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도시 - 우리 시대 예술가 21명의 삶의 궤적을 찾아 떠난 도시와 인생에 대한 독특한 기행
오태진 지음 / 푸르메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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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중앙동, 행운동, 성현동, 청룡동, 온천동이라는 이름을 가진 동네가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좀 더 알아듣게 말해본다면 지하철 서울대입구역 부근의 동네이름이다. 설마했다. 그런데 정말로 이름을 이렇게 바꾸었다는 걸 이 책을 보고서야 알았다. 이제는 번듯한 아파트촌이 되어버렸는데 봉천동이라는 이름이 달동네 이미지를 풍긴다는 이유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개명신청을 했다는 소식까지는 들어 알고 있었는데... 그래서 이름이 바뀌었다. 하늘을 받들고 산다는 동네, 봉천동.. 산비탈길로 쭈욱 이어지던 판자집들.. 아주 오래전의 기억을 더듬어 본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신림동과 봉천동 사이에 커다란 산이 하나 있었다.  애들 교육만큼은 서울에서 시켜야겠다는 욕심으로 지방에서 올라오신 부모님이 서울살이를 하면서  무너져버린 가세를 이겨내지 못하고 쫓기듯이 찾았던 동네가 바로 봉천동이었다. 당시 봉천동의 은천국민학교에 입학을 시켰는데 신림동으로 이사를 가서도 오빠 손잡고 다니라고 전학을 시켜주지 않아 오빠가 졸업을 해버린 후에도 나는 혼자서 산을 넘어 학교를 다녔었다. 지금은 사라져버린 그 산자락을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처럼 아주 오래전의 기억을 안고 그 동네를 찾아가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처음에 이름을 바꾸어달라고 신청했다는 소식을 듣고 왜 그렇게까지 하는거지? 했다. 단지 못사는 동네의 대명사처럼 불려지는 동네이름이 싫어서라는 건 내 상식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거꾸로 생각하면 근대사의 한페이지가 될 수도 있는 것이지 않은가 말이다. 봉천동의 옥탑방에서 내 소설들이 몸을 풀었다고 말하는 소설가 조경란의 봉천동 이야기를 들으며 오래된 기억을 한번 꺼내보았다. 그녀가 아직도 살고 있는 봉천동은 여전히 봉천동일 뿐이라고.. 

내 인생의 도시라는 제목에서부터 책 속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가늠해볼 수 있을 듯하다. 나는 그냥 누군가에게 인상깊었던 동네기행쯤이겠거니 했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해 주었던 곳, 자신의 아픔을 고스란히 안아주었던 곳, 다시 태어날 수 있었던 곳... 바로 그런 곳의 이야기였다. 읽으면서 순간순간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했다. 모두가 아픔을 안고 살아내는거구나 싶었다. 그들의 힘겨움을 함께 나누어들고 묵묵하게 받아주었던 도시들이 책 속에 있었다. <친구>라는 영화로 대박난 영화감독 곽경택이 소개하는 부산은 그야말로 삶 그 자체였다. 됐나? 됐다! 한마디면 끝난다는 부산사람들의 속내를 볼 수 있어 정겨웠다. 아주 오래전 난생 처음으로 부산역에 발을 디디며 설레였던 순간이 기억났다. 시인 함민복이 소개하는 강화는 일전에 신문지상에서도 보았었다. 강화나들길이 생겨 그 길을 안내하고 있던 함민복이라는 이름이 가물거렸다. 무언가에 반한다는 건 참 아름다운 것 같다. 어느 한순간에 느닷없이 가슴속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아버리면 그 곳을 떠난다는 게 그리 쉽진 않은 모양이다.

