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다른 사람들 - 인간의 차이를 만드는 정서 유형의 6가지 차원
리처드 J. 데이비드슨 & 샤론 베글리 지음, 곽윤정 옮김 / 알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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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세상에는 정말 많은 사람이 살고 있다.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고 저마다 살아가는 모양새가 각각이다. 사실 따지고보면 삶의 형태가 특별한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은 듯 하다. 거기서 거기라는 말이다.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얼만큼을 가졌는가에 의해 좌우되겠지만 제각각 다르게 보여지는 형태는 한편 생각해보면 재미있기도 하다. 그래서 이 책에 관심이 갔는지도 모르겠다. 똑같은 책을 읽고도 서로 다른 느낌을 말하는 사람들, 똑같이 영화를 보았는데 나중에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그 안에서 강한 느낌으로 다가왔던 순간은 서로 다른 사람들.. 왜 그런걸까? 내가 궁금했던 건 그거였다. 같은 일을 겪어도 반응이 다르다는 것은 인간마다 가지고 있는 어떤 고유의 것이 다르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보았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 책, 나의 그 단순한 호기심을 채워주기에는 너무 무겁다. 솔직히 말해 뇌가 어쩌고, 실험이 어쩌고 하며 이야기를 시작하면 심각해지기 시작한다. 조금은 쉬운 말로 접근을 시도했다면 좀 더 이해하기 편했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해보았을 주제다. 나와 너는 왜 다르게 느끼는 것일까? 요즘의 화두는 단연 마음조절이다. 힐링이라는 것도 사실 따지고보면 마음조절을 하자는 말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굳이 좀 더 가까운 말로 표현하자면 마음내려놓기나 마음비우기쯤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래서인지 이 책은 처음과 마지막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를 바꾸기 위해서는 마음훈련이 필요하다고. 누구나 한번쯤은 이런 질문을 하거나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마음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걸까? 심장에 있다거나 뇌에 있다거나 둘 중 하나로 답이 나온다. 자신이 어떻게 느끼는가에 따라 답은 달라지겠지만 이 책을 빌어 말해본다면 마음은 뇌에 있다. 뇌의 움직임이 바로 그 마음상태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가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변화된다고 한다.

 

책에 나와있는 질문을 따라가며 나는 어떤 정서를 가진 사람인가 테스트를 한번 해 보았다. 첫번째 질문, 빠른 회복자형인가 느린 회복자형인가에 대한 답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회복형이다. 두번째 질문,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에 대한 답은 긍정적 관점형에 가깝고, 세번째로 나는 민감한쪽인가 둔한쪽인가를 체크해보니 어느정도는 사회적 둔감형쪽에 속한다고 나온다. 그런 반면에 네번째, 자기 인식능력은 그다지 부족하지 않고 조화를 잘 이루어내는 눈치백단형에 가깝다고 나온다. 다섯번째, 산만하지 않고 주의집중력이 그다지 나쁘지 않다는 마지막 결론을 보니 바로 앞의 질문에 어느정도 공감하게 된다. 그렇다고 내가 이 책속에서 말하고 있는 그런 결론에 대해 맹신한다는 건 아니다. 우리가 심심풀이로 가끔 말하는 혈액형의 성격과 무엇이 다를까 싶어 하는 말이다. 물론 이 책의 저자는 많은 실험을 통해 얻어낸 결과라고 하니 어느 정도의 신빙성은 충분히 갖고 있을테다.


