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 기다려지는 행복한 나무여행 - 나무를 찾아가는 여행 52 주말이 기다려지는 여행
고규홍 글.사진 / 터치아트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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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생각만으로도 설게게 하는 말이다. 어떤 주제로 길을 떠나느냐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진다. 아무런 목적도 없이 그저 떠나는 여행도 있다. 흔히 여행을 일러 '나를 찾기 위한 길 떠남'이라는 말을 하곤 하지만 거기에 기다려주는 이가 있다면 더 좋을게다. 그 기다림의 존재가 나무라면 어떨까? 이 책은 바로 그 나무가 나를 기다려주는 여행을 보여주고 있다. 상큼할까? 나무를 만나러가는 여행길이니 상큼할 것이다. 나무길, 하면 가장 먼저 떠올랐던 곳이 월정사 전나무 숲길이었다. 그러다가 내소사 전나무숲길이 되었고  그 다음엔 주산지의 나무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담양의 메타세콰이어길이다. 그 길은 광고덕을 톡톡히 보았던 길이기도 하다. 길마다 색다른 맛이 있었지만 나무길은 뭐니뭐니 해도 마음을 평화롭게 다독여준다는 것이다. 이름없는 나무라 할지라도 나무가 있는 곳이라면 함께 어울어지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 아닐까? 우리가 잃어버린 채 혹은 외면하면서도 마음으로는 끊임없이 갈구하는 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그 평온함일 것이다. 우리의 오만과 이기심으로 인하여 점점 사라져가거나 변형되어지는 자연의 모습을 생각하니 가슴 한 켠에 차가운 바람이 한줄기 지나간다.

옛날 우리네 정서를 만들어주었던 풍경속에는 빠짐없이 나무가 있었다. 마을어귀에 우뚝 서서 마을을 지켜주는 나무들.. 간혹 울긋불긋한 띠를 두르고 있었던 탓에 과학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낯설음을 안겨주기도 하지만 그 나무를 보면서 이곳이 마을의 시작점이구나 했었던 적도 많았었다. 생뚱맞게 논두렁 어디쯤에 자리한 괴목들을 보면서 사라졌거나 이전한 마을의 모습을 생각한다는 건 그다지 이상하지 않다. 그만큼 나무는 우리에게 정신적인 의지의 대상이 되어주기도 했다. 마을입구에 지키고 서서 들고 나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기도 하고 넓은 그늘을 만들어 장기나 바둑을 두는 일상의 여유를 선물해주기도 했던 나무.. 미루나무 꼭대기에 조각구름이 걸려있네~~ 라는 노래를 불렀던 나 어릴적의 추억만큼 지금은 미루나무를 본다는 것이 쉽진 않은 듯 하다. 그 뾰족하게 키가 큰 미루나무를 여행길에 만나기라도 하면 얼마나 반가운지.. 보통은 미류나무라고 불리웠던 것 같은데 그것이 미국에서 들어온 버드나무라는 뜻에서 미류(美柳)라고 한다는 말을 듣고는 아차! 했다.