내게 좋은 느낌을 남겨준 글의 주인공인 시인 안도현이 들려주는 전주이야기에 솔깃해졌다. 빠른 시일내에 가 볼 예정인지라 더 큰 울림이 있었던 것 같다. 전주는 역사의 도시다. 짧은 시간으로 돌아보기에는 너무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곳이기에 여름여행으로 미루어 둔 곳이기도 하다. 그런 전주가 어울림과 나눔의 도시라는 말에 왠지 기분이 좋아지기까지 한다. 시인 유홍준과 미황사 주지 금강 스님이 소개하는 진주와 해남 미황사는 평소에 가고 싶었던 곳인지라 마치 그곳을 찾아가고 있는 것 같아 설레이기까지 했다.  동대문시장을 글쓴이와 함께 어울렸을 화가 사석원의 말속에서 사람사는 냄새가 풍긴다. 민속학자 황루시가 소개하는 강릉의 또다른 모습을 보게되니 여간 즐겁지가 않았다. 도시는 유명한 관광지만 품고  있는 게 아니다. 그것말고도 우리 가슴을 찡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틀림없이 있다. 그런 것들을 이 책속에서 보게 된다. 소개하는 사람 혼자만의 감정일지라도 이미 글을 읽는 사람에게로 전이되어져 오는 걸 느낀다. 그래서 판화가 이철수를 만나러 제천으로 달려가고 싶어지고, 이원규 시인을 볼 수 있다는 지리산 산방에 가고 싶어지고, 서귀포 거센 바닷바람에 창유리가 휘어진다는 화가 이왈종의 거실에 한번 들러보고 싶어진다. 그들 모두가 입을 모아 한목소리처럼 말하는 것은 그 도시가 나를 다시 태어나게 했다는 거였다. 서울이었다면 할 수 없었을 것들을 그 도시의 자연속에서 해낼 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자연은 그렇게 묵묵하게 사람을 안아주는데 사람은 어째서 그토록이나 매정하게 자연을 떠나고 외면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들의 도시에는 그들의 아픔이 함께 있었다. 인천엔 바다가 없다고 말하는 시인 김영승의 이야기에 가슴 한쪽이 먹먹해지고 말았다. 생활이라는 전쟁터에서 깨치고 터져도 신음조차 낼 수 없는 사람이라는 말이 그가 겪어왔던 시간들을 말해주고 있었다. 세상 입맛과 타협하기를 거부한 그의 시들은 세상을 향한 독설과 풍자를 퍼부어대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반론을 제기 할 수 없을 것만 같다. 내 속까지 후련해지게 만들던 지독히도 현실적인 그의 글이 참 좋았다. 그가 소개하는 도시 인천은 그의 말처럼 상처를 안고 희망을 바라보는 도시라는 말에 공감하게 된다. 인천의 이곳저곳을 한번쯤 다녀본 사람이라면 선악과 고저와 명암이 공존하는 도시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 같다. 김영승은 말한다. 미술관 하나없는 인천이 서울의 문화에 예속되기를 자청하는 게 안타깝다고.. 인천 바다에서 다시 '바위를 뚫는 우렁찬 파도소리'를 듣고 싶다고.. 그들은 한결같이 그들이 머무는 도시가 저마다의 색깔로 빛을 발하기를 소원했다. 그리고 그렇게 되도록 한가닥의 빛으로 도움을 주고 있었다. 그들이 있어 그 도시들은 분명 환한 빛을 발하는 순간에 도달할 것이다. 그렇게하여 그들의 아픔 또한 기쁨과 환희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소설가 정찬주가 머문다는 '耳佛齋'에  언젠가 한번은 찾아보리라 한다. 그래서 나도 그에게 한 수 배워보고 싶다. /아이비생각

 
술에 취하여
나는 수첩에다가 뭐라고 써 놓았다
술이 깨니까
나는 그 글씨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세 병쯤 소주를 마시니까
다시는 술 마시지 말자
고 써있는 그 글씨가 보였다