어찌되었든 이 책을 통해 내가 얻어낸 결론은 이렇다. 사람의 뇌는 완성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앞서 말한 정서별 유형조차도 뇌의 움직임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것인데 쉽게 말해 타고난 정서유형은 없다는 말이다. 어떤 상황에서 지내는가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것이 사람인 까닭이다. 놀라운 것은 어린시절에 사람의 뇌가 어느정도는 굳어진다고 알고 있던 지식이 잘못된 것이라는 말이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사람의 정서 유형은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내 몸에 새겨지는 정서 유형은 내가 어떤 상황에서 살아가느냐에 따라 거기에 맞춰 변화된다는 말인데 개인적으로는 그 말에 공감한다. 양육이 천성을 이긴다는 저자의 말이 큰 울림을 내게 전해주었다. 조금은 딱딱하고 장황하게 전개된 내용이었지만 무슨 말을 하고 싶어했는지 어느정도 알 것도 같다. 나를 다시한번 돌아본다. 어떤 사람일까보다는 어떻게 살아가는 사람인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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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귀촌 정착에서 성공까지 - 베이비부머 은퇴 후 인생 2막을 위한
매일경제신문 경제부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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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내가 처음으로 논에서 피뽑기하는 장면을 보았던 때가 떠올랐다. 사실 나는 도시에서만 자라 논에 모를 내거나 추수하는 것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는데 결혼하고나서야 그런 장면을 처음으로 보았다고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장남이었던 남편은 무슨 때만 되면 불려가 일을 하곤 했다. 지금이야 추석전에 벌초하러가는 일만 하고 있지만 말이다. 제대로 허리를 펴지 못하는 남편을 도와주겠다고 굳이 말리는 데도 논으로 들어가려다가 동네 어르신께 꾸중을 듣기도 했다.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고. 정말 그랬다. 우리가 가장 쉽게 뱉어내는 말중에 '농사나 짓지' 라는 말이 있는데 그건 정말 쉽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라는 걸 나는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생활보다는 촌생활이 훨씬 사람사는 맛이 난다고 말하는 남편때문에 우리는 나이들면 촌으로 내려가자는 목표를 가지게 되었다. 지금도 아들녀석이 제 자리를 찾으면 미련없이 접고 떠나자는 말을 하곤 한다. 그런데 무슨 수로?  늙어서 살아내야 할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는 현실은 사실 가장 두려운 문제중의 하나가 아닐 수 없다. 내려가면? 그래 내려가면 뭘 먹고 살건데? 이렇게 묻는 친정엄마의 말씀에도 이렇다하게 답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니 말이다.

 

많은 사람이 꿈에 부풀어 귀농과 귀촌을 한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도시에서의 생활보다 못한 경우가 더 많다. 그야말로 모아놓은 돈이 많아서 땅사고 집짓고 꿈같은 전원생활을 누리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촌에 가서 농사짓고 산다고하여 생활비가 안드는 것도 아니니 그것도 만만찮은 일이다. 그래서 여러 방면으로 귀농귀촌에 대한 예를 성공과 실패로 나누어 보여주고는 있지만 결정내리기가 여간해서는 쉽지 않을 듯 하다. 각 지자체마다 교육도 시키고 지원도 해 준다고는 하지만 막연한 생각만으로 실행에 옮길 수 없는 일임엔 분명하다. 내용중에서 귀농보다는 우선 귀촌을 하라는 말에 시선이 갔다. 농사부터 지을 게 아니라 (굳이 농사가 아니라 다른 어떤 일이라해도) 우선은 촌에 가서 살아보는 것이 먼저라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 무엇을 해도 하라는 말인데 어느 정도는 공감하게 된다. 귀촌이라는 말은 우리가 잠시 이 도시의 일상을 떠나 쉬고 올 수 있는 것과는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잠시 즐기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더 나이들면 촌으로 가서 살자는 인생의 목표는 정해졌지만 지금 생각해도 깜깜한 일이다. 남들은 노후대책이다 뭐다 한참 준비하고 있다는 데 아직 그런 걸 준비할 만큼의 여유도 없고. 그러다 더 나이가 들면 아무것도 없이 빈손으로 내려갈수도 없는 일이니. 정착금을 지원해준다고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턱도 없는 일일게다. 그렇다고 수중에 가진 것 없으니 꿈도 꾸지 말라고 한다면 그건 더 비참하다. 어차피 멋진 전원생활을 하기 위해 귀촌을 꿈꾸었던 건 아니니. 지금부터라도 이것저것 내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것들을 알아본다면 괜찮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런 책에 담겨진 정보도 참 소중하게 느껴진다. 각 지자체마다 귀농과 귀촌을 원하는 사람을 위해 마련해 놓은 프로그램이 그렇게나 많다는 걸 책을 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씁쓸하게 결론을 내려보자면 이렇다. 수중에 가진 게 없으면 귀농귀촌도 어렵다는 것... 귀농귀촌도 하나의 사업이다. 먹고 사는 일이 그리 쉬운일은 아니니 촌이라해서 도시와 다를 게 무에 있겠나 싶다.