나무에 얽힌 전설이나 사랑이야기는 많다. '삽목전설'이라고 하는데 이상하게도 그런 전설을 안고 있는 나무중에서 은행나무가 참 많은 것 같다. 마의태자가 꽂아두었다던 지팡이에서 잎이 나왔다는 용문사 은행나무가 그렇고 큰 스님이 우물가에 꽂아둔 지팡이가 자랐다는 반계리의 은행나무가 그렇다. 운문사의 처진소나무 역시 스님의 지팡이에서 잎이 나왔다고 하니 얼마나 기막힌 이야기인지.. 그 삽목설화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이 책의 색다른 맛이기도 하다. 아주 오래전 속리산을 찾아가는 길에 만났던 정이품송을 기억한다. 왕이 지나갈 때 가지를 들어올려 벼슬까지 하게 되었다던 정이품송의 전설을 들으며 얼마나 신기하게 바라보았던지... 단지 전설일 뿐이라고 생각했다가도 정이품송의 가지를 보면 정말 그랬을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지금은 옛못습을 많이 잃어버린 그 소나무가 결혼을 해서 정이품송의 기풍을 닮은 부인송이 있다고 하니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언젠가 배롱나무를 두고 옥신각신했던 적이 있었다. 무슨 나무냐고 묻던 친구에게 백일홍나무라고 하니 백일홍은 나무가 아니라고 우겨대던 친구.. 우리가 알고 있는 작은 식물 백일홍도 있지만 그 작은 꽃과 다른 나무라해서 백일홍나무라고 한다는 말을 해주었다. 기어코 확인을 해 보았던 친구는 지금도 배롱나무를 보면 베시시 웃는다. 나무의 이름이 붙여지게 된 이유를 알게 되면 우리네 정서를 한번쯤 짚어보게 된다. 나무의 생김새만 보면 왜 그런 이름이 붙여졌는지 짐작케 한다는 층층나무, 쥐똥나무, 팔손이나무, 박태기나무,화살나무등도 재미있지만  그 특징을 따라 붙여진 이름도 괘나 재미있다. 호랑이 등긁개로 쓰여서 호랑가시나무, 물을 푸르게 한다고 물푸레나무, 불 속에 던져넣으면 꽝꽝소리가 난다고 꽝꽝나무, 자작자작 하는 소리가 난다고 자작나무, 가지를 꺾을 때 딱 소리가 나는 닥나무, 댕강소리가 나는 댕강나무등으로 불리우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가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지 않는 나무도 있다는 것을 이제사 알게 된다. 지금은 많이 알고 있는 아까시나무를 아카시아나무라고 불렀던 것도 그렇고 후박나무라고 부르는 나무가 사실은 일본목련이라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토종 후박나무와는 엄연히 다른 나무라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무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하기엔 만만찮을 거라는 생각이다. 전문가가 아니고서야 어디 나무만을 보자고 떠나는 여행길이 쉽겠는가 말이다. 그러한 까닭인지 이 책속에는 그 나무를 배경으로 생겨났던 일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세세하게 적혀있다. 그리고 그 주변의 유적지나 관광지를 함께 소개해 주고 있다. 나무와 함께 들러볼 수 있는 여러곳을 소개해주면서도 그곳에서 또다른 맛으로 만날 수 있는 나무를 빼놓지 않았다. 유적지 탐방을 자주하다보면 고택을 만나기가 쉽다. 고택에 멋진 정원이 있고 그 정원에는 연못이 있었다. 그리고 그 연못의 중심부에는 어김없이 작은 섬 하나 떠있는데 그 섬의 주인은 커다란 나무 한그루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옛날 사람들은 연못을 음의 기운이라 여겼고 그 음의 기운을 다스린다는 의미로 연못의 중간에 공간을 만들어 나무 한그루를 심었다고 한다. 우암 송시열이 후학을 양성했다던 남간정사가 떠오른다. 우암사적공원안의 고택인데 냇물의 흐름을 그대로 살려둔 채 그 위로 집을 지었다는 남간정사의 앞에도 연못과 나무가 있었다. 그 나무가 왕버들이었다는 것을 지금에야 알게 된다. 나도 참 무심하다...

나무... 가는 곳마다 나무는 많다. 하지만 나무를 알지 못하니 잘생기고 멋진 나무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저 유명세를 치르는 나무만을 알아보았을 뿐이다. 이 책을 보면서 모르고 지나친 나무가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다시가기 어려운 여행길에서 만난 나무들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어쩌면 너무 흔한 것이기에 관심두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어찌되었든 이 책을 통해서 나무에 관한 경이로움이 느껴져 새삼스럽기도 하고 자주 갔으나 알아보지 못했던 사자산 법흥사의 밤나무와 청령포에서 어린 단종의 아픔을 보고 들었다던 관음송에게 미안해지기도 한다. 책장을 덮으면서 한번쯤은 찾아가고 보고 싶은 나무들을 떠올린다. 세그루의 멋진 소나무가 대표하는 마을이라 하여 三松里라 불리운다는 곳의 왕소나무가 궁금하고, '3750-00248 석송령石松靈'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으며 해마다 토지세를 납부한다는 반송이 궁금하다. 석송령이 만들어내는 그늘이 무려 324평이나 된다고하니 그 그늘 아래서 잠시의 쉼을 얻어보는 것을 상상해보니 꽤나 멋지다. 그런가하면 줄기를 뻗어올린 뒤 일제히 가지를 낮춰 바닥으로 늘어뜨리고 있다는 청도 운문사의 처진소나무를 통해 자신을 낮추는 겸손을 배워보는 것도 괜찮은 일이 아닐까 싶다.

