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명산 수첩 Outdoor Books 5
최선웅 지음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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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추억의 시간이었다. 책을 보는 내내 지나간 날의 추억속에서 헤어나지 못한채 그렇게 즐거움과 기쁨을 만끽했던 것 같다. 한 때 산에 미쳤다고 할만큼 여분의 시간이 생길 때마다 산속을 헤매다녔던 적이 있었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보는 내내 가보지 못했던 산의 이름은 나를 유혹하는 듯 보였고, 이미 기억속에 자리한 산의 이름은 다시 못 올 그 시간을 되돌려 줄 듯 나를 유혹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숫자로써 무언가를 정의내리길 원하게 된 모양이다. 100명산이라~~ 딱히 그 100개의 산이름을 명산이라고 이름지울 필요는 없을텐데도 말이다. 산은 어느 산이든 그 산대로의 매력이 넘쳐난다. 똑같은 산, 똑같은 코스라 할지라도 등산할 때와 하산할 때의 느낌이 다르고 각 계절마다 그 맛이 다르니 더 말해 무엇할까?  이십대의 추억중에서도 가장 으뜸인 것이 산행의 즐거움이다. 오죽했으면 남편이 당신 앨범은 더이상 볼 것이 없다고 말했을까? 매냥 똑같은 배경 똑같은 등산복차림이니 말이다.

다녀 본 산중에 어떤 산이 제일 좋아요? 가끔 이렇게 묻는 사람들이 있곤 한다. 그럴때 나의 대답은 한결같다. 산은 다 좋아요.. 하지만 그래도 내 기억속에 가장 멋지게 자리한 산이 있다면 가평 현리에 있는 운악산이랍니다..  그 좋다는 설악산이나 지리산처럼 큰 산을 말하지 않은 까닭일까? 사람들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곤 한다. 이 책에도 나와 있듯이 운악산은 경기 5악중의 하나다.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만 산을 오르면서 느낄 수 있는 느낌은 참으로 넓고 깊다. 산세도 참 아름답다. 산을 오르며 볼 수 있는 그 바위들과 나무의 어울어짐은 마치 한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하다. 현등사에 들러 두손모아 합장하며 잠시 다리쉼을 하던 때가 엊그제만 같다.

산행코스와 각 코스마다 소요되는 산행시간도 물론 중요하지만 내가 처음 산행을 하기 시작할때 가장 난감했던 부분이 바로 대중교통수단이 아니었나 싶다. 내 차를 운행하다보면 내려왔던 길로 다시 하산을 해야 하는 까닭에 왠지 밋밋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지인들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좀 더 상세하게 나와 있는 대중교통수단이 없을까 찾아 헤맨적도 있었다. 지금이야 인터넷에 검색만하면 바로 찾아질수도 있는 세상이지만 이 책처럼 작게 만들어져 항상 휴대할 수 있게 나와 있는 것이 있었으면 했다. 내가 이 책에 욕심내게 된 까닭도 거기에 있다. 하지만 내 생각이 욕심이었던 것일까? 아니 욕심이었다고 나는 결론을 내렸다. 서울을 출발하여 터미널에 도착하고 그곳 터미널에서 가야할 동네이름까지는 누구나 겁내지 않고 찾아갈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어디서 내려야 등산 시작점과 멀지 않은지를 알 지 못하니 참으로 난감하다. 그 차의 종점과 등산시작점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왕왕 있는 까닭이기도 하다.  바로 등산시작점을 찾을 수 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이렇게 초보 산행하는 사람들의 안타까운 마음을 헤아려 줄 수 있는 프로산악인들의 배려를 생각했던 나의 마음이 조금은 씁쓸했다. 아직은 우리나라의 표지판을 따라 움직인다는 게 그리 쉽지 않다는 점이 내게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든 이유이기도 하다.  어느 책을 봐도 빠지지 않는 먹을거리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이 있긴 하지만 음식점 정보는 그토록 자세히 해주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에 음식점 정보를 볼 때마다 나는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니 나도 참 어지간하다. 하긴 어떤 분들은 그 음식점에 전화를 해서 내려야 할 곳을 찾는다고도 하니 영 도움이 되지 않는건 아닌 모양이다 ㅎㅎ. 