 

귀농 붐은 이미 시작되었다고 한다. 평범했던 월급쟁이가 촌으로 내려가 어떻게 부자가 될 수 있었는지 그 한 예를 보여주기도 한다. 어떤 분야에 도전을 하면 돈을 벌 수 있는지, 귀농을 하기 위해서 알아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 정부 지원시스템과 같은 걸 이용하라거나, 귀농귀촌을 위한 교육센터까지 책속에서 많은 정보를 알려주고 있다. 지금 귀농귀촌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끝부분에 부록으로 처리해 놓은 귀농귀촌 정보 사이트 는 귀농귀촌을 꿈꾸지 않는 사람이라해도 좋은 정보가 아닐까?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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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것들
필립 지앙 지음, 윤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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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것들.. 제목을 다시한번 들여다 본다. 나쁜 것들이란 말이 주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은 까닭이다. 이 책속의 주인공은 도대체 무엇을 두고 나쁜 것들이라고 말하고 싶었는지. 아니면 누군가를 향해 뱉어낸 독백이었는지.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작가의 생각속에 이런 것이 바로 나쁜 것들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건지.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니 세가지 모두가 다 맞는 듯 하다. 주인공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을 말하는 것도 같고, 주인공이 누군가를 향해 뱉어내는 목소리처럼 들리기도 하고, 작가의 의중이 숨겨진 말같기도 하다. 무엇이 되었든 그 세가지 모두가 좋은 것이 아니었다는 건 공감한다. 그러나 그렇게 독백을 뱉어내기 이전에 자신을 다시한번 돌아 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은 마음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은 누군가를 탓한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은 결국 나로부터 비롯되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내내 감정 몰입이 힘들었다. 책이 어렵거나 어려운 말이 많아서? 그렇지는 않다. 책 속에서 마주치는 모든 상황과 주인공의 심리상태가 나를 엄청난 무게로 짓눌러왔던 까닭이다. 답답했다. 얼른 그 안의 감정에서 빠져나오고 싶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뭐지? 도대체 이 사람들은 어째서 이렇게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거지?  자꾸만 흩어지는 혼자만의 감정을 추스리며 책장을 넘기고 그 마지막을 덮는 순간 나는 다시 그 속으로 들어가 말해주고 싶었다. 한번만, 딱 한번만이라도 상대방의 관점에서 생각해볼 수는 없겠느냐고. 어쩌면 그렇게 이기적일 수 있느냐고 묻고 싶었다. 모든 아픔은 상처를 남긴다. 단지 그 상처를 어떻게 치료하느냐는 각자의 몫이다. 그런데 우리는 누구를 막론하고 내 아픔부터 알아주었으면 한다. 너도 아프겠지만 너보다 내가 더 많이 아프니 제발 내 상처부터 봐달라고 울부짖는다.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은 그렇게 내 아픔부터 챙겨야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한 아이의 아버지였고, 또 한 여자의 남편이었기에 저만의 아픈 기억만을 끌어안고 있기엔 너무 이기적으로 보였다는 말이다.

