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은 왜! 사라지는가 - 배부른 세계의 종말, 그리고 식량의 미래
빌프리트 봄머트 지음, 전은경 옮김 / 알마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쭈욱~ 진행될 것이다. 과거의 전쟁이 영토를 넓히기 위함이었다면 현재와 미래에 치러질 전쟁은 그야말로 살기 위한 전쟁일 것이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식량과 물을 확보하기 위해 세계의 여러나라들은 이미 전쟁의 서막을 알리고 있다. 어찌보면 그 식량과 물을 얻을 수 있는 토지를 찾아 헤매는 것이니 또다른 영토전쟁일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런 전쟁을 어느정도는 예방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이익집단이 이끄는 세계의 흐름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멸의 길을 걷고 있는 인류의 방향을 보게 된다. 누군가는 말했다. 지구 최대의 적은 인간이라고. 진화라는 옷을 입기 시작하면서 인류는 멸망의 길을 걷기 시작했던 것이라고. 수많은 영상매체를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는 메세지는 많았다. 하지만 우리는 철저히 외면하고 있을 뿐이다. 그럴싸한 말로 둘러대며 비껴가기만을 반복할 뿐이다. 

우리에게 과연 핑크빛 미래는 올 수 있을까? 핑크빛 미래라는 말은 도대체 어떤 것을 두고 하는 말인지 다시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종말론이 판치는 세상속에서 어쩔 수 없는 인류의 멸망을 다시 논하게 된다.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은 사람이 점점 늘어만 가는데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치는 취해지지 않는다. 아니 조치를 취한다는 것이 오히려 그들에게 더 심한 배고픔을 선사하고 말았다. 왜 그럴까? 답은 간단하다. 정치적 이해관계와 경제적 이득이 기아와 도덕에 우선하기 때문이라고 이 책은 목소리를 높인다. 자연의 재앙이라고까지 말하는 기후의 변화는 심각하다. 그 원인을 파헤쳐보니 그 역시 답은 간단했다. 환경을 보호하지 않았다는 말은 지극히 미세한 일부였을 뿐이다. 결국 산업화로 인한 개발이 문제였던 것이다. 많은 경로를 통해 지구의 허파라고 불리워지는 곳까지 개발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산업화라는 게, 문명이라는 게, 진화라는 게 자연적인 것으로부터 멀어질수록 좋아지는 것일까? 분명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너무 쉽게, 너무 많은 것을 얻어내고자 하는 욕심이 앞선 까닭이다. 옛날 방식대로, 그야말로 자연의 흐름에 맡겨두는 농업 방식은 빠른 시일내에 더 많은 이익을 원하는 집단에게는 방해꾼일 뿐이다. 책을 통해 말만 번지르르했던 녹색혁명이나 유전공학의 폐해를 보게 된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부아가 치민다. 그들만의 잔치에 노예처럼 먹을 걸 대주는 집단이 바로 개발도상국이었던 것이다. 철저한 실험대상이 되어 결국엔 남는게 하나도 없었다는 말이다. 예전 농업, 다시 말해 산업혁명이 시작되기 전의 농업이 수행하던 다양한 기능을 다시 부활시켜야 한다(-272쪽) 고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묻혀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해서 기아와 빈곤에서 벗어났음은 물론 그 주변환경이나 토양까지 되살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잘먹고 잘사는 세상을 꿈꾸고 있는데 식량은 왜 사라지는 것일까? 이 책은 자멸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인류를 향한 경고장이다. 하긴 이 책말고도 수도없이 경고장은 날아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세계를 이끌어 가고 있는 정치는 그것을 외면하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식량이 사라지고 있는 그 아픈 속내를 들여다보게 된다. 이미 진행된 기후변화로 인해 지구온난화라는 현상이 생겨났다는 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쪽에서는 비가 너무 오지않아 사막화되어 가고 있는데 저쪽에서는 비가 너무 많이 내려 홍수가 난다. 그럼으로 인해 인류를 먹여살려야 할 비옥한 땅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비옥한 땅이 사라진다는 것은 식량 생산면적이 줄어든다는 뜻이다. 이미 한계에 도달한 나라도 있다. 거기다가 물전쟁도 예고되었다. 사막화되어가는 토지를 살리기 위해 끝없이 지하수를 퍼올렸다. 물 비축량이 현저하게 줄어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물이 없는 곳에서 작물은 자라지 않는다. 