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땅 생물 콘서트 - 사진으로 보는 생태다큐멘터리
한영식 지음 / 동아시아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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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율스님이었던가?  그 분때문에 유명해진 천성산 도룡뇽의 안부를 묻는다. 답은 안녕하시다, 였다. 산을 관통하는 터널때문에 우리의 자연이 훼손된다고 목소리를 높였었다. 우여곡절 끝에 터널은 완성되었고 그 후 언론지상에서는 더 많아진 개체수가 어쩌고 저쩌고, 반은 비난성의 글을 올린걸 본 적 있다. 하지만 우리는 거기서 중요한 걸 놓치고 말았다. 단지 천성산 도룡뇽만을 살리기 위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는 말이다. 오죽했으면, 이 나라의 안하무인 격인 개발이 오죽했으면 그런 결단을 내려야 했는가를 다시한번 생각해야만 한다. 길을 잘못들어 우연히 들어가게 되었던 천성산 터널은 정말 길었다. 그 긴 터널 공사로 인한 자연의 스트레스는 엄청났을 것이다. 얼마전 지켜보는 사람들의 귀를 의심하게 했던 단 한마디를 떠올린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노력한 사람들의 수고에 대해 우리는 아낌없이 박수를 쳐 주었었다. 하지만 그 뒤로 들려오던 슬픈 소식에는 그만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 말았다. 바로 가리왕산의 원시림을 훼손시킨다는... 세계의 허파가 아마존이라면 우리의 허파는 바로 그곳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옛선조들조차도 지켜내기 위해 애를 썼던 그곳을 단한번의 반짝 효과를 얻기 위해 파괴한다는 것은 뭔가 잘못되도 한참 잘못된 일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저 너 알아서 하라는 식이니 분통 터질 일이다. 일부 환경가들의 목소리만으로는 힘겨운 싸움이 될 것이다.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숲의 소중함을 생각하지 않는 우리나라의 미래가 까마득하다. 개발에 앞서 환경오염이나 생태보존을 먼저 생각해야 함에도 숲의 중요성은 전혀 인정하려 들지를 않는다. 아니 어쩌면 알면서도 모른척 외면하고 있는건지도 모른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이미 전세계적으로 숲의 중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환경오염이나 생태파괴가 이젠 한계에 도달했다는 말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다시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상황은 이 책이 보여주는 생물들이 만들어 준다. 어쩌면 이 지구의 주인은 인간보다도 저 많은 생물이 함께 공존하는 자연일 것이다. 책의 제목에서 보여주듯이 이 책을 통해 소개되어지는 생물은 우리땅에서 살아가고 있거나, 살았던 것들이다. 생물다양성이 부의 척도가 될 수 있다는 21세기.. 선진국에서는 이미 멸종위기의 생물을 복원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복원한다고 모두 성공할까? 그것보다는 그들이 살수있는 환경을 보전해주는 것이 더 중요한 과제가 아닐까 싶은데..... 지금 살고 있는 생물들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보호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최우선이라는 말이다. 이 책에서처럼 굳이 생물들이 우리에게 주는 고마운 현상을 들춰내지 않더라도 우리의 삶속에서 자연환경으로 인해 얻어질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이미 알고 있을테다.  생물의 종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은 그들이 머물 수 있는 환경이 파괴되었다는 말과 같다. 숲과 나무는, 그들이 살 수 있는 깨끗한 물은 그들만의 것이 아니다.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 사실을 정확하게 인식해야만 한다.

자연은 스스로 치유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하지만 인간으로 인해 받은 상처를 치유하기까지는 너무나도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 인간이 한번 길을 내면 그곳에서는 아무것도 살 수 없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말이다. 오로지 인간만을 위한 환경조성이 불러온 끔찍한 일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나 어릴 적의 쥐잡기 운동과 같은 인간 위주의 행정이 불러온 폐해는 엄청났다. 농약이나 제초제로 인해 멸종위기에 놓인 생물들도 많아졌고 예전에는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없는 개체도 많다. 만약 평창 동계올림픽만을 위해 가리왕산의 원시림을 훼손시킨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것을 잃게 될 것이다.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은 다른데로 옮기면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건 순전히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내뱉은 무책임한 말이다. 원시림이 있었기에 그곳에서 생물들이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걸 그들도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원시림을 훼손시키면서 옮겨진 생물들이 잘 살아갈 것이라고 말하니 속내를 감춘 위선자들이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는다. 오직 인간만을 위해서 이 지구가 존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저들이 살아남을 수 없으면 인간도 더 이상은 살아갈 수 없다는 걸 명심해야만 한다.

