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연명을 그리다 - 문학과 회화의 경계
위안싱페이 지음, 김수연 옮김 / 태학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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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春水滿四澤 夏雲多奇峯 秋月揚明輝 冬嶺秀孤松... 이란 시가 있다. 제목은 <四時>. 창경궁 함인정으로 가면 만날 수 있다. 함인정 내부 천장쪽으로 사방 벽에 걸린 현판이다. 東西南北 방향으로 春夏秋冬에 관한 내용을 담았다. 풀이하자면 이렇다. ' 봄 물은 사방 연못에 가득하고, 여름 구름은 기이한 봉우리도 많도다. 가을 달은 밝은 빛을 드날리고, 겨울 산마루엔 한그루 소나무가 빼어나도다'...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하면 각 계절마다의 그림이 머리속에 그려지기도 한다. 자연을 노래했다는 글은 왠지 모르게 정이 가는 것도 사실이다. 그만큼 사실적이고 그만큼 마음을 담아야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詩는 도연명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최근에 연구하시는 분들에 의해 유명한 중국화가 고개지의 작품으로 정정되었다는 말도 들린다. 도연명... 우리가 자주 듣는 이름임에는 분명한데 그 이름에 대해 나는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찾아보니 두보나 이태백과 같이 중국을 대표하는 시인이라는 말이 보인다. 내친김에 한번 더 찾아보았다. 이 세사람의 공통점이 보인다. 세상과 뜻이 맞지않아 오랜동안을 떠돌아 다녀야 했다는 것인데, 그리하여 그들은 세상의 어떤 틀에도 얽매이고 싶어하지 않았던 듯 하다. 그러니 당연히 자연주의적인 글이 많았을 터다. 자연을 담아낸 글도 많았을테고, 그들이 느꼈던 자연의 이치가 또 그 안에 담겼음은 당연지사다. 중국에서도 한때는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도가사상이 열풍을 일으켰던 시기가 있었다. 신선과 같은 삶을 살고 싶어했던. 그러나 그것은 현실과는 맞지않는 하나의 이상세계였으며, 그 환상은 오래도록 후대를 잇는 이상세계로 남은 것 같다. 이 세상은 끝도없이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고 소멸되는 틀에 맞춰야만 살아낼 수 있으니 그것에 환멸을 느끼거나 반항심이라도 생겼다면 누구나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건 기정 사실이다. 저 세사람의 이름이 후대에까지 추앙받을 수 있었던 건 아마도 보통사람들이 꿈꾸어오는 자연인으로써의 삶을 살아낸 까닭일 것이다.

 

그런 도연명을 그리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도연명을 그리다>라는 제목에서 나는 '그림을 그린다'라는 느낌보다는 그사람의 일생을 쫓는 하나의 일정을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책속에서 만난 건 도연명을 그리는 사람들이었다. 그림을 통해 도연명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했던 것 같은데, 그사람을 그린 사람들의 화풍이 시대별로 변해가고 있는 회화사에 더 많은 중점을 두었다. 도연명이 관직을 사임했을 때 노래했다던 <귀거래사(歸去來辭)> 가 이 책의 중심축으로 등장한다. 집으로 돌아간다는 그 자체에 너무나도 많은 의미를 숨겨두고 있기 때문이다. 어렵지 않게 詩를 쓰면서도 그 안에 자신만의 철학을 담고 있어 호평을 받고 있다는 작품은 말할 필요도 없이 전원생활을 주제로 한다. 문득 일전에 읽었던 책에서 끄적거렸던 말이 생각났다.  '시대와 더불어 사물은 변하고 사물의 변화에 따라 그에 대처하는 방법도 달라진다.' 는 말인데, 그리고자 했던 사람이 살았던 시대에 맞춰 도연명을 그리는 방법 또한 변했던 모양이다. 그리는 방법은 달라졌을지언정 도연명이라는 이름이 안고 있는 깊은 철학만은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 중요하다.  우리나라에서도 그 영향을 받아 태어난 작품이 많았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안견이 그렸다는 <몽유도원도>다. 그런데 어찌 생각해보면 그렇게 전원생활을 즐길 수 있었던 도연명에 대한 부러움이 그만큼 크다는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시대별로 잘 정리되어진 중국의 화화사... 하지만 내게는 조금 어려운 부분이 아니었나 싶다. 우리문화를 공부하면서도 회화부분에서만큼은 왜 그렇게 정리가 안되는지 머리가 아팠던 기억도 있으니 오죽할까...  예술적인 작품을 보는 안목이 없어서 그랬겠지만 자주 접하지 못하는 한계에 부딪히는 것도 또하나의 핑게거리가 될 것 같다. 어찌되었든 전원생활이나 자연으로의 회귀를 꿈꾸는 사람은 지금도 많다. 그러나 그 많은 사람이 부러워하고 생각만 할 뿐이다. 현실이라는 벽을 뚫고 나간다는 것이 두려운 것이겠지만 자연의 흐름에 자신을 맡긴다는 게 지금과 같은 세상에서는 녹녹치않은 일임엔 분명하다. '힐링 healing '이라는 말이 떠오르고 있는 요즈음, 도연명이나 두보, 이태백과 같은 사람이 아닐지라도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과 동경은 아마도 세대를 거듭할수록 커지지 않을까 싶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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