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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잠, 봄꿈
한승원 지음 / 비채 / 2013년 4월
평점 :
이 소설은 1894년의 겨울, 패주한 동학군의 지도자 전봉준이 밤을 도와 잠행하다가 민보군에게 붙잡혀 한양으로 끌려가는 천리 길의 기나긴 참담한 여정을 서술한 것이다. 그 여정에서 전봉준이 만난 개 같은 세상을 보면서 나는 진저리치며 구역질을 하기도 하고 울기도 했다.... 지은이의 말을 가만히 들여다 본다. 개같은 세상... 그 개같은 세상을 보면서 진저리를 쳤다는 말속에서 성공하지 못한 전봉준의 꿈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 감나무, 아직 살아 있을까? 정말 오래전에 가 보았던 그 곳을 다시 생각하려니 너무 까마득한 느낌이 든다. 고부 말목장터의 감나무 밑으로 낫을 들고 곡괭이를 들고 모여들었다던 그 사람들의 함성은 어쩌면 아직까지도 사그라들지 못한 채 허공을 떠돌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허나, 개같은 세상이 거기뿐이었을까? 책속에서도 거론되어지는 수많은 민란 역시 그렇게 사그라들고 말았다. 벌써 오랜 시간이 지났으니 그 감나무, 지금은 흔적조차 남지 않고 이야기속으로 들어갔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괜찮다. 이렇게 글로써 다시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으니. 가끔은 그렇게 가슴 아픈 역사가 있었다고 뒤돌아보아주는 사람 있으니.
우금치 전투.. 전적지 기념물이라고는 위령탑 밖에 없다는 그곳에 나는 아직 가보지 못했다. 그러나 가본들 그 함성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농민들의 피를 빨아먹던 기생충같은 조병갑은 유배형에 처해졌지만 다시 복권하여 그 후손들은 지금까지도 잘 살고 있다고 한다. 어쩌면 그런 결과가 세상의 진리라도 되는 양. 책의 표지에 보이는 것처럼 파랑새 민요와 녹두장군이라는 별명만이 남아있을 뿐인 전봉준의 이야기를 다른 시각에서 바라본 이 작품은 자칫 지루하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같은 표현이 너무 많이 반복되어져 마치 세뇌시키기라도 하겠다는 양 보여지기도 하니 하는 말이다. 이 책은 전봉준이 잡혀서 한양까지 올라오는 행로를 그리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전투는 그저 순간순간 삽입되었을 뿐이다. 전투의 긴박함보다는 인간적인 고뇌를 다루고 싶었나보다. 민중에 의해 일어섰지만 결국 민중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우리의 영웅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민중을 위해 싸웠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들에게도 있었을 아픔과 고통의 시간을 외면해버릴 수는 없지만 이 책의 줄거리를 따라가는 시간들이 감정적으로는 쉽지 않았다.
동학혁명은 고부군수 조병갑에게 시달리던 농민들이 1894년 4월에 전봉준을 필두로 하여 봉기한 사건이다. 동학군은 황토현 싸움과 장성의 월평 싸움에서 승리하고 전주성 싸움후에 관군 홍계훈과 화의를 맺고 해산했었다. 전라도 고부봉기를 시작으로 충청도와 경기도, 전라도, 경상도, 강원도지역까지 전국에 걸쳐 일어난 봉기라고 봐도 틀린 말은 아닐 것 같다. 밥을 얻기 위한 싸움이었으나 끝내 밥을 얻어내지 못했던 민란이라고 치부하기엔 뭔가 부족한 씁쓸한 싸움이었다. 전봉준, 손화중, 김개남, 김덕명, 최경선, 이방언, 김인배, 최익서, 송두호, 서장옥.... 동학군은 뿌리를 파버린다는 말처럼 저들의 가족들도 힘겨운 세상을 견뎌냈을 것이다. 심복 세 명을 데리고 피신하던 전봉준은 순창 피노리 주막에서 자신의 부하였던 김경천의 배신으로 동네 사람들에게 무참하게 구타당하고 잡혀 일본군에게 인계되었다고 한다. 그때가 12월 28일이니 추운 겨울이다. 서울로 압송된 전봉준은 1895년 4월 23일 교수형을 선고 받았고 얼마후 손화중, 최경선 등과 같이 교수형에 처해졌다.
그런데 그런 전봉준을 살려 일본으로 데려가려고 한 사람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는 말이 조금은 생경하다. 정말 그랬을까? 만약에 그가 그런 제의를 받아들여 일본으로 갔다면 어떻게 변했을까? 조선 정벌 세력이 이용하기 위해 그랬다고는 하지만 좀더 넓은 세상을 알게 된 후의 모습이 왠지 궁금해진다. 그의 동학군이 실패하게 된 원인중의 하나가 세상을 넓게 보지 못했다는 것이라하니 궁금한 것은 어쩌면 당연지사일 게다. 실패한 공격방식은 되풀이 하지 않는게 전술의 원칙이라는데 한번 써먹은 정면 공격을 되풀이 했다는 점, 이편보다 더 나은 병기를 가진 자를 상대하는 방법을 잘 몰랐다는 점(당시 관군을 이끌던 일본군은 기관총이 있었던 반면 우리는 화승총과 창을 들었다!), 거기다가 동학군은 미신을 믿었다는 점(전투에 나서는 동학군마다 등에 노랑색 바탕에 '弓乙'이라는 붉은 글씨를 쓴 부적을 붙이고 돌격과 동시에 "侍天主造化定" 이라는 주문을 큰 소리로 합창했다 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책속에도 잘 표현되어져 있다} 은 동학혁명의 실패원인으로 꼽힌다. 사정없이 날아오는 실탄앞에서도 절대로 죽지않는다는 부적과 주문을 믿도록 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겨울잠은 길다. 그러나 봄꿈은 짧다. 이 책이 말하고 싶어하는 걸 따라가자면 전봉준이 꾸었던 꿈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 그리하여 그가 그 꿈을 향해 어떻게 나아갔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있었음직한 그의 고뇌를 작가와 함께 느껴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될 듯 하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고통스러웠을지도 모른다는 작가의 외침은 내게서 그리 많은 공감을 얻어내지 못했다. 길게 늘어지는 호흡이 왠지 거북하다. /아이비생각

◀1895년 2월 말 일본영사관에서 조선 법무아문으로 이송되는 전봉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