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탈진 음지 - 조정래 장편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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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을 해 본다. 지금의 아이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얼만큼이나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밥투정하는 아이에게 아빠 어렸을적에는 없어서 못먹었다고 말하니 수퍼에 가면 먹을게 많은데 왜 굶느냐고 했다는 우스개소리가 가끔씩은 가슴 한켠에 서늘한 바람을 남겨놓기도 하는 세상이다. 이 책이 쓰여졌을 1973년이면 나는 국민학교(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을 나이다. 하지만 소설속의 배경은 그 이전의 세상이니 내게도 멀고 먼 이야기일 것이다. 소설속 복천영감의 삶을 그 후로도 오랜동안 살아냈을 우리의 부모님 세대 이야기가 정말 까마득한 옛날,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이야기처럼 들리는 것은 짧은 시간속에서 너무나도 급하게 변해버린 세상탓일게다. 그야말로 낀세대라고 불리워지는 우리세대라면 가슴 뜨겁게 공감할 수 있는 소설이 아닐까 싶다. 정말 오랫만에 그 비탈진 음지에 서 보았다. 눈내린 겨울이면 집집마다 쌓아놓았던 연탄재를 하나씩 들고나와 깨뜨리고 부수며 미끄러지지 않게 밟고 갔었던 그 비탈길, 비좁은 골목길에서도 우리는 다방구를 하고 술래잡기를 하고 망까기를 했었다. 유행가 가사처럼 밥먹으라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릴 때까지 해지는 줄도 모르고 그렇게 놀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 기억속에는 기쁨과 즐거움보다는 삶의 아픔이 훨씬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너나 할 것없이 변화의 물결에 휩쓸려, 혹은 자식만큼은 손에 흙 안묻히고 살게 해 주겠다고, 못배운 한을 자식을 통해 풀어보겠다고 서울로 서울로 등짐 짊어지고 올라온 부모님 세대가 있었기에 어쩌면 그 변화가 급물살을 탔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들의 한맺힌 서울살이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이 소설속의 세상은 정말 씁쓸하다. 서울냄새... 그다지 향기롭지 못한 그 서울냄새가 싫었던 복천영감의 여린 감성조차도 결국엔 동화될 수 밖에 없는 삶의 고통이 서글프게 다가온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을 꿈에 그리며 아귀같이 살아내야 했던 복천영감의 서울살이는 그야말로 처절했다. 당시에는 누군들 그렇게 안살았을까?  책 속에서 말하던 부잣집 담벼락의 모습은 내 기억속에도 생생하게 살아있다. 높은 벽돌담위로 뾰족하게 솟아오른 쇠창살과 그것도 모자라 깨진 병조각들을 뿌리듯이 박아놓았던 그 담벼락.. 분명하게 갈라진 빈부의 차이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 서울냄새가 지금은 어떻게 변했을까? 그 때나 지금이나 서울냄새가 향기롭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문명은 그렇게 우리에게 다가왔다.
 
카알 가아씨요~~~를 외치던 복천영감의 직업은 칼갈이다. 칼갈이 뿐일까? 커다란 가위로 박자를 맞춰가며 리어카를 끌고 다니던 엿장수도 있었다. 고무신 한짝만 가져가도, 병 한두개만 가져가도 엿이나 강냉이로 바꿔먹을 수 있었지만 그것조차도 엄청 귀한 것이라 그저 엿장수 리어카만 졸졸 따라다녀야 했다. 양철통 두개를 지게의 끝에 매달아 어깨에 짊어지고 물이 아니라 똥을 퍼나르던 똥퍼아저씨, 제 몸보다 훨씬 커다란 바구니를 어깨에 걸치고 돈이 될만한 것이라면 뭐든지 주워담던 넝마주이도 있었다. 또 있다. 머리카락 팔아요~~ 골목마다 퍼지던 낭낭한 목소리, 버스를 탕탕쳐대며 오라이~를 외쳐대던 버스차장의 목소리, 그 모든 것들이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대의 대표적인 이미지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당시에는 공동수도뿐만 아니라 공동변소도 꽤나 많았다. 지금도 문방구에 가면 나 어릴적에 먹었던 군것질거리들을 볼 수가 있다. 부모님 세대의 추억이라고 뽑기가 유행했던 적도 있었다. 뽑기나 달고나의 추억만큼 달콤한 것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못살았던 시절이라 복천영감을 이끌어주었던 떡장수 아줌마네 가족처럼 한순간에 연탄가스중독으로 세상을 떠났던 사람도 엄청 많던 시절이었다.
 
아무것도 없이 낯선 타향에서, 그것도 눈뜨고도 코 베인다는 도시에서 살아갈 수 있었던 건 조금만 더 고생하면 나아지겠지하는 그런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일이 있다는 것 자체가 힘겨운 삶을 이끌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사람냄새가 그립고 정이 그립다고 말하는 요즘이지만 어느 누구도 먼저 다가가려 하지 않는다. 어쩌면 어떻게 나눠야 하는건지를 몰라서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왜곡된 교육의 골이 너무 깊이 패인 까닭이기도 할 것이다. 가난은 죄가 아니라고 말은 하면서도 가난이 죄가 되는 지금의 세상. 가난한 사람들을 벼랑으로 내모는 시대의 비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라는 말이 안고 있는 의미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무작정 상경'을 감행할 수밖에 없었던 세대의 비극과 시대의 아픔 끝난 것일까?  오래전에 읽었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떠올린다. 뫼비우스의 띠와 클라인씨의 병... 어쩌면 그 비극과 아픔이 현재진행형일거라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아이비생각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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