은행나무, 느티나무, 뽕나무, 소나무, 참나무, 향나무, 전나무, 이팝나무... 나무도 참 많다. 그 많은 나무들을 공부할 수 있어 좋았던 시간이기도 했다. 나무의 특징과 재미있는 이름들, 어원, 나무의 생김새를 보여주고 설명해주는 '나무바로알기'는 독자에 대한 세심한 배려이기도 했지만 이 책이 나에게 전해주는 보너스였다. 소나무만 하더라도 반송,육송,적송,유송,곰솔등 분류되어진 이름이 많다. 보통 해송이라 부르는 것이 곰솔이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아울러 함께 찾아 갈 수 있는 유적지들을 소개해 준 것도 나에게는 너무나도 유익한 정보였다. 꽃을 배우고 나무를 배우는 일, 자연을 배우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 예부터 우리의 일상속에서 함께 살아왔던 소나무 이야기로 마무리를 해본다. 소나무는 순 우리말로 '솔나무', '소오리나무'라고 부른다. 모두가 '솔'을 어원으로 한다. 여기서 '솔'은 '으뜸'을 뜻하는 우리말 '수리'에서 변성한 것으로, '나무 중의 으뜸 되는 나무'라는 뜻에서 붙은 이름이다. 한자로는 '송松'을 쓴다. (215쪽).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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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의 머리일까?
차무진 지음 / 끌레마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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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은 사실과 허구를 아우르는 팩션이라는 게 흥미로웠다. 추리소설 내지는 환타지? 이렇게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책을 읽어가면서 가슴속에 뭉클하게 올라오던 무언가가 있었다. 무언가 알 수 없는 것이 자꾸만 치고 올라오려 했다. 그것을 눌러내리기를 몇 번, 나는 결국 한숨을 후우, 내뱉으며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 당신들은 당신들의 조상이 기록한 문서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는 민족이오"라는 말 앞에서 나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단지 한 편의 소설속에 쓰여진 문장임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이긴자의 기록이라는 말이 있다. 공감한다. 당연히 그럴수밖에 없을 것이다. 책에서도 대화중에 나오는 말이긴 하지만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의 기록 중 어느쪽에 더 신빙성이 있을까? 한번 더 생각해보게 된다. 역사를 단순히 기록이라고 말하는 시대는 아닌 것 같아 하는 말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삼국사기>보다는 <삼국유사>쪽에 더 무게를 두고 싶은 것이 나의 심정이기도 하다.  그 사람이 어떤 사고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이야기의 관점은 달라지는 것이 맞는 말일테니..

어찌되었든 이 책은 정말 흥미롭다. 빠져들게 만드는 힘이 상당히 강하다. 고전을 빌미로 엉켜드는 모든 사건들은 다시 고전을 통해 풀려진다. 실은 엉키게 한 자가 풀어야 한다는 이치다. 그런데 그 전개방식이 기가 막히다. 책을 읽는 내내 도저히 참아낼 수 없었던 궁금증 하나를 풀어보기 위해 검색해보기를 몇 번, 실력이 없는 탓인지 제대로 찾아내질 못했다. 이 책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김유신 묘 진위사건..  1968년 이병도라는 사람이 조선일보에 기재해서 세상에 논란을 일으켰다고 하는데 너무 오래된 일인 까닭인지 제대로 찾아지지가 않았다. 대한민국의 역사학자로써 한국의 역사와 사상, 문화에 관해  실증적·객관적 방법을 중시하는 실증사학(實證史學)을 추구하여 한국근대사학이 성립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고 평가된다는 말과 함께 소개되어진 그의 책들도 엄청났다. 1968년에는 정말 사건사고가 많았던 모양이다. 그 유명한 전태일이라는 이름과 김신조 청와대 피습사건이라는 말들이 1968년이라는 시대속에서 보인다.