이 책은 그야말로 산행수첩이다. 작고 아담한 사이즈, 마치도 사전같다. 산행사전.. 산에 관한 정보가 쏠쏠하다. 특히 도움이 될 수 있을만 한 것은 각 지점과 지점사이인 단거리 코스에도 소요시간을 적어주었다는 점이다. 등산길과 하산길의 소요시간도 알 수 있으니 많은 도움이 될 듯 하다.  아직 가보고 싶은 산이 너무나 많다.   치를 떨며 산을 올라야 한다고해서  치악산이라고 사다리병창코스를 지나며 누군가가 말했었다. 치악산 비로봉에 처음 올랐을 때 쌓아놓은 돌탑이 어찌나 신기해보이던지.. 호반의 도시 춘천을 한아름 안아볼 수 있는 삼악산과 다도해의 멋진 풍경을 가슴속에 담을 수 있어 좋았던 두륜산은 정상에서 바라보는 조망이 그야말로 끝내주었던 산이었다.  건강이 허락된다면 할머니가 되어서도 할아버지가 된 남편과 손을 잡고 간단한 베낭하나 짊어지고 함께 산행을 해보고 싶다. 아직 가보지 못했으나 먼 훗날에 늙어진 모습으로 남편과 다정하게 이야기하며 오르고 싶은 산이 있다. 해인사를 품고 있는 가야산이다. 언제쯤이면 가야산을 오를 수 있으려는지.../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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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리 가든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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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호, 시즈에,나카노,쇼노스케,세리자와, 쓰쿠이... 두 여자와 그녀들의 일상이 되어주는 남자 네명의 이야기가 실타래처럼 엉켜드는 이야기다.

과거를 껴안고 사는 여자, 가호..
안경점의 직원이다. 느릿 느릿 그러나 쉼없는 그녀의 일상은 늘 일정한 속도와 일정한 높이를 잃지 않는다.  늙은 고양이 후키를 가끔씩 자신의 담요속으로 불러 들이는 여자.. 헤어진지 이미 5년이 되어가는 남자 쓰쿠이를 잊지 못해 자기 자신을 유리컵을 내던지듯이 깨뜨려 조각내버리는 여자. 아니 그와의 기억으로 현실을 지탱해 나가는 여자일런지도 모르겠다. 그녀에게 있어 사랑이란 건 이미 어떤 정의를 상실해버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늘 같은 아침, 같은 오후, 같은 저녘, 같은 밤만이 그녀에게 존재할 뿐이다. 알 수 없다. 그녀가 왜 이 남자와 자고 저 남자와 또 자는지를.. 그것을 누군가는 복수라고 말했지만 그녀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몸짓으로 말하고 있다.
안경점의 동료 나카노는 어쩌면 과거로부터 그녀를 탈출시키기 위한 하나의 탈출구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끊임없이 그녀의 주위에서 그녀를 바라보는 남자.. 그녀의 모든 것을 껴안고 그녀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그녀의 모든 것을 묵묵하게 바라보기만 하던 그 남자도 가호의 옛사랑앞에서는 주춤거렸지.. 아직도 살아 숨쉬는 그녀의 옛사랑을 어쩌지 못한채로.. 아니 그녀의 사랑이 너무 단단해 보여서.. 단지 그녀가 그것으로 인해 버텨내는 세상살이를 이해하게 되었을 때 온전하게 그녀를 사랑하는 걸 보면 사랑은, 그렇게 기다려주는 아름다움이 필요한 것일게다...

