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죽기 위해 도시로 온다
권현숙 지음 / 세계사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우선 생각해 본다. 사랑은 무엇일까? 사랑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일까?
그리고 그 사랑이란 것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 것일까?
처음 이 책을 읽어가면서 나는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읽는 내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느껴지지 않았던 탓이다.
간결한 문체와 숨한번 크게 내쉬면 이내 부러져버릴 것처럼 꺾여들어가는 인색한 문장들 앞에서
나는 느낌없이 그저 눈길로만 책을 읽고 있었다.
도저히 그 안으로 뚫고 들어가 어떤 느낌이냐고 물을 수가 없었다.

이 책은 여섯편의 단편으로 엮여져 있다.
첫번째이야기, 두번째이야기, 세번째.... 읽어가면서 나는 나도 모르게 빠져들기 시작했다.
사랑했던 아내를 떠나보냈으면서도 그 아내와의 시간을 차마 버리지 못한채
무수히도 많은 시계들을 사들이는 남자의 기억속에서 (삼중주),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순간까지도 자신의 욕망을 억제하지 못한채 일그러지고 추한 얼굴로
여자의 체취에 코를 벌름거리며 더운 숨을 몰아쉬는 노인의 마지막 모습에서 (열린문),
사랑하였으나 그 사랑을 이루기 위한 육체의 상실로 인하여 자신의 존재감마져 거부해야 했던 남자와
그 사랑을 위해 홀연히 나타나 함께 머물러주기 원했던 어떤 여자의 이야기 (인간은 죽기 위해-) 는
사랑 그 이후의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작가는 왜 사랑후에 오는 죽음을 그리고 싶었을까?
316쪽 박수현님의 작품해설편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에로스는 왜 늘 타나토스를 짝으로 거느리고 나타나는가? 답은 소설속에 있다 라고.
타나토스를 달리 해석하자면 자기를 파괴하고 생명이 없는 무기물로 환원시키려는 죽음의 본능이라고
나온다. 죽음의 본능, 그러나 다시 태어나는 것...
태어나되 생명이 없는 무기물로 다시 태어나는 것...
무엇일까? 도대체 사랑이 무엇이길래 저토록 두려운 존재를 안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늘 사랑이란 이름의 짙게 화장한 얼굴만 만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사랑이 잉태하고 있는 미움과 증오와 원망과 때로 죽음으로 나타나는 자식들은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하지만 작가는 스스럼없이 그 사랑의 자식들이 어떤 형태로 나타날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
같다. 거침없는 표현들이 나름대로는 매력적으로 보여지기도 하는 걸 보면.
모두의 가슴속에 하나씩은 간직했음직한 욕망의 덩어리들을 숨기지 않고 보여주려 한다.
한지붕 아래에서 한침대를 쓰고 있는 여자에게 남자는 이렇게 말한다.
괜찮은 남자 있으면 만나라고, 자고 싶으면 자도 된다고.(마지막 수업)
정말 그럴까? 그 남자의 말처럼 상대가 나한테 만족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해줘야 하는게
진정한 사랑일까? 그것이 진정으로 상대방을 위하는 것일까?

작가는 사랑의 단계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었다. 너무도 강렬하게..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응시한다. 지나가는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보고 있는 순간을 절실히 느끼려고, 지금 이순간을 몸속 어딘가에 깊이 새겨 넣으려고.
나는 길게 손을 뻗는다. 무지개처럼 스러지는 저 노을을 만져보려고,
언젠가 그립게 추억할 이 순간을 잡아보려고, 보고 있다는 이 느낌을 실감하려고..
시어진 눈에서 눈물이 배어 나오는 줄도 모르고 줄곧 눈을 뜬 채로 쫓아가고 있다,
이 시간이 지나자마자 추억이 될 추억의 씨앗들을.(사랑을 그치고 삶이 있게 하라)
그 사랑의 끝에는 또다른 사랑의 모습으로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데도..
그러면서도 작가는 이렇게 말하고 싶은건지도 모르겠다, 사랑을 그치고 그 자리에 삶이 있게 하라고.
사랑이 되었든 미움이 되었든 모든 것은 우리의 삶속에 존재하나니...
그것이 어떠한 조건이 되었든 자신이 살아내고 있는 삶과 떨어뜨릴 수가 없나니...
보여지는 겉치레만으로 사랑을 평가하는 우리에게 어떤 경종이라도 울리고 싶었던 것일까?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소녀가 있었다. 그 소녀를 본 왕은 그만 사랑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왕이 죽은 후에 그 소녀는 왕의 무덤에 같이 묻혔다.(순장)
그 소녀는 소녀만 두고 가기가 안타까워  왕이 함께 묻어달라고 해서 묻혀진 것일까,
아니면 너무도 사랑했으므로 함께 있기 위해 왕의 무덤속으로 소녀 스스로 걸어들어간 것일까?
작가는 묻고 있었다. 도대체 사랑의 정의가 무엇이냐고.