역사적 진실속에서 잉태되어지는 끔찍한 예고살인의 형식은 호흡을 가다듬게 만들기도 한다. 먼 미래였을 지금의 시대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자손의 입을 빌어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어하는 조상들의 서글픔.. 일제 강점기를 다룬 이야기였기에 가능했을까? 엉켜있는 씨줄 날줄의 끝은 보이지 않을 것만 같았다. 반전의 매력이 최고조를 이루게 되는 마지막 부분은 그야말로 끝내준다. 처음부터 못내 마음에 들지 않았던 화자의 존재.. 우리의 역사를 파헤져가는 시선이 우리가 아니라 일본인이라는 점은 아이러니였다. 왜 우리가 아니라 일본인이어야만 했을까? 왜 우리는 그저 방관자로써만 존재하는가? 그렇지만 사실이 그랬을테니 어쩔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을 하며 쫓아가는 나의 마음은 내내 불안했다. 결국 그거였구나, 싶었던 대목을 앞에두고서 나는 부끄러웠다. 내 상상을 비웃기라도 하는 양 치고 달리는 저자의 상상력은 감탄스럽기까지 했다.

사건의 추이를 유추해가며 쫓아가다보면 어느새 숨을 헐떡이게 된다. 그리고 오싹하는 공포를 함께 느끼게 된다. 책 속에서 살아 숨쉬는 듯한 그 분위기가 나에게로 고스란히 전해져오는 까닭이다. 머리만 발견된 미이라의 움직임이라거나 머리잘린 시체를 표현하는 그 문장들이 이채롭다.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지는 고전과의 싸움.. <삼국유사>에, <삼국사기>에 저런 내용도 있었구나 싶어 안목을 넓히지 못하는 나를 탓해보기도 한다. 우리의 신화와 설화가 적절하게 잘 조화를 이루어내며 곳곳에 숨겨놓은 지뢰와 같은 복선들.. 몇 번씩 그 지뢰를 밟아 터뜨리며 내 몸이 망가질 때쯤 대한민국 사람이기에 느껴야 하는 부끄러움을 저자는 내 앞에 떡하니 남겨놓는다. 감정적인 것을 내세우기보다는 이성적인 사고와 관점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라고... 나치의 그 잔혹한 유대인 학살 현장속에서 <쉰들러 리스트>가 있었듯이 우리의 민족정신과 문화를 말살시키려 했던 일제 강점기속에서도 학자로써의 양심을 내세워 우리문화를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일단 읽기 시작하면 그 다음장에 대한 미련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부드러운 듯하면서도 강하게 흐르는 물살처럼 그렇게 빠져드는 나를 보게 된다. 무작위로 도굴되는 우리의 유적들. 전문지식도 없는 사람에 의해 도굴된 우리의 문화유산들은 총독부로 들어갔고 들어간 문화재는 다시 경주로 돌아오지 않았다. 일본은 우리의 문화만 말살시켰던 게 아니었다. 산맥의 혈을 막아 우리의 기를 꺾어야 한다고 쇠말뚝까지 박았다. 지금도 찾아내지 못한 쇠말뚝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가 없다고 한다는데... 일본인 겐지의 말이 떠오른다. -의식은 항상 현실에 있지않고 노래나 그림따위에만 담겨 있는 것 같아 서글프다-던 말... -정작 필요할 때는 현실에서 도망가버린다-던 말... 참으로 서글픈 말이 아닐수가 없다. 어쩌면 우리들은 사물의 본질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사물로 인해 얽힌 인간의 의지만이 가치 있다고 믿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던 그의 말은 작금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하는 울림이 담겨 있는 듯하다.

