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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거짓말 말의 거짓말
남재일 지음 / 천년의상상 / 2014년 9월
평점 :
사람이 거짓말하는 것일까? 말이 거짓말하는 것일까? 책의 제목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람도 거짓말을 하고 말도 거짓말을 한다는 결론이 났다. 말이 어떻게 거짓말을 하느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그 말속에 숨은 의미가 여간 많은 게 아닌 까닭이다. 耳懸鈴鼻懸鈴의 세상이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말이기도 하지만 말이 너무 많은 세상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지금의 우리는 물질이 정신을 이기는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런 사회를 만든 것도 우리이니 탓을 한다면 결국 우리 자신을 탓해야 한다. 그러나 주위를 돌아보라, 모두가 자신만은 그렇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니 사람도 거짓말을 하고 말도 거짓말을 하는 세상이다. 책의 제목이 시선을 끌었다. 말많은 세상에 살면서 나는 과연 어떤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한번쯤은 반추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유혹의 언어에 감염된 존재는 물질적 성취와 소비를 통해서만 자신의 정체성을 상상할 줄 안다. 6쪽에 보이는 지은이의 말이다. 지금은 누구나 세상에 말을 건네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기묘한 노출증의 시대라는 말에 백퍼센트 공감한다. 타자를 통해 자기 삶의 연속성을 상상하는 이가 많아지면 우리 삶의 풍경도 바뀌지 않을까 라고 묻던 지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윤리와 정치적 주체라는 주제에서 소크라테스와 심청전을 새롭게 말하고 있는 부분은 왠지 모르게 그럴수도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된다. 나쁜 사람과 못난 사람을 이야기할 때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잣대는 과연 어떤 것으로부터 비롯되었는가 되묻게 된다. 자신만의 잣대가 사라진지 오래된 듯한 느낌은 착각일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지금의 우리에게 나만의 잣대는 없는 것 같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세상의 잣대로만 모든 것을 평가하고 분석한다. 왜 그렇게 된 것일까? '우리'의 이름으로 '나'를 묻어버리는 민족주의와 '너'의 권리로 '우리'를 만들어 간다는 시민의식에 관한 정의는 작금의 세상을 돌아보게 만든다. 몇년전에 미국에서 발생했던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을 예로 든 민족주의의 허실. 단지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죄를 뒤집어 쓰기라도 하겠다는 듯했던 우리의 감정표현이 마침내는 전세계가 대한민국의 민족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만들어냈다. 우리는 과연 무엇때문에 그런 행동을 해야 했을까?
형식적 법치주의의 그늘은 입맛을 씁쓸하게 한다. 가슴 한켠을 서늘한 바람이 훑어내리는 것만 같다. 법은 지키라고 만들어졌지만 법을 지키기 위해 불이익을 당하거나 해를 입게 된다해도 법은 결코 나의 편이 되어주지 않는다. 그것이 법이다. 지독히도 형식적이고 지독히도 이론적인. 부조리한 세상을 만들어내고 있는 우리의 철저한 이중성이 서글프다. 내가 하면 로맨스인데 남이 하면 불륜인, 나의 사생활은 보여주기 싫은데 남의 사생활은 죽어라 들여다보고 싶은, 남이 끼어드는 건 싫은데 내가 끼어들때는 양보도 안한다고 욕을 하는, 나는 거짓을 말해도 남은 진실만을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앞에서는 웃어주고 뒤돌아서면 손가락질하는, 남이야 어찌되든 나만 잘되면 그만인... 어쩌다 우리는 이렇게 형편없는 가식의 가면을 쓰고 살게 된 것일까? 우리는 왜 말의 거짓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言中有骨 이란 말이 새삼스러운 세상이다.
책을 읽으면서 오래전에 광고에서 보았던 장면이 떠올랐다. 모두가 "아니오"라고 말할 때 한사람만이 "예'라고 말하던...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살지 말라고 한다. 그랬다가는 진정한 용기가 만용으로 치부되어버리는 그런 세상인 까닭이다. 그 이중적인 우리의 생각이 이 책속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곪아 있는 부분들을 들춰낸다는 게 보기에 떨떠름할수도 있겠지만 간과해서는 안되는 일이기도 하다. 얼마전 코미디프로에서 보았던 짧은 토론의 결과가 생각난다. 내 차의 뒷범퍼에 작은 스크래치가 있었는데 어느날 뒷차가 살짝 내 차와 부딪혔다. 그러나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이 때 나는 뒷차를 그냥 가게 하겠는가? 아니면 그 핑게로 뒷범퍼를 고치겠는가? 를 묻고 있었다. 나는 내심 그냥 가게 한다,쪽이 훨씬 많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은근슬쩍 나만큼은 그런 사람이 아니야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할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까닭이다. 그러나 결과는 의외였다. 그 핑게로 내 차의 스크레치를 없앤다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제 아예 대놓고 나하나만을 생각하는 세상이 된 것일까? 씁쓸했다. 책속의 말을 기억하자. 타자를 통해 자기 삶의 연속성을 상상하는 이가 많아지면 우리 삶의 풍경도 바뀌지 않을까 라던.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