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계 연대기 - 지구와 그 주변의 잊혀진 역사를 찾아서
원종우 지음 / 유리창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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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사실 나는 황당한 이야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과학만을 신봉하는 사람도 아니다. 지독한 현실주의자인 까닭에 현실과 너무 먼 생각이나 상상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뿐이다. 그래서인지 남들은 기가 막히게 재미있다는 <스타워즈>나 <매트릭스>와 같은 영화를 한번도 제대로 본 기억이 없다. 단지 잠깐 잠깐 스쳐지나던 몇 개의 장면만이 내 시선속에 잡혀있을 뿐이다. 그런 까닭에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 좀 황당했다. 고고학 유물, 역사 문헌, 고대 문학작품 따위와 같은 책표지의 글에 현혹되어 나도 모르게 손을 내밀었던 책인데 읽자마자 내심 걱정이 밀려오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이런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줘야 하는거야? 도대체 뭘 말하고 싶어하는 거지? 그래놓고는 묻고 있다. 이 책이 얼마만큼의 진실을 담고 있는 것 같으냐고. 거기서 그만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글쓴이의 말처럼 이 책은 추론이다. 그럴 것이다, 그러하지 않았을까? 와 같은 맥락에서 출발하여 결국 나는 적어도 그렇게 생각한다 라는 결론이다. 그런데 이 책, 능청스럽게도 묘한 느낌을 남긴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고개를 주억거리게 만든다. 우주를 들먹이면서 화성은 살해되었다느니 행성Z니 UFO니 외계인따위를 이야기할 때는 골치아프지만 그 이야기 끝에서 불러내는 고고학의 유물이나 역사적인 문헌의 예는 흥미롭다. 그런 생각, 나도 한번쯤은 해봤다는 말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남아 있는 인류의 고대문명과 결부시키는 글쓴이의 이야기가 그렇게까지 황당하게만 들리지는 않는다. 그토록이나 잘난(?) 현대의 과학으로도 풀 수 없다는 고대문명의 흔적은 현대인들에게 수많은 상상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도 대표적으로 언급되어지는 쿠푸왕의 피라미드와 같이 세계의 불가사의라 불리워지는 흔적과 맞물리는 글쓴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동안 여기저기서 주워들었던 많은 정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현대과학으로도 풀 수 없는 수수께끼를 품고 있는 탓이다. 솔직하게 말해 그들에게 지금의 우리보다 더 발달된 확실한 과학적인 사고가 있었을 거라는 데 공감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인류의 진화 이전 혹은 진화 과정속에서 파헤칠 수 없는 어떤 사건이 있었을거라는 추론 역시 가능해보인다. 그렇지 않다면 바빌론의 공중정원이나 오벨리스크, 콜로세움과 같은 유적들에 대해 속시원한 해석이 나오지 못하는 까닭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다큐형식으로 많이 다루어지고 있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현대인의 입맛에 맞게 혹은 현대인의 개념 범주안에서 해석되어지는 한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다. 출애굽을 시도했던 모세에 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뒤로 갈수록 종교적인 주제와 겹쳐지는 바람에 조금 식상한 맛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어찌되었든 이렇게 발칙한(?) 상상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새로운 상상을 더 많이 불러올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될수도 있겠구나 싶다. 수많은 가설이 만들어짐으로써 어쩌면 우리가 찾아내고자 하는 해답을 얻을 수도 있을테니 한마디로 쓸데없는 생각이라고 말 할 수는 없다. 이미 정해놓은 어떤 범주안에서 멈추기보다는 그게 훨씬 낫다는 말이다.

 

나하곤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껄끄러웠던 마음이 읽을수록 책속에 먹혀들었다. 황당해서 짜증이 났던 책임에도 불구하고 알 수 없는 느낌을 남겨주고 있다.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과학이나 종교에 대해, 그리고 아주 먼 시대로부터 달려왔던 사회적인 어떤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지독한 이기주의라는 속성을 안고 있는게 인간이 아닐까 싶다. 차라리 글쓴이의 말처럼 어딘가에 외계인이 존재했으면 좋겠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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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인류 - 도덕은 진화의 산물인가
프란스 드 발 지음, 오준호 옮김 / 미지북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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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의 혼란은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더 많은 지식만이 필요할 뿐이라는 환상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42쪽)