- 「반성 16」/ 김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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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함부로 하지마라 - 알면서 실수하고 무시해서 큰코다치는 일상의 대화법
스티브 나카모토 지음, 황혜숙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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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잘하고 싶나요? 물으면 생각해볼 것도 없이 '예'라고 대답할 것이다. 누군가 내 말을 잘 들어주고 이해해준다면 더 좋겠지요? 하고 물어도 대답은 '예'다. 그런데 어떻게 말을 하면 말을 잘하는 것일까요? 다시 묻는다면 대답하기 어렵다. 단지 이 책의 제목처럼 말은 함부로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만큼은 늘 가슴속에 품고 산다. 그러면서도 생각없이 뱉어낸 말때문에 자주 후회하곤 한다. 그 때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었어, 라거나 차라리 이렇게 말할 걸, 하는 후회... 누구나 그런 후회를 해 보았을 것이다. 수다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로써는 말에 대해서만큼은 꼭 지켜야 한다는 규칙 몇가지가 있다. 될수록 필요한 말만 할 것, 쓸데없이 나서지 말 것, 왠만하면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도록 노력할 것, 당사자가 없는 자리에서는 되도록 남의 말을 하지 않도록 할 것 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정해놓은 규칙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할 때가 많다. 말이라는 게 참 쉬워보여도 가장 어려운 것이 아닌가 싶다. 오죽했으면 칼로 상처받은 것보다 말로 상처받은 게 더 아프다고 했을까?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책 속에 있었던 말을 기억한다. yes, but 화법이라고 지금도 많은 사람에게 회자되어지는 말이다. 일단은 긍정부터 하라는 의미가 참 좋아서 오래도록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것 같다. 이 책에서도 남의 말을 잘 들어주고 긍정적인 대답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생각해보니 책 속의 대화법을 제대로 실천할 수만 있다면 그야말로 썩 괜찮은 사람이 되는 건 시간문제다. 우선 말을 할 때의 규칙을 보자면 이렇다.  항상 미소짓는 얼굴로 해도 될 말과 해서는 안될 말을 잘 선택해야 하고,  칭찬에 인색하지 않아야 하고, 될수록 부정적인 말은 하지 말아야 하고, 나를 잘 드러낼 수 있도록 표현해야 한다. 그리고 말을 들어줄 때의 규칙은 이렇다. 상대방의 말을 잘 듣고 있다는 표현을 적절하게 보여주어야 하고, 그 사람이 어떤 의미로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빨리 알아챌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참 어렵다. 인간관계처럼 어려운 것이 세상에 또 있을까 싶다. 말하기가 그 인간관계를 쥐고 흔들만큼 중요하다보니 말만 잘해도 인생의 반은 성공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 책은 목차만 살펴봐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금방 알 수 있다. 생각하기, 판단하기, 미소짓기, 선택하기(해도 될 말과 해서는 안 될 말), 사로잡기(오랫동안 내 말에 집중할 수 있도록), 균형잡기, 가끔은 "제 말 듣고 계시죠?" 라고 물으며 관찰하기, 경청하기, 통제하기, 칭찬하기, 질문하기, 알아채기, 조율하기, 대답하기... 각 단계별로 실천할 수 있는 명목을 제시해 주고 있는데 만만치가 않다. 그 중에서도 가장 깊이 내게 각인되었던 부분은 통제하기와 조율하기, 알아채기에 대한 부분이었다. 말을 하다보면 자신만의 감정에 휩싸여서 듣고 있는 사람에 대한 생각을 잊어버릴 수가 있다. 그러다보면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당연히 지루해진다. 나도 그런 경우가 많았다. 상대방이 내 말에 공감해준다면 신나는 일이다. 그런 것처럼 상대방도 나의 공감을 바라고 있을 것이다.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게 바로 조율하기다. 그만큼의 이해가 필요하다는 말일게다. 알아채기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은 '속단하지 말자'다. 속단은 금물이라는 말도 있듯이 다 들어보지도 않고 멋대로 결론에 도달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것으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오해를 미리 방지할 수 있다면 그것처럼 좋은 일도 없을테니까.. 보너스처럼 하나 더 실천에 옮기고 싶은 게 있다면 이야기를 생생하게 재현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거였다. 적당히 농담도 할 줄 알면서 재미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싫어하지는 않을 것이다. 