2000년 7월 금개구리 서식지 보호를 위해 올림픽주경기장을 다른 곳에 짓기로 결정했다는 호주.. 우리나라 같으면 어림없는 일이다. 금개구리는 아닐지라도 나 어릴적에는 자주 보았던 청개구리나 참개구리, 땅강아지같은 생물들을 이제는 볼 수가 없다. 인공 수족관에나 가야 볼 수 있는 희귀생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식물도 마찬가지다. 봄이면 나물 뜯는다고 사람들은 산으로 들로 쏘다니고, 가을이면 도토리나 밤을 줍는다고 또한번 들쑤신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잘못된 언론의 비중이 크다. 좋다는 말만 하기에 바쁘다. 거기에 가면 그렇게 좋은 것이 있으니 어서가서 당신도 한몫 챙기라는 말처럼 들린다.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그래놓고는 아주 가끔씩 다큐나 스페셜이라는 포장을 씌워 희귀생물에 대한 방송을 내보낸다. 하지만 거기에서도 그들이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들에 관해서는 다루지 않는다. 우리나라 매스컴의 가벼움은 정말 심각하다는 게 나만의 생각일까? 속은 없고 껍데기뿐인 존재들이 너무 많다.

미국으로 건너간 우리나라의 칡도 마찬가지로 문제를 일으켰다는데, 우리의 생태계를 파괴하는 외래종의 침입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이 외래종만을 탓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욕심으로 인해 생겨난 일인데도. 일전에 읽었던 《풀들의 전략》에서 자신의 고향을 떠난 외래종이 왜 그토록이나 강해질 수 밖에 없는가를 알게 되었다. 인간도 낯선곳에 가면 적응하기 위해 더 강해지는 모습을 보이는데 하물며 식물이라고 다르겠는가 말이다. 식물뿐만이 아니다. 애완용으로 들여왔다는 붉은귀거북, 식용과 해부용으로 들여왔다는 황소개구리,육용과 모피용으로 브라질에서 들여왔다는 뉴트리아, 블루길과 배스, 사향쥐.... 그런데 모든 게 인간의 욕심으로 일어난 일들임을 인정하지 않을수가 없다. 이익을 위해 들여온 것들이 생각처럼 이익을 내지 못한다고 아무 생각없이 방사했던 결과가 생태계 파괴라는 부메랑으로 되돌아 온 것이다. 숲과 하천만의 위기가 아니다. 갯벌 역시 빠르게 오염되어가고 있음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간척사업, 기름유출, 강으로부터 흘러들어오는 오염물질로 인한 심각함은 날로 심해져만 간다.

책을 읽다보니 잘못 알고 있던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하루밖에 살지 못한다는 하루살이가 물속에서 1~2년을 산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우리가 볼 수 있는 모습은 단지 종족보존을 위한 그들의 춤사위였을 뿐이라는 걸.. 또한 모기유충이 물속에 유입되는 유기물질을 분해하여 수질을 깨끗하게 정화한다는 사실도 이 책을 통해 알았다. 꽃매미와 같은 해충 역시 특정식물을 대단위로 심는 인간의 어리석음 때문이라는 것도 알았다. 소나무재선충이 외래유충이라는 건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다. 천적이 없어 고민중이었는데 우리나라 무당거미와 같은 토종 천적들이 꽃매미를 잡아먹는다는 고마운 소식도 들려주었다. 인간에게는 좋다는 피톤치드가 다른 동식물에게는 피해를 끼친다는 걸 알고 있는지? 그렇듯 자연은 제 스스로 부조화를 조화롭게 맞춰가는 능력이 있다. 천이현상(-자연 스스로 균형을 맞추는-)으로 인해 찾아오는 변화라면 썩 좋은 일이겠지만 불행하게도 인간에 의한 인공조림정책이 또하나의 문제를 낳고 있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저자의 말처럼 생물을 배려하는 넉넉한 마음자세가 필요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자연의 법칙을 무시한 채 개발만을 능사로 친다면 자연이 우리에게 줄 것은 딱 한가지 뿐이니 명심, 또 명심해야 할 일이다.

골프장이나 스키장, 신도시 개발이나 도시정비와 같은 인간만을 위한 일에서 한발 물러서야 한다. 두더지나 땅강아지같은 토양생물이 사라져 낙엽조차도 썩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그들이 낙엽을 흙으로 분해하는 역할을 담당했던 까닭이다. 생물다양성의 파괴가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친 것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지렁이처럼 흙을 숨쉬게 만들어주는 토양생물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가 좀 더 양보를 해야만 한다. 멧돼지가 출몰하고 고라니가 내려와 농작물에 피해를 입히는 것도 인간의 욕심이 원인이었다. 새들이 전봇대에 둥지를 틀어 정전사고를 일으키게 된 원인도 인간에게 있다. 올레길 둘레길이 아무리 좋다한들 자연스럽게 생겨난 산길만 할까? 비록 다듬어지지 않아 울퉁불퉁하다 해도 사람에게도 생물에게도 모두 좋다는 흙길만은 못할 것이다. 산을 오를 때마다 새로 생겨나는 샛길을 보게 된다. 그걸 보면서 사람이 사람과 마주치는 게 싫다는 이기심때문에 그런거라고 나는 말하곤 했지만 서글픈 일이다. 지구 최대의 적이라는 인간.. 그 인간이 이제는 너무 많아져서 서로를 보면서  으르렁거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오로지 나 하나만의 편리를 위하는 욕심을 버리지 않는다면 인류의 멸망은 이미 정해진 수순에 불과하지 않을까 싶다. /아이비생각 