과학은 인간 중심적 경향을 보인다는 말에 크게 공감한다. 저자가 보여주는 진화의 나무만 보더라도 인간이 얼마나 자기편향적인가를 알 수 있다. 오직 인간만이 무슨 대단한 존재인양 그려져 있는 그림보다 DNA에 기초한 나무에 침팬지, 보노보, 고릴라와 같은 유인원과 같이 한 가지에 매달려 있는 인간의 모습이 훨씬 더 인간적으로 보이는 건 왜일까? 유인원과 인간을 같은 가지에 매달아 놓은 진화의 그림에서 보이듯 그들을 여러방면에서 연구해본다면 인간의 기본적인 본성을 찾아낼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도덕성을 이야기하면서 그 흐름을 이끌어가는 존재가 바로 유인원, 보노보인 까딹이다. 보노보는 침팬지보다 인간과 가깝다고 여겨지는 유인원이라고 한다. 인간에게 필요한 윤리나 도덕을 말하고자 하면서 굳이 유인원의 행태를 보여주고자 했던 이유를 찾아내는 건 쉽지 않았다. 가뜩이나 재미없는 주제인데다 장황하게 느껴지는 문구들로 인해 지루한 감도 없지 않았다.

 

도덕법칙은 하늘에서부터 또는 탁월한 이성적 원칙으로부터 부여된 것이 아니다. 고대부터 몸에 뿌리 깊게 밴 가치들로부터 솟아났다. 그것의 근본에는 집단생활에서의 생존이라는 가치가 있다. (-329쪽)

도덕성은 두 개의 H와 관련된 규칙 체계다. '타인을 돕는 것Helping' 과 적어도 동료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 not Hurting' 이다. 이 체계는 타인의 행복과 집단을 개인보다 앞세우라고 요구한다. 물론 개인의 이익이 부정되지는 않지만 협력 사회를 만들기 위해 개인의 이익 추구를 억제한다. ( -232쪽)

도덕성이 무엇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그래서 찾아보았더니 뭐가 그렇게 어려운지... 하여간 인간의 틀로 정의되어지는 것들은 참 복잡하다. 칸트가 이러니 저러니...그래놓고는 인간이기때문에 이런 정도는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해야 한다는 듯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학문적인 의미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양심' 이라는 말로 정의되는 것이 도덕성이다. 한마디로 말해 제 마음에 꺼리낌이 없어야 하고 사회규범에 어긋나지 않는 자율적인 마음상태인 것이다. 그런데 인간에게 왜 이런 도덕성이 필요한 것일까? 인간은 언제부터 그렇게 도덕성을 갖추며 살았던 것일까? 그렇다면 오직 인간만이 도덕성을 지니고 있는 것일까? 뭐 이런 궁금증을 풀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안타깝게도 인간만이 그런 도덕성을 가졌을 거라는 편협된 생각은 버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현생인류에 와서 새롭게 생긴것도 아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집단을 이루는 사회적인 개체속에 자연스럽게 생겨나기 시작했다는 것을 유인원을 통해 밝혀내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그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생존을 위해서 그렇게 해야만 했다는 것은 유인원이든 인간이든 별다를 게 없어 보이니.

 

"신이 없다면 인간은 신을 만들어야 했을 것이다" - 볼테르

종교가 나타나기 전의 인간의 삶도 반드시 '약육강식'은 아니었다.(-144쪽)

사회적 위계질서는 거대한 금지 시스템이다. 사회적 위계질서는 의심의 여지없이 인간의 도덕성을 진화시킨 배경이다. 인간의 도덕 역시 일종의 금지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충동을 조절하는 것이 관건이다. (- 224쪽)

