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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것들
필립 지앙 지음, 윤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7월
평점 :
나쁜 것들.. 제목을 다시한번 들여다 본다. 나쁜 것들이란 말이 주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은 까닭이다. 이 책속의 주인공은 도대체 무엇을 두고 나쁜 것들이라고 말하고 싶었는지. 아니면 누군가를 향해 뱉어낸 독백이었는지.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작가의 생각속에 이런 것이 바로 나쁜 것들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건지.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니 세가지 모두가 다 맞는 듯 하다. 주인공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을 말하는 것도 같고, 주인공이 누군가를 향해 뱉어내는 목소리처럼 들리기도 하고, 작가의 의중이 숨겨진 말같기도 하다. 무엇이 되었든 그 세가지 모두가 좋은 것이 아니었다는 건 공감한다. 그러나 그렇게 독백을 뱉어내기 이전에 자신을 다시한번 돌아 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은 마음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은 누군가를 탓한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은 결국 나로부터 비롯되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내내 감정 몰입이 힘들었다. 책이 어렵거나 어려운 말이 많아서? 그렇지는 않다. 책 속에서 마주치는 모든 상황과 주인공의 심리상태가 나를 엄청난 무게로 짓눌러왔던 까닭이다. 답답했다. 얼른 그 안의 감정에서 빠져나오고 싶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뭐지? 도대체 이 사람들은 어째서 이렇게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거지? 자꾸만 흩어지는 혼자만의 감정을 추스리며 책장을 넘기고 그 마지막을 덮는 순간 나는 다시 그 속으로 들어가 말해주고 싶었다. 한번만, 딱 한번만이라도 상대방의 관점에서 생각해볼 수는 없겠느냐고. 어쩌면 그렇게 이기적일 수 있느냐고 묻고 싶었다. 모든 아픔은 상처를 남긴다. 단지 그 상처를 어떻게 치료하느냐는 각자의 몫이다. 그런데 우리는 누구를 막론하고 내 아픔부터 알아주었으면 한다. 너도 아프겠지만 너보다 내가 더 많이 아프니 제발 내 상처부터 봐달라고 울부짖는다.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은 그렇게 내 아픔부터 챙겨야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한 아이의 아버지였고, 또 한 여자의 남편이었기에 저만의 아픈 기억만을 끌어안고 있기엔 너무 이기적으로 보였다는 말이다.
한 남자가 자동차 사고로 눈앞에서 아내와 큰 딸을 잃었다. 불행하게도 그들을 잃었던 싯점은 과거 자신의 잘못을 용서받을 수 있는 기회와 겹쳐 있었기에 그 남자는 더욱이나 힘겨웠을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에게는 아직 남아있는 딸이 있었다. 자신과 똑같이 눈앞에서 엄마와 언니를 잃었던 어린 아이. 남자에게는 그 어린 딸을 돌보아야 하는 책임과 의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아픔과 고통만을 생각한 채 어린 딸을 방치했다. 그리하여 그 어린 아이는 두번의 상처를 입었다. 가슴속 깊이 각인되어질만큼. 엄마와 언니를 잃었다는 고통과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았다는 또하나의 고통을 여물지 않은 가슴속에 받아들여야만 했다는 말이다. 서로가 치유되지 못한 고통을 안은 채 세월이 흐른 후 딸은 배우가 되었지만 끝내 아버지의 사랑을 얻지 못했다. 온갖 못된 짓으로 아버지를 괴롭혔지만 자신의 결혼생활조차도 제대로 꾸려갈 수 없었다. 우울하고 불행한 나날의 연속, 그러면서도 끝없이 아버지와 대치한다. 괴롭히려고 그랬던 건 아니었는데 결과적으로는 당하는 자의 입장에서 괴롭힘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문제는 그 남자가 현실을 부정한다는 데 있다. 자신이 그렇게 살면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자신의 마음을 열지 못한 채 살아간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인 듯 하다. 딸 역시 그렇다.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그 사랑은 오지 않을거라고 스스로가 결론을 내려버린 채 역시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다. 누구의 탓도 아니다.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따지고 든다면 어찌되었든 어린 아이를 먼저 보호해주었어야 할 아버지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못한 부분이 더 나쁘게 보인다. 솔직하게 말해본다면 나 역시 자신만을 위해 살았던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딸중의 한명인 까닭에, 나는 딸의 입장에 더 많은 공감을 한다. 그래서 읽는 내내 답답함에 시달려야 했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듣는 이의 입장은 모른다는 식으로 자신의 감정을 아주 솔직하게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아버지의 말투에 화가 나기도 했다. 딱 한번만이라도 딸을 이해하려고, 보듬어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내 마음까지도 풀렸을 것만 같다.
어찌되었든 가족이라는 화두가 새삼스럽게 낯선 느낌으로 찾아온다. 내 부모, 그리고 내 부모의 부모가 살았던 시절속의 가족과 지금 현재의 가족이라는 말이 주는 의미는 분명 다르다. 가족애라느니 정이라느니 아무리 외쳐봐도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한 게 사실이다. 나만 그렇다고?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 세상은 아직 살아볼 만하다는 말을 해야 할 것이다. 비뚤어진 문명이 만들어낸 불협화음이다. 지금 우리의 삶에서 놓치고 살아가는 것중의 하나를 이 책을 통해 다시 보게 된다. 끝없는 메아리로 영원히 우리 주변을 맴돌지도 모를 그 목소리를 듣게 된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나쁜 것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하는 순간이 바로 이 책의 마지막을 덮는 그 때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아이비생각
곰곰이 생각해보니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타인의 고통과 관련해서는 기준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타인들에게 초래한 피해 상황을 확이한 후에야 놀라서 얼이 빠지고 기겁을 한다. 길거리 싸움판에서 멋모르고 휘두른 주먹 한 방으로 누군가를 죽이는 일처럼. (-10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