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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자 : 난세를 이기는 지혜를 말하다 - 완역결정판
열자 지음 / 연암서가 / 2011년 8월
평점 :
이름은 어구이고 전국시대 사람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그 실재성은 의심스럽다. 도가 일파가 그들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만들어낸 가공의 인물일 수도 있다. - 열자를 찾아보니 이렇게 나와 있다. 그런데 열자를 말하기 전에 노자를 먼저 알아야하지 않을까 싶다. 노자사상이 열자와 장자에게 계승되었다고 하니 하는 말이다. 노자와 장자에 의해 만들어진 노장사상은 한고조가 정치이념으로 삼기도 했다. 한나라 초기에 성행하였다는 황로사상이 바로 황제와 노자를 신봉한다는 것이니 일단은 노자부터 알아야 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유교 불교와 더불어 동양의 3대 사상이라 일컫는 노장사상은 인위적인 것들을 배제하고 자연법칙에 따라 행동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야말로 모든 것을 자연의 흐름에 맡기는 것이다. 중국의 사상가는 꽤나 많아서 이름을 말해도 누가 누군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 도교에 영향을 미친 도가사상의 시조라고 하면 어느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듯 하다. 일전에 읽었던 <공자 인생강의>라는 책에서 공자에게 禮를 가르쳤다고 나와 있는 인물이 바로 노자였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노자나 열자를 검색해 보면 실존인물이다 아니다를 두고 공론이 오갔다는 말을 보게 된다. 열자 역시 그렇다. 형식적인 의례에 치우친 유가사상에 대적하기 위해 만들어낸 인물이라는 말도 있다. 하지만 노자의 도가사상은 우리나라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으니 사직단을 세우고 제사를 지내는 것도, 신라의 화랑도 정신을 지배했던 것도 도교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신선처럼 살고자 했던 선비들의 정신적인 지주가 되기도 했다. 물론 중국의 도교와 우리나라의 도교가 아주 똑같지는 않을 것이나 지금까지도 남아있는 도교의 흔적은 많은 듯 하다.
자연의 흐름에 따라 모든 것을 맡긴다는 것이 지금 세상과는 맞지않는 말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인위적인 것과 작위적인 것들이 넘쳐나는 세상속에서 어찌 생각해보면 그것이 인간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화형식이지만 그다지 재미있게 읽혀지지는 않는다. 우화라고하여 어른을 위한 생각동화가 아닐까 생각했다면 다분히 따분할 것이다. 도가 3서중의 한 권이라는 말에 선택했지만 역시 내공이 부족했음을 인정한다. 뭐 그렇다고 골치가 딱딱 아프게 어려운 말로 풀이를 하는 것은 아니기에 천천히 읽으면서 조금씩 다가선다면 괜찮은 느낌이 전해지기도 한다. 지금까지 짧은 일화나 고사성어로 마주쳤던 우화가 자주 보였던 까닭이기도 하다. 가장 쉬운 예로 우공이 산을 옮기는 이야기나 관포지교라는 말을 생겨나게 한 관중과 포숙의 이야기가 있다. 목차를 보면 크게는 8편의 주제로 나뉘어져 있지만 각편마다 작은 제목이 따라 나와 이야기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음을 볼 수가 있다. 유교에 대적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말을 어느정도는 공감할 수 있는 대목도 보인다. 오래된 말이지만 지금 세상에서도 되새겨볼 만한 말은 많았다. 바쁘다는 핑게로 우리가 잊고 살아가는 것도 많았고,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처세술로 삼아도 괜찮은 말이 많았다. 마치 선문답을 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하여, 각 편마다 나름대로 정리를 해 보았다.
제1편 하늘의 상서로운 조짐 - 사람이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道를 보여주고 있다. 세상 만물이 생겨나고 없어지는 모든 일이 끝없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결국엔는 無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죽음은 사람들이 쉴 곳이며, 길을 가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다는 말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물질적인 욕망때문에 괴로움이 오니 집착하지 말고 내려놓으라는 말은 불교의 교리와 어느정도는 일맥상통하는 듯 보여지기도 한다.
제2편 황제의 깨달음 - 지극한 마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天性이 무엇일까? 타고난 바탕대로 시작한 것이 습성으로 발전하고 천성이 되어 버렸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냐고 공자가 물었는데 해설을 보면 자기를 없애고 완전히 자연에 융화됨을 말하는 것이라도 되어있다.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대하고 사람을 대하는 가에 따라 상대의 반응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자연스럽지 못한 것이 껄끄럽다는 말이다. 겉모양만 보고 상대를 평가하지 않고 그 속을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은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사무치는 말이 아닐까 싶다.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만드는 방법은 선한 마음으로 남을 대하는 것임을 잊지 말라고 한다.