처음 책장을 넘기기 시작하면서부터 종교문제가 계속 따라 붙었다. 종교와 과학의 대립에 대해 말하고 싶어하는 것인지, 아니면 종교를 통해 우리에게 도덕성이 생겨났다는 말인지 영 껄끄러웠다. 그러면서 옮긴이의 말에서 보았던 이 책의 원제에 대한 말이 생각났다. 'The Bonobo And The Atheist(보노보와 무신론자)'... 결국 우리가 갖고 있는 도덕성이라는 것은 종교와는 무관하다는 것이었는데 인류가 진화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사회적 본성에서 비롯되었다는 말에 크게 공감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종교를 무시하는 건 아니다. 현재까지는 종교의 공백을 대체할 그 무엇도 찾아내지 못했다는 말이 섬뜩(?)하기는 하지만. 이야기의 흐름을 이끌어가고 있는 존재가 유인원인 까닭인지 책을 보는 내내 얼마전에 보았던 영화의 장면들이 책속의 내용과 겹쳐졌다. 영화속에서 보여졌던 유인원의 모습이 단지 영화속의 모습만은 아니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인간처럼 아픈 동료를 보살펴주고, 싸운 뒤에는 화해를 요청하며, 혼자만 이익을 독차지하려드는 것을 응징하며 그들만의 위계질서를 잡아가는 모습, 어린 새끼를 향한 사랑, 같은 동족을 향한 따스한 동질감... 영장류에서부터 진화한 인간과 다를 바 없던 그들만의 속성이라니! 좀 따분하긴 했지만 읽고 난 뒤의 공감대는 컸다. 다시 또 생각하게 된다. 만들어진 모든 것으로부터 놓여나 자연스러움에 동화되어지는 그날은 언제 올까...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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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적인 시간 북스토리 재팬 클래식 플러스 3
다나베 세이코 지음, 김경인 옮김 / 북스토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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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남자와 한여자가 사랑을 해서 영원을 기약하며 결혼이란 끈으로 묶인다. 그 사랑이 영원할거라 믿으며, 혹은 영원하기를 바라며. 하지만 어디 세상이 그렇게 그들을 편하게 놓아줄까? 처음엔 모든 걸 보여준다고 생각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각자의 마음속에 성을 짓고는 그 성안에서 고집스럽게 나오려들지 않는다. 그리고는 하나씩 하나씩 내가 아닌 상대방의 상태에 따라 맞춰지는 생활을 하게 된다. 그토록 재잘거리던 처음의 이야기들이 하나둘씩 침묵의 바위뒤로 숨게 되고. 차라리 내가 맞추지, 하는 심정으로 콩속에서 돌을 골라내는듯이 자신을 내던진다. 중요한건 남자든 여자든 모두가 내가 희생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어느누구도 그렇게 선을 그으며 살아가라고 말하지 않았음에도.

 

그렇게 시간을 보내버리고 문득 지나간 날속에 머물던 자기 자신과 마주치던 어느날, 남자도 여자도 똑같이 말을 한다. 그래, 그때는 그랬었는데.... 그리곤 그때의 시간을 찾아내 지친 마음을 부비고 싶어한다. 때로는 그것이 상대방에게 또다른 힘겨움을 전해줄수도 있다는 것을 미처 생각치 못한채로. 하지만 이미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비오는 날, 우산을 들고 나가지 않은 모습으로 되돌아오게 되고... 그 순간부터 자기 자신의 성벽이 무너져감을 느끼게 된다. 지나쳐간 시간이 과거라는 이름으로 변하여 추억이란 화려한 옷을 입고 찾아와 그 남자를, 혹은 그여자를 유혹한다. 힘겨운 싸움이 시작된다. 지친 마음으로 말한다. 이미 지나간 것일뿐인데...라고. 하지만 그때의 나는 어디로 간거지?

 

"연극할 마음이 필요한가요. 연애하는데?"

"필요하죠!"

"부부사이에도?"
"사람에 따라서는 필요할 겁니다. 연극으로 서로에게 맞춰줄 필요도 있겠죠"

연애를 하든 사랑을 하든 연극할 마음은 필수적인 요소가 아닐까 싶다. 그저 나한테로만 향하던 시선과 관심은 결혼이라는 현실적인 벽에 부딪혀 내가 아닌 너와 내가 되고 우리가 되고 더 나아가 가정이라는 하나의 울타리가 생긴다. 그때부터 '나'라는 의미는 사라지기 시작하고 인정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운 집착 또한 버리게 되니 그 또한 서글프다. 아주 사소한 것들로 인해 다툼이 시작되고 작은 다툼이 커다란 전쟁으로 번진다. 승자없는 싸움인데도 불구하고 언제나 내가 패잔병이 되고나서야 그 전쟁은 끝이 난다. '툭' 하고 던지듯이 뱉어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칼끝처럼 나를 후벼댄다. 싫다. 이렇게 패잔병처럼 살아가는 내가 싫다. 그래서 마음이 아프고 그래서 몸살을 앓는다. 앓고 난 뒤에야 나는 모든 것을 버린다. 아니 버리기로 작정을 한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나의 사적 생활은 모두 고에게 흡수되고 말았다. 나 자신의 존재조차 없어지고, 고의 사적 생활의 일부분으로서 나는 겨우 살아 남았을 뿐이다, 라고.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을 보는 게 더 속편하다. 그렇게 하면 내가 편하니까. 그렇게 살아주는 게 차라리 서로에게 더 좋다. 하지만 뭔가 허전하다. 자꾸만 말을 잃어가고 있다. 달라진 건 없는데... 보여지는 모든 것들은 그대로인데... 뭔가 남자와 여자사이에 끼어들기 시작하고 대화를 잃어가고 있다. 한참이 지난후에야 묻게 된다. 왜 그러는거지? 도대체 내가 당신을 위해서 살아온 시간들은 다 어디로 간거지? 당신이 나한테 해준게 뭐가 있다고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거지? 말해봐. 도대체 뭐가 문제야?

