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되옵니다 - 5천년 한중 역사 기록이 증언하는 올바른 권력
이동식 지음 / 해피스토리 / 2012년 4월
평점 :
품절


첫째, "전하, 아니되옵니다!" 

둘째, "전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셋째, "전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이 세마디만 듣는다면 연상되는 시대가 언제일까?  굳이 답을 말하지 않아도 우리 머리속에 이미 그려지고 있는 그림이 있을 것이다. 재미삼아 하는 말이긴 하지만 왠지 씁쓸한 여운을 남기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그 "아니되옵니다!" 라는 말을 제대로 할 줄 아는 사람이 올바른 신하라는 말이 나온다. 오래전 어느 광고에서 모두가 '예'라고 말할 때 '아니오'라는 말하는 사람, 이라는 말을 쓴 적이 있었는데 사실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건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지금처럼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더더욱이나 그렇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예나 지금이나 그다지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도대체가 요즘 아이들은...' 하면서 혀를 차는 기성세대도 아이적에는 그런 말을 들었듯이 말이다. 그만큼 우리가 살아가는 삶은 형태만 조금씩 바뀔 뿐이지 근본적인 것은 변화를 거부하는 모양이다.

 

책을 읽다보면 정관의 치(貞觀之治)라거나 정관정요(貞觀政要) 라는 말이 많이 보인다. 찾아보니 '정관의 치'라는 것은 당나라 황제 이세민의 시기를 말함이고, '정관정요'라는 것은 이세민과 신하들이 정치에 대해 말했던 것을 엮어놓은 책이라 한다. 그런데 그것보다도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그 시기가 바로 중국을 통틀어 기록된 역사중에서도 손꼽을 수 있는 정치의 시기였다는 것이다. 물론 그 때가 당나라의 전성기였음은 뻔한 일이다. 수백년동안 조선의 과거시험에서도 필수였으며 일본에서는 지도층의 필독서였다는 말도 보인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오로지 학문으로써의 역할로 끝났던 모양이다. 왕권과 신권을 놓고 끝없는 다툼만을 벌였던 것을 보면. 물론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책을 펼쳐보면 크게 왕의 권력과 신하의 권력, 이 두가지로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느 쪽도 만만치가 않다. 왕이라고 하여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왕을 올바르게 보필해야 했던 신하들의 역할도 쉽지않다는 걸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다.  '정관의 치'라고 말하는 그 시대를 대표하는 위징, 방현령, 장손무기와 같은 신하들처럼 우리 역사속에서 두드러지는 인물은 누구일까?  '5천년 한중 역사 기록이 증언하는 올바른 권력'이라는 책표지의 부제처럼 저자는 한국과 중국의 역사를 바쁘게 오간다. 어차피 우리의 역사와 중국의 역사는 아우를 수 밖에 없는 까닭일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기왕 사대주의로 점철되는 이야기라면 좀 더 좋은 점만 받아들여 우리 것으로 만들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것이다. 

 

'역사속에 답이 있다'... 많이 들어왔고 또한 정말 옳은 말이라고 인정하는 말 중의 하나다. 저자 역시 끊임없이 요구를 하고 있다. 역사속에서 배우라고. 이러이러한 책이 있으니 좀 읽어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정치를 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면 제발 좀 눈을 뜨고 귀를 열어 백성의 마음과 소리를 보고 들으라고. 책장을 덮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죽했으면 이런 책을 세상에 내놓았을까? 라는. 정권이 바뀌는 시점을 눈앞에 두고 오죽 답답했으면 이런 책을 내놓았을까 싶은... 정치를 하는 사람이든 아니든 어떤 것을 붙잡아야 하고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하는 가를 알려주고 싶어하는 마음이 오롯이 담긴 책이 아닐까 싶다. 책의 흐름이 좀 딱딱하긴 하다./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 - 우리가 알고 있던 만들어진 아프리카를 넘어서
윤상욱 지음 / 시공사 / 201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프리카.. 눈을 감고 가만히 생각해본다. 내가 떠올릴 수 있는 아프리카의 이미지는 어떤 것인지.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게 '동물의 왕국'이다. 그리고 떠오른 것이 얼마전 모방송에서 한창 인기를 끌었던 '눈물' 시리즈중의 하나인 다큐멘터리  '아프리카의 눈물'이었다.  그것말고도 아프리카를 주제로 얼굴을 내밀었던 작품은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하나같이 문명에 의해 야금야금 파괴되어가고 있는 숲을 그리거나 아직까지도 그들만의 삶의 형식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는 그 지역의 부족민들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비춰진 그들의 모습조차도 서서히 자신의 얼굴을 잃어가고 있었다!)  제목을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이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다'라는 말이었다. 장난삼아 하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와 이 책의 제목이 안고 있는 의미는 天壤之差다.  단순히 그 모양만을 가지고 하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는 것일까?  거기다가 우리가 알고 있는 아프리카는 만들어진 것이라한다. 무슨 이유에서?  그러니 그들의 속내를 들여다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일게다.