도대체 꿀벌은 왜 사라진걸까? 인간이 자꾸 지구 생태계를 인위적으로 조작해서일까? 아니면 생태계의 주인이라며 간섭을 해서일까? 앞으로 꿀벌뿐 아니라 또 어떤 생물 종이 우리 곁을 갑자기 떠날지 모른다. 인간이 계속 이기주의적인 태도로 생태계를 대하면 점점 더 많은 생물종이 사라질 건 분명하다. 우리가 쏜 화살은 언제든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모든 건 지구의 운영자 인간이 자연환경을 무시한 채 편의만 축구한 결과다. (-157쪽)

꿀벌 실종은 생태계에 위험이 닥쳤다는 경고의 신호탄이다. 다음에는 어떤 해일이 덮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자연에 아주 심각한 병이 발생했지만 인간들은 그저 지켜보고만 있다. 인간도 생태계의 일원이라는 걸 망각한 채 말이다, (-160쪽)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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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고함 - KBS 국권 침탈 100년 특별기획
KBS 국권 침탈 100년 특별기획 '한국과 일본' 제작팀 지음 / 시루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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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을 잘 만나는 것도 복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윗층 이웃은 말도없이 내 것을 제 것이라 우겨대고, 아래층 이웃은 대놓고 내 것을 제 것이라 말하며 심심하면 뗑깡부리기가 일쑤다. 그것도 모자라 한지붕 밑에 사는 형제조차도 잡아먹지 못해 볼 때마다 으르렁거린다. 그런데 문제는 제 것을 두고 여기저기서 내 것이다, 내놔라 생떼를 쓰는데도 정작 주인은 한마디 말도 못하고 맨날 얻어맞기만 하니 그거 속터질 일이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웃들의 횡포가 이해되기도 한다. 제것이면서도 제것이라 주장하지 못하는 바보를 그냥 두는게 더 이상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제것이면서도 제것이라 큰소리치지 못하는 건 제대로 관리를 하지 않는 까닭이기도 하다. 그꼴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한숨만 나온다. 누구 얘기냐? 두말할 필요도 없이 대한민국의 얘기다. 한국과 중국, 일본이 얽히고 설켜 칡넝쿨처럼 꼬여가는 상황이라는 말이다. 칡넝쿨은 지역이 없다. 그저 힘센놈이 먼저 더 많은 넝쿨을 뻗어가는 게 상책이다. 무지해서가 아니라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게 더 문제다. 제 주머니 채울 수 없는 일이라서, 건드려봐야 시끄러워질 것 같으니까, 저마다 큰 짐 떠맡게 되는 건 아닌가하고 몸 사린다. 그러니 알아도 모른 척 강건너 불구경이다. 다만 가끔씩 이런 말들이 어디선가 들려와 잊을뻔 한 일, 잊혀져가는 일들에 대해 경각심을 일깨워주니 내심 고마울 뿐이다.

이 다큐프로그램을 통해 새롭게 안 사실도 많았지만 나에게는 오랜 숙적이자 오랜 벗일 수 밖에 없는 한일관계의 소통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정말 흥미로웠던 시간이었다. 그 당시 미처 챙겨보지 못했던 부분들은 이 책을 통해 채울 수 있어 너무 좋았다. 아이가 울때면 어른들은 그 무서웠던 역사를 되새기곤 했을 것이다. 무심코 뱉어내던 '에비'라는 말이나 '무쿠리고쿠리' 인형을 통해 서로의 아픔을 보게 된다. '에비'는 왜놈들이 전리품으로 죽은 사람의 코와 귀를 베어갔다는 것에서부터 비롯되었다. '무쿠리고쿠리'는 일본을 향한 여몽연합군의 무자비한 침략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세계사를 돌아볼 때 아시아가 세계를 정복하겠다고 나섰던 것은 칭기즈칸때였다. 서구와는 달리 동양의 침략자는 지나쳐가는 곳마다 불사르고 모든 사람을 죽이는 그야말로 싹들이 전략이었다. 그러니 얼마나 처참했을지는 영화의 한장면처럼 보여지는 일이다. 오래도록 기억되어지는 아픔은 그만큼 처절했고 끔찍했다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그 아픔이 긴시간이 흘러버린 지금에 와서까지 똑같은 강도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어쩌면 그래서 역사 바로 알기가 더 중요해지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몇 번을 들어도 가장 가슴 아픈 순간은 역시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는 조선과 일본의 태도였다. 서양의 증기선을 흑선이라 하면서도 그들의 기술을 배우고자 했던 일본과 달리 이양선이라 부르며 파괴하고 불살랐다는 조선의 상반된 모습은 볼 때마다 안타깝기 그지없다. 오죽했으면 정약용마져 혀를 찼을까? 책에서는 성리학에 도취된 우리의 선비들 중 분연히 일어섰던 의병장을 두고 성리학을 기초로 한 忠의 사상때문이었다고 좋게 말하고 있지만 솔직히 그건 아닌 듯 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실용학파가 득세를 했어야 했다.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고 과정이 있기에 결과가 만들어진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수순으로 두 나라의 역사를 되짚어준다. 크게 다섯개의 주제로 이야기가 펼쳐지는 데 인연, 적대, 공존, 변화, 대결의 구도이다. 인연(因緣)에서는 떼려야 땔 수 없는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말해준다. 백제가 멸망한 후에도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던 그 인연의 고리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적대(敵對)편에서 비극적 한일 관계 2000년 역사의 시작을 알린다. 바로 여기서  여몽연합군으로 인한 그 아픈 기억의 실마리가 풀리는 것이다. 공존(共存)에서 보여주고 있는 공생의 법칙은 그다지 오래가지 못했다. 평화가 또다른 평화를 불러왔다면 더없이 좋았을테지만 사람은 욕망을 쫓아 달려가는 동물이다보니 그럴수가 없는 것이다. 변화(變化), 조선과 일본의 근대화다. 그야말로 놀라 자빠질만큼의 위력을 보여주었던 조총에서부터 변화는 시작되었다. 이양선을 통해 뚜렷하게 선을 갈라버린 조선과 일본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이때 만약 우리도 조금은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대했다면... 대결(對決), 받아들이고 내몰고의 차이가 빚어낸 결과만 보다라도 그 때의 실수가 얼마나 큰 손실을 가져왔는가는 말 할수록 입만 아프다. 