제3편 주나라 목왕의 세상 유람 - 깨어 있을 때와 꿈꿀 때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쉽게 말하면 이상과 현실의 경계쯤일까? 어느 쪽이 참되고 어느 쪽이 허망하다고는 말할 수 없으나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다. 꿈에서는 즐거웠으나 그 꿈을 깨고나서 괴롭다는 것도 매양 한가지라는 말이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허망한 것인지 진실된 것인지를 묻고 있다. 다시말해 외부의 자극에 의해 변하는 사람의 감정은 일정하지가 않으니 의식이나 감정 모두 불안전한 것이라고..
제4편 공자는 진정한 성인이었는가? - 공자와 그의 제자가 나오는 대목이다. 생각해보면 공자는 인과 예를 논했던 사람이니 무위를 이야기했던 노장사상가들과는 다른 인물일 것이다. 그렇다면 공자를 다룬 4편의 이야기는 무슨 의미일까? 그렇다고해서 공자에 대해 탐탁치않다는 말은 없다. 단지 성인으로 인정받는 공자의 이야기를 통해 기본 도리를 설명해주고 있을 뿐이다. 있어도 없는 것처럼, 잘났어도 그 잘남을 내세우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힘세다고 소문난 사람과는 달리 정말로 힘센 사람에게는 그 힘을 써야 할 일이 정작 생겨나지 않는다는 말은 되새겨볼 만하다.
제5편 탕임금이 추구하는 진리 - 나만의 잣대로 남을 재지 말라. 자기의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옳다, 그르다 비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니 나와 다르다고 이상하게 보는 견해를 버리라고 충고한다. 세상의 일들은 한가지 기준에 의해 처리되지 않는다. 논리적으로는 맞을지 몰라도 사실이 그와 다른 경우는 많은 까닭이다. 여기서 '우공이 산을 옮기다'라는 우화가 등장하고, 아침 해와 대낮의 해는 어느 편이 우리로부터 더 멀리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졌던 공자의 예가 나온다. 그만큼 자신만의 잣대로 세상일을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제6편 절대적인 운명 - 사람에게 있어 능력과 운명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사람의 모든 일이 자신의 힘으로 되는 것이라고 믿고 있는 능력이 운명에게 말했다. 그대의 하는 일이 나와 견주어본다면 어떻겠는가, 하고.. 정해진대로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 바로 운명이라고, 사람의 능력이나 재능 혹은 지혜가 운명에 의해 좌우된다고 열자는 대답하고 있다. 저절로 그렇게 되도록 정해졌으니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것이 또한 운명이라는 말이다. 사람마다 제각각 서로 다른 것이 운명이라고도 한다.
제7편 양주는 어떤 사상가인가? - 양주는 자신만을 위하는 사람이다. 명예나 욕망 따위에 구애됨이 없이 자유롭게 자신의 본성과 감정에 충실하면 된다는 게 양주의 인생관이기도 하다. 못났건 잘났건 죽는 것이 사람이니 살아있는 동안 욕심 부리지말고 자연스럽게 되는대로 즐기며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무엇때문에 번거롭게 禮를 지키며 살아야 하느냐는 그의 말을 뒤집어보면 잡다한 禮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유가에 대한 반박이라 생각해도 무리는 아닐 듯 싶다. 유가에서 말하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말에 대한 반박도 있다. 자기 자신이나 집안을 잘 다스리지는 못해도 나라를 잘 다스리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하고 있는데 나조차도 굳이 잘못된 말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은 건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다.
제8편 하늘의 도에 들어맞는 올바른 말 -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정리했다. 그런데 8편에서 오히려 더 많이 공감하게 된다. 모든 결과는 자기의 행동에 원인을 두고 있다는 말도 그렇고, 재주가 있다한들 적당한 기회를 이용할 줄 모른다면 그 또한 무용지물이 될 수 밖에 없으니 알맞은 때가 언제인지를 판단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도 그렇다. 자시의 처지를 잘 알아서 행동해야한다는 말도 되새겨볼 만 하지 않은가 말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나 어떤 일의 겉모습보다도 그 속에 담겨있는 내용을 더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형식적인 명분과 사실을 잘 분별할 줄 알아야 하는 까닭은 사실과는 아무 상관없는 명분 때문에 자기 일생까지도 망치는 수가 많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 세상의 사람과 생물은 모두가 동등한 입장에서 공존하고 있다는 말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세상의 만물이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착각하지 말라는 말이다. /아이비생각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