참 잔인하다는 생각을 한다.
사랑을 위해 태어난 그 여자와 그 남자를 작가는 왜 가만 놔두지 않았을까?
우리 이대로 사랑하게 해 주세요 하던 TV광고의 카피처럼 그들을 그냥 사랑하게 놔둘수는 없었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문득 스쳐가는 얼굴들을 떠올린다.
가부키에 열중하고 있는 일본 연극배우의 얼굴과, 경극속에서 흐느적거리는 손끝을 바라보던
그 짙은 화장속에 가리워진 중국 배우들의 얼굴을..
짙게 그려진 화장뒤에 가리워진 얼굴이 행여 사랑이란 존재의 얼굴은 아닐까?
때로는 너무 아름답게 그러나 때로는 너무 아프게 다가오는 사랑이란 이름의 존재.
끝없이 유혹하는 손길로 우리를 부르는 사랑이란 이름의 존재.
작가의 말처럼 이 시간이 지나자마자 추억이 될 추억의 씨앗들을 위해
우리는 너무도 많은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닐까?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특별판)
로맹 가리 지음, 김남주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자기앞의 생>을 읽고 나서 꼬마 모모의 아픔이 너무도 절절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 작품을 쓴 사람이름이 에밀 아자르였던가?
그런데 이 책을 쓴 사람과 동일인이라고 한다.
로맹가리...
유태계로 태어나 프랑스인으로 살았으나 결국은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한 작가.
에밀 아자르 역시 그의 필명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두 이름으로 모두 콩쿠르상을 수상하여 세상을 놀라게 하기도 했단다.

이 책속에는 16편의 단편이 들어있다.
나는 사실 이미 <자기앞의 생>에 매료되어 있었던 까닭에 무조건적인 느낌으로 이 책을 선택했었다.
그런데 너무 허무했다.
글의 색채가 너무 잿빛이었고, 너무 짧아 미처 찾아내지 못한 의미들 또한 불투명하게 다가왔다.
아름다웠던 문체와 여기 보란 듯이 풍경을 그려주던 여유로움과는 달리
글마다 녹아져 있는 인간의 이중적인 모습들은 너무 씁쓸했다.

'어떤 휴머니스트'나 '몰락'을 통해 보여주었던 인간의 저 밑바닥 모습은
정말 처절하게까지 느껴지기도 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을 감추는 팔색조같은 인간의 내면성.
그러면서도 글속에서 찾아내어지던 고독과의 싸움, 그리고 순수에로의 갈망.
또하나의 단편 '벽'을 통해 보여지던 인간의 고독은 너무도 가슴이 저리게 했다.
얇은 벽하나를 사이에 두고 벌어졌던 남자와 여자의 자살은 함께 있어도 함께 있지 못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그대로 각인되어진 듯 보여지기도 했다.
말은 많으나 정작 주워담을 말은 없고,
하고 싶은 말은 많으나 가슴속에만 쌓아둔 채 차마 밖으로 뱉어내지 못하는 아이러니.
그런것들이 어쩌면 숨겨진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얇은 벽하나를 사이에 두고 오로지 자신만이 겪고 있다고 느꼈을 고독과의 처절한 싸움이
하나의 그림처럼 보여지는 것 같아 너무 안타까웠다.

우리는 흔히 비움의 철학에 대해 말하곤 한다.
자신을 비움으로써 얻어질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도대체 순수는 어디에' 편에서 보여주었던 한 남자의 비열하기까지한 욕망의 끝자락.
순수를 갈망하면서도 그 순수의 의미조차 퇴색시켜버린 채 무너져내리던 남자의 헛됨.
그리고 그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순수에 대한 끈질긴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선 무인도로 들어가 혼자 살아야 할 것 같다고.
모든 것은 자신에게서 비롯되는 것임을 그 남자는 모르고 있는 게다.
아니 어쩌면 모른척, 혹은 아닌 척 남에게 핑게를 대고 있는 게다.