 

이 책의 주제를 먼저 살펴보았다. 가장 먼저 알려주고있는 그들의 정체성은 왠지 씁쓸했다.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왜곡된 채 다가왔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세계사에서는 아프리카를 왜 그렇게 외면했으며 저토록이나 무시했던 것인지 먼저 알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아주 오래전에 (이 책속에서도 언급되어진 것이지만) 알렉스 헤일리라는 작가의 <뿌리 Roots>라는 작품속에서 보았던 흑인노예의 이름이 떠올랐다. 발가락을 잘리면서까지도 포기하지 않았던 자유를 향한 그의 끝없는 갈망이 얼마나 가슴을 조이게 했었는지... 그 느낌은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런데 그것이 오직 작품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정말로 그들, 흑인들의 속내였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입만 열면 시끄러운 종교적인 문제나 정치적인 문제는 제쳐두고 두번째로 강하게 다가왔던 주제가 빈곤과 저개발에 관한 것이었다. 일전에 책을 읽으면서 속으로 분을 삭여야 했던 <식량은 왜 사라지는가!>가 떠올랐다. 강한자들의 철저한 잇속계산으로 인해 정체성을 잃어야만 했던 그들의 삶은 정말이지 절절했다. 굶어 죽어가는 아프리카의 생명들이라니! 하긴 그것을 누구의 책임이냐고 물을수도 없을 것 같다. 얼마나, 어떻게 도와야 하는가조차 묻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원인과 결과를 따져묻기 전에 그들은 지금 絶體絶命의 순간앞에 서있는 듯이 보여지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아프리카는 아프리카에 없었다. 어쩐지 낭만적일 것같은, 왠지 우리의 마음속에 작은 여유한조각 전해줄 것만 같은 그런 아프리카는 없다는 말이다. 철저하게 포장지로 가려진 그들의 삶을 보게 되었다. 가끔 TV속에서 봉사하러 떠난 이들의 모습을 볼 때가 있다. 학교를 지어주고 책과 공책도 나누어주고, 우물도 파주고.... 그런데 나는 그때마다 왜 그런 생각을 했었는지 모르겠다. 저들이 돌아오고 난 뒤에 남겨진 그들은 과연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만들어준 상태를 그대로 유지할 수는 있는 것일까?... 그런데 그것이 나만의 기우가 아니었다는 걸 알고나니 왠지 가슴 한켠이 저렸다. 물론 그들만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못지 않게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노력 또한 필요하리라는 생각도 해 보게 된다. 먼저 깨인 사람들에 의해 망가져 버린 그들의 의식에 대한 책임은 외면하지 말아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속을 들여다 본 아프리카는 앓고 있었다. 그것도 중병으로. 안타까움만이 남았다.  그러나 책표지의 말처럼 누군가는 진정으로 아프리카의 눈물을 말해야만 할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린다.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미FTA 완전정복
이완배 지음, 오동진 그림 / 미래를소유한사람들(MSD미디어)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한미FTA를  國家百年之大計로 바라 봐야 한다는 말이 왠지 인상적이라는 생각을 한다. 개인적인 일이 되었든 국가적인 일이 되었든 어떤 일을 시작함에 있어서 지금 당장만을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어 하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미FTA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에 뭔가 미흡함이 있었기에 저런 말이 나온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솔직하게 말해 한미FTA라는 것을 그다지 심각하게 바라본 적은 없었다. 그냥 흘러들어오는 정보만으로 대충 그런건가보다 하는 식의 느낌만 있었을 뿐이다. 보통의 사람이 구석구석 알고자 하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설령 알고자 한다해도 세세하게 알아내기가 그리 만만치 않아 보이는 과제임은 분명할 터다. 한참 世間의 시끄러움으로 고성이 오갔더랬다. 그래서 한번쯤은 그 주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고 싶었기에 선뜻 손을 내밀었다. 自由貿易協定(free trade agreement) 이라는 말로 ''국가 간 상품의 자유로운 이동을 위해 모든 무역 장벽을 제거하는 협정' 이라고 풀이되는 FTA, 과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책의 주제를 살펴보면  일단 '한미FTA를 어떻게 봐야 하나' 부터 짚고 넘어가자고 한다. 그리고나서 자유무역(Free Trade)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물론 자유무역의 주체인 미국에 대해서도 바로 알아야 할 것이다. 反美니 親美니 아무리 떠들어대도 모든 일에는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다. 이 책에서 어느정도는 말하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ISD'나 'RACHET조항'같은 말 따위는 누가 설명해주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라는 거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해하기 쉽게 예를 들며 알려주던 부분부분을 통해 한미FTA가 무엇인지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었다. 외교면에서, 사회면에서, 식량면에서와 같이 여러각도로 짚어본 한미FTA의 모습은 왠지 씁쓸하게 다가온다. 잘은 모르겠으나 책의 그림처럼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처럼 보여지기도 한다. 그래서 좀 더 신중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토로하는 마지막부분이 강한 울림으로 남겨진다.