고전을 바탕으로 풀어가는 이야기라서 혹자는 따분하거나 재미없다고 말 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이 책속에서 찾아낸 메세지는 정말 많았다. 우리가 잊고 사는 우리의 역사에 대한 인식.. 우리가 잊고 사는 우리문화에 대한 인식.. 우리의 역사속에 지금의 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 정답이 들어있다던 어느 유명인사의 말이 떠오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너무 홀대하고 있다고... 현실속에 난무하는 문제에 대한  정답과 해답이 들어있다던  그 역사, 이제는 우리가 제대로 껴안아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그저 기록일뿐인 역사가 아니라 살아 숨쉬는 우리의 역사가 되어야하기에... 한 편의 소설이 주는 감동은 컸다. 멋진 작품이었다. 10년 이상 온라인 게임을 만들었다는 저자.. 러시아 여인의 몸매에 변형된 일본식 갑옷을 입은 정체불명의 북유럽 요정들이 우리 젊은이 문화의 현실임에 소심한 울분이 터졌다는 저자는 우리 이야기를 하며 놀아보고 싶었다고 했다. 우리의 것으로 이야기판을 벌이는 스토리텔러로 살고자 한다던 저자에게 진정으로 박수를 보내고 싶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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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인간인가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의 기록
프리모 레비 지음, 이현경 옮김 / 돌베개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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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의 기록... 이 책의 부제다. 아우슈비츠가 유대인을 집단으로 학살했던 수용소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400만 명의 목숨을 빼앗았던 비극의 현장이 바로 그곳이기도 하다.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그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생지옥을 만나게 된다는 곳. 유대인 학살을 이야기할 때마다 인용되어지는 굴뚝의 연기. 그 소각로나 카펫을 짜기 위해 머리카락을 모아두었다는, 그리고 고문실등 그야말로 광기의 역사를 전해주고 있는 곳이 지금은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는 것을 나는 지금에야 알게 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나치에게 희생된 사람들을 잊지 않기 위해서란다. 캄보디아의 킬링필드를 찾아가던 여행프로에서 그 때 당시 희생되었던 사람들의 두개골만 모아놓았던 위령탑이 떠오른다. 너무나 많아서 누가 누구인지를 가려낼 수 없어 그렇게 한곳에 모아 두었다고 하는데 그 탑의 이름이 영혼의 눈물이었다던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아마도 그랬던 것 같다. 숙연해지던 참배객들의 표정이 생각난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폴란드가 그 곳을 보존하기로 결정한 것은 정말 뜻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은 바로 그 현장에서 살아남았다는 사람의 기록이다. 뒷부분의 부록을 읽다보면 그가 겪었던 일들을 전해야 한다는 의식만으로 버텨냈다는 말이 있다. 이 얼마나 냉혹하고 잔인한 현실인지...

공동샤워실... 이곳이 바로 위장된 가스실이었고 그곳에서 약한 사람이나 노인들, 어린아이들이 죽어갔다.  나치의 인종법에 의해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희생양이었다. 금니를 뽑아 금괴로 만들었다거나 머리카락을 모아서 카펫을 짰다거나 하는 것들은 이 책속에서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열차에 올랐던 사람들. 그들은 이미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들의 배설물과 함께 먹고 자고 한다는 것이 사람이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단지 화학을 전공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는 수용소에서의 마지막을 남들보다 나은 생활속에서 지냈지만 그가 보고 겪었던 일들을 말이나 글로 전해듣는 우리가 얼만큼이나 공감할 수 있을런지... "몇 개?" "650개"... 나치는 그들을 그렇게 불렀다. 어떻게 분노하지 않고도 사람을 때릴 수 있을까? 묻고 있는 그 심정은 오죽할까 싶기도 했다. 싸구려 상품들처럼 무자비하게 포개진 채 무를 향한, 아래쪽을 향한, 바닥을 향한 여행을 했다던 저자의 말은 상상할 수조차 없을 것 같다.

여행중에 그리고 그 후에도 끝도없는 절망의 나락에서 우리를 건져낸 것은 바로 이런 불편함, 구타, 추위, 갈증이었다. 살려는 의지나 의식적인 체념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서로에게서 희망을 보았다. 아니 서로를 바라보며 희망을 가져야 한다고 마음을 다졌을 것이다. 시간이 한방울씩 흐른다! 우리는 아직 죽지 않았다! 그 더딘 시간들을 견뎌낼 수 있게 해 주었던 버팀목은 무엇이 되었든 정말이지 단단했고 끈질겼다. 누구의 탓도 아니라고.. 누구를 탓해서도 안되는 거라고.. 옆 침대의 젊은이가 가스실로 가야하는 운명에 처했다고 해도 자신이 선발되지 않은 것에 대해 신께 감사하는 노인을 원망해서도 안된다고...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내 이름은 174517.. 텅 빈 인간...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인간이기에 그렇게 잔인할 수도 있고, 인간이기에 그 잔인함을 견뎌낼 수 있었던 거라고.. 그래서 한번 더 생각해보면 이것이 인간이냐고 묻고 있는 주체는 가해자가 될 수도 있고 피해자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내가 인간임을 느끼게 하는 잔인하고 오래된 고통, 기억... 그 기억은 이미 오래전에 곁을 떠나가버린 지난 시절들이다. 뒤돌아보면 안타깝기만 한 그런 기억들이 그들을 버티게 해 주었던 것이 아니었다. 당하고 있는 모든 것들을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야 한다는 오직 한가지 신념으로 살아남았다는 그의 말은 정말이지 기가 막히다.  그런 기억들이 육체를 혹사시키고 배고픔에 주린 배를 쓸어내리고 곪아가는 상처의 아픔이 지독할수록 찾아오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혹독한 현실을 견뎌내야만 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런 기억은 오히려 사치였을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인간을 파괴하는 것은 창조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라고. 쉬운 일도, 간단한 일도 절대 아니지만 독일인, 당신들은 그 일에 성공했다고...