인구는 늘어나는데 먹을 식량은 점점 적게 생산되는 것이다. 인공관개시설을 갖추고 좀 더 생산력을 높이려 애를 쓰지만 오히려 작물의 품종만 줄어 들었을 뿐이었다. 세계를 부양하는 식물의 종이 겨우 15가지라면 믿을 수 있겠는가? 그것마져도 자세히 살펴보면 세계 식량의 절반을 책임지는 게 쌀과 밀뿐이라고 한다. 쌀이 26%, 밀이 23%다. 거기에 겨우 9%라는 작은 비율로 옥수수와 감자가 돕고 있을 뿐이다. 미국의 에너지정책에 의해 그 옥수수마져도 식량으로써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육식위주로 변해가고 있는 식습관도 한몫 거든다. 1Kg의 고기를 얻기 위해 9Kg의 곡물이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고기를 포기하고 빵으로 대체한다면 엄청난 양의 식량이 될 수 있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또한번 부아가 치민다. 우리는 왜 우리의 좋은 식습관을 버리고 서양식의 구조를 따라가고 있는 것일까?  그 안에 숨겨진 것은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따라가기에만 급급한 우리의 모습... 마치도 선진국의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듯이 흉내내기에 바쁘다. 콘크리트나 시멘트에 깔려 흙이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해 무더운 여름이면 열대야에 시달리는 건 둘째치고, 아동들에게 나타나고 있는 성인병의 증세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 다시한번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외면하고 있을테지만... 육식으로 인해 세계의 기아율은 높아만 간다. 그리고 세계의 곡물 시장을 텅비게 한다. 힘들게 농사지어 생겨난 곡물을 돼지나 소, 닭에게 퍼먹이고 있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는 육식의 욕구를 채우지 못해 단순히 고기만을 얻기 위한 가축을 비정상적으로 사육하게 되었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다. 그렇게 해서 인류가 얻은 것은 광우병과 같은 가축병이었다. 인류가 먹을 수 없는 소의 부분들이 다시 소를 먹이기 위한 사료가 되고, 양어장에서는 생선가루로 만든 사료를 먹이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가 소를 먹고, 물고기가 물고기를 먹는 형국이다. 어디 가축뿐일까? 유전공학이라는 포장으로 다시 태어나 재배되어지는 식물조차도 탄저병과 같은 병으로 모두 시들어버렸다는 사실이다.

인구는 12년마다 10억명씩 증가한다. 매일 22만명의 신생아가 세상의 빛을 본다. 1년이면 약 8,000만 명이다. (-148쪽)  우리나라의 인구수보다 두 배 가까이되는 사람들이 1년마다 태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1초가 지날때마다 세계가 먹여 살려야 할 인구가 세 명씩 늘어난다는 말은 두렵기까지 하다. 중국과 인도 다음으로 먹여 살려야 할 입이 세번째로 많은 나라가 미국이다. 그 많은 사람이 무엇을 먹으며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걱정하는 사람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그러니 인류에게 무슨 핑크빛 미래가 있겠는가 말이다.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국제기구를 설립한다한들 소수의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는 한 그것은 탁상공론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데 이 책이 제시하고 있는 해결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옛날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흙 한줌에는 미세한 단세포동물에서 지렁이에 이르기까지 약 50억의 생물이 삽니다. 거의 지구전체에 사는 사람들만큼이나 많은 생물이 사는 셈이지요. 바로 이들이 하는 일이 식량생산에 기초가 됩니다." (-81쪽) 개발만이 능사는 아닌 것이다. 산업화만이 인류가 살 수 있는 길은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외면하는 진실은 너무나도 많다. 지치지않고 발표되는 저들만의 시나리오에 의해 정책의 희생물이 되는 것은 너무나도 많다. '정치때문에'라고 말한다는 것이 참으로 서글픈 느낌을 준다. 세계의 식량 위기는 21세기의 정치문제이자 해결해야 할 근본적인 도전이다. 또한 이는 시간의 문제이기도 하다. 시간은 우리에게 불리하게 흐르고 있다.(-351쪽) 이 마지막 말이 많은 사람에게 경각심을 일으킬 수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아이비생각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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