현실에 매달려사는 여자, 시즈에..
미술선생님이다. 키가 크고 마른 여자.. 그녀의 일상은 마치도 자로 잰듯하다. 총총히 자신의 길만을 왔다갔다하는 시계바늘처럼 그렇게 늘 제자리를 지켜내려 애쓰면서. 그녀 자신은 불륜이라고 전혀 생각지 못하는 유부남 세리자와와의 사랑. 난 아내도 있고 열다섯살짜리 딸도 하나 있지, 아주 태연하게 말할 수 있는 세리자와라는 사람의 사랑은 그녀에게 있어서 진정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일까? 가끔씩 만나 그 사랑에 충실하고 또한 그렇게 충실했던 자신의 시간에 대한 연민이나 미련따위를 갖지 않기 위해 자신을 다독이며 살아가고 있는 여자다. 그것으로 되었다고 늘 생각하면서. 하지만 가끔씩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그녀도 그녀의 사랑에 욕심을 부린다. 갖고 싶다고, 늘 곁에 있게하고 싶다고, 헤어지는 순간이 너무도 싫다고.. 그런 걸 보면 사랑은 바라보기만 할 수는 없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사랑은 어느 방향에서 보느냐에 따라 모습을 달리하는 모양이다.
그런 그녀를 지켜주고 싶어하는 남자 쇼노스케는 대학시절의 연인이다. 연인의 감정을 뛰어넘은 우정일까? 차마 연인이 될 수 없었던 우정일까? 도무지 아리송하다. 그녀를 생각하는 그의 마음도, 그를 생각하는 그녀의 마음도 어찌보면 참으로 이기적이란 생각이 든다. 결혼한 여자친구들은 불러내기가 부담스럽다며 자연스럽게 쇼노스케를 불러내는 그녀의 내면에는 과연 어떤 생각이 잠재해 있는 것일까?

자신이 살아가야할 몫의 시간들을 다 채우고 난 뒤의 여백을 채워주는 두 여자의 이야기는 사실 뭐 이렇다하게 별다른 건 없어 보였다. 누구나 다 그렇게 살아가는 거니까, 누구나 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 테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별다를 게 없어보이는 두 여자의 일상을 보여주고 싶었던 작가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혹시 우리의 기억속에서 잊혀져 가고 있는 아주 작은 것들을 다시한번 돌아보게 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너무 가까이 있어서 만지지 못하고, 느껴질 수 없어 버려진 조각난 시간들을 퀼트를 하듯이 그렇게 꼼꼼하게도 잘 엮어 놓았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들이 점처럼 그렇게 콕콕 찍혀져 있다. 그런데 나에게는 왠지 그 시간들이 참으로 쓸쓸하게 다가왔다. 너무도 오랜동안을 곁에 있어주어서 이제는 도무지 멀어질 수 없을 것만 같은 두 여자조차도 사실은 각각의 시간에 대한 비밀을 간직하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속이 아니라 겉뿐인 것을 두여자를 통해 여실하게 봐버린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남의 이야기는 들어주지 못하면서 그저 자신의 이야기만을 쏟아내고 싶어하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아픔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두 여자의 모습이 마치도 평행선 같다.
다 보여주는 것 같아도, 다 말해주는 것 같아도 사실은 알맹이는 쏙 빼고 이런 거야, 하며 겉껍질만 보여주는 두 여자의 마음을 본 것만 같아 씁쓸하기도 하다.  들키고 싶어하지 않는 자기만의 세계의 빗장은 여전히 굳건하게 질러놓고 말이다.

기다림으로 사랑을 얻었을까? 결국 다시 한침대를 쓰며 지내고 있는 나카노와 가호의 사랑은 시작되고 있었던 것일까? 옛사랑의 상처와 그 시간들을 묶어 보관하던 비스켓 상자를 열었을 때 이미 가호의 새로운 사랑은 집을 짓기 시작했던 것 같다. 오랜동안의 기다림으로 다져진 그들의 사랑이 왠지 잘 그려진 수채화같다는 생각을 한다. 오래되어도 흔적으로 각인되어질 사랑이 아니기를 ... 가호의 일상을 사랑해 줄 수 있었던 나카노의 진실함과 배려가 참으로 아름다웠다.