부록 1 - 독자들에게 답하다부록 2 - 프리모 레비 연보 를 읽으면서 쓸쓸하게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던 그를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내가 모르고 지나쳤던 그 커다란 사건의 배경이나 그일이 일어나게 되었던 것에 대한 이해를 돕기에는 충분했다. 이미 많은 시간이 흘러 지나가버린 기억들에 대해 묻는 이 시대의 사람들.. 그 사람들의 질문앞에서 당당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그 힘겨운 고통을 견뎌냈기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 열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얼마나 먹먹해지던지... 그에게는 그 열흘이라는 시간이 백년은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해서 살아남은 이들중에서 나중에 서로 만남을 가진 이도 있지만 아픈 기억을 떠올리고 싶지 않다며 만남을 원치 않았던 사람도 있다고 했다. 그럴 것이다. 아픈 기억은 잊고 싶어하는 것이 사람일테니... 영화 <쉰들러 리스트>나 <인생은 아름다워>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하는 제2차 세계대전이야기..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혹은 머물러 있는 시대에 따라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되는 것은 삶의 아이러니일까?  '이것이 인간인가' 라고 묻는 저자의 아픔속에서도 '인간'임을 인정했던 사람들도 있었음을 떠올린다. 그래서 아직은 우리에게 조금의 따스함이 남아있을 수 있는거라고...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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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한국의 명품문화
하중호 지음 / 삼양미디어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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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 과연 무엇을 우리문화라고 하는 것일까? 단순히 옛 것만을 우리문화라고 부르는 것은 아닐게다. 보통은 예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던 것들이 우리문화라는 이름으로 다가온다. 솔직하게 말해 나는 우리문화라고 일컬어지는 옛전통에 대해 잘 모른다. 잘 모르면서도 주변에서 마주쳐야 하는 형식들에 대한 반감이 상당히 큰 편이기도 하다. 우리문화라고 하면 왜 유교문화라는 말부터 생각이 나는지..... 우리것을 알고 싶다는 욕심을 내세워 우리문화 따라잡기에 한발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 중이다. 일상적으로 그냥 유물이나 유적이라고 치부되는 것들이 안고 있는 속뜻이 궁금하기도 했지만 내가 과연 얼만큼이나 알고 있는지, 제대로 알고나 있는 것인지 그것을 배우고 싶었던 까닭이다. 그냥 무심히 스쳐지났던 하나의 석등속에서 살아숨쉬는 옛숨결을 알아챘을 때의 놀라움이라는 것은 정말 대단했었다. 내가 몰랐던 것들,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으나 너무나도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을 때 하나를 배워도 제대로 배웠으면 했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명품문화라는 말에 솔깃해졌던 것은..

삼양미디어의 <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시리즈를 여러편 보았지만 느낌은 괜찮았다. 가끔씩은 방대한 양을 너무 간편하게 요약하는 건 아닐까 싶어 안타까울때도 있었지만 어쨌거나 한 권의 책으로 만나는 여러 분야의 이야기는 충분히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 책속에서 만날 수 있는 것들은 그다지 색다른 느낌을 전해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살면서 쉽게 마주치기도 했고 주변을 통해 보고 듣는 것들이 많은 까닭이다. 그렇다고해서 가볍게 넘겨버리기에는 뭔가 부족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명품문화로써의 우리것을 해석하는 저자 나름대로의 시선이 새로운 까닭이다. 예절바른 옷차림이라는 것이 우리의 한복에서 이제는 양복으로 바뀌어버린 지금에도 저자는 각기 나름대로의 문화적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남의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결코 틀렸다거나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않고 그 안에서 살아숨쉴 수 있는 우리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에는 백프로 공감한다. 

