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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 세종대왕 - 조선의 크리에이터
이상각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08년 1월
평점 :
언제부터인가 조선시대의 크고 작은 일들이 책으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결국은 급작스럽게 대왕열풍이다. 시대가 바뀌는 싯점이라서라는 말도 있겠지만 뺏고 빼앗기는 악의 구축점에서 이제는 슬슬 선을 구축으로 하며 한숨 돌리고 싶어하는 현대인들의 마음이 담겨있는 현상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쩌면 누군가가 나타나 그 험난한 삶의 쳇바퀴속에서 잠시 일탈할 수 있게끔 만들어주기를 바라는 그런 거 ... 아니, 이건 순전히 나 혼자만의 생각이다.(뭐, 아님 말고!) .. 세종대왕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한글을 생각하게 되지만 나는 정말이지 부끄럽게도 한글이란 이름이 세종 이후의 먼 후대에 와서야 한글이란 이름이 붙여졌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다지 깊은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다는 말도 되겠다. '한글'이란 이름이 최남선과 주시경 선생의 발상이란 말에 그랬었나? 그랬었구나! 하다가 한글의 '한'이 하나 또는 크다의 뜻이란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거리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그많은 세월을 지나오면서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안타까움이 밀려오기도 했다.
이 책은 '세종대왕'이라 불리웠던 한사람과, '이도'라고 불리웠던 또 한사람을 다각도로 비춰주고 있는 것 같다. 왕으로써의 입장과 왕이란 직무를 떠나서 바라보는 시선은 너무 다르다. 세종대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던 것 같다. 처세술에 능한 기회주의자라고.. 실제적으로 장남도, 차남도 아니었던 세째가 왕이 된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것도 장남과 차남에게 이변이 일어나지도 않은 상태에서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이미 만들어진 반석위에서 시작한 세종의 입장에서 보면 성군이 되는 것이 당연할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 책속에서도 왕이 아닌 한 사람으로서의 세종은 자신의 속내를 숨길 줄 알아 그 때 그때 자신을 변호할 줄 알았던 것 같다. 살기 위한, 혹은 자신의 욕망을 위한 길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책속의 내용이야 별다를 건 없다.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인 흐름을 재조명한 것에 불과해 보인다. 단 중심축을 세종대왕에 두었다는 차이점이 있을 뿐이다. 책장을 넘기던 중에 나는 문득 책표지의 글자가 떠올랐다. 조선의 크리에이터... 크리에이터라는 말에 호기심이 생겨 찾아보니 게르만 신화속 파괴의 괴물이란 설명이 보였다. 파괴의 괴물이라.. 낡은 것으로부터, 혹은 백성을 위하는 일을 위하여, 혹은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기 위하여 세종대왕이 버려야 했고 타파해야 했을 많은 것들을 떠올려보니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일전에 읽었던 책속의 최만리가 한글창제를 두고서 이런 말을 했었다. 백성들이 글을 알게 되면 백성을 부리는 자들이 힘들게 될 것이라고... 글을 알게 되면 얼마나 많은 말들이 생겨나겠느냐고... 그랬던 최만리의 그 기막힌 대목을 이 책속에서 또 만나게 되니 나는 문득 진시황의 분서갱유를 떠올리게 된다. 분서갱유라는 사건이 일어나게 된 동기도 진시황이 벌이고자 하는 일에 대해 자신들이 공부해왔던 책들의 문자들을 들이대며 사사건건 반대를 했던 유생들에 대한 진시황의 분노였음이다. 무엇이 부족하여 한글을 만들어야 하느냐고 세종에게 따져 묻던 최만리의 모습을 보며 나는 왜 엉뚱하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후반부에서 보여주던 세종시대의 인물들에 관한 글은 이채롭다. 정치면에서 이만하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황희 정승이나 맹사성, 과학과 천문학쪽에서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던 이 천이나 이순지 혹은 장영실등의 이야기등을 읽으면서 과연 세종대왕이구나 싶기도 했다. 과학이면 과학, 음악이면 음악, 문학이면 문학..그만큼 다방면에 관심을 가지고 모든 것들을 현실속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애썼던 왕이 있었을까?
"나는 조선에 올인한 사람이니 자식들을 생각해서 자중하시오. 오버하면 당신과도 남남이오"
"왕권을 무시하는 자들은 다 저렇게 된다. 너도 함부로 냄새피우지 마라"
"임금도 공부하고 신료들도 공부한다. 땡땡이치면 용서 없다"
무슨 말인가 하면 책속에 나타나는 대화들이다. 처음에는 역사를 다루는 내용과 저런 대화체가 너무 어울리지 않아 짜증스럽기도 했다. 이게 뭐야! 하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책을 읽어가면서 나도 모르게 그 대화체에 동화되어가는 걸 보며 슬며시 웃음이 났다. 짐짓 무거울수도 있는 책속의 내용들이 너무 쳐지지 않게 묶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까닭이다. 정말로 왕과 세자가 혹은 신하가 서로 마주보며 오버하지 마시오, 냄새 피우지 마라, 땡땡이치면 국물도 없다... 이런 식으로 대화를 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니 오히려 재밌기도 했다. 그야말로 모순 투성이인 이 인간의 마음이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인터넷용어라는 말 자체를 싫어하니 다음에는 이런 대화체의 역사서를 만나고 싶지 않음이다.
책의 말미에 따로이 주석을 달아놓아 이 책을 보기에 한결 용이했다. 나름대로 역사에 대한 소소한 지식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된듯도 하니... 어찌보면 속국으로써의 면모보다는 자주적인 국가로서의 면모를 세우기 위해 한글이 창제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과 나라를 굳건히 세우고자 하셨던 세종대왕의 뜻이 한글이 만들어지던 그 순간에 더욱 더 불탔을 것이다.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한글을 쓰는 우리가 과연 한글에 대한 생각을 얼만큼이나 하고 있는지 그것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컴퓨터가 지배하는 세상을 살면서 그 안에서 필연적으로 만날 수 밖에 없는 망가진 한글의 모습들은 정말 많은 것 같다. 한사람, 한남자의 가슴앓이로 만들어졌던 한 시대의 모습을 보았다. 참주인을 잃어버린 채 세계 여러곳을 떠돌고 있다는 그가 만든 '우리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잊어서는 안될 것 같다.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