 

한 남자가 자동차 사고로 눈앞에서 아내와 큰 딸을 잃었다. 불행하게도 그들을 잃었던 싯점은 과거 자신의 잘못을 용서받을 수 있는 기회와 겹쳐 있었기에 그 남자는 더욱이나 힘겨웠을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에게는 아직 남아있는 딸이 있었다. 자신과 똑같이 눈앞에서 엄마와 언니를 잃었던 어린 아이. 남자에게는 그 어린 딸을 돌보아야 하는 책임과 의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아픔과 고통만을 생각한 채 어린 딸을 방치했다. 그리하여 그 어린 아이는 두번의 상처를 입었다. 가슴속 깊이 각인되어질만큼. 엄마와 언니를 잃었다는 고통과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았다는 또하나의 고통을 여물지 않은 가슴속에 받아들여야만 했다는 말이다. 서로가 치유되지 못한 고통을 안은 채 세월이 흐른 후 딸은 배우가 되었지만 끝내 아버지의 사랑을 얻지 못했다. 온갖 못된 짓으로 아버지를 괴롭혔지만 자신의 결혼생활조차도 제대로 꾸려갈 수 없었다. 우울하고 불행한 나날의 연속, 그러면서도 끝없이 아버지와 대치한다. 괴롭히려고 그랬던 건 아니었는데 결과적으로는 당하는 자의 입장에서 괴롭힘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문제는 그 남자가 현실을 부정한다는 데 있다. 자신이 그렇게 살면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자신의 마음을 열지 못한 채 살아간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인 듯 하다. 딸 역시 그렇다.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그 사랑은 오지 않을거라고 스스로가 결론을 내려버린 채 역시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다. 누구의 탓도 아니다.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따지고 든다면 어찌되었든 어린 아이를 먼저 보호해주었어야 할 아버지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못한 부분이 더 나쁘게 보인다. 솔직하게 말해본다면 나 역시 자신만을 위해 살았던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딸중의 한명인 까닭에, 나는 딸의 입장에 더 많은 공감을 한다. 그래서 읽는 내내 답답함에 시달려야 했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듣는 이의 입장은 모른다는 식으로 자신의 감정을 아주 솔직하게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아버지의 말투에 화가 나기도 했다. 딱 한번만이라도 딸을 이해하려고, 보듬어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내 마음까지도 풀렸을 것만 같다.

 

어찌되었든 가족이라는 화두가 새삼스럽게 낯선 느낌으로 찾아온다. 내 부모, 그리고 내 부모의 부모가 살았던 시절속의 가족과 지금 현재의 가족이라는 말이 주는 의미는 분명 다르다. 가족애라느니 정이라느니 아무리 외쳐봐도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한 게 사실이다. 나만 그렇다고?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 세상은 아직 살아볼 만하다는 말을 해야 할 것이다. 비뚤어진 문명이 만들어낸 불협화음이다. 지금 우리의 삶에서 놓치고 살아가는 것중의 하나를 이 책을 통해 다시 보게 된다. 끝없는 메아리로 영원히 우리 주변을 맴돌지도 모를 그 목소리를 듣게 된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나쁜 것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하는 순간이 바로 이 책의 마지막을 덮는 그 때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아이비생각

 