인성을 키워주는 한국의 명품예절부터 품격을 높이는 인사라거나 이제는 많이 잊혀져가고 있는 한국의 세시풍속에 얽힌 깊은 의미들을 하나하나 짚어주고 있다. 효를 중요시했던 우리민족이었기에 감히 물리칠 수 없는 제사문화, 그리고 우리가 고쳐야 할 의식이나 문화들은 어떤 것이 있는가 세세하게 잘 보여주고 있다. 남녀가 사랑을 해서 함께 살기 위해 하는 예식을 말할 때 결혼이 맞을까 혼인이 맞는 말일까?  결혼結婚은 맺을 결結, 장가들 혼으로 신랑이 장가드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는 걸 아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싶다. 그렇다면 혼인婚姻이라는 말은 무엇일까? 장가들 혼, 시집갈 인으로 신랑신부가 장가들고 시집간다는 뜻이니 결혼이 아니라 혼인이 당연히 맞는 말일게다. 그런데 한자사전에서는 혼인할 혼이라거나 혼인 인으로 나온다. 옛 뜻의 와전일까? 아니면 현대생활에 맞게 바뀌어버린 것일까? 그것이 궁금하다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이어지는 혼인에 대한 설명이 재미있다. 혼인을 혼례라 하였던 뜻을 보면서 시간에 쫓기는 우리의 예식문화를 다시한번 생각하게 된다. 저녁에 장가들어 그날을 충분히 쉴 수 있게 해 주었다던 우리 선조들의 따스한 마음이 놀라울 뿐이다.

잘못된 호칭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익숙해졌기 때문일까? 지금 사람들은  "자기야~"라는 호칭을 많이 쓴다. 나 역시도 "ㅇㅇ아빠"라는 호칭과  "자기야~"라는 호칭을 함께 얼버무려 쓴다. 그런데 이 책속의 호칭문화를 읽다보면 한쪽 구석으로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보배처럼 여기고 내 몸과 같이 여긴다는 의미가 들어있는 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여보"와 "당신"이라는 호칭이 그다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 같다. 그처럼 서로가 서로를 불러주는 말 한마디에도 좋은 뜻이 담겨져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런 걸 생각하면 우리 스스가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살아가고 있는건 아닌지 다시한번 되돌아보게 된다. 스스로를 소중하게 여길 때, 그리고 상대방을 소중하게 여길 때 '우리'가 소중해지지 않을까 싶어 하는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마치 <삼국유사>를 읽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했다. 우리의 세시풍속이나 제사문화에 얽힌 이야기들이 그렇다는 말이다. 단순히 아름다운 사랑만을 생각하게 만들었던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옛이야기속에서 찾아낸 효는 참으로 지극했다. 얼마전 극작가 신봉승님의 강연회에 다녀왔었다. TV로 만날 수 있었던 <조선왕조오백년>의 극작가이기도 하다. 제대로 된 글을 쓰기 위해 방대한 <조선왕조실록> 을 다 읽어보셨다고 하니 정말 대단하다. 519년 동안의 조선사를 하나하나 기록했다던 <조선왕조실록>.. 복잡하게 얽혀드는 현대사를 풀어나가기 위한 정답이 우리의 옛것속에 들어있다는 말씀에 공감할 수 있었다. 우리의 역사를 바로 알아야만 지금의 난세를 극복할 수 있는데도 우리는 역사를, 오래된 우리의 모습을 도외시하고 있다고... 이 책속의 글들처럼 아주 작은 것들부터 우리가 받아들이며 살아갈 수 있다면 좀 더 나아지는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저자의 말처럼 '한국분'으로 불리워질 것인지 '한국놈'으로 불리워질 것인가는 우리의 책임이다. 우리 것은 우리가 지켜야 한다는 말씀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을 것 같다. 아울러 쉽게 생각했던 우리문화에 대해 좀더 깊은 마음으로 다가서야 하리라는 다짐을 해 본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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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 폰더씨 시리즈 4
앤디 앤드루스 지음, 이종인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앤디 앤드루스라는 작가의 작품은 이 책부터 시작했어야 했을까?  작품의 성격이 '자기계발서' 인지라 어떤 것부터 읽어도 상관은 없겠지만 왠지 그러고 싶었었다. <선택>이나 <오렌지 비치>와 같이 이 책 역시 작가가 무엇을 말해주고자 함인지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다. 자기계발서... 그다지 유혹을 느끼지 못하는 부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최근에 읽었던 <오렌지 비치>는  생각보다 부드러웠다는 느낌이 남아 있다. 어린 시절부터 꼭 읽어야만 하는 것처럼 우리를 압박하는 것이 위인전이 아닐까 싶다. 그 위인전을 읽으면서 꿈을 키우고 어려움을 이겨내고 마침내는 성공하는 모습을 닮으라는 의미겠지만 사실 어린 시절에 읽는 위인전이 그다지 큰 감동을 전해주지 못한다는 것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뭐,다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부모의 욕심이 너무 지나쳐 요즘말로 아이를 잡는 결과가 나오게 된다면 그것은 모두에게 힘겨운 일이 분명할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내가 어린시절에 읽었던 위인전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된다. 아무래도 문화적인 차이때문일테지만 세계의 위인들보다는 한국의 위인들이 더 깊이 각인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가장 많이 회자되어지는 위인은 누굴까? 말할 필요없이 에디슨일 것이다. 달걀을 품어 병아리를 만들어보겠다고 했다던 그 이야기를 모르는 아이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엄청나게 이슈되고 있는 창의력이라는 것을 그런것에 빗대곤 하지만, 그리하여 엉뚱하고 호기심 많은 아이들을 제지하지 말라고 하지만 과연 그런 것들이 창의력일까 한번 생각해보게도 된다.  위인을 되기 위한, 혹은 성공하기 위한 일련의 법칙처럼 등장하는 자기계발서들의 목록은 거의가 비슷하다.  이 책속의 부제목에서처럼 말이다.

