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등 이펙트 - 지금 누군가 나를 조종하고 있다!
로빈 스턴 지음, 신준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우선은 가스등 이펙트란 말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두꺼운 책띠의 설명에 의하면 이렇다.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을 조종하려는 가해자와 그를 이상화하고 그의 관점을 받아들이는 피해자가 만들어내는 병리적 심리 현상을 뜻한다.. 가해자와 피해자란 말만 얼핏 보고 참 무섭다는 생각을 했었다. 살아가면서 얽혀지는 그많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속에서 상처를 받지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것일까? 작은 것들까지 일일이 신경써가며 살아야 한다면 그 또한 얼마나 피곤한 일인가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속에서는 어느정도의 진실이 있다 하더라도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비난은 듣지 말라고 말하고 있다. 얼마전에 있었던 일이다. 잘 알고 지내던 선배가 나를 불러 내가 만든 작품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도 이렇게 해봤지만 별로였다는 둥,너처럼 이런식으로 만드는 것에 대해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는 둥..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무슨 중요한 일이라도 되는양 불러놓고는 나를 자신의 틀에 맞추기 위해 애를 쓰는 모습이 안스럽기도 했지만 타인의 생각에 대해서는 아주 무시하는듯한 그 선배의 태도에 엄청 화가 났었다. 그야말로 머리끝까지 치고 올라온 화를 달래며 나는 이렇게 말했었다. 선배, 사람들마다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관점은 다른거 아닌가요? 모두에게 나와 같기를 원한다는 그 자체가 무리란 생각이 드네요... 그후 그 선배를 대하는 나의 태도는 180도로 확 달라져 버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때 나는 아주 심각할 정도로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고 그 모양새를 보고 있던 다른 동료들도 나를 위로하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나는 이건 아니다 싶은 경우 아주 무시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것에 대해서는 두번 다시 거론하지 않으며 또한 그렇게까지 몰고간 원인제공자에 대한 마음을 깨끗하게 거두어들인다. 나는 안다. 사람이 사람과 눈길을 마주치지 않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이후 선배의 태도가 달라졌지만 나는 그 선배를 용서하지 않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때의 일을 떠올렸다. 그렇다면 나는 가해자일까,피해자일까? 나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었지만 그 선배는 나에게 가해자였을까?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속에서 서로에게 알게 모르게 안겨주는 상처에 대해, 그리고 그 상처를 보듬어 안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심리적인 변화들을 꼬집어 주는 상황들을 이 책속에는 예제로 들어주고 있다. 사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치부해 버릴 수도 있겠지만 파고 들어가보면 왠지 나만 손해보면서 살아가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글쓴이의 경고는 자못 심각하기까지 하다. 결코 그냥 넘어가지 말라고, 그냥 넘어가서는 안되는거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가족끼리, 연인사이에, 그리고 친구 관계에서까지 일어나고 있는 정서적 침해를 그냥 묵과하지 말라고 말하는 거다. 

설명과 절충의 덫이란 소제목으로 말하고자 했던 작자의 의도는 나를 놀라게 했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모습들이 그안에 녹아 있었던 까닭이다. 아니 따로이 나라고 말하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아마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수도 있는 문제를 너무 들춰내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냥 좋은게 좋은거 아냐? 하는 식의 반론을 제기하고 싶다는 생각마져 들었다.  우리는 지나쳐가는 시간속에서 너무나 많은 것들을 잃고, 또한 너무나 많은 것들을 잊기 위해 애를 쓰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잊어서 혹은 잃어서 편한 것이 있을테고 잊어서 혹은 잃어서 불편하고 힘겨운 경우도 있을테지만 그런 것들의 경계를 확연하게 그을 수 없다는 것이 또한 문제인 듯도 싶은데.... 타인과의 관계를 지속시키기 위하여 그 사람이 내게 행하는 언행에 대해 변호하듯이 설명하는 그리고 무언가를 두고서 서로에게 양보하듯이 절충하는 그런 덫에 걸려들었을 때 우리의 가슴은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절충의 과정 또한 스스로 느끼는 현실에 눈감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에 대해 물어보라고 작자는 충고하고 있는 것이다. 가슴 깊이 느끼고 있는 확고한 진실을 찾아내야 한다고..
 
