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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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 할!  죽비를 드신 스님이 참선인의 어깨를 내리치며 하는 소리, 어리석음을 깨우치게 하는 소리... 喝, 이 글자속에는 큰소리로 나무란다는 뜻이 담겨있다. 가끔 TV를 통해 들려오던 스님의 죽비소리를 들으면 내 어깨를 내리치는 것만 같아서 뜨끔하기도 했지만 문득문득 참 좋구나, 생각을 했었다. 불교식으로 말한다면 말이나 글로써 나타낼 수 없는 도리를 나타내 보일 때에 이 소리를 한다고 한다. 어려운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낯설지 않은 말이다. 지인의 소개로 <길없는 길>을 처음 읽었을 때가 생각난다. 불교신자가 아님에도 굳이 禪僧의 발길을 쫓은 작가의 마음이 궁금해서였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빠져들게 되어 시간이 허락된다면 한번 더 정독을 해 보자고 벼르고 있던 참인데 여태 읽지 못하고 있으니 어쩌면 이 책은 게으른 내 어깨위에 죽비를 내리치시는 스님의 목소리와도 같지 않을까 하는 심정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책은 <길없는 길>에서처럼 나를 헤매게 하진 않았다. 오히려 전작에서 헤맸던 길을 제대로 찾아갈 수 있는 이정표처럼 느껴졌다. 법명이 '惺牛: 깨우친 소' 이신 鏡虛스님의 삼대제자에 관한 이야기다. 세개의 달로 표현되어지는  滿空, 慧月, 水月 님에 대한 자취를 더듬어가는 시간이 지루하진 않았다. 궁금하기도 했던 차였다. 이 글을 쓴 작가처럼 나도 불자가 아닌데 굳이 이 책에 빠져들게 된 연유는 따져보고 싶지 않다. 그 알 수 없는 느낌에 어떠한 잣대를 들이댄다는 것 자체가 싫은 까닭이다. <길없는 길>에서 미처 느끼지 못하고 넘어갔던 부분들이 새록새록 솟아나 다시 내 곁으로 왔다. 다시 읽어야지 했던 그 마음을 질책이라도 하려는듯이.

 

無碍行의 상징처럼 표현된다는 鏡虛스님은  의 생활화로 근대 한국불교를 중흥시켰다는 기록이 보인다. 그분께서 행하신 無碍行의 일화들이 재미있기도 하지만 삼대제자의 흔적 또한 만만치않다. 때로는 웃음으로 때로는 먹먹함으로 다가왔던 짧은 이야기가 제법 무겁다. 어디에도 걸림이 없이 철저하게 자유인으로 살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중광스님이 생각났다. 세속에서는 걸레스님이라느니, 미치광이 중이라느니 했다지만 어찌보면 그 분들이야말로 제대로 수행하신 게 아닌가 하는 객쩍은 생각까지 든다. 물이 불어 내를 건너지 못하는 처자를 업어 건네준 스님에게 제자들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따지니 "너는 어째서 그 처자를 아직도 내려놓지 못하고 여태 업고 있느냐?" 했다던 불교설화 한편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니 그 無碍行이라는 것도 섣부른 깨침만으로는 행할 수 없는 게 분명할 터다.

 

한사람은 북쪽을, 한사람은 남쪽을, 그리고 한사람은 그 사이를 비추는 달이 되자고 했다는 세 분 스님. 그리하여 水月 스님은 북으로 갔고, 慧月스님은 남으로 갔으며, 滿空은 중간에 남았다. 끝없는 자비심으로 세속에 머물렀다던 水月스님의 흔적은 그다지 많지 않으나 어린아이와 같은 천진함으로 세상을 대했다던 慧月스님의 행적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나마 막내제자인 滿空스님의 기억으로 인해 생전의 모습과 같은 스승의 초상화를 그릴 수 있었다는 건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세분 스님의 행적을 따라가는 여정이 힘들지 않았다. 다시 <길없는 길>을 펼쳐 볼 때가 된 듯 하다. 내 어깨에 죽비를 내리쳐본다. 喝!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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