 

영원히, 대충대충, 계속 살아질까 생각하면, 참을 수 없는 순간도 올 것이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나는 후우~ 하고 한숨을 내뱉었다. 나, 이제 아기 낳아야 해? 하고 묻던 노리코의 마음이 어땠을까? 노리코가 독자 여러분의 친구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던 작가의 말이 참 쓸쓸했다. 나는 이미 노리코의 친구가 되어버렸는데... 드디어 연기자의 사적 생활로 돌아온 거네요, 하면서 노리코의 아픈 일들을 이미 알아채고 웃어주었던 나카스기씨가 노리코 옆에 계속 남아있어주면 좋겠다. 살면서 왜 좋은 일만 있을거라고 생각했을까? 살면서 왜 너와 나만 있을거라고 생각했을까? 살면서 서로에게 동화되어지는 여정을 왜 함께 가지 못했을까? 형식과 조건앞에서 너무나 현실적으로 숨김없는 표현을 하며 살았던 노리코. 그녀의 입에서 진심을 담은 말들이 튀어나오던 순간부터 그 아슬아슬한 연극은 막 내릴 준비를 한다.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로 만났던 다나베 세이코. 역시 편안하다. 나를 책속의 세상으로 자연스럽게 끌어들이고 있다. 오늘, 이런 얘기를 해도 될까요? 하고 묻는다. 아니요. 하고 말하고 싶지만 그렇게 말하지 못한다. 너무나 일상적이고 너무나 평범한 작가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내이야기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평범하고 사소한 것들도 내게 머무는 동안은 아주 커다란 의미를 갖게 된다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귀에 속삭여 준다. 그래서 나는 눈물이 날뻔 했다. 작가는 말하고 있다. 나의 아픔을 돌보듯이 상대방의 아픔도 돌볼줄 알아야 한다고. 남자든 여자든 세상의 모든 사람은 다 똑같다고. 앞으로의 여정은 알 수가 없다. 내가 내 자신과 어떻게 타협을 하며 살아가느냐가 문제일뿐. 텅 빈 객석을 바라보며 혼신을 다해 연극을 이끌어준 노리코의 아픔은 어디로 숨었을까? 정말 힘겹게 연극무대에서 내려온 노리코를 위해 기도하고 싶어진다. 다시 찾은 노리코의 사적인 시간을 위해 화이팅! ...

 

2007년에 읽고 다시 읽은 책이다. 전해져오는 느낌이 변하지 않았다는 건 그만큼 공감할 수 있었다는 말일터다. 책을 읽으면서 치유의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누구나에게 사적인 시간은 필요하다. 자신만의 그 무엇을 가슴에 하나쯤 품고 살 필요는 있다. 결혼은 집착이 아니다. 책임과 의무만이 있는 것도 아니다. 상대방을 위한 배려만이 결혼이라는 성을 견고하게 만든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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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해
임성순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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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실은 놀라운 일도 아니다. 슬프게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는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는 타인의 인권 따위는 침해해도 상관없다고 믿는, 심지어 다른 사람들의 목숨조차 상관없다고 믿는 사람들을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런 사람이 사회에서 인정받고, 유능하다는 소릴 듣는다. 그리고 아주 높은 확률로 성공한다. 너무나 비극적이게도, 이제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세상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아주 잘 알고 있다. (- 작가의 말)

 

작가의 말을 빌려 작가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를 미리 말하고 싶었다. 그러면서 조금은 미안한 마음도 든다. 어쩌면 이 책의 성격을 말하고 있는 일일수도 있어서. 하지만 작가의 말속에서 이 책의 성격을 읽어낼 수 있다는 게 쉽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작가가 안타까워하는 그런 일들이 이 세상에는 너무나도 많은 까닭이다. 어디 한군데에서만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 일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게 현실이다. 목소리를 높여 인권을 이야기하고 저마다의 권리를 주장하지만 그 주장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배려와 책임의식은 전혀 없다. 오로지 나 하나만을 위한 주장이며 외침에 불과할 뿐이다. 오로지 나 하나만의 이익과 편리함을 위해서라면 못할 것도 없다는 의식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이제는 그것이 언제 터지나 바라볼 수 밖에 없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책장을 덮고 한참동안 책을 손에 쥐고 있었던 이유는.