참 이상한 것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말하기가 더 무섭다는 거다. 그래도 한창 나이때는 많은 사람을 내려다보며 말을 해도 떨지 않았었는데 지금은 단 몇 명이 앞에 있기만해도 마음을 진정시키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왜 그럴까? 그러면서도 늘 욕심부렸던 부분은 말을 정말 잘하고 싶다는 거였다.  말을 잘한다는 뜻으로 하는 청산유수니, 일사천리니 하는 표현처럼 유창하게 하는 말이 아니라 군더더기없이 요점만 정확하게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거기다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너무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게 끝맺을 수 있다면 더 좋겠다. 내가 한 말을 남들이 기억해 줄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이러니 욕심이라는 거다. 그런데 그런 생각의 끝에는 항상 물음표가 따라온다. 그러는 너는 그렇게 하고 있니? ... 생각해본다. 나는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어주었는지, 내가 원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의 말도 흘려듣지는 않았는지, 혹시라도 틀린 부분을 지적하며 그 사람을 평가하려 했던 건 아니었는지, 그 사람이 했던 말을 꼬투리 잡아 논쟁거리로 만들지는 않았는지, 그 사람의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려 했는지... 하지만 왠지 자신이 없다. 정말 그렇게 다른 사람을 배려하며 살아왔는지 자신이 없는 것이다. 문득 내가 부렸던 욕심이 부끄러워진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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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요정
김한민 글.그림 / 세미콜론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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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생뚱맞은 이야기부터 하자. 일전에 인왕산에 있다는  선바위를 찾아 간 적이 있었다. 나라의 큰일을 점쳤다는 국사당과 함께 둘러볼 수 있어 답사차원에서 잠시 들러본 곳이었다. 장삼을 입은 스님을 닮았다는 선바위는 무속신앙의 대상이 되는 바위이기도 하지만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의 전설이 전해지는 바위이기도 하다. 이 바위를 성 안에 두느냐  성 밖에 두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그 의미가 당시의 사회적 배경을 읽게도 하는 전설이었다. 그곳으로 오르면서 나는 정말 놀랍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무속신앙의 전설이 깊은 곳이라서 그럴 수도 있겠거니 했지만 선바위까지 올라가는 길에 지속적으로 보이던 그 많은 무속인들의 거처는 기분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왠지 우리를 주눅들게 만들었었다. 어떻게 이런 곳이 없어지지 않고 아직까지 남아 있을 수 있을까 궁금했다. 아직도 이런 곳이 있구나 싶었다. 서울성곽 아래라서?  그것도 아니라면 인왕산 자락이라 개발이 허가되지 않은 지역이라서?  아무리 생각해도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엇이건 밀어내고 보는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이렇게 살아남은 곳도 있구나 싶어 놀랐던 것이다. 개발이라는 이름아래 너무나도 많은 것들이 사라져갔다. 먹고 살기 바빠  우리의 문화 따위(?)는  따질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딱히 그런 것만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제는 좀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바라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허물고 보자는 식의 도시개발이 뭉개버린 우리의 옛숨결이 어디 하나 둘인가 말이다.  