무슨 얘기든 상관없다. 남편 얘기든 투정이든, 어떤 얘기든 상관없다.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푸근해졌다. 사회속에서 비슷한 곤란을 겪고, 하루하루 모색하면서 생활하는 사람들...(60쪽) 바로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질펀하게 흐트러져 있던 책이었다는 생각을 한다. 가끔씩은, 정말이지 아주 가끔씩은 남의 아픔도 들어주어야만 한다. 나의 귀를 빌려줄수도 있어야 한다. 나 혼자만이 존재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므로..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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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회 대한민국 디지털작가상 수상작
권오단 지음 / 포럼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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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러운 세상.. 그래도 뜻을 굽히지 않는 선각자는 반드시 있다. 단지 그 뜻을 관철시킴에 있어서 산넘어 산이라는 명제가 존재할 뿐이다. 책속 세상은 그다지 어지럽지 않다. 아니 내 생각이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니 책을 읽어내기가 그리 부담스럽지 않다는 뜻도 되겠다. 역사적인 흐름속에 작가의 상상이 덧붙여져 한결 매끄러운 진행을 보여주고 있는 듯 하다. 임진왜란이 오기전의 상황처럼 보여진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느닷없이 삼국지를 생각한다. 유비와 그의 아우들, 그리고 유비의 상대적 존재인 조조.. 왜일까? 아마도 전쟁을 치루는 장면들이 삼국지의 한 대목과 겹쳐졌던 까닭인 듯 하다. 우리에게도 내노라하는 장군들이 있었음이다. 우리에게도 이름 석자만 내세우면 적장이 벌벌 떨었다던 그런 장군이 있었음이다. 그것이 허구의 인물일지라도 통쾌한 일임엔 분명하다. 헌데 그들은 왜 그 시절의 흔적으로조차 남지 못했는가? 반상의 계급이라는 것이 혹처럼 달려 도무지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 혹부리 영감의 혹은 노래값이라도 받았건만 그놈의 반상을 따지는 혹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가만히 살펴보면 지금의 현실과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조선시대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지금 우리나라를 이끌어가고 있다고 큰소리치며 언론에 얼굴을 팔고 있는 사람들이 겹쳐진다. 잘난 사람들이다. 어쩌면 그리도 옛관습의 못된 것만 잘 따라하는지...

선조.. 선조를 말하게 되면 나는 이상하게도 백성을 버리고 도망 간 왕이란 전제를 먼저 떠올린다. 널리 인재를 잘 살펴 고루 쓰며 나랏일을 잘 보았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결국 당쟁의 소용돌이에서 헤어나오지 못한채 백성을 버리고 도망해야 했던 비운의 왕이란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이 책속에서 만날 수 있는 이이라는 인물에 다시한번 생각하게 된다. 피난을 가던 왕이 이이의 상소문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던.. 만약에, 정말 만약에 왕께서 그때 이이가 올렸던 상소문을 받아들였다면 어땠을까? 시무 육조나 십만양병설을 받아들였다면 어떠했을까? 아마도 지금의 우리가 이토록 약소한 국가로 남지는 않았으리란 생각이다. 작가는 추풍검 바우와 야차장군 백손이라는 백성을 내세워 그런 속아픔을 토닥여준다. 어쩌면 반상의 계급을 따지지 않고 현실적으로 인재를 등용하려 했던 이이에게도 한점 위안이 되었으리라.