 

인간의 감정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도저히 맨얼굴로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가면을 쓰고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그 가면이 벗겨져 자신의 맨얼굴이 남들앞에 드러날까봐 조바심을 내며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현실은, 참 피곤하다. 책속에서 마주친 여러 얼굴위에 덮혀져 있던 가면들이 하나둘씩 벗겨지면서 드러나는 맨 얼굴은 참혹했다. 더이상 잃을것도 없는 순간이었음에도 그들 모두는 무언가를 잃을까 두려워했다. 극해라는 말속에서 한계점에 도달한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된다. 더 이상은 어떻게도 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을. 책장을 펼치는 순간부터 긴장하게 된다. 탄탄한 글의 짜임새 때문인지 책장을 넘길 때마다 나도 모르게 숨을 가다듬게 된다. 몰입될수록 가슴 한켠이 졸아드는 것만 같아 답답했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존재는 오직 인간뿐이라고. 그리하여 이 아름다운 지구가 정화되어져야만 한다고. 놀라웠다. 이런 상상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이토록이나 강렬하게 메세지를 남길 수 있다는 사실이. 세계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작가의 이력에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전시라는 긴박한 상황속에서 매순간 운명이 바뀌게 되는 포경선 유키마루. 잠시의 순간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꼬리를 물며 이어지는 사건들이 엉킨 실타래를 풀 듯 그렇게 내 앞으로 끌려와 풀어진다. 그리고 드러나는 인간의 숨겨진 본성은 읽는 내내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두사람만 있어도 서열을 가려야 한다는 부질없는 인간의 속성이 문득 오래전에 읽었던 <파이이야기>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강자에게 밟혔던 약자조차도 그들만의 세계에서는 서로가 또다른 강자가 되고 싶어한다는 것, 어쩌면 인간만의 진실인지도 모를 일이다. 한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게 하는 이야기의 속도감이 이채로웠다. 다시 작가의 말로 돌아간다. 너무나 비극적이게도, 이제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세상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아주 잘 알고 있다.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아주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변하고자 하는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는 게 지금의 문제다! 작가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는 분명하다. 강한 여운으로 남았다. 결국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자는 없다. /아이비생각

이 글을 다 쓰고 나면 나는 서점을 뒤질 것 같다. 작가의 또다른 작품을 찾아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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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성 기름, 뜻밖의 살인자
데이비드 길레스피 지음, 이주만 옮김 / 북로그컴퍼니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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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우리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지방에 대해 한번 알아보자. 포화 지방, 단일불포화 지방, 다가불포화 지방, 트랜스 지방 이렇게 세종류로 나뉜다. 포화 지방이니 불포화 지방이니 하는 말도 그렇거니와 트랜스 지방이란 말은 하도 들어서 귀에 못이 박힐 지경이다. 상온에서도 수개월 동안 변질되지 않는 지방을 포화지방이라고 하는데 사람을 포함한 동물들이 갖고 있는 지방이 대부분 포화 지방이라고 한다. 상온에서도 비교적 안정적인 편이고 올리브유에 주로 들어 있는 것이 단일불포화 지방이고, 동물에서는 생산되지 않는 까닭에 음식으로 소량 섭취해야 한다는 것이 다가불포화 지방이다. 다가불포화 지방은 카놀라유나 해바라기유, 콩기름. 포도씨유, 미강유등과 같이 주로 씨앗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인데 놀라운 것은 상온에 노출되면 단시간에 변질된다는 점이다. 올리브유 역시 식물성 기름이지만 씨앗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과육에서 짜낸다는 차이를 보인다. 그런 까닭인지 책에서는 식물성 기름중에 그나마 올리브유가 가장 좋다는 말도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장 많이 들어왔을지도 모를 트랜스 지방은 뭘까? 간단하게 말하자면 인위적으로 변형된 불포화 지방으로 우리 몸에는 해롭다는 연구 결과가 적지 않다고 한다. 이 트랜스 지방이 동물성 기름에는 극소량이 들어 있지만 경화 공정을 거친 식물성 기름에는 다량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식물성 기름을 먹고 싶지 않아도 마켓에 가면 온통 식물성 기름만 보인다. 솔직히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 나름대로의 성분을 따져가며 먹는다는게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건 이래서 좋고, 저건 저래서 나쁘다며 내놓는 단어 자체가 쉽게 이해되지도 않거니와 들어도 잘 모르니 이래서 좋으니 먹으라 하면 먹고 저래서 나쁘니 먹지마라 하면 안먹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반적으로 보면 우리가 왜 식물성 기름만을 고집하며 먹어야하는지 생각할 여력도 그다지 많지 않다는 말이다.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식물성 기름을 먹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했던 사람, 몇이나 될까? 결론이야 늘 한결같다. 우리의 건강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거다! 가축을 키우는 것보다 식물의 씨앗에서 화학적으로 기름을 짜내는 것이 훨씬 싸게 먹히기 때문이란다. 이익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시대를 살면서 이익을 포기하라는 말은 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런 류의 책을 볼 때마다 나는 무척이나 화가 난다. 그렇다면 식물성 기름이 만연하기 전에 좀 더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는 없었는가 해서 하는 말이다. 늘 이렇게 논쟁을 불러오는 주제를 가만히 살펴보면 모든 것이 만연된 후에야, 다시 말해서 그로 인해 많은 사람이 힘겨운 상황을 겪고 난 뒤에야 말이 나오니 한심한 일이다. 그래서 어쩌라는 건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어쩌라는 건지.