처음부터 이런 이야기를 꺼내게 된 것은 이 책이 말하고 싶어하는 것이 바로 사라져가는 우리의 문화유산들을 안타까워하는 것 같아서다.  물론 찾아보면 아직은 많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피맛골처럼 특징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무지와 외면은 뜻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많이 아프게 했다. '~~~터' 라는 이름표만 덜렁 남겨놓고 사라져간 흔적을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다. 개발이라는 괴물의 발에 밟혀 무참히 죽어간 것들이다. 다시 복원한다해도 그 숨결이 그대로 살아나는 것이 아니기에 안타까운 것이다. 책의 제목 '공간의 요정'은 바로 그렇게 죽어간 곳에서 살아가던 요정이다. 자신이 머물던 공간이 사라져버려 더이상은 숨을 쉴 수 없게 된 작은 요정들을 어찌어찌 살려보려 애쓰는 작은 소녀 송이의 이야기다. 그림이 이야기와 함께 가고 있는데 내게는 왠지 글보다 그림이 더 깊이 들어온다. 그 작은 요정들을 살려내기 위한 유일한 도구가 바로 '詩'다. '詩'를 쓰는 詩지렁이와 그 詩를 먹고 사는 작은 요정들의 꿈같은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여기서 요정들이 먹고사는 詩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아채는 데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다. 情이다. 우리가 너무 쉽게 이야기하고 너무 쉽게 잊어버린.. 잃어버리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갈 수 있었던 그것... 그러나 마음속에서는 끊임없이 불러보는 것... 그런거다. 그리 어렵지 않은 이야기다. 삭막한 현실속에서 무너져내리는 우리의 오래된 것들과 그 오래된 것들이 안고 있던 따스함.. 그러나 우리는 그 따스함을 아무 생각도 없이 버렸다. 행여나 눈이 마주칠까봐 외면해 버렸다. 그래서 안타까운 마음에 우화라는 형식을 빌어 메세지를 전하고 싶었나 보다. 그런데 너무 어렵다. 너무 강한 은유가 오히려 독이 되어버린 듯한 느낌이다. '생각하는 童話' 나 '어른을 위한 童話' 형식의 글을 많이 보았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난해하지는 않았었다. 쉽게 다가설 수 있도록 아주 편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던 형식이 바로 그런 글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 책은 너무 깊다. 뭔가 보이기는 하는데 좀처럼 쉬운 느낌을 주지 않는다. 실타래처럼 꼬여있다. 그것을 내가 풀어가면서 읽어야 한다는 건 전문서적이 아닌 이상 책을 읽는 사람에게는 고역이다. 답답한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너무 돌아간 듯 하여 그것이 조금은 아쉽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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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하루
마르탱 파주 지음, 이승재 옮김, 정택영 그림 / 문이당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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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게 말한다면 나도 이런 하루 보낸 적 있다. 한두 번쯤? 아니 여러번이다. 삶이 팍팍하다.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저런 생각 안해봤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그야말로 책의 제목처럼 아주 완벽하다. 아무도 읽을 수 없는 비밀스러운 생각이다. 아무에게도 들킬 수 없는 나만의 작전이다. 그러니 누가 뭐라고 할까?  엘리베이터를 타고 움직이기 시작하면 나를 삼킨 이 괴물이 어느 순간 느닷없이 떨어져내려 박살이 난다거나 아니면 끝도 없이 치솟아 올라 아무도 없는 그곳으로 나를 데려다 주었으면 하는 생각, 건널목에서 신호를 기다리면서도 저 많은 차 중에서 어느 하나가 미친듯이 질주해 와 나와 포옹해주기를, 아니면 신호가 바뀌기 전에 그냥 확 뛰어가볼까?  하는 그런 생각, 솔직히 한번도 안해봤다면 거짓말이다. 내가 그렇다는 말이다. 혹시라도 이런 나의 글을 읽으면서 음, 이 사람 좀 심각하군 혹시 우울증 아냐?  병원에 가봐야 하는 거 아냐?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 사람 있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너나 잘하세요"