하지만 그것으로 모든 게 끝난 건 아니다. 책표지의 말을 빌어 이야기하자면 이렇다. 역사는 기억할 필요가 있는 것들과 없는 것들의 싸움이다. 이 책에서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지만 일본에서는 기억하지 않으려는 것들을 다루고 있다. 기억이 역사를 구성하지만 때로는 역사가 기억을 지배하고, 그 역사가 현실을 지배할 수도 있기에... 그랬기에 책속에서 증언하고 있는 일본의 목소리가 새삼스럽다. 중국과 일본의 한반도 침공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떤 대책을 세우고 있는가를 묻고 싶어지는 것이다. 역사속에 답이 있다는 말을 다시한번 되새긴다. 모르는 내가 들여다보아도 모든 것은 반복되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시는 그런 아픈 역사가 반복되어지지 않도록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과거의 일들을 확실하게 기억하는 일은 중요할 것이다. 역 사 바 로 알 기, 정말 필요하다!!! 신숙주가 죽으면서까지 유언으로 남겼다는 말을 생각해본다. "원컨대 국가에서 일본과 화친을 끊지 마소서".. 그 큰 뜻이야 내 어찌 이해할 수 있겠는가만 이웃으로 지낼 수 밖에 없는 현실만큼은 확실하다. 앞으로의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이렇게 울림을 주는 목소리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아이비생각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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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자 : 난세를 이기는 지혜를 말하다 - 완역결정판
열자 지음 / 연암서가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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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어구이고 전국시대 사람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그 실재성은 의심스럽다. 도가 일파가 그들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만들어낸 가공의 인물일 수도 있다. - 열자를 찾아보니 이렇게 나와 있다. 그런데 열자를 말하기 전에 노자를 먼저 알아야하지 않을까 싶다. 노자사상이 열자와 장자에게 계승되었다고 하니 하는 말이다. 노자와 장자에 의해 만들어진 노장사상은 한고조가 정치이념으로 삼기도 했다. 한나라 초기에 성행하였다는 황로사상이 바로 황제와 노자를 신봉한다는 것이니 일단은 노자부터 알아야 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유교 불교와 더불어 동양의 3대 사상이라 일컫는 노장사상은 위적인 것들을 배제하고 자연법칙에 따라 행동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야말로 모든 것을 자연의 흐름에 맡기는 것이다. 중국의 사상가는 꽤나 많아서 이름을 말해도 누가 누군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 도교에 영향을 미친 도가사상의 시조라고 하면 어느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듯 하다. 일전에 읽었던 <공자 인생강의>라는 책에서 공자에게 禮를 가르쳤다고 나와 있는 인물이 바로 노자였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노자나 열자를 검색해 보면 실존인물이다 아니다를 두고 공론이 오갔다는 말을 보게 된다. 열자 역시 그렇다. 형식적인 의례에 치우친 유가사상에 대적하기 위해 만들어낸 인물이라는 말도 있다. 하지만 노자의 도가사상은 우리나라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으니 사직단을 세우고 제사를 지내는 것도, 신라의 화랑도 정신을 지배했던 것도 도교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신선처럼 살고자 했던 선비들의 정신적인 지주가 되기도 했다. 물론 중국의 도교와 우리나라의 도교가 아주 똑같지는 않을 것이나 지금까지도 남아있는 도교의 흔적은 많은 듯 하다. 