우리를 아프게 하고 우리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가까운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것은 사랑이란 의미안에서 이루어지는 폭력이다. 사실 나는 사랑을 폭력이란 말로 대신하고 싶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니 사랑도 더할나위 없는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았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럴수 있는거라고, 사랑하니까 이해해야 하는거고, 사랑하니까 다 받아들여야 하는거 아니냐고 아주 자연스럽게 말하고 있는 자체가 바로 그런것이다. 더이상의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 혹은 더이상의 말다툼을 하기 싫어서 어느 한쪽이 지고 만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한다. 내가 지금 원하고 있는 것을 정확하게 말해야만 한다고 말하고 있음이다. 다시말하자면 그렇게 상황을 접어버리는 것만이 사랑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정확하게 자신을 내보이며 상대방으로 하여금 나의 정체성에 대해 인식하게 해주는 것이 옳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 아니러니가 아닐 수 없다. 자신의 감정을 정확하게 표현함으로 인해서 서로에게 더 나은 관계를 지속시켜줄 수 있다면 어쩌면 더 멋진 일일수도 있겠구나 싶다. 무조건적으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혹은 상대방의 관점만을 받아들이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편이란 생각도 든다. 
 
책속에 예로 들어주었던 사람들의 모습속에서 내 모습을 보았다. 때로는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책장을 넘기기도 했다. 가해자의 입장에서 혹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내 속에 잠재되어져 있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두 모습을 생각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가해자로 치자면 나는 정말이지 치사한(?) 매력적인 가해자인 셈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내가 나를 보는 시선과 타인이 나를 보는 시선에 대해 재정리를 하는 시간도 갖게 되었다. 혹시? 설마? 아니겠지, 뭐 이런 반응이 내 가슴속에서 살아나는 걸 보면 나 역시도 남을 많이 아프게 했고 또한 아픔을 당해왔던 것 같다. 특히나 가족인 경우와 부모와 자녀간의 경우에는 더욱 더 심각하게 보인다. 피해자가 자신을 보호하지 못하는 아직 어린아이일 경우에는 정말 심각하다. 책의 서두에도 나와 있던 말, 부모라면 이 책을 꼭 봐야한다던.. 세상 모든 일들이 자로 잰듯이 그렇게 반듯하기만 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가도 피식 웃음으로 무마시켜 버리고 만다.
 
많은 사람들이 현재의 필요성만이 아니라 과거를 치유하고자 하는 소망을 가지고 사랑,우정,직업,가족 등의 관계를 갖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보살핌과 이해 그리고 인정에 목말라하는 것 같다. 그리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은 어쨌든 그러한 것을 제공하기를 약속한다(357쪽).. 이 말을 보면서 참으로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관계를 거부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믿고 다가가기 위해 자신을 보여주는 과정에서 하나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되는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은 그렇지가 않은 모양이다. 그러니 어쩌랴.. 작자가 말하고 있는 것을 명심할 수밖에 없겠다. 상대방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첫째,현실감을 가져야 한다. 불행은 매우 실재적이고 현실적이며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내가 처해있는 지금, 바로 현실이라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둘째, 기꺼이 도움을 받아야 한다. 우리의 문화는 혼자 어려운 일을 이겨내는 것에 높은 가치를 두는 경향이 있지만 절대로, 모든 일을 혼자서 하려고 하지 말고 진심으로 자신을 걱정해주는 사람과 함께 하라고 한다. 취미생활을 한다거나 운동을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셋째,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바라는대로 모든 것이 한순간에 변화된다면 좋겠지만 그 또한 내맘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니 숨을 돌리며 재촉하지 않아야 한다. 넷째, 동정심을 가져라. 상대방과 스스로에게 동정심을 보이는 것이 상처를 치유하는데 좋다고 한다. 나에게 선물을 하고 나를 칭찬해주어야 한다는 어떤 이의 말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참으로 많은 것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갖게 해준 책이다. 상대방에 관한 나의 생각을 다시한번 재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기도 했다. 무섭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던 책이다. 

가해자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상황을 좀더 통제한다는 느낌을 준다(169쪽)
자신이 옳더라도 타인의 생각을 지배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라(305쪽)
다른 사람의 영향력을 배제하는 삶을 영위하는 비결 중 하나는 자신의 삶의 방식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363쪽)
245쪽에 보면 누구를 당신의 세계에 들어오게 할 것인가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긴 이야기라 여기에 다 옮기지는 못하지만 나의 손과 마음은 어느새 거기로 달려가고 있다. 기회가 된다면 아니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내 마음속에 그 이쁜 상상의 집을 지어보고 싶다. 그리고 작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들에 대해 다시한번 꼼꼼하게 생각을 다듬어보고 싶다. 심리서의 마력에 흠뻑 빠져들게 했던 책, 가스등이펙트의 작자에게 감사한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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