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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의 돌
문영심 지음 / 가즈토이(God'sToy)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한때 문학을 꿈꾸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왠만한 사람이라면, 책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아주 잠깐동안이라 할지라도 문학을, 아니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꿈을 가져보았으리라 여겨진다. 가끔씩 읽은 시 한구절이나 문장 한구절을 읽으면서, 혹은 기대에 못미친듯한 느낌을 받는 경우였다해도 나도 이쯤은... 하는 생각, 한번쯤은 가져보지 않았을까 싶다. 나 역시도 그랬다. 학창시절 내내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하여 나도 이렇게 멋진 글 한번 써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 많았다. 정말... 많았다... 등단이라는 말이 주는 의미가 내게는 정말 황홀한 것이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누구나 한번쯤은 가져보는 문학에의 꿈.. 하지만 성공하는 길은 멀기만 하다. 매년 무슨무슨 문예 당선작이라고 발표될 때마다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았지만 역시 그들의 힘겨운 시간속에서 잉태되었던 작품이었다는 거다. 그 한편의 당선작을 품에 안기 위하여 그들은 정말이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인내를 감당해야만 했을까?
"우리는 우리가 문학을 선택했다기보다는 문학이 우리를 선택했다고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책을 읽으면서 스쳐지나던 이 한구절의 문장은 왠지 좀 씁쓸한 뉘앙스를 풍겼다. 흔히 하는 말중에서 돈이 사람을 따라야지, 사람이 돈을 따라다니면 백날을 버둥거려도 부자가 못된다, 는 말이 떠올랐다. 결국 그것이었는가? 누군가에게 사랑과 관심을 받기 위해서는 그를 위하여 끝도 없이 노력해야만 하는 것이라는 말이었을 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씁쓸했다. 왜 그랬는지는 알 수 없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돌'이라는 상징성을 부여한 채 그녀에게 다가왔던 위안의 순간이 어쩌면 그녀에게는 다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이 되어주었을거라는 생각을 한다.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자신을 채찍질하고 싶을 때마다 다시한번 움켜쥐게 되는 부적같은 그런 것... 무언가에 대한 막연한 믿음, 그런 것...
문학의 거장이라고 일컬어지는 '도스토예프스키'라는 이름을 들이대면서 내게 다가왔던 이 소설은 사실 그다지 기대했던 작품은 아니었다. 하지만 글을 읽어가면서 속도감이 따라붙었다. 그리고 내내 그 속도를 따라가기가 벅찼다. 자전적인 냄새를 폴폴 풍기면서도 보통 사람이라면 숨기고 싶어할 것 같은 저 깊은 속내까지 드러내기를 꺼려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 아픈 속내를 스스로 감싸안아줄 줄 아는 아량마져도 보여주고 있었던 거다. 책속에서 잠시 언급되었던 말처럼 문제아로 남기보다는 문제적 인간이 되기를 바랬던 것이 바로 그녀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가볍게 시작했으나 무겁게 들고 읽어야 했던 책이기도 했다. 그만큼 누군가의 속살과 마주할 때 느껴지는 중압감은 대단하다. 함부로 할 수 없는 그런 것들이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었다는 말이다. 그것이 단지 '소설'이기만 했다 하여도 누구나에게 있을 법한, 아니 한번쯤은 있었음직한 그런 일들에 깊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어 좋았다.
그녀 곁에 머물러 주었던 친구들의 모습은 제각각의 모습으로 표현되어지던 그녀 자신은 아니었을까? 그랬기에 행복하기도 했고, 불행하기도 했을 것이다. 아마도... 이 책을 접으면서 많은 생각이 머리속을 채운다.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해서 즐거운 일을 찾으라는 말도 떠오른다. 신은 모두에게 완벽하게 주지 않는다, 하나를 주면 또다른 하나를 가져가 버리고 만다. 그만큼의 격정이 필요하고 또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리라 한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꿈꾸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을 것이다. 해서 즐거운 일을 하면서 또한 하고 싶은 일에 대한 꿈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 또한 행복하지 않을까? 한사람의 세월, 꿈을 버리지 못한 그 오랜 시간을 반추해보았던 시간이기도 했다. 굳이 문학을 꿈꾸는 이들에게 바친다,라고 말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그런 역할을 해 낼 것이라는 믿음이 생기는 것은 왜일까?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