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 향기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찜통더위라는 말이 실감나는 여름이다. 이런 여름엔 뭔가 시원하게 느껴질 수 있는 게 필요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서운 이야기에 빠져들기도 하고, 무서운 영화를 찾아 보기도 한다. 가끔은 더위를 잊을 수 있을만큼의 집중력과 재미, 스릴을 느끼게 해주는 추리소설에 빠져보기도 한다. 그런데 이 책은 제목에서부터 시원함이 묻어 있다. 수박향기... 에쿠니 가오리라는 낯설지 않은 이름과 함께 찾아 온 이 책, 사실 단편집이라는 것 때문에 잠시 망설이기도 했지만 작가의 이름이 오랜만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이 책을 선택하는데 그다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흔히들 감성적이라고 말하는 그녀의 문장속에 나의 이 무더운 여름을 녹여낼 수 있을까? 욕심을 부려보기로 했다는 말도 되겠다.

 

한여름 방학때면 내려갔던 시골 할머니 집에서 저녁을 먹고 밤이면 모깃불을 피워놓은 채 툇마루에 모여 앉아 수박을 먹으며 할머니께 옛날이야기 해달라고 조르는 장면이 떠오른다. 그러면 할머니는 할 듯 안할 듯 망설이다가 은근 분위기를 잡으며 말씀을 시작하신다. 흠흠, 옛날에 말이다, 들판에 커다란 이층집이 있었는데 거기에 엄마와 딸이 살았단다. 어느날 엄마가 빨래를 널고 있었는데 아장 아장 걸어다니던 아이가 그만 베란다 난간에 올라가 떨어질 것 같았대. 깜짝 놀란 엄마가 냉큼 뛰어가서는 아이를 잡으려고 했는데 그만 아이가 떨어져 죽고 말았지. 이야기를 듣고 있는 아이들은 수박 먹는 것도 잊은 채 그 다음이 어떻게 되는지 귀를 쫑긋 세운다. 그리고 삼년 뒤에 두번째 아이가 베란다에 올라가 놀다가 또다시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만거야. 엄마는 예전 생각이 나서 얼른 뛰어가 아이를 잡았는데.... 잡았는데?  잡았는데.... 어떻게 되었나요? 눈을 동그랗게 뜬 아이들에게 할머니는 아주 느리게 작은 소리로 속삭이듯이 말했다. 아이가 엄마를 보면서 그랬다는구나... 이쯤에서 침넘어가는 소리, 꿀꺽!  왠지 으스스한 할머니의 목소리.. 엄마, 그 때 왜 나를 밀었어?  한동안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무서운 이야기인지 재미있는 이야기인지 잠시 어리둥절하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느낌이 들었다는 말이다. 열 한가지의 짧은 이야기들이 모두 비밀이야기다. 그런데 그렇게 특별한 비밀은 아닌 것 같다. 그저 누구나에게 한번쯤은 있었으나 굳이 말하지 않았던 그런 소소한 비밀이라면 딱 맞겠다. 첫번째 이야기 '수박향기'를 읽으면서 문득 떠올랐던 게 앞에서 말한 옛날 이야기다. 그때의 느낌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 비밀이라는 것도 따지고보면 마음 깊은곳에 묻어둔 작은 상처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주 오래된 상처 하나쯤 끄집어내어 보듬어 줄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괜찮을 것 같다.

 

작가의 이름만으로 책에 대한 흥미도가 높아지는 경우가 가끔 있다. 낚인다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그런 순간말이다. 그런데 대체로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작가의 경우가 거기에 해당된다. 그렇게 낚이는(?) 경우 책에 대한 실망감과 함께 그 작가에 대한 실망도 함께 따라온다. 상업적인 발상이 그런 결과를 낳는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이 책 또한 그런 경우가 아닌가 싶다. 오해는 하지 마시라, 이건 오로지 나만의 생각일 뿐이다. 나와는 다르게 느끼는 사람도 있을테니까. 비밀을 공유하기 위해 에쿠니 가오리의 책을 읽는다, 는 소개글이 있지만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나의 비밀도 말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것 같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냥 들어주기만 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괜찮다. 오랜만에 만나는 에쿠니 가오리라는 이름앞에 그녀와 비밀 이야기를 공유할 사람은 많을테니.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