결단을 내려야 했던 트루먼이나 멋진 지혜를 보여주었던 솔로몬의 선택이라거나 콜럼버스나 체임벌린처럼 행동하지 않는자는 자신의 운명을 개척할 수 없다는 법칙등 우리가 만나서 배워야 할 점이 있다고 생각되어지는 사람들은 꽤나 많다. 오늘을 행복한 사람으로 살겠다고 선택했던 어린 소녀 안네 프랑크, 매일 용서하는 마음으로 살겠다던 링컨, 하지만 내게 색다른 느낌을 전해주었던 것은 가브리엘이라는 대천사였다. 사람들이 마음먹고 계획을 세웠으나 혹은 아주 조금만 더 앞으로 나아갔더라면 분명히 성공했을 그런 일들을 관리하는 가브리엘... 우리가 살면서 마음 먹었던 것, 계획을 세웠던 것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그리고 시작은 했으나 마무리 짓지 못한 일들은 또 얼마나 많았을지? 생각해보면 참 많다. 아쉬움일게다. 버려졌으나 차마 떠나지 못한 채 마음 한쪽 귀퉁이에 남아  웅크린 많은 꿈들을 그 대천사 가브리엘이 못내 아쉬워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믿음을 가지라고.. 끝까지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평생직장이 될 것이라고 믿어왔던 곳에서 쫓겨나 실직이라는 고통을 안게 된 폰더씨.. 그는 절망했다. 왜 나여야 하느냐고, 하필이면 왜 내가 그래야 하는거냐고 절규했다. 하지만 이 책은 되묻고 있다. 왜 너이면 안되는거냐고.. 왜 네가 그러면 안되는거냐고.. 누구나 한번씩은 외쳐보았을 그 절규속에서 놓치고 있는 것은 자신을 향한 믿음이었다. 그리고 그 선택은 늘 자신의 몫이었다는 걸 우리는 잊고 있는거라고.. 벌써 십년도 넘은 일이지만 바닥이라고 생각했었던 때가 있었다. 그러니 이제는 차고 올라가기만 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던 적이 있었다. 폰더씨처럼.. 하지만 나는 지금도 물 밑 작업중인 듯 하다. 아직은 아닌 모양이다. 그래서 이런 책에 대해 솔직하게 말해서 거부감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자기변명에 빠져서 산다. 영원히 헤어날 수 없는 선택의 늪에서 언제나 허우적거리고 있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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