 

책을 보면서 아하, 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던 부분이 많았다. 한미FTA에 대해 전부를 말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동안 궁금했던 것들에 대해 어느정도는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는 말이다. 주제가 무거운지라 만화를 통해 가까이 다가설 수 있도록 배려해 준 점은 좋았다. 하지만 꼭 그런식의 문체를 써야만 했을까? 현정부에 대한 비판이나 현대통령에 대한 말투는 솔직히 껄끄러웠다. 많은 사람에게 한미FTA가 무엇인지, 왜 그것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설득하기 위한 책이기보다는 반체제적인 느낌이 더 강하게 다가와 이 책을 쓴 동기가 순순하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아직은 어린 학생들이 이 책을 봐도 되냐고 묻는다면 조금은 망설여질 것 같다. 그냥 한미FTA가 무엇이며 우리에게 어떤 得과 失을 가져올 수 있는지, 우리가 그런 점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를 지도해 줄 수 있는 책이었다면 참 좋았을거라는 안타까움이 남는다. 어떤 것이 옳고 어떤 것이 그르다고 말 할 수 있는 혜안이 내게는 없다. 그만큼 알고 있는 것도 적다. 그러나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다.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붓다, 일어서다 - 21세기 한국과 불교의 커뮤니케이션
손석춘 지음 / 들녘 / 201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회가 썩어갈 때, 그것을 건강하게 할 책임이 네 군데 있어요. 종교계, 교육계, 언론계, 법조계죠. 그런데 어떻습니까. 그 네 곳이 더 썩지 않았습니까? 가장 많이 썩은 게 종교계지요. 그러니 모든 사람이 돈만 좇을 수밖에요." (-30쪽)

 

종교... 언제부턴가 우리는 종교이야기를 하면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했다. 심한 경우 자신의 종교를 자신있게 앞세우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 듯 하다. 마음의 안식을 찾기 위해서라는 궁극의 목적을 잃어버린 탓이라고 나는 감히 말한다. 수단이 되어버린 종교..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작금의 상황으로 볼 때 종종 종교인의 각성을 촉구하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러나 따지고보면 그 누구의 잘못이라고 꼬집어 말 할 수 없다는 것도 인정해야만 한다. 그래서 이 책은 나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쓰러져가는 혹은 무너져내리는 어떤 것을 제대로 세우기 위해 누군가는 다가가야 하고 또 누군가는 힘을 써야하는 까닭이다.