영웅은 시대가 만든다고 했던가? 어린 시절부터 당파싸움의 부당함이 싫었던 광해군 역시 자신을 도와주었던 대북파의 힘을 어쩌지 못했던 걸 보면 왕은 제 홀로 되고 싶다고하여 왕이 될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잠깐 잠깐 비춰지던 어린 광해군의 모습들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조선시대의 사회상을 조목조목 엿볼 수 있는 걸 보면 이 책속에서 만나지는 어지러움은 전쟁이 피해로 어지러운 나라의 모습이 아닌 듯 하다. 도무지 현실적이지 못한, 아니 현실적일 수 없는 나리님들의 탁상공론은 볼 때마다 역겹다. 제 앞길만을 생각하며 그릇된 논리만을 펼쳐대는 어지러움.. 그 어지러움을 이 책속에서 만나게 된다. 우리의 선각자만이 그것을 가슴아파할 뿐이다. 그리 깊이있게 읽혀지지는 않은 듯 하다. 그저 물흐르듯이 가볍게 받아들이며 읽어도 무방할 듯 하다. 그저 망극하옵니다만을 외치는 대목에서는 이것들을 그냥! 하다가도 우리의 주인공들이 야인들을 물리치며 용감하게 싸워대는 대목에서는 통쾌하다. 큰 뜻을 품고 있으면서도 스스로의 기개를 깨닫지 못한채 자신의 허울속에 갇혀 살았던 민족의 아픔이 느껴지는 책이지 싶다. 주말 드라마의 한편을 본 듯하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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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광인 - 상 - 백탑파白塔派, 그 세 번째 이야기 백탑파 시리즈 3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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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문학에 관권이 개입됨으로 인하여 모처럼 싹트려 하던 문학의 발전을 저해했다던 문체반정..
훗날에 소설 발달의 모태가 되었다던 패관문학.. 민간인들의 생활속에서 수집한 이야기에 창의성을 더한 산문 문학을 패관문학이라고 했다. 그런데 왜 우리의 왕께서는 그런 문학을 못하게 하셨을까? 굳이 옛날의 의식이나 법을 따라야만 했던 까닭이 있었던 것일까? 문득 한글창제를 반대했다던 양반님들이 떠올랐다. 백성이 알면 알수록 부리기가 힘겨워지기때문이라고 했던가? 우리의 옛선인들께서는 왜 민초들의 삶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두려워했던 것일까? 

백탑파 서생들과 정조대왕의 이야기..
여기서 백탑파는 영정조 시대에 탑골 백탑 아래에 모여 시문을 공부하고 경세를 논한 대표적인 지식인 그룸을 말한다. 박지원,홍대용,박제가,이덕무,유득공,백동수등을 핵심으로 했다. 대부분이 서얼이라는 신분적 한계로 당상관의 반열에는 오르지 못했으나 정조의 정치 개혁과 문화 혁신을 충실히 보필하였다고 한다. 선진적인 문명의식을 지녔고 북학사상을 지녔다.(-책표지 뒷면 참조)  이 책속에서는 그들의 선진적 문명사상을 논한다기 보다는 그들과 씨줄 날줄처럼 엮여져 있는 암투를 좀 더 많이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문을 열고 들어가기가 참으로 힘겨웠던 책이었다. 문어체로 되어 있어던 까닭이었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책을 읽으며 힘겨운 단어마다 뜻풀이를 함께 읽어주어야 한다는 심리적인 부담감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책장을 열면 백탑파 서생들을 탄압하는 왕의 모습부터 만나게 된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결과부터 보여지는 상황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책장을 넘겨가면서 나는 나도 모르게 책속 세상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연쇄살인을 쫓아가는 나의 발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했고, 단지 '열하광인' 이었기에 연쇄살인범의 누명을 쓴채 사건을 쫓아다니던 의금부 도사 이명방의 호흡을 함께 느끼고 있었던 거다. 왕의 종친이면서 의금부 도사인 이명방의 고뇌.. 그야말로 충신일 수 밖에 없었던 이명방의 올곧은 충성심.. 내쳐 달려가던 이명방의 안타까운 사랑앞에서 나는 못내 안타까워 종종 걸음을 쳤다.

가족과도 같았던 '열하광인'들이 하나씩 죽어가고 그 사건을 따라 흘러가던 문체반정의 내막은 참으로 놀라웠다. 어쩌면 왕은 모든것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곁에 두어 제 사람을 만들었으나 온전히 마음을 다 줄수 없었던, 외로우나 외로울 수 없었던 왕의 허황한 마음이 보여지는 것 같았다. 좀 더 강한 도구로 연마하기 위하여 그랬었다던 왕의 마지막 대사가 왠지 서글프게 들려왔다. 사건을 해결해 나가던 화광 김진의 일목요연한 움직임은 또한번의 놀라움을 선사해주었다. 뒤늦게 나타나 사건의 실마리를 틀어쥐며 아귀를 짜맞추던 김진의 모습에 공연한 안도감이 스며들었던 것은 또 무슨 까닭일까?