곰곰이 생각해보니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타인의 고통과 관련해서는 기준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타인들에게 초래한 피해 상황을 확이한 후에야 놀라서 얼이 빠지고 기겁을 한다. 길거리 싸움판에서 멋모르고 휘두른 주먹 한 방으로 누군가를 죽이는 일처럼. (-1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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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밑 페스티벌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김선영 옮김 / 문학사상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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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물 위에서 우아하게 떠다니는 모습을 상상한다. 물, 이라는 말이 주는 이미지는 왜 그런지 낭만적이다. 고요함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거친 얼굴로 달려들기도 한다. 그런 물 위를 정지된 시간처럼 시나브로 움직이는 새들의 모습은 여유로움 그 자체다. 그 수면 밑으로 우리의 생각보다 더 바쁜 움직임이 있다는 걸 잘 알면서도 일단은 보여지는 그림이 멋진 까닭에 그것까지 챙겨야 하는 게 우리 몫이 아닌 것처럼 되어버렸다는 건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래서 이 책은 제목만으로도 충분히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정도의 제목이라면 감춰진 곳, 베일에 가려진 상태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 그다지 아름답지 않다는 걸 누구나 상상하지 않을까 싶지만  '물밑'이라는 말이 주는 의미때문인지 색다른 뭔가가 있을것만 같았다. 썩어버린 곳에 과감하게 칼을 댈 줄 아는 일본소설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던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일전에 TV에서 보았던 씁쓸한 이야기 하나가 떠올랐다. 마을에서 그 마을 사람에 의해 좋지 않은 일이 발생했는데 그 일이 밖으로 알려져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찾아가기 시작했다. 무작정 피해자를 찾아나선 방송도 물론 약간의 무리수를 두기는 했다. (항상 그렇다. 불행하게도 우리의 언론은 그것의 본질적인 면을 찾기보다 어떤 사건을 그저 헤집을대로 헤집어 까발리는 모습만을 보여준다) 그렇다고는해도 당장 자신이 처한 상황조차도 확실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어린 피해자의 입장보다 그 일로 인하여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의 집값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건 왠지 서글프게 보였다. 도덕적 해이... 남의 아픔쯤은 나의 이익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리고 마는. 그렇게 차갑고 냉정한 사회의 한 단면이 이 책속에서 선명하게 그려진다.

 

몰입도가 상당히 강했다. 그러면서도 아주 자연스럽게 그 마을의 풍경이 머리속에 그려질 정도로 글은 섬세했다. 등장하는 인물마다 각각의 특성이 그대로 전해져오니 그야말로 스릴과 공포가 느껴진다. 한장 한장 넘길 때마다 나도 모르게 긴장하게 된다. 말 그대로 긴장감과 박진감이 몸을 사리게 한다. 그렇게까지 잔혹하다거나 지저분한 표현은 없어도 그 마을사람들의 마음 하나 하나가 이상하리만치 깊이 느껴졌다. 겉으로는 아무일 없다는듯이 웃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그들. 거기에 마지막 반전은 이 소설의 정점을 찍기라도 하겠다는 양 나를 기다렸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속마음은 숨긴채 서로를 끌어안을 수 있다는 설정이 섬뜩했다. 투명가면속에 숨겨진 그들의 진짜 표정은 어땠을까? 결국 그 썩은 부위를 오려내기 위해 다부진 결심으로 문을 나서는 주인공의 발걸음이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오랜만에 이런 작품을 만난 것 같다. 단숨에 읽었지만 남는 여운은 길다.

 

몇해 전에 주산지에 가 본적이 있다. 영화로 사진으로 내게는 늘 아름답게만 비춰지던 주산지. 하지만 내가 본 주산지는 그다지 아름답지 않았다. 영화나 사진에서처럼 그렇게 빛나지도 않았다. 물이 빠져버린 그림은 오히려 낯설게 느껴졌다. 거칠게 드러난 나무뿌리는 왠지 쓸쓸했고 불행해 보였다. 사실 물 들어오기전의 모습이 그 나무 본래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물속에 갇힌 나무의 모습만을 아름답게 생각해야 했는지 돌아오는 내내 마음 한쪽이 좀 그랬었다.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건 어쩌면 그것과 같은 우리의 잘못된 오류가 아닐까? 다시 느낀다. 만들어진 것들이 우리에게 주는 행복은 그다지 길지 않다는 것을. 그 짧은 행복이 전부인양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라는 걸.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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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은 그 집에서 죽었다 - 개정판
김형경 지음 / 사람풍경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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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람 그려 사람 하나 죽게 됐네

사람이 사람이면 설마 사람 죽게 하랴

사람아 사람을 살려라 사람이 살게

 