책을 읽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작가는 도대체 왜 이런 글을 쓴 것일까?  어찌보면 황당하다고도 할 수 있는 이런 글을 쓰게 된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어쩌면 작가도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거나, 어쩌면 주변의 누군가가 그렇게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었다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세상의 많은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노파심이었다거나... 뭐, 이유야 어떻든 나는 이 책속의 상황에 대해 상당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말았다. 그럴 수 있다! 정말 충분히 그런 생각하며 살 수도 있는 일이다. 일종의 생각이었을 뿐인데 그것이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졌다는 게 한편으로는 놀라웠다. 이렇게도 글이 되는구나 싶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공감할 수 있는거구나 싶었다. 살아가는 모습은 누구나 똑같다. 단지 그 방법에만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렇게까지 공감한다고 말하면서 나는 왜 가슴 한쪽이 아련해짐을 느껴야 했다. 무언가 잡힐 듯 하면서, 어떤 것을 본 듯 한데 그것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겠다는 그 이상한 느낌이라니... 알 수 없는 감정에 휘둘려 순간 책을 놓치고 말았다.  그 흔한 질문을 생각하게 된다. 왜 사는가?  사람은 도대체 무엇으로 사는가?  나의 삶은 어떤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인가?  내 삶의 의미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끝도없이 밀려오는 우습지도 않은 생각들이라니...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왠지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그게 뭔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놓친 것들이 많았구나, 하는 그런 생각... 알 수 없다. 조금은 황당하게 느껴지는 이 책속의 주인공에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그것때문은 아닐까 싶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시원한 느낌이 든다. 뭔가 가려웠으나 손이 닿지 않아 긁지 못했던 부분을 긁어준 느낌이랄까? 나만 그런가? 세상이 팍팍하다고 느끼는 게?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 느낌을 어떻게 이겨내는가는 중요하다. 이겨낼 수 있을 때 우리는 즐거움을 맛보고 행복이 이런 것일까 묻고 싶어질테니까. 문득 이런 생각을 해 본다. 그렇게 팍팍한 세상을 살아가는 당신 대신 내가 이렇게 속시원한 생각을 해 줄테니 당신은 그저 앞만 보면서 달려가 주었으면 좋겠다는 메세지쯤으로 받아들여보는 건 어떨까 하는... 그래서 이 책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 같다. 심각하지 않게 죽음에 대해 가까이 갈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 또한 우리 삶의 한부분이기도 하겠기에. 평행선으로 달려가는 삶과 죽음의 거리는 그다지 멀지 않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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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 위기의 생물들 -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세계의 모든 문제 라루스 세계지식사전 시리즈 1
이브 시아마 지음, 심영섭 옮김 / 현실문화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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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책의 목차를 대충 훑어보자. 대부분의 우리가 무시하고 사는 생물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각 장마다 특징을 잘 담아놓은 걸 볼 수가 있다. 많은 생물이 왜 멸종위기에 처하게 되었는지, 그들이 어떻게 나뉘어져 있는지, 그들의 삶은 어떻게 유지되어져 왔는지... 하지만 책은 작다. '라루스 세계지식사전' 이라는 말처럼 손 안에 쏙 들어올 정도의 크기다. 그런 분량으로 이렇게나 무거운 주제을 다룰 수가 있다고? 그런데 책장을 하나씩 넘기면서 사전이라는 통념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된다. 굳이 많은 쪽수를 할애하지 않고도 이렇게 딱 부러지게 보여줄 수도 있는거구나 싶었다. 학창시절에 단 하나의 문제라도 더 맞추기 위하여 열심히 외웠던 생물 분류 단계  '종→계'... 이 책은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파괴시켜가고 있는지, 우리 주변에서 어떤 것들이 아파하며 신음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할테니까 말이다.

우리 시대는 사실상 자연에서 관찰된 '정상적'인 속도보다 1000배에서 1만배 빠른 멸종률을 보이고 있다. 지질학적 시대의 자연에서 관찰되는 정상적인 멸종속도는 대략 4년에 1종이었는데 현재는 하루에 대략 1종이 완전히 사라지고 있다. -32쪽-