왕에 대한 충심.. 적어도 왕만큼은 자신을 버리지 않았을거라던 맹목적인 믿음앞에서 잔잔하게 부서져 나가던 이명방의 사랑이 안타까웠다. '열하광인'들이 모두 다 죽고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만이 남았을때 그 하나뿐인 사랑을 의심해야했던 이명방의 아픔.. 오직 자신만의 안위를 걱정하던 사랑앞에서 차마 말할 수 없었던 의심의 고통을 미안하다는 말로 어찌 다 지울수 있을까?  이 책속에는 참으로 많은 것들이 존재한다.  대쪽같은 의리가 살아 숨쉬고 깨질 것 같지 않은 믿음이 버티고 있다. 그 믿음과 의리를 감싸고 도는 강같은 사랑과 상대를 배려해주는 마음은 이 책속에서 산소같은 역할을 해주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서얼의 자식은 또다시 서얼일수 밖에 없음으로 혼인할 수 없다던 명은주의 말은 시대적인 배경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그 서얼들이 바로 왕의 코밑에서 일을 했던 곳이 규장각이기도 했다. 탕탕평평.. 인재를 고루 살펴 썼다던 정조대왕.. 그 왕을 위해 헌신하던 백탑파 서생들의 믿음을 왕은 끝내 저버린 것일까? 지금까지 써왔던 패관소품체를 대표하던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금서로 꼽으며 백탑파의 서생들에게 자송문을 지어바치라던 왕은 너희들을 버린게 아니라 좀 더 지켜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고 말하지만 그 말을 믿어야 한다고 절규하던 이명방에게 화광 김진은 이렇게 말했었지.. 군왕은 군왕의 도리를 다 할 뿐이라고.. 누구나 다 자신의 도리를 다할 뿐이라고..

그렇다면 살인범은 누구였을까? 감히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감 떨어지듯이 툭 튀어나온 살인범의 살해동기가 처음엔 너무도 믿기지 않았었다. 책을 읽으며 간직해오던 느낌들을 고스란히 빼앗겨버린 듯했다.  글짓기를 사랑하였던 살인범의 아버지는 백탑파 서생들과의 만남을 꿈꾸었지만 그들의 혹독한 글평가로 인하여 지독한 속앓이를 하게 된다. 그 참담함을 이겨내지 못해 끝내는 죽음을... 그 모습을 바라보았을 아들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하지만 그 아들이 아버지를 대신해 백탑파 서생들을 죽일 수 밖에 없었던 동기를 듣고 있노라면 참으로 가슴이 서늘해져 온다. 왕이 찾아내지 못한 바램이, 백탑파의 서생들이 찾아내지 못한 바램이 그 안에 숨겨져 있는 것이다. 사람위에 사람없다고 했던가?   어느 한쪽으로든 치우쳐서는 안된다는 뼈아픔이 그 안에 숨겨져 있는 것이다. 