사랑... 결론적으로 말해보자면 사랑은 진부하다. 거기다가 고루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사랑은 이미 우리에게 식상한 그 어떤 것처럼 비치곤 한다. 그래서 지금 우리곁에 머무는 사랑이 너무 쉬운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하나더 보태자면 사랑은 지독하게도 이기적이며 개인적이다.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혼자하는 사랑이 오히려 더 아름답게 보인다는 말이 하고 싶어질 때가 종종 있다. 사랑은 정말이지 지독하게도 자기위주의 감정일 뿐이다. '너를 위해서' 라고 말을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결국엔 '사실은 나를 위한거야' 라는 속내가 엿보인다. 가끔은 처절하다는 표현으로 다가오는 사랑.. 몸서리칠 정도로 슬프고 끔찍하다, 는 뜻도 함께 안고 있는 그 말처럼 사랑은 정말이지 슬프고 끔찍한 명제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애써 포장한다. 아름답다고. 아름다운 거라고. 아름다워야 하는 거라고.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보여지도록 노력하며 산다. 아름다워야 하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에. 김형경의 글은 읽는 중간중간에 내 속을 후벼팔듯이 들이대는 무언가가 있다. 그래서일 것이다. 그녀의 글에 쉽게 무너지는 이유가. 모두가 포장을 풀어헤치지 못한 사랑의 겉모습만 바라보며 미소지을 때 과감하게 '아름답다'는 포장지를 찢어버리고 그 안에 든 것의 실체를 바라보라고 소리치고 싶어한다.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그래야만 당신안의 사랑이 비로소 제 모습을 갖추지 않겠느냐고. 사랑한다는 말을 수도없이 들으며 사는 세상이 지금이다. 그래서 그 사랑이 넘쳐나는 세상속에 우리가 산다. 처음 보았을 때부터 '이 남자구나' 했던 남자 세중에게 어떤 '느낌'을 부여했던 것도 연희 자신이었다. 그래놓고는 그 함정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아름다운 사랑을 꿈꿨다. 환상적인 그 어떤 것이 있을거라고 기대했다. 사랑은 그렇게 처음부터 서로를 향한 환상에서부터 시작되어졌다. 그 환상이 깨지기까지의 시간은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무작정 떠났던 그 여행길에서 눈에 갇히고서야 마주했던 그 사랑은 결국 '그 집' 에서만 허용되어지던 아주 짧은 환상의 세계였다. 눈이 그치고 '그 집'을 나와야 했을 때 그들의 사랑은 포장지가 벗겨지고 마침내는 자신이 그토록이나 보고 싶어했던 사랑의 허상을 보게 되지만, 작가의 말처럼 사랑은 그 집에서 죽은 게 아니었다. 사랑은 비로소 그 집에서 완성되었다, 라고 나는 말해주고 싶었다.

 

"생각나? 그때 그 산속에서는 다르게 말했던 거. 현실의 법칙에 맞추어 살 줄 몰랐고, 현실에 적응하는 노예성의 시기를 거치지 못했으며, 그리하여 현실에 살기 위해 필요한 경쟁력을 갖추지 못했다고 말했던 거."

"그동안 나도 생각이 좀 달라졌어. 그들이 몽상가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패배자는 아니라는 거, 몽상가들이 이 세상에 대해 갖는 긍정적이고 고유한 기능이 있다는 거, 그런 것을 믿고 싶어졌어."

 