자연의 흐름에 따라 모든 것을 맡긴다는 것이 지금 세상과는 맞지않는 말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인위적인 것과 작위적인 것들이 넘쳐나는 세상속에서 어찌 생각해보면 그것이 인간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화형식이지만 그다지 재미있게 읽혀지지는 않는다. 우화라고하여 어른을 위한 생각동화가 아닐까 생각했다면 다분히 따분할 것이다. 도가 3서중의 한 권이라는 말에 선택했지만 역시 내공이 부족했음을 인정한다. 뭐 그렇다고 골치가 딱딱 아프게 어려운 말로 풀이를 하는 것은 아니기에 천천히 읽으면서 조금씩 다가선다면 괜찮은 느낌이 전해지기도 한다. 지금까지 짧은 일화나 고사성어로 마주쳤던 우화가 자주 보였던 까닭이기도 하다. 가장 쉬운 예로 우공이 산을 옮기는 이야기나 관포지교라는 말을 생겨나게 한 관중과 포숙의 이야기가 있다. 목차를 보면 크게는 8편의 주제로 나뉘어져 있지만 각편마다 작은 제목이 따라 나와 이야기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음을 볼 수가 있다. 유교에 대적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말을 어느정도는 공감할 수 있는 대목도 보인다. 오래된 말이지만 지금 세상에서도 되새겨볼 만한 말은 많았다. 바쁘다는 핑게로 우리가 잊고 살아가는 것도 많았고,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처세술로 삼아도 괜찮은 말이 많았다. 마치 선문답을 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하여, 각 편마다 나름대로 정리를 해 보았다.


제1편 하늘의 상서로운 조짐 - 사람이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道를 보여주고 있다. 세상 만물이 생겨나고 없어지는 모든 일이 끝없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결국엔는 無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죽음은 사람들이 쉴 곳이며, 길을 가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다는 말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물질적인 욕망때문에 괴로움이 오니 집착하지 말고 내려놓으라는 말은 불교의 교리와 어느정도는 일맥상통하는 듯 보여지기도 한다.

제2편 황제의 깨달음 - 지극한 마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天性이 무엇일까?  타고난 바탕대로 시작한 것이 습성으로 발전하고 천성이 되어 버렸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냐고 공자가 물었는데 해설을 보면 자기를 없애고 완전히 자연에 융화됨을 말하는 것이라도 되어있다.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대하고 사람을 대하는 가에 따라 상대의 반응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자연스럽지 못한 것이 껄끄럽다는 말이다. 겉모양만 보고 상대를 평가하지 않고 그 속을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은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사무치는 말이 아닐까 싶다.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만드는 방법은 선한 마음으로 남을 대하는 것임을 잊지 말라고 한다.

제3편 주나라 목왕의 세상 유람 - 깨어 있을 때와 꿈꿀 때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쉽게 말하면 이상과 현실의 경계쯤일까? 어느 쪽이 참되고 어느 쪽이 허망하다고는 말할 수 없으나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다. 꿈에서는 즐거웠으나 그 꿈을 깨고나서 괴롭다는 것도 매양 한가지라는 말이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허망한 것인지 진실된 것인지를 묻고 있다. 다시말해 외부의 자극에 의해 변하는 사람의 감정은 일정하지가 않으니 의식이나 감정 모두 불안전한 것이라고..
 
제4편 공자는 진정한 성인이었는가? - 공자와 그의 제자가 나오는 대목이다. 생각해보면 공자는 인과 예를 논했던 사람이니 무위를 이야기했던 노장사상가들과는 다른 인물일 것이다. 그렇다면 공자를 다룬 4편의 이야기는 무슨 의미일까? 그렇다고해서 공자에 대해 탐탁치않다는 말은 없다. 단지 성인으로 인정받는 공자의 이야기를 통해 기본 도리를 설명해주고 있을 뿐이다. 있어도 없는 것처럼, 잘났어도 그 잘남을 내세우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힘세다고 소문난 사람과는 달리 정말로 힘센 사람에게는 그 힘을 써야 할 일이 정작 생겨나지 않는다는 말은 되새겨볼 만하다.

제5편 탕임금이 추구하는 진리 - 나만의 잣대로 남을 재지 말라. 자기의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옳다, 그르다 비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니 나와 다르다고 이상하게 보는 견해를 버리라고 충고한다. 세상의 일들은 한가지 기준에 의해 처리되지 않는다. 논리적으로는 맞을지 몰라도 사실이 그와 다른 경우는 많은 까닭이다. 여기서 '우공이 산을 옮기다'라는 우화가 등장하고, 아침 해와 대낮의 해는 어느 편이 우리로부터 더 멀리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졌던 공자의 예가 나온다. 그만큼 자신만의 잣대로 세상일을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제6편 절대적인 운명 - 사람에게 있어 능력과 운명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사람의 모든 일이 자신의 힘으로 되는 것이라고 믿고 있는 능력이 운명에게 말했다. 그대의 하는 일이 나와 견주어본다면 어떻겠는가, 하고.. 정해진대로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 바로 운명이라고, 사람의 능력이나 재능 혹은 지혜가 운명에 의해 좌우된다고 열자는 대답하고 있다. 저절로 그렇게 되도록 정해졌으니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것이 또한 운명이라는 말이다. 사람마다 제각각 서로 다른 것이 운명이라고도 한다. 

제7편 양주는 어떤 사상가인가? -  양주는 자신만을 위하는 사람이다. 명예나 욕망 따위에 구애됨이 없이 자유롭게 자신의 본성과 감정에 충실하면 된다는 게 양주의 인생관이기도 하다. 못났건 잘났건 죽는 것이 사람이니 살아있는 동안 욕심 부리지말고 자연스럽게 되는대로 즐기며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무엇때문에 번거롭게 禮를 지키며 살아야 하느냐는 그의 말을 뒤집어보면 잡다한 禮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유가에 대한 반박이라 생각해도 무리는 아닐 듯 싶다. 유가에서 말하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말에 대한 반박도 있다. 자기 자신이나 집안을 잘 다스리지는 못해도 나라를 잘 다스리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하고 있는데 나조차도 굳이 잘못된 말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은 건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다.