책을 덮고나서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문득 <설국>의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생각이 났다.
그의 죽음과 작자의 죽음이 번져가는 물감처럼 그렇게 뿌옇게 흐려지고 있었다.
뭐였을까?
바람불어오는 텅 빈 놀이터에 나만 뎅그러니 남아 있는 듯한 그 느낌은.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경성기담 - 근대 조선을 뒤흔든 살인 사건과 스캔들
전봉관 지음 / 살림 / 200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종의 관음증일까?
책을 읽으면서 실소를 머금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사실적인 증거를 들이대는 책들에 매료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건지는 몰라도 환타지를 내세우는 책이나 영화쪽에는 별로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저자 전봉관님의 소개글을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딜가나 사람냄새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사람들속에 살면서도 사람냄새를 그리워하는 것은
우리의 생활이 그만큼 가면을 쓰고 산다는 말도 될터이다.
인문,교양쪽에서도 사람냄새나는 이야기들을 찾아헤맸다고 한다.
그 덕에 나는 또 이렇게 멋진 책을 읽게 되니 더불어 사람냄새를 느끼는게 아니고 무엇이랴.
일상적인 생활속에서도 우리는 공인이라고 일컬어지는 이들의 뒷모습에 대해 궁금해한다.
누구 누구의 사생활이 어쩌고 저쩌고...
누구 누구가 어디서 이러쿵 저러쿵...

이 책에서는 말한다.
너무나 인간적인 그들의 뒷모습만으로 그가 이룩한 것들에 대한 편견을 갖지 말라고.
그들이 숨기고자 했던 것들을 이렇게 들춰내는 것은
그들을 질타하고 욕하기보다는 그들에게도 이런 삶이 있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고.
맞는 말이다.
어쩌면 진정한 그들의 모습일수도 있을테니까.
책을 읽는동안 내내 머릿속에 함께 떠돌던 생각하나가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사는 모습은 같다는 거다.
살아가고 있는 배경,시대가 변하고 사회적인 모습만 변했을뿐
그 안에서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거였다.
신문이나 매스컴에서 열심히 떠들어댄 일이었으나 역사책에는 단 한줄조차 올라가지 못한 일들.
어쩌면 우리들의 역사는 좋은 것만 보고 싶어하고, 또한 좋은 것만 보여주려하는
또하나의 가면일런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일전에 읽은 엽기 조선왕조실록과 비슷한 류의 책이 아닐까 싶다.
단지 시대적인 차이만 있을뿐. (엽기~의 엽기적인 말만 뺀다면)

이 책속에 등장하는 인물중에서 나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했던 이야기는
시대의 파도앞에 무너져내린 신여성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앞서가는 생각과 관념을 받아들이지 못한 그 시대의 불운이 아닐까 싶은 마음에 안타까웠다.
박인덕이나 최영숙 같은 신여성들의 그 큰 뜻이 시대를 잘만났다면 어땠을까?
힘없는 자의 서러움일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뜻을 펼치고자 노력했던 그녀들에게 나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한사람과 그 사람에 얽힌 사건들이 이 책속에 수록되어 있다.
책제목을  奇談이라고 한 이유가 궁금했다.
기담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기이한 이야기들이다.
奇談이 아니라 우리곁에 늘 머물렀으나 우리가 모르고 지나쳐간 이야기들이 아니었을까?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철학 콘서트 1 - 노자의 <도덕경>에서 마르크스의 <자본론>까지 위대한 사상가 10인과 함께하는 철학의 대향연 철학 콘서트 1
황광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철학콘서트에 초대를 받았다.
거기에 가면 무엇을 보고 들을수 있을까 내심 설레였다.
입장권을 내고 들어서던 순간부터 나는 그 분위기에 압도되었다.
너무도 자연스러운 모습들이 펼쳐져 있었던 까닭이다.
너무 어렵지도 그렇다고 너무 쉽지도 않게 진행되어지는 콘서트의 묘미.
그러나 한편으로는 학창시절 듣고 싶었던 강의를 몰래 도강하는 기분이 들었다.