현실... 현실은 정말로 이율배반적이다. 명쾌하게 이것, 이라고 말할 수 없는 두 명제를 우리앞에 들이민다. 그래놓고는 선택이라는 과제를 낸다. 그 수많은 선택은 누군가 대신해줄 수도, 대신해주어도 안된다는 암묵적인 계시조차 보인다. 누구나 꿈을 가져야 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누구나 꿈을 꾸며 살지는 않는다. 누구나 꿈이 이루어질거라고 말하지만 누구나 그 꿈의 정상에 도달하는 건 아니다. 때로는 자신이 속한 현재를 거부하며 그보다 더 큰 꿈을 꾸며 살아가는 이도 있다. 그 어디에도 마음을 붙이지 못하면서.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래서가 아닐까 싶다. 어디에도 마음을 붙이지 못하는 까닭에 현재보다 더 큰 꿈을 꾸고, 더 먼 거리에 있는 꿈을 향해 달려가는거라고. 세중과 연희가 필연적으로 가야했던 '그 집'에는 세사람이 머물고 있었다. 저마다 다른 꿈을 안고서. 그런데 중요한 건 아무리 크고 먼 꿈을 향해 달려간다해도 지금 처한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다는거였다. 연희와 세중이 눈속에 갇혀 홀린듯 제자리를 맴돌다 어쩔 수 없이 '그 집'에 머물러야 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 집'에서 살았던 남자와 여자와 사내의 이야기는 어쩌면 지금 우리가 살아내고 있는 현실일런지도 모르겠다. 세사람 모두 외면하고 싶어하는 각각의 상처를 가슴에 품고 살았다. 믿음이 없어도 지속될 수 있는 관계속에는 차마 말하지 못하는 외로움이 숨어 있었다. 어느 순간 불현듯 믿음이라는 녀석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살며시 고개를 내밀면 그때부터 외로움은 이름표를 바꾼다. 고통이라는 이름으로. 하지만 그 믿음조차도 자신이 만들어낸 것에 불과하다. 느닷없이 찾아온 두려움을 지독한 사랑의 몸짓으로 이겨냈다고 생각했지만 알 수 없는 자괴감으로 인해 연희와 세중은 생각한다. 차라리 '그 집'에서 죽고 싶다고. 그렇게 우리는 우리가 꿈꾸는 환상을 놓치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다. 비록 그것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라해도. 이야기를 마치기전에 십여년의 세월이 흘러 연희와 세중을 다시 만나게 해 준 작가에게 왠지 고마움을 느낀다. 우리가 늘 외면하고 싶어하는 자신만의 환상과 마주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준 것에 대해서. 그렇게해서 당당하게 현실을 인정할 수 있도록 두사람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준 것에 대해서. 또다시 스멀거리며 올라오는 환상을 향해 과감하게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던 연희와 세중을 통해 작가는 내게 말한다. 현실은 현실일 뿐이라고. 그리고 또 환상은 환상일 뿐이라고. 그것을 인정해야만 한다고. 현실과 환상은 어쩌면 평행선을 달려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영원히 서로를 버릴 수 없기에.

 

이 책이 오래전에 <성에>라는 제목으로 나왔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 책의 개정판이라고는 하지만 내가 <성에>를 읽지 못했기에 어떤 느낌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제목만으로는 무언가로 긁어내야만 사물이 보이는 한겨울 창문에 서린 성에처럼 사랑에 대한 환상을 깨뜨린다는 사실 자체가 조금은 거북스러웠을 거라는 느낌을 받았다. 아주 먼 곳이었다고 생각했었지만 돌아와 보니 그다지 먼 거리가 아니었다는 설정도 쉽게 지나쳐버릴 수 없었다.  눈속에 갇혀버린 외딴집, 그 집은 저마다의 가슴속에 하나씩은 품고 있을 자신만의 집이 아닐까 싶었다. 그곳에서 일어났던 일들은 이미 그곳에 머물렀던 사람의 일기를 통해 보여주고 있지만 특이하게도 작가는 자연과의 대화를 시도했다. 의인화시킨 자연의 목소리는 메아리처럼 되돌아오는 울림이 있었다. 자연속에 머무는 생명체의 목소리를 통해 인간의 속성을 들여다보고 있었다는 말이다. 인간이 인간위주로 정해놓은 수많은 틀을 깨지 않는 한, 인간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움'을 찾지 못한채 포장지속에 갇혀 살아야 할 것만 같았다. 일기를 통해 보여지는 세사람의 과거와 연희와 세중이라는 연인을 통해 보여주는 현재는 그다지 멀리 있는 게 아니었다. 사랑은 정말 환상일까?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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