 

책속에서 말하고 있는 식물성 기름을 피하는 장보기 법칙은 정말 끝내준다. 성분표와 친해져라, 그 많은 기름을 용도에 맞게 구분해서 써라, 빵을 살 때도 어떤 기름을 썼는지 알아보고 사라, 소고기는 사료가 아닌 목초를 먹인 것인지를 따져봐야 한다, 일단 가공되어 포장된 제품과는 될수록 멀어져야 한다 등등등... 이제 왠만한 사람은 다 안다. 냉동 감자튀김은 피해야 하고 피자와 고기 파이등과 같은 냉동 제품도 되도록 먹지 말아야 하고, 설탕 함량을 항상 따져봐야 한다는 것쯤은. 저자의 말이 아니라도 뭐가 되었든 적당히 먹는 게 좋다는 것쯤은 말안해도 알 사람은 다 안다. 그렇게 따진다면 마켓의 진열대에서 보이는 제품들의 영양성분표 읽는 방법은 솔직히 있으나 마나다. 이 책뿐만이 아니라 이런 류의 책들이 이미 경고를 내린 성분들이 그 안에 즐비하게 써있는 까닭이다. 각설하고 결론은 정말 간단하다. 나라가 앞장서서 국민의 건강을 챙겨줄리 없으니 내가 키우고 내가 길러서 그것으로 직접 요리를 해먹는 방법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조미료까지도 본인이 직접 만들어야 한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말이니까 쉽다!!! 기업이란게 어차피 적은 비용 들여서 많은 이득을 얻어야 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고, 또 그들에게 의지한채 버텨나가는 것이 국가의 속성이다보니 그들이 사람들의 건강까지 챙겨주길 원하는 건 무리수라는 걸 인정하라는 말처럼 들려 뒷맛이 씁쓸하다. 우리 건강을 돌봐야 할 잭임이 있는 사람들이 당당하게 기업편을 들고 있다는 말에도 그다지 화가 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일전에 읽었던 <탄수화물이 인류를 멸망시킨다>, <식량은 왜 사라지는가>, <우유의 역습>과 같은 책들이 떠오른다. 어디 이 책들뿐일까? 이런 주제를 다룬 책들은 찾아보면 더 많을 것이다. 우리의 주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카놀라유, 해바라기유, 포도씨유가 오히려 성인병의 원인이라는 말이 상당히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만든다. 하지만 먹든 안먹든 한번쯤은 집고 넘어가야 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그렇다고해서 식물성 기름을 안먹을수는 없을테니까. 아주 오래전에 굴지의 라면회사가 '소고기 우지 파동'을 겪으며 라면 판매를 중단했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사건이 일어난 지 8년만에 법정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었다. 그때가 1989년이니 상당히 오래전의 일인데도 어제일처럼 기억이 난다. 이 책을 읽고나서야 아하! 하고 무릎을 쳤다. 결국 기업들간의 싸움에 소비자만 손해를 본 꼴이다. 내 가족을 병들게 하는 식물성 기름의 진실 이라는 책표지의 말을 허투루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에게 왜 이런 책들이 다가오는지에 대해 한번쯤은 생각해보아야만 한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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