초대되어진 명사는 모두 열분.
모두가 내노라하는 분들만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맨처음으로 나와 콘서트의 시작을 알린 사람들은 스승과 제자였다.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라고,자신의 뜻을 위한 삶을 살라고 말씀하시며
오직 자신이 추구해 온 길만을 가기위해 죽음도 불사했던 스승 소크라테스와
그 스승을 바라보았던 제자 플라톤.
그러나 그 고매한 스승의 이념을 배웠던 플라톤은 그의 저서 <국가>에서
인간을 통치자집단과 비통치자집단으로 선을 그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면서도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꿈꾼다고 말을 하지.
하지만 중요한 것은 플라톤만큼 남녀평등 사상을 일관되게 주장한 이도 드물다고 한다.
두번째로는 고난의 역사속에서 세상을 구하고자 내려오신 분들
색증시공을 외쳤던 부처와 뜻대로 하옵소서를 외쳤던 예수가 있다.
이 콘서트를 주관한 지은이는 말한다. 불교는 종교가 아닌 철학이라고.
예수는 신의 아들이 아니라 사람의 아들이 아니었겠느냐고.
부처와 예수의 흔적을 따라가며 많은 이야기들을 풀어주고 있다.
그러고보니 소크라테스나 예수는 정치적인 희생양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세번째로 등장하신 분들은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를 논하신
공자님과 우리의 학자 퇴계 이황선생님이시다.
그야말로 나 잘났소 하면서 천하를 주유한 사람이 공자가 아니었을까 싶다.
부러질까 숙이지 못한 그 융통성없는 성품에 누군들 맞설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어느 한곳에 머물지 못한채 자신을 받아주지 못하는 현실만을 탓하며 세월을 다 보냈다.
그러나 성리학의 대가이신 우리의 이황선생님께서는 어떠신가.
비록 나이는 어리나 학문이 깊은 고봉 기대승과의 논쟁은 참으로 멋진 광경이었다.
내 것만이 옳다고 주장하기보다는 다른이의 뜻도 받아들여 함께 논하고자 했던 깊으신 아량.
역시 대한민국 만만세이다.
네번째로는 경제계를 대표해서 나오신 세분.
세상에는 없으나 우리가 꿈꾸는 세상 유토피아를 외쳤던 토마스 모어와
모든 일들은 남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보다는
자신을 위한 이기심에서 비롯되어졌다고 외쳤던 애덤 스미스와
자신의 노동력을 상품으로 팔며 그 대가로 화폐의 형태로 임금을 받는 관계속에서
자본가와 노동자의 수탈관계가 은폐되어진다고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분석과 강한 비판을 외쳤던 카를 마르크스이다.
이쯤에서 지은이는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알고 있느냐고 묻는다.
<동물농장>의 예언자 메이저 영감은 마르크스이며, 농장의 주인 존스 씨는 자본가이며,
<동물농장>의 새로운 지도자 나폴레옹은 스탈린을 이야기 하고 있다고.
참 놀라웠던 사실은 모어가 꿈꾸었던 주민자치제와 남녀 평등이 지금 현실화되었다는 사실이다.
하루 6시간 노동을 주장했던 그의 말이 스웨덴과 네덜란드에서는 현실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나는 마지막으로 나와 이 콘서트를 정리해 주실분은 누구일까 궁금했다.
놀랍게도 동양의 철학자 노자였다.
이 콘서트의 주관자이자 지은이는 이렇게 말한다.
노자가 말하는 세상 '21C 유토피아,동막골'로 우리 함께 가보자고.
모든 인위적인 것을 버리고 자연스럽게 살자고 말했던 노자의 사상속에 빠져보자고.
노자는 "마음을 비우고 뜻을 줄이라"고 했다고 한다.
인생 뭐있냐? 그저 잘먹고 잘입고 따뜻한 방에서 맘편하게 살면 되는 것이지....
그래서 지은이는 아직도 휴대폰이 없느냐는 소리를 들으면서 산단다.