 

얼마전 우연히 TV를 보다가 변해가는 유럽의 기독교인들에 대한 다큐를 보게 된 적이 있었다. 불교적인 명상수행이 그들의 기도처에서 행해지고 있었는데 한 사람도 그것에 대한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는 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했던 말이 생각난다. 종교를 통해 진정한 마음쉼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진정한 종교가 아니겠는가,라는....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 사실 모든 종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같을테니 말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절집이 세상으로 내려와야 한다는 말에 찬성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 책은 산중의 붓다가 이제는 '시장'으로 내려와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단순하게 형식적인 의미만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종교가 기독교가 되었든, 불교가 되었든 세상속으로 걸어들어올 만큼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가를 먼저 따져보고 싶은 것이다. 우뚝 선 모습으로 우리 삶의 지렛대 역할을 해 줄 수 있다면 그것처럼 멋진 일도 없을테니... 변화를 위한 그들만의 노력도 책을 통해 알려주긴 하지만 세상이 소수보다는 다수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니 쉽진 않아 보인다. 나와 다른 소수를 안아주지 못하는 세상이 바로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모습인 것을... 책을 읽으면서 내내 안타까움에 마음을 졸였다.

 

책을 읽던 중에 문득 생각나 표지의 그림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머리위의 초에서 흘러내린 촛농이 마치 부처의 굵은 눈물처럼 보여 보는 마음을 싸하게 만들었다. 저 부처는 떨어지는 촛농이 뜨거워 우는 것은 아닐까? 차마 눈을 뜨지 못한 채 굳게 다문 입술로 말하고 싶은 건 무엇일까?  많은 의미를 담은 듯한 그림을 보면서 이 책이 종교서적인가를 묻고 싶었다. -21세기 한국과 불교의 커뮤니케이션- 이란 부제를 달아놓긴 했어도 종교를 빌미로 너무나도 많은 것을 말하고 있는 까닭에 읽으면서 조금은 껄끄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저자가 어떤 마음으로 종교와 사회적인 현상을 빗대어 말했는지 그 깊은 속내를 알 수는 없다. 돌아가신 김수환 추기경이나 성철스님처럼 우리에게 이정표가 되어줄 인물이 없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큰 목소리로 시끄럽게 떠들지않아도 울림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처럼 좋은 일도 없을테지만, '불교적 시각'이라는 어려운 말속에서 '소통'이라는 열망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 조금은 무리수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드는 것이다. 불자가 아니어서일까? 내가 받아들이기에는 그랬다는 말이다.

 

사실 나는 아직까지 종교가 없다.  친구따라 주변따라 어린시절 교회에 나가본 적은 있지만 나이들어 종교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면 천주교인이나 불자가 되리라 생각하고 있던 참이다. 때때로 성당이든 법당이든 들어가 기도하고 잠시 앉아 있기도 한다. 붓다의 가르침이 '지금 여기서'라는 울림을 줄 수 있다는 말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책을 읽고 얄팍하게나마 전해받은 느낌이 있기는 있다. 하지만 책장을 덮으면서도 흔히 말하는 '진보성향'이라는 말을 지울 수가 없었다. 방심하고 있다 돌려차기에 당한 그런 느낌이랄까?  내가 순수한 종교서적을 생각하고 있었던 탓인지도 모르겠지만 솔직하게 말해 종교보다는 우리곁에 만연한 사회적 현상을 더 많이 이야기하고 있다. 그것도 직설적으로. 뒤에 남는 여운이 그다지 명쾌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의 가려운 곳을 긁어줄 누군가의 손을 기다리고 있는 절박함에 공감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어쩌면 이미 학습되어져버린 가치로 모든 것에 대한 판단을 내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교육의 현실은 또다시 나를 아프게 한다.  

