의 존재를 인정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 소설, 빙의를 다루고 싶어하는 건 아니다. 단지 빙의라는 형식을 통해서 할머니와 은재의 공통점을 파고 들어가다보면 그들의 속깊은 사랑을 만나게 된다. 은재의 엄마는 아이를 낳지 못한다. 그래서 두 아이를 입양했고 그 아이들이 은재와 은재의 동생 영재다. 여섯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엄마와 아빠의 가족이 되기까지 얼마나 힘겹게 소통의 과정을 겪으며 지내왔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성장소설이라는 말을 듣게 되면 으례히 청소년을 다루는 책이군 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네들이 겪어내야 하는 진통을 우리가 성장이라고 부르는 까닭일까? 하지만 알게 모르게 부정하고 싶은 부분도 있었다. 대부분의 성장소설은 뭔가 조금씩 부족한 배경을 가진 아이들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부모중 한쪽이 없다거나 아니면 부모와 함께 살지 못한다거나 이 책처럼 입양아라거나, 뭐 이런식의 배경이 나는 솔직히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제대로 된 환경을 가진 아이들도 똑같은 성장통을 겪는데 굳이 그런 배경을 아이들에게 깔아준다는 건 특별히 어떤 감각적인 효과를 노리기 위해서였을까? 나는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잘 읽힌다. 이렇다 할 거부반응도 일어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그 흐름이 참 자연스럽다는 거였다. 우리가 흔하게 겪을 수 있는 상황이지만 정면으로 마주치기엔 왠지 껄끄러은 그런 소재를 잘 소화해내고 있는 듯 하다. 우리의 출판계에 일본소설이 난무하고 있다는 것에 가끔은 회의를 느껴본 적이 있는 사람이었기에 그 이유를 한번 생각해보던 때가 있었다. 그들이 뱉어내는 현실적인 감각, 그리고 문제를 피해가지 않고 정면승부라도 걸어볼 양 파헤쳐가는 그들의 시각이 나는 좋았었다. 그리고 그 부드러운 문체라니... 그런데 이 책이 딱 그런 느낌을 전해주고 있다. 사회적으로도 통념처럼 치부해버리는 우리의 속살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듯 보여진다.

은재와 영재가 처음 집을 찾았을 때의 상황은 불 보듯 뻔한 상황이지만 온전히 사랑으로 감싸 안아주는 엄마와 아빠의 모습에서 왠지 모를 안도감마져 느껴진다. 은재의 보육원 시절과 영재가 집으로 들어와서도 모든 것을 인정하지 않고 거부만 하던 비뚤어진 모습속에는 우리가 모른 척 했던 아픔들이 들어 있었다. 누나가 아프면 나도 아프다고 말하던 영재의 그 마음이 생겨나기까지 그 가족이 겪어야 했을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리라. 끝내 자신의 비밀을 밝히지 못하고 돌아가신 할머니가 은재를 통해서 해결하고 싶어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주 어린 시절 자신에게 해외로 입양된 누나가 있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존재를 부정해왔던 아빠에게도 그것은 분명 껄끄러운 진실이었을 것이다. 어쩔 수 없어서 해외로 입양을 보내야했던 딸의 존재를 잊지 못하고 은재의 몸을 빌려 자신의 한을 풀려고 했던 할머니와, 엄마에게 버림받고 보육원에서 지내야 했던 은재는 동병상련이었다고나 할 수 있을까? 그랬기에 좀 더 질긴 인연의 고리로 엮여 있었던 건지도 모를 일이다.

차분하게 하나씩 풀어나가는 방법이 참 편안하다. 사춘기의 아이들이 겪는 일상이 은재의 주변에서 문제로 다가왔다가 스스로가 답을 찾아내는 현명함으로 마무리되어진다. 은재의 말처럼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정말 피곤한 일일 것이다. 언제나 무슨일인가로 마음을 졸이며 살아야 할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 모든 힘겨움을 오백원짜리 오뎅 하나와 뜨끈한 국물로 이겨낼 줄 아는 게 또한 성장의 과정이기도 할테다. 감춰두고 산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사람은 저마다의 비밀 한가지씩은 가슴속에 감춰두고 산다고 한다. 울지않는 아이여서 너무나도 두려웠다는 엄마의 말처럼 그 비밀을 지켜내기 위해 자신을 속여야 한다면 그것 또한 슬픈 일일 것이다. 버려야 했던 딸에 대한 그리움이 한으로 남았던 할머니와 자신을 만나고자 했던 생모에게 모질게 돌아서며 엄마의 품에서 크게 울어버렸던 은재에게는 어쩌면 그것이 삶을 지탱해주었던 힘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이 소설속에서 만나지는 껄끄러운 진실들이 내게는 참 좋은 느낌을 전해주었다. 입양이라는 진실, 그리고 그 입양이라는 말속에 숨겨진 가족간의 힘겨운 소통, 10대들의 방황속에 담겨진 두려움, 친구라는 의미를 통해서 자신들의 두려움을 해소해보고 싶어하는 10대들의 간절함.. 그 모든 것들이 마치 바로 곁에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듯하다. 그런 착각이 들게 만드는 문체가 나는 좋았다. 별 것 아닌데도 찔끔 눈물이 날 뻔한 부분도 있고, 실실거리며 웃음을 뱉어내는 부분도 있다. 그러면서도 샛길로 빠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끌어가고 있는 작가의 역량이 부럽기도 했다. 흠이 있다면 너무 잘 짜여져 있는 것이라던 심사평을 조금은 이해할 수도 있겠다 싶은 마음이 든다.

일단은 과격하지 않은 설정, 그냥 평범한 일상속에서 누구나가 겪을 수 있는 일들을 이 소설속에서 만날 수 있었기에 좋았다. 은재와 엄마가 티격태격 싸우는 모습이나, 그 싸우는 와중에서도 실질적인 입양이라는 낱말을 스스럼없이 뱉어내는 것도 놀라웠고, 실직한지 두달이나 되었으나 여전히 태평하게 버티며 엄마의 애간장을 태우는 아빠의 모습, 공부라는 커다란 짐이 버겁기만 한 아이들이 제 나름대로 그 버거움을 해소해가는 과정도 별스러운 점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콕콕 집어주는 맛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게 이 책의 매력이라면 매력일 것이다. 이러다 아빠가 시험에 떨어지면 우리 식구 뭐 먹고 사냐, 딱 두 번 시켜먹은 걸 가지고 단골이라고 우기냐, 같은 은재의 혼잣말은 은근슬쩍 재미있다.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속내를 그대로 들춰내니 나도 이중잣대를 들이대지 않게 된다. 책속에서 보았던 말 중에서 우리가 어떤 사람을 안다고 하는 건 인생의 어느 한 부분이지 그 사람의 삶 전체가 아니다,라는 말을 되새겨본다. 그리고 저마다의 비밀 하나쯤은 인정해주면서 살아가야 아름다운 세상이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이 책, 정말 재미있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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