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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죽기 위해 도시로 온다
권현숙 지음 / 세계사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우선 생각해 본다. 사랑은 무엇일까? 사랑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일까?
그리고 그 사랑이란 것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 것일까?
처음 이 책을 읽어가면서 나는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읽는 내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느껴지지 않았던 탓이다.
간결한 문체와 숨한번 크게 내쉬면 이내 부러져버릴 것처럼 꺾여들어가는 인색한 문장들 앞에서
나는 느낌없이 그저 눈길로만 책을 읽고 있었다.
도저히 그 안으로 뚫고 들어가 어떤 느낌이냐고 물을 수가 없었다.
이 책은 여섯편의 단편으로 엮여져 있다.
첫번째이야기, 두번째이야기, 세번째.... 읽어가면서 나는 나도 모르게 빠져들기 시작했다.
사랑했던 아내를 떠나보냈으면서도 그 아내와의 시간을 차마 버리지 못한채
무수히도 많은 시계들을 사들이는 남자의 기억속에서 (삼중주),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순간까지도 자신의 욕망을 억제하지 못한채 일그러지고 추한 얼굴로
여자의 체취에 코를 벌름거리며 더운 숨을 몰아쉬는 노인의 마지막 모습에서 (열린문),
사랑하였으나 그 사랑을 이루기 위한 육체의 상실로 인하여 자신의 존재감마져 거부해야 했던 남자와
그 사랑을 위해 홀연히 나타나 함께 머물러주기 원했던 어떤 여자의 이야기 (인간은 죽기 위해-) 는
사랑 그 이후의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작가는 왜 사랑후에 오는 죽음을 그리고 싶었을까?
316쪽 박수현님의 작품해설편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에로스는 왜 늘 타나토스를 짝으로 거느리고 나타나는가? 답은 소설속에 있다 라고.
타나토스를 달리 해석하자면 자기를 파괴하고 생명이 없는 무기물로 환원시키려는 죽음의 본능이라고
나온다. 죽음의 본능, 그러나 다시 태어나는 것...
태어나되 생명이 없는 무기물로 다시 태어나는 것...
무엇일까? 도대체 사랑이 무엇이길래 저토록 두려운 존재를 안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늘 사랑이란 이름의 짙게 화장한 얼굴만 만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사랑이 잉태하고 있는 미움과 증오와 원망과 때로 죽음으로 나타나는 자식들은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하지만 작가는 스스럼없이 그 사랑의 자식들이 어떤 형태로 나타날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
같다. 거침없는 표현들이 나름대로는 매력적으로 보여지기도 하는 걸 보면.
모두의 가슴속에 하나씩은 간직했음직한 욕망의 덩어리들을 숨기지 않고 보여주려 한다.
한지붕 아래에서 한침대를 쓰고 있는 여자에게 남자는 이렇게 말한다.
괜찮은 남자 있으면 만나라고, 자고 싶으면 자도 된다고.(마지막 수업)
정말 그럴까? 그 남자의 말처럼 상대가 나한테 만족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해줘야 하는게
진정한 사랑일까? 그것이 진정으로 상대방을 위하는 것일까?
작가는 사랑의 단계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었다. 너무도 강렬하게..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응시한다. 지나가는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보고 있는 순간을 절실히 느끼려고, 지금 이순간을 몸속 어딘가에 깊이 새겨 넣으려고.
나는 길게 손을 뻗는다. 무지개처럼 스러지는 저 노을을 만져보려고,
언젠가 그립게 추억할 이 순간을 잡아보려고, 보고 있다는 이 느낌을 실감하려고..
시어진 눈에서 눈물이 배어 나오는 줄도 모르고 줄곧 눈을 뜬 채로 쫓아가고 있다,
이 시간이 지나자마자 추억이 될 추억의 씨앗들을.(사랑을 그치고 삶이 있게 하라)
그 사랑의 끝에는 또다른 사랑의 모습으로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데도..
그러면서도 작가는 이렇게 말하고 싶은건지도 모르겠다, 사랑을 그치고 그 자리에 삶이 있게 하라고.
사랑이 되었든 미움이 되었든 모든 것은 우리의 삶속에 존재하나니...
그것이 어떠한 조건이 되었든 자신이 살아내고 있는 삶과 떨어뜨릴 수가 없나니...
보여지는 겉치레만으로 사랑을 평가하는 우리에게 어떤 경종이라도 울리고 싶었던 것일까?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소녀가 있었다. 그 소녀를 본 왕은 그만 사랑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왕이 죽은 후에 그 소녀는 왕의 무덤에 같이 묻혔다.(순장)
그 소녀는 소녀만 두고 가기가 안타까워 왕이 함께 묻어달라고 해서 묻혀진 것일까,
아니면 너무도 사랑했으므로 함께 있기 위해 왕의 무덤속으로 소녀 스스로 걸어들어간 것일까?
작가는 묻고 있었다. 도대체 사랑의 정의가 무엇이냐고.
참 잔인하다는 생각을 한다.
사랑을 위해 태어난 그 여자와 그 남자를 작가는 왜 가만 놔두지 않았을까?
우리 이대로 사랑하게 해 주세요 하던 TV광고의 카피처럼 그들을 그냥 사랑하게 놔둘수는 없었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문득 스쳐가는 얼굴들을 떠올린다.
가부키에 열중하고 있는 일본 연극배우의 얼굴과, 경극속에서 흐느적거리는 손끝을 바라보던
그 짙은 화장속에 가리워진 중국 배우들의 얼굴을..
짙게 그려진 화장뒤에 가리워진 얼굴이 행여 사랑이란 존재의 얼굴은 아닐까?
때로는 너무 아름답게 그러나 때로는 너무 아프게 다가오는 사랑이란 이름의 존재.
끝없이 유혹하는 손길로 우리를 부르는 사랑이란 이름의 존재.
작가의 말처럼 이 시간이 지나자마자 추억이 될 추억의 씨앗들을 위해
우리는 너무도 많은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닐까?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