콘서트는 끝났다. 그러나 나는 그 콘서트장을 쉽게 떠나지 못했다.
철학콘서트가 아니라 철학심포지엄이었으면 더 좋았을걸 그랬다.
이 어려운 이야기들을 술이나 한잔 하면서 가볍게 들을 수 있게 말이다.
근데 철학이 뭐지?
여태 철학속에 있었으면서도 이제와서 또 묻는다. 철학이 뭐지?
그렇다면 나한테도 나만의 철학이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나의 철학은 또 뭐지?
철학, 뭐 별거 있냐?
내가 사는게 다 철학이지!
맞나?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알고보면 매혹적인 죽음의 역사
기류 미사오 지음, 김성기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책을 처음 받았을 때의 느낌이 참 매끄럽고 좋았다.
책속에서 어떤 것들이 나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책을 펼치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검은장미 한송이.
애달픈 사랑속에서 찾아지는 죽음의 모습을 보여주다가 느닷없이 섬뜩한 죽음으로 안내하는
그리고는 그 죽음의 미학으로 나를 몰아세우는 ....

1부에서 보여주는 죽음과 에로스에서는 죽음마져도 사랑으로 승화되어질 수 있는
잔인한 사랑이야기가 펼쳐진다.
자신을 사랑해주는 황제의 수명을 연장하기 위하여 기꺼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소년 노예의 이야기나
너무나 사랑했으나 신분의 격차로 인하여 인정 받을 수 없었던 황태자의 사랑앞에서
죽은 뒤에야 왕비의 자리에 올랐던 한 여자의 기구한 사랑이야기,
단순한 소와의 싸움으로만 알고 있었던 스페인의 투우이야기 속에 내재되어진 서글픔은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일들속에 숨겨져 알수 없었던 어떤 의미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자신의 사랑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결국 목이 잘려진 남자의 머리를 끌어안은채 눈물을 흘렸다던
살로메의 일화는 사랑이었을까 집착이었을까?

2부에서는 인간의 욕망으로 표현되어지는 죽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오래전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자행되어져 온 식인풍습들,
너무나도 혹독하고 그야말로 무서우리만치 섬뜩하게 잔인한 고문의 풀코스 이야기는
말할 수 없을만치 놀랍고도 경악스러웠다.
죽은뒤의 세상을 생각하며 저질러졌던 어이없는 일들에 대해 많은 일화로 들려주던 부분에서는
사실이 아니기를 바래보기도 했다.
흑사병이라는 재앙이 몰아닥쳤을 때 그것으로 인한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올수록
사람들은 더 열정적으로 춤을 추고 쾌락을 탐하며 방탕에 몸을 내던졌다고 한다.
순간의 쾌락으로 불안과 공포를 잊으려 했지만 결국 죽음의 그림자를 떨쳐버리지 못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인간의 욕망과 에로스를 극한에 이르게 하였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음이다.

이어지는 3,4,5부에서는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라거나 자살을 둘러싼 이야기들,
그리고 임종을 맞이하는 인간의 모습들을 다양한 예로 보여주고 있다.
희생양이 되어 죽어간 잔다르크의 일화나 많은 문인들의 기이한 사랑형태와 죽음의 순간들,
최근의 죽음으로 영국의 왕세자비였던 다이애나의 의문사까지...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그야말로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도 보여준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느닷없이 피식 웃어버리고 말았다.
사랑하는 마음을 갖지 말자 미움의 뿌리가 되기 쉬우니...라는 오래된 유행가가 생각났던 까닭이다.
왜 그런 말이 떠올랐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사실 이 말은 법구경에도 나오는 말이란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여정속에도 죽음이라는 건 늘 함께 걸어가는 동반자가 아닐까 하는,
그래서 우리는 살아가는 내내 죽음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통하여 세월이 흐르면서 죽음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보게 되었다.
아주 오래전에 이미 페르 라세즈 같은 묘지를 꿈꾸었다는 이야기는 좀 놀라웠다.
책속에 실려진 페르 라세즈 묘지의 모습은 우리가 알고 있는 공원화된 묘지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아주 편안한 느낌으로 죽음이란 존재를 맞이하고 싶은게 인간의 마음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기류 마사오...
프랑스 문학과 역사를 공부했으며 유럽 역사의 이면에 숨겨진 에피소드를 소개해 왔다고 한다.
작자는 왜 이렇게까지 죽음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책을 쓰는 동안 그가 느꼈던 것은 또 무엇일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알고보면 매혹적인 죽음의 역사...
과연 죽음은 어떤 형태를 막론하고 매혹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맨 마지막 책장을 넘기면 검은장미 두 송이를 만나게 된다.
서로 마주보는 검은장미 두송이, 그리고 암흑...
어쩌면 삶과 죽음의 모습일런지도 모르겠다.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