제8편 하늘의 도에 들어맞는 올바른 말 -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정리했다. 그런데 8편에서 오히려 더 많이 공감하게 된다. 모든 결과는 자기의 행동에 원인을 두고 있다는 말도 그렇고, 재주가 있다한들 적당한 기회를 이용할 줄 모른다면 그 또한 무용지물이 될 수 밖에 없으니 알맞은 때가 언제인지를 판단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도 그렇다. 자시의 처지를 잘 알아서 행동해야한다는 말도 되새겨볼 만 하지 않은가 말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나 어떤 일의 겉모습보다도 그 속에 담겨있는 내용을 더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형식적인 명분과 사실을 잘 분별할 줄 알아야 하는 까닭은 사실과는 아무 상관없는 명분 때문에 자기 일생까지도 망치는 수가 많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 세상의 사람과 생물은 모두가 동등한 입장에서 공존하고 있다는 말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세상의 만물이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착각하지 말라는 말이다.  /아이비생각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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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탈진 음지 - 조정래 장편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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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을 해 본다. 지금의 아이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얼만큼이나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밥투정하는 아이에게 아빠 어렸을적에는 없어서 못먹었다고 말하니 수퍼에 가면 먹을게 많은데 왜 굶느냐고 했다는 우스개소리가 가끔씩은 가슴 한켠에 서늘한 바람을 남겨놓기도 하는 세상이다. 이 책이 쓰여졌을 1973년이면 나는 국민학교(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을 나이다. 하지만 소설속의 배경은 그 이전의 세상이니 내게도 멀고 먼 이야기일 것이다. 소설속 복천영감의 삶을 그 후로도 오랜동안 살아냈을 우리의 부모님 세대 이야기가 정말 까마득한 옛날,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이야기처럼 들리는 것은 짧은 시간속에서 너무나도 급하게 변해버린 세상탓일게다. 그야말로 낀세대라고 불리워지는 우리세대라면 가슴 뜨겁게 공감할 수 있는 소설이 아닐까 싶다. 정말 오랫만에 그 비탈진 음지에 서 보았다. 눈내린 겨울이면 집집마다 쌓아놓았던 연탄재를 하나씩 들고나와 깨뜨리고 부수며 미끄러지지 않게 밟고 갔었던 그 비탈길, 비좁은 골목길에서도 우리는 다방구를 하고 술래잡기를 하고 망까기를 했었다. 유행가 가사처럼 밥먹으라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릴 때까지 해지는 줄도 모르고 그렇게 놀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 기억속에는 기쁨과 즐거움보다는 삶의 아픔이 훨씬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너나 할 것없이 변화의 물결에 휩쓸려, 혹은 자식만큼은 손에 흙 안묻히고 살게 해 주겠다고, 못배운 한을 자식을 통해 풀어보겠다고 서울로 서울로 등짐 짊어지고 올라온 부모님 세대가 있었기에 어쩌면 그 변화가 급물살을 탔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들의 한맺힌 서울살이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이 소설속의 세상은 정말 씁쓸하다. 서울냄새... 그다지 향기롭지 못한 그 서울냄새가 싫었던 복천영감의 여린 감성조차도 결국엔 동화될 수 밖에 없는 삶의 고통이 서글프게 다가온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을 꿈에 그리며 아귀같이 살아내야 했던 복천영감의 서울살이는 그야말로 처절했다. 당시에는 누군들 그렇게 안살았을까?  책 속에서 말하던 부잣집 담벼락의 모습은 내 기억속에도 생생하게 살아있다. 높은 벽돌담위로 뾰족하게 솟아오른 쇠창살과 그것도 모자라 깨진 병조각들을 뿌리듯이 박아놓았던 그 담벼락.. 분명하게 갈라진 빈부의 차이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 서울냄새가 지금은 어떻게 변했을까? 그 때나 지금이나 서울냄새가 향기롭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문명은 그렇게 우리에게 다가왔다.
 
카알 가아씨요~~~를 외치던 복천영감의 직업은 칼갈이다. 칼갈이 뿐일까? 커다란 가위로 박자를 맞춰가며 리어카를 끌고 다니던 엿장수도 있었다. 고무신 한짝만 가져가도, 병 한두개만 가져가도 엿이나 강냉이로 바꿔먹을 수 있었지만 그것조차도 엄청 귀한 것이라 그저 엿장수 리어카만 졸졸 따라다녀야 했다. 양철통 두개를 지게의 끝에 매달아 어깨에 짊어지고 물이 아니라 똥을 퍼나르던 똥퍼아저씨, 제 몸보다 훨씬 커다란 바구니를 어깨에 걸치고 돈이 될만한 것이라면 뭐든지 주워담던 넝마주이도 있었다. 또 있다. 머리카락 팔아요~~ 골목마다 퍼지던 낭낭한 목소리, 버스를 탕탕쳐대며 오라이~를 외쳐대던 버스차장의 목소리, 그 모든 것들이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대의 대표적인 이미지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당시에는 공동수도뿐만 아니라 공동변소도 꽤나 많았다. 지금도 문방구에 가면 나 어릴적에 먹었던 군것질거리들을 볼 수가 있다. 부모님 세대의 추억이라고 뽑기가 유행했던 적도 있었다. 뽑기나 달고나의 추억만큼 달콤한 것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못살았던 시절이라 복천영감을 이끌어주었던 떡장수 아줌마네 가족처럼 한순간에 연탄가스중독으로 세상을 떠났던 사람도 엄청 많던 시절이었다.
 