따오기, 원앙사촌, 크낙새, 종어... 많이 들어본 이름이다. 그러나 이런 생물의 이름은 이제 사전에서나 찾아보아야 할 것 같다. 이미 우리나라에서는 찾기 힘들어진 생물이기 때문이다. 단지 그것뿐만은 아닐 것이다. 조류 95종, 양서·파충류 43종, 어류 76종 등 멸종위기종 214종의 현황을 담은 『멸종위기종 적색자료집(Red Data Book)』을 발간했다는 기사를 신문을 통해 알게 되었다. 『적색자료집』이라는 명칭은 세계자연보전연맹이 멸종위기에 처한 생물의 상태를 알리기 위해 빨간색 표지의 책자에 멸종위기종을 수록한 데서 유래됐다는데 멸종위기종을 수록한 총서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만큼 다급함을 느낀 것인지 아니면 뜻있는 몇몇의 외침에 불과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제발 우리도 이제는 경각심을 가지고 자연에 대한 생각을 바꾸었으면 좋겠다. 보일듯이 보일듯이 보이지 않는 따옥 따옥 따옥소리 처량한 소리~~ 하면서 노래를 부르던 어린시절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그 따오기가 이미 32년전에 우리나라에서 사라졌다니...

인간에게서 완전히 자유로운 자연 환경은 없다. -51쪽-

맞는 말이다. 오죽했으면 모든 생물의 천적은 인간이라고 말을 할까?  위험지역이나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지만 대개 서류상으로만 존재할 뿐이라는 말은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인간은 먹고 살기 위해서 자연을 훼손한다. 나무를 자르고 물길을 막고, 바다를 메우며 오직 인간만이 살 길을 찾아 헤맨다.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는 법을 만들어놓아도 공공연하게 숲은 파괴되어진다. 그 힘이 때로는 만들어놓은 법조차 파괴시킨다. 파괴된 숲에서 동물이 살 수 없는 건 둘째치고 하다못해 작은 곤충이나 식물마져도 나무나 물이 없는 곳에서는 살 수 없는 것이다. 얼마전에 읽었던 <풀들의 전략>이라는 책 속에 이런 말이 있었다. 잡초가 살 수 없는 세상에서는 인간도 살 수 없다고.  점점 더 많은 곳이 사막으로 변해가고 있다는데 그것이 누구 탓이냐고 물을 필요는 없다. 인간인 우리가 빠른 산업화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지구의 기온을 높여놓은 까닭이다. 지금 세계적인 추세로 나타나는 자연재해가 바로 그것을 증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한쪽에서는 물난리가 났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폭설 때문에 야단이다. 이쪽에서는 며칠 째 산이 불타고 있는데 저쪽에서는 골프공만한 우박이 내리기도 한다. 누구를 탓하겠는가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을 애써 외면하려고만 한다.

인간에 의해 다른 지역에서 유입되는 종은 증식을 잘하는 경향이 있다. -83쪽-

얼마전 방송에서 꿀벌이 사라져가고 있다,라는 주제를 다룬 적이 있었다. 왠지는 모르겠으나 우리나라의 토종벌이 집단으로 죽는다는 내용이었는데 그것을 대체하기 위해 우선 급한대로 서양벌들을 풀어놓았다. 토종벌보다는 생명력이 더 강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벌을 키우는 사람들은 걱정을 앞세웠다. 이로 인해서 우리의 토종벌들이 사라져버리게 되는 건 아닐까하고... 벌뿐일까? 곰쥐나 고양이는 새를 전멸시켰다. 모피용으로 뉴질랜드에 수출되었다는 주머니쥐가 숲과 새둥지를 파괴했다. 민물낚시용으로 들여놓았다던 나일퍼치는 오스트레일리아 빅토리아강의 생태계를 완전히 파괴해버렸다. 엉뚱한 곳으로 와서 '생태5적'이라는 오명을 쓰게 된 뉴트리아, 베스, 블루길, 붉은귀거북, 황소개구리같은 외래종들은 우리나라의 생태계를 단 몇 년만에 뒤흔들고 파괴했다. 그것들이 우리나라로 들어오게 되는 경위를 살펴보면 모피용이나 식용이었다. 단지 인간의 욕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그런 일이 발생되는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렇게 들어오는 외래종이 증식을 잘할 수 밖에 없다는 걸 금방 눈치챌 수가 있다. 사람도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더 강해지려 한다는 걸 생각해보라! 다른 생물이라고 뭐가 다르겠는가 말이다. 단순히 인간들의 취미생활로 희생되는 것들도 많다. 인간의 몸에 좋다고 약용으로 쓰이는 동물이나 식물은 또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만약 아무런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다면 21세기 말에는 식물종의 3분의 2가 위험에 빠질 것이다." -128쪽-