 

'1+9=ㅁ' 와 같은 문제 유형을 보자. 우리가 흔히 비교하는 핀란드나 스웨덴 학교에서는 '1+9=ㅁ'와 같은 문제를 내지 않는다고 한다. 'ㅁ+ㅁ=10'의 유형이다. 1+9=ㅁ에서 ㅁ안에 들어갈 정답은 하나지만 ㅁ+ㅁ=10의 정답은 하나가 아니다. 무궁무진이다. 1과 9나 2와 8만이 아니다. -48과 +58을 적은 친구도 나오고, 2.13과 7.87 따위로 적은 학생도 있다.(-181쪽 참조)

창의적인 사고를 외치는 우리 교육의 현주소를 보는 것 같아 씁쓸했다. 몰라서 못하는 것은 아닐테니 더욱이나 그렇다. 다 알면서도 모른 척 외면해버리거나 나아닌 누군가가 나서주기를 바라는... 그 스님의 말씀처럼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불교의 존재원리를 제대로 이해할 수만 있다면 정말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것일까?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골무사 이성계 - 운명을 바꾼 단 하루의 전쟁
서권 지음 / 다산책방 / 201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골무사라는 말이 선뜻 내 앞으로 달려나왔다. 시골무사라... 그리고 그 옆의 작은 이름 이성계... 책을 앞에 두고 나는 생각해보았다. 이성계라는 이름에 대해 나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 물었다.  위화도 회군, 최영장군, 조선을 건국한 사람, 이방원, 함흥차사... 그 언저리만 맴돌다 말았다. 어쩌면 나에게 있어 역사라는 게 단편적인 조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 그때문이었다. 깊은 속내까지 짚어내지 못하고, 지금까지 내가 생각해보지 않았 순간 너무 많았구나 싶조금은 당혹스러웠다. 이 책의 밑그림은 분명 사실일터인데 자꾸만 허구처럼 느껴지는 것도 당혹스러웠다. 깊이있는 울림이 짧은 문체속에서 살아숨쉬고 있는, 그래서 단 하루만의 이야기였으나 너무나도 단단히 나를 조여오던 이야기. 그래서였을까? 그사람의 뒷모습이 그려진 마지막 그림은 너무나도 쓸쓸했다.

 

배경장면으로 깔린 살풍경.. 복잡해보이지만 복잡하지 않은.. 마치 어린시절 오빠와 마주앉아 실뜨기를 하며 하나씩 엮어가던 그런 느낌과도 같았다. 손가락마다 걸린 실 한 줄팽팽함과 오빠 손가락에 망처럼 걸린 실그림을 다시 내 손가락으로 옮겨오던 그 진지함이 책을 읽는 순간 나를 찾아왔다. 안풀릴 것 같아도 하나하나 제자리를 찾아가며 많은 것을 이야기해주고 있었다. 고려가 왜 조선으로 탈바꿈해야만 했는가를.  물론 정도전과 이성계의 만남의 고리처럼 조금 미흡했다고 느껴졌던 부분도 있다. 잠시 등장하는 어린 난이의 이야기속에서 아무것도 찾아낼 수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죽고 죽이는 처절한 전쟁을 다루면서 순수함을 대표하는 아이의 눈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어했던 것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경기전에 위리안치당한 듯 하다던 작가의 말이 왠지 쓴소리로 들렸다. 가시로 울타리를 만들고 그 안에 사람을 가두어두는 형벌이 위리안치다. 중죄인에 해당하는 사람을 이 형벌에 처했다. 그렇다면 이성계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어쩌면 죄인은 우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겉핥기식으로 대충 훑어내리는 우리의 역사인식을 되돌아보아야 한다고. 소설 한 권 읽으면서 이 무슨 거창한 화두를? 그냥 내게 던지는 질문일 뿐이다. 우리의 역사속에서 살아숨쉬는 이름들을 적어도 위리안치만은 모면하게 해야 한다고. 그러고보면 우리 주변에 위리안치당한 이름이 수도없이 많다. 

 

단 하루만의 이야기였다. 그렇게까지 나를 조여오던 이야기가... 책장을 덮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이 또다른 매체를 통해 재탄생되어질 수 있을까? 그 촘촘한 올무의 은근한 조임을 표현해낼 수 있을까? 종이책이었기에 가능했을 그 조임의 느낌을 오래도록 간직할 것 같다. 죄송한 말 한마디만 하자면 <남한산성>을 휘돌아치던 김훈의 마력같은 힘이 느껴지기도 한다. 군더더기없이 깔끔한 문장들이 너무나도 좋았다. 가쁜 숨결을 함께 느낄 수 있어 좋았던 시간이었다. 그 내면까지 들여다보지 못했던 한 남자의 고뇌를 함께 느껴보자고 이끌어주심에 감사드린다.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