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특별판)
로맹 가리 지음, 김남주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자기앞의 생>을 읽고 나서 꼬마 모모의 아픔이 너무도 절절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 작품을 쓴 사람이름이 에밀 아자르였던가?
그런데 이 책을 쓴 사람과 동일인이라고 한다.
로맹가리...
유태계로 태어나 프랑스인으로 살았으나 결국은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한 작가.
에밀 아자르 역시 그의 필명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두 이름으로 모두 콩쿠르상을 수상하여 세상을 놀라게 하기도 했단다.

이 책속에는 16편의 단편이 들어있다.
나는 사실 이미 <자기앞의 생>에 매료되어 있었던 까닭에 무조건적인 느낌으로 이 책을 선택했었다.
그런데 너무 허무했다.
글의 색채가 너무 잿빛이었고, 너무 짧아 미처 찾아내지 못한 의미들 또한 불투명하게 다가왔다.
아름다웠던 문체와 여기 보란 듯이 풍경을 그려주던 여유로움과는 달리
글마다 녹아져 있는 인간의 이중적인 모습들은 너무 씁쓸했다.

'어떤 휴머니스트'나 '몰락'을 통해 보여주었던 인간의 저 밑바닥 모습은
정말 처절하게까지 느껴지기도 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을 감추는 팔색조같은 인간의 내면성.
그러면서도 글속에서 찾아내어지던 고독과의 싸움, 그리고 순수에로의 갈망.
또하나의 단편 '벽'을 통해 보여지던 인간의 고독은 너무도 가슴이 저리게 했다.
얇은 벽하나를 사이에 두고 벌어졌던 남자와 여자의 자살은 함께 있어도 함께 있지 못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그대로 각인되어진 듯 보여지기도 했다.
말은 많으나 정작 주워담을 말은 없고,
하고 싶은 말은 많으나 가슴속에만 쌓아둔 채 차마 밖으로 뱉어내지 못하는 아이러니.
그런것들이 어쩌면 숨겨진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얇은 벽하나를 사이에 두고 오로지 자신만이 겪고 있다고 느꼈을 고독과의 처절한 싸움이
하나의 그림처럼 보여지는 것 같아 너무 안타까웠다.

우리는 흔히 비움의 철학에 대해 말하곤 한다.
자신을 비움으로써 얻어질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도대체 순수는 어디에' 편에서 보여주었던 한 남자의 비열하기까지한 욕망의 끝자락.
순수를 갈망하면서도 그 순수의 의미조차 퇴색시켜버린 채 무너져내리던 남자의 헛됨.
그리고 그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순수에 대한 끈질긴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선 무인도로 들어가 혼자 살아야 할 것 같다고.
모든 것은 자신에게서 비롯되는 것임을 그 남자는 모르고 있는 게다.
아니 어쩌면 모른척, 혹은 아닌 척 남에게 핑게를 대고 있는 게다.

책을 덮고나서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문득 <설국>의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생각이 났다.
그의 죽음과 작자의 죽음이 번져가는 물감처럼 그렇게 뿌옇게 흐려지고 있었다.
뭐였을까?
바람불어오는 텅 빈 놀이터에 나만 뎅그러니 남아 있는 듯한 그 느낌은.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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