<툰드라> 라는 제목의 다큐를 시리즈로 본 적이 있다. 도시개발이라는 형태나 벌목 따위의 끔찍한 일 때문에 그곳에서 삶의 모든 걸 해결하던 원주민들조차 쫓겨가듯이 밀려나고 있었다. 아마존의 원시림만이 우리를 살릴 수 있는 허파노릇을 하는 건 아닐게다. 그렇게 자연의 흐름에 온전히 모든 것을 맡긴 채 삶을 지탱하고 살아가는 곳이 있다면 그런 곳이 바로 우리의 허파이며 심장일 것이다. 그들의 삶을 지탱해주던 물과 흙이 변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던 물고기와 동물이 사라져가고 있으며 그곳을 들락거리는 트럭의 배기가스와 소음으로 인해 이미 숲은 병들어가고 있었다. 얼마남지 않았다는 생태계의 보고들이 하나둘씩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미 늦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서글프게도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자연환경은 자생능력이 없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다시 생각해야만 한다.

우리나라의 환경쓰레기가 바다를 떠돌다 하와이까지 갔다. 대단히 먼여행을 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해안은 물론이고 일본등을 살펴보았을 때 우리나라의 환경쓰레기나 중국의 환경쓰레기등은 쉽게 볼 수 있다. 물론 하와이의 해변에서도 그랬다. 중요한 것은 그런 것들이 어떻게 그토록이나 먼 곳까지 흘러갔느냐가 아니다. 흘러가는 동안 부서지고 분해되어져 물고기의 뱃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미세하게 분해되어진 환경쓰레기들은 바다에 떠다니는 미생물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실험삼아 잡아본 물고기 뱃속에서 나왔던 플라스틱 조각들이라니!  우리는 그런 물고기들을 잡아먹고 산다는 걸 잊으면 안된다.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낸 재앙일 뿐이다. 그러니 누굴 탓하겠는가 말이다.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멸종위기라는 것 역시 우리가 만들어내는 재앙이다. 문제를 만든 사람이 해답을 쥐고 있을테니 마냥 뒷짐지고 바라보기만 해서는 안될 발등의 불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새가 없어지고 벌이 없어지면 그 다음은 식물이 사라질 것이다. 식물은 모든 생태계의 기본이다. 멸종위기라는 것이 단지 말로만, 글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조금 늦으면 어떤가. 이제는 빨리 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닌 세상이라는 걸 알아야만 한다.

이 책의 표지에서 볼 수 있는 작은 제목이 그냥 스쳐지날 수 없게 한다. '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세계의 모든 문제'... 우리가 꼭 알아야 한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이겠지만 그 중요함 역시 주관적일 수 밖에 없기에 조금은 신중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도 그랬고 다 읽고나서도 나는 마음이 아팠다. 어떻게 이렇게 끔찍한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문제화시킬 수 있었는지 '자연의 적은 오직 인간뿐' 이라는 말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산업화니 개발이니 하는 것을 하지 말자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산업화나 개발에 끼워넣기식으로 전개되는 자연환경에 대한 인식은 바뀌어야만 한다. 개발의 한귀퉁이에 끼워맞추는 자연이 아니라 자연에게 먼저 맞춰주는 개발이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렇게 해야만 하다. 우리의 다음세대에게 물려줄 지구을 생각해서가 아니라 당장 나 자신을 위해서 그렇게 해야만 한다. 지금의 우리도 신음하는 자연의 대재앙을 몸으로 겪으며 살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 그것도 아주 작은 존재일 뿐이다. 자연을 떠나서 인간이 살 수 없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일테다. 동물이나 식물이 없는 세상에서 인간이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장담할 수 없다, 과학이 아무리 발전한다해도.....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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