아무것도 없이 낯선 타향에서, 그것도 눈뜨고도 코 베인다는 도시에서 살아갈 수 있었던 건 조금만 더 고생하면 나아지겠지하는 그런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일이 있다는 것 자체가 힘겨운 삶을 이끌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사람냄새가 그립고 정이 그립다고 말하는 요즘이지만 어느 누구도 먼저 다가가려 하지 않는다. 어쩌면 어떻게 나눠야 하는건지를 몰라서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왜곡된 교육의 골이 너무 깊이 패인 까닭이기도 할 것이다. 가난은 죄가 아니라고 말은 하면서도 가난이 죄가 되는 지금의 세상. 가난한 사람들을 벼랑으로 내모는 시대의 비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라는 말이 안고 있는 의미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무작정 상경'을 감행할 수밖에 없었던 세대의 비극과 시대의 아픔 끝난 것일까?  오래전에 읽었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떠올린다. 뫼비우스의 띠와 클라인씨의 병... 어쩌면 그 비극과 아픔이 현재진행형일거라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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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은 왜! 사라지는가 - 배부른 세계의 종말, 그리고 식량의 미래
빌프리트 봄머트 지음, 전은경 옮김 / 알마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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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쭈욱~ 진행될 것이다. 과거의 전쟁이 영토를 넓히기 위함이었다면 현재와 미래에 치러질 전쟁은 그야말로 살기 위한 전쟁일 것이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식량과 물을 확보하기 위해 세계의 여러나라들은 이미 전쟁의 서막을 알리고 있다. 어찌보면 그 식량과 물을 얻을 수 있는 토지를 찾아 헤매는 것이니 또다른 영토전쟁일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런 전쟁을 어느정도는 예방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이익집단이 이끄는 세계의 흐름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멸의 길을 걷고 있는 인류의 방향을 보게 된다. 누군가는 말했다. 지구 최대의 적은 인간이라고. 진화라는 옷을 입기 시작하면서 인류는 멸망의 길을 걷기 시작했던 것이라고. 수많은 영상매체를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는 메세지는 많았다. 하지만 우리는 철저히 외면하고 있을 뿐이다. 그럴싸한 말로 둘러대며 비껴가기만을 반복할 뿐이다. 