문체반정이란 말은 사실 역사책이나 사전에서 만나 볼 수 있는 말이었다. 한국형 팩션이란 말이 아깝지가 않은 듯 하다. 추리극처럼 보여지던 사건의 흐름을 통해 문체반정이란 의미를 하나씩 되새겨가던 순간들이 참으로 소중하게 느껴졌다.  왜? 라는 물음표를 앞세우며 시작했던 책읽기가 정말 흥미로웠다. 흔하게 보여지는 정치적인 암투보다는 백탑파 서생들과 왕의 심리전을 따라가다보면 가뿐 숨을 몰아쉬곤 한다. 어찌보면 이렇다할 스릴이 없어 딱딱하게 느껴질수도 있겠지만 작가는 그런 점 또한 용납하지 않으려는 듯 보여진다. 연쇄살인을 통해 따라가며 하나씩 허울을 벗어던지던 문체반정의 의미들이 나는 참 좋았다. 읽을수록, 책장을 넘겨갈수록, 이야기의 진행상태를 파악해갈수록 책을 놓아선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밤을 세워 아주 천천히 음미하며 읽었던 책이었다. 멋지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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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와 찔레 (일반판) - 미래를 바꾸는 두 가지 선택
조동성.김성민 지음, 문국현.윤석금.박기석 감수, 낸시랭 표지디자인 / IWELL(아이웰)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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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보았을 때 사실 호감이 가지 않았었다. 또 그렇고 그런 계발서가 하나 나왔구나,했다. ROSE와 WILD ROSE라... 찔레꽃이 장미과 꽃이라는 걸 알고 고개를 끄덕이던 순간부터였을 것이다. 책장을 열고 우리의 작가가 쓴 내용이란 걸 알았을 때 눈을 동그랗게 뜨지 않을 수 없었다. 자기 계발서라는 이름으로 외국작가들의 책을 만나는 게 보통의 경우였던 까닭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대체적으로 목록만 나열해놓은 그야말로 생선장수들이 생선을 일렬로 나열해 놓은듯한 느낌의 계발서만을 많이 보아왔던 까닭이다. 이 책은 읽는 순간부터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갖게 해 주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 녹아 있었다. 그야말로 우리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져 있는 삶의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주인공 미주를 통해 직장인의 현실을 만날 수 있었으며,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를 가야하는 우리의 학창시절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어야 했다. 마치도 공장같은 우리 교육의 현실이 참으로 안타까웠던 순간이기도 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어디로 팔려나가느냐에 따라 자신의 가치가 결정되어지는 지금의 현실이 그대로 녹아 있었다. 주인공 미주의 고민이 아마도 지금 직장생활을 하는 젊은이들 혹은 대학을 다니거나 졸업을 앞둔 학생들의 고민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고 누군가에게 자신이 해야 할 선택을 미뤄버리고 싶은 그 안타까움은 자기 자신이 아니고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니 어쩌겠는가.. 미주가 선택했던 교수의 모습은 아마도 우리 모두가 꿈꾸는 멘토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면 젖어드는 이슬비처럼 마음 한켠까지 적셔줄 수 있는 그런 것들을 원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미주의 선택영역이 항상 궁금했다. 교수가 들려주었던 이야기들이 과연 미주에게는 어떤 형식으로 다가갔을까? 그 이야기들을 편집하고 삭제하고 보충해가며 과연 자신에게 맞게끔 제대로 고쳐 적용시킬 수 있을까? 그렇다면 어떤 모습으로? 내심 궁금함을 참으며 바라본 미주의 모습에서 나는 부끄러움을 느껴야 했다. 교수의 이야기를 거창하게 받아들이거나 혹은 남의 이야기라고 치부해버리지 않고 아주 차분하게 자신의 삶과 일치하는 면들을 찾아내어 그것들을 서서히 내것으로 만들어 가고 있었던 거다. 노력의 결과였을까? 회사내 승진과 좀 더 나은 기업으로부터의 스카웃 제의... 나는 내심 미주의 선택이 회사에 남아 있었으면 하는 바램을 갖게 되었다. 지금까지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으면 싶었다. 그리고 나는 그녀에게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응원을 보냈다. 회사에 남기로 한 그녀의 선택이 옳았으며 결국 장미꽃 인생을 살게 될 수 있을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조금씩 달라져 가던 미주의 모습속에서 많은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나도 미주처럼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직장생활만을 이야기하고 싶은 건 아니다. 살아가는 삶 자체가 미주처럼 그렇게 살아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야기속에 등장했던 CEO가 이런 말을 했었다. 세상에는 모범생과 문제아가 있지만 여러분들은 문제아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환경에 적응해가며 살아가는 모범생보다는 환경을 자신에게 맞게 바꾸고 싶어서 안달을 하는 문제아가 좀 더 큰 사람이 될 수 있을거라던 말.. 결국은 자기의 정체성을 잃지 말라는 말처럼 느껴졌다. 해야 할일과 하고 싶은 일의 구분점을 찾는다는 건 어려운 일일테지만 그래도 노력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진리일테다. 후회는 선택에 대해 하는 것이 아니라 과정에 대해 하는 것이라는 말이 기억에 남아 있다. 힘겨운 세상을 헤쳐나가야 할 젊은이라면 아니 자신과의 싸움에서 허덕이고 있는 사람이라면 곁에 두고 읽으며 도움을 받아도 좋겠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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