우리에게 과연 핑크빛 미래는 올 수 있을까? 핑크빛 미래라는 말은 도대체 어떤 것을 두고 하는 말인지 다시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종말론이 판치는 세상속에서 어쩔 수 없는 인류의 멸망을 다시 논하게 된다.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은 사람이 점점 늘어만 가는데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치는 취해지지 않는다. 아니 조치를 취한다는 것이 오히려 그들에게 더 심한 배고픔을 선사하고 말았다. 왜 그럴까? 답은 간단하다. 정치적 이해관계와 경제적 이득이 기아와 도덕에 우선하기 때문이라고 이 책은 목소리를 높인다. 자연의 재앙이라고까지 말하는 기후의 변화는 심각하다. 그 원인을 파헤쳐보니 그 역시 답은 간단했다. 환경을 보호하지 않았다는 말은 지극히 미세한 일부였을 뿐이다. 결국 산업화로 인한 개발이 문제였던 것이다. 많은 경로를 통해 지구의 허파라고 불리워지는 곳까지 개발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산업화라는 게, 문명이라는 게, 진화라는 게 자연적인 것으로부터 멀어질수록 좋아지는 것일까? 분명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너무 쉽게, 너무 많은 것을 얻어내고자 하는 욕심이 앞선 까닭이다. 옛날 방식대로, 그야말로 자연의 흐름에 맡겨두는 농업 방식은 빠른 시일내에 더 많은 이익을 원하는 집단에게는 방해꾼일 뿐이다. 책을 통해 말만 번지르르했던 녹색혁명이나 유전공학의 폐해를 보게 된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부아가 치민다. 그들만의 잔치에 노예처럼 먹을 걸 대주는 집단이 바로 개발도상국이었던 것이다. 철저한 실험대상이 되어 결국엔 남는게 하나도 없었다는 말이다. 예전 농업, 다시 말해 산업혁명이 시작되기 전의 농업이 수행하던 다양한 기능을 다시 부활시켜야 한다(-272쪽) 고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묻혀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해서 기아와 빈곤에서 벗어났음은 물론 그 주변환경이나 토양까지 되살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잘먹고 잘사는 세상을 꿈꾸고 있는데 식량은 왜 사라지는 것일까? 이 책은 자멸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인류를 향한 경고장이다. 하긴 이 책말고도 수도없이 경고장은 날아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세계를 이끌어 가고 있는 정치는 그것을 외면하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식량이 사라지고 있는 그 아픈 속내를 들여다보게 된다. 이미 진행된 기후변화로 인해 지구온난화라는 현상이 생겨났다는 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쪽에서는 비가 너무 오지않아 사막화되어 가고 있는데 저쪽에서는 비가 너무 많이 내려 홍수가 난다. 그럼으로 인해 인류를 먹여살려야 할 비옥한 땅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비옥한 땅이 사라진다는 것은 식량 생산면적이 줄어든다는 뜻이다. 이미 한계에 도달한 나라도 있다. 거기다가 물전쟁도 예고되었다. 사막화되어가는 토지를 살리기 위해 끝없이 지하수를 퍼올렸다. 물 비축량이 현저하게 줄어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물이 없는 곳에서 작물은 자라지 않는다. 인구는 늘어나는데 먹을 식량은 점점 적게 생산되는 것이다. 인공관개시설을 갖추고 좀 더 생산력을 높이려 애를 쓰지만 오히려 작물의 품종만 줄어 들었을 뿐이었다. 세계를 부양하는 식물의 종이 겨우 15가지라면 믿을 수 있겠는가? 그것마져도 자세히 살펴보면 세계 식량의 절반을 책임지는 게 쌀과 밀뿐이라고 한다. 쌀이 26%, 밀이 23%다. 거기에 겨우 9%라는 작은 비율로 옥수수와 감자가 돕고 있을 뿐이다. 미국의 에너지정책에 의해 그 옥수수마져도 식량으로써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육식위주로 변해가고 있는 식습관도 한몫 거든다. 1Kg의 고기를 얻기 위해 9Kg의 곡물이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고기를 포기하고 빵으로 대체한다면 엄청난 양의 식량이 될 수 있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또한번 부아가 치민다. 우리는 왜 우리의 좋은 식습관을 버리고 서양식의 구조를 따라가고 있는 것일까?  그 안에 숨겨진 것은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따라가기에만 급급한 우리의 모습... 마치도 선진국의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듯이 흉내내기에 바쁘다. 콘크리트나 시멘트에 깔려 흙이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해 무더운 여름이면 열대야에 시달리는 건 둘째치고, 아동들에게 나타나고 있는 성인병의 증세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 다시한번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외면하고 있을테지만... 육식으로 인해 세계의 기아율은 높아만 간다. 그리고 세계의 곡물 시장을 텅비게 한다. 힘들게 농사지어 생겨난 곡물을 돼지나 소, 닭에게 퍼먹이고 있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는 육식의 욕구를 채우지 못해 단순히 고기만을 얻기 위한 가축을 비정상적으로 사육하게 되었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다. 그렇게 해서 인류가 얻은 것은 광우병과 같은 가축병이었다. 인류가 먹을 수 없는 소의 부분들이 다시 소를 먹이기 위한 사료가 되고, 양어장에서는 생선가루로 만든 사료를 먹이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가 소를 먹고, 물고기가 물고기를 먹는 형국이다. 어디 가축뿐일까? 유전공학이라는 포장으로 다시 태어나 재배되어지는 식물조차도 탄저병과 같은 병으로 모두 시들어버렸다는 사실이다.

인구는 12년마다 10억명씩 증가한다. 매일 22만명의 신생아가 세상의 빛을 본다. 1년이면 약 8,000만 명이다. (-148쪽)  우리나라의 인구수보다 두 배 가까이되는 사람들이 1년마다 태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1초가 지날때마다 세계가 먹여 살려야 할 인구가 세 명씩 늘어난다는 말은 두렵기까지 하다. 중국과 인도 다음으로 먹여 살려야 할 입이 세번째로 많은 나라가 미국이다. 그 많은 사람이 무엇을 먹으며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걱정하는 사람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그러니 인류에게 무슨 핑크빛 미래가 있겠는가 말이다.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국제기구를 설립한다한들 소수의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는 한 그것은 탁상공론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데 이 책이 제시하고 있는 해결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옛날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흙 한줌에는 미세한 단세포동물에서 지렁이에 이르기까지 약 50억의 생물이 삽니다. 거의 지구전체에 사는 사람들만큼이나 많은 생물이 사는 셈이지요. 바로 이들이 하는 일이 식량생산에 기초가 됩니다." (-81쪽) 개발만이 능사는 아닌 것이다. 산업화만이 인류가 살 수 있는 길은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외면하는 진실은 너무나도 많다. 지치지않고 발표되는 저들만의 시나리오에 의해 정책의 희생물이 되는 것은 너무나도 많다. '정치때문에'라고 말한다는 것이 참으로 서글픈 느낌을 준다. 세계의 식량 위기는 21세기의 정치문제이자 해결해야 할 근본적인 도전이다. 또한 이는 시간의 문제이기도 하다. 시간은 우리에게 불리하게 흐르고 있다.(-351쪽) 이 마지막 말이 많은 사람에게 경각심을 일으킬 수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아이비생각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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