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에 한번은 동유럽을 만나라 일생에 한번은 시리즈
최도성 지음 / 21세기북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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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하고 싶은 여행이 유럽여행이다. 그런데 동유럽이라고하면 어디를 이야기하는 것일까? 폴란드나 체코, 슬로바키아, 유고슬라비아, 보스니아, 헝가리,루마니아,알바니아,불가리아등을 이야기한다. 그러고보니 모두가 사회주의체제였던 나라들이다. 지금이야 그렇지않지만 말이다. 그러다보니 내가 가장 가고 싶어하는 네덜란드나 스위스, 오스트리아는 서유럽에 속해있다는 걸 새삼스럽게 알게 된다. 여행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여행을 하는 목적이 있을 것이다. 무엇을 주제로하여 여행을 떠나는가에 따라 그 여행의 성격이 달라지기도 하지만 그것을 통해 여행자의 생각이나 추구하는 바를 읽을수도 있다. 무작정 떠난다는 여행, 말 그대로 발길 닿는대로 바람가는대로 떠나는 여행도 있을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런 여행에 대해 무모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아무런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다는, 그야말로 자유롭게 하는 것이 여행이라고 말을 할 수도 있겠지만 여행을 떠난다는 그 자체가 자유다. 그러니 그 자유를 좀 더 풍요롭게 느끼고 싶은 까닭에 나 역시 테마여행을 좋아한다. "어떻게 하면 좋은 여행을 할 수 있나요?" 저자가 곧잘 받는 질문이라고 한다. 나도 저런 질문을 해 본 적이 있었다. 정말 어떻게 하면 좋은 여행이 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찾아낸 것이 테마여행이다. 무언가 주제를 정해 떠나보자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 까닭에 나는 수많은 관광지를 보여주기보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 그곳을 거쳐가는 사람들의 냄새에 더 이끌렸다는 저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전작 <일생에 한번은 스페인을 만나라>에서 보여주었던 그의 문학기행은 정말 멋있었다. 그랬기에 이 책에 대한 기대감을 숨길수가 없다. 그가 펼져보여주는 동유럽, 과연 어떤 모습일지...

체코... 프라하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곳. <프라하의 봄>이라는 영화도 물론 있었지만 내게는 <프라하의 연인>이라는 드라마를 더 먼저 떠오르게 한다. 그래서일까? 프라하는 왠지 안개같은 사랑이 머무는 공간일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나의 기대처럼 저자는 도착하자마자 카를교의 야경을 보여주며 프라하의 낭만을 향해 달려간다. 연인이 주문을 외우며 다리를 건너면 일년후에 다시 프라하에 오게 된다는 그 다리에는 아름다운 연주를 들려주는 거리의 악사에 대한 전설을 안고 있기도 하다. 위대한 체코인 순위 7위에 오른 얀 후스의 이야기도 있다. 프로테스탄트가 바로 종교회의에서 화형을 당한 후스의 주장을 신봉하며 민족의식을 지향했던 서민과 농민이었다는 말이다. "교회가 부패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종교가 다른 조직으로 변질되고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외치며 종교의 자유를 주장했다던 얀 후스... 면죄부를 팔던 시대에 얀 후스의 주장은 먹혀들었을까? 그리하여 그들은 종교의 자유를 얻었을까?  지금의 종교의식에 대해서도 다시한번 되돌아보게 되는 말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프라하성의 근위병 교대식.. 우리에게도 근위병 교대식이 있다. 덕수궁이 그렇고 이번에 새단장을 한 경복궁이 그렇다. 내가 찾았던 날에는 비가 내려 제대로 된 교대식을 보지 못했지만 우리나라를 찾는 이들에게 좋은 볼거리를 제공해주고 있는 것인지 생각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문지방'을 뜻하는 이름이라는 프라하. 각나라마다 어찌 건국신화가 없으랴 하면서도 체코의 기원이 되는 리뷰세의 이야기는 왠지 신선하게 다가왔다. 문지방이 높아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으니 예의를 갖울 수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의 전통가옥을 생각한다. 드나드는 출입문이 작고 문지방이 높은 특징을 가진 것은 머리를 숙이며 자신을 낮추는 마음으로 들어서라는 뜻이 담겨있기도 한...  카를교에 얽힌 석공의 전설, 악마의 기둥에 얽힌 나무꾼의 전설, 그리고 샤르카라는 팜므파탈을 탄생시킨 디보카 샤르카라는 마을의 전설,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골룸이 모티브를 얻었다는 골렘의 전설은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생각을 한다. 악마와의 거래, 누구나 한번쯤은 해보지 않았을까?

프라하의 봄은 오는가, 전설의 도시 프라하, 맥주의 도시 프라하, <돈 조반니>의 고향 프라하 등 멋진 수식어를 앞세우며 내게 다가왔던 프라하는 '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 모차르트를 이야기하고, 드보르자크를 이야기하고, 밀란 쿤데라를 이야기한다. 그리하여 <신세계 교향곡?을 듣고 싶게 하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을 기억하게 한다. /체코인이라면 음악인/이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아무래도 모차르크와 베토벤을 제대로 만나기 위해서는 체코에 가야할 것만 같다.

폴란드... 이번 여행길에는 누구와 함께 할 것인지 기대가 부푼다.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없이 죽는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듯한 詩다. 아니 어쩌면 인터넷상에서 흔하게 마주칠 수 있었던 싯구인지도 모르겠다. 그 시의 주인이 폴란드 출신이란다. 쉼보르스카라는 여인...  그리고 저자는 유명한 염세주의자였다는 쇼펜하우어를 소개한다. 자신의 존재가 남게 의해 가려지는 것이 싫어 식당에 갈 때 늘 두자리를 예약했다는 그와 아침의 풍경을 묘하게 대조시킨다. 바다안개가 시야를 가려 몽롱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도시 그단스크에서.. 그단스크는 엽서속에서나 존재할 듯한 풍경을 보여준다. 정말 그림같은 풍경이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풍경속에서도 비극은 있었다. 1차세계대전이 바로 거기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발칸반도를 둘러싼 이익 다툼이기도 했지만 전쟁은 아주 작고 단순한 일에서부터 시작되어져 크고 어두운 진실을 숨긴 채 끝을 내는지도 모를 일이다. (모든 전쟁은 땅따먹기다. 누가 더 많이 빼앗는가 하는-)  그리하여 패전국인 독일의 루돌프 히틀러가 2차대전을 일으키게 되고 유대인이 가장 많이 살고 있던 폴란드는 그의 첫번째 대상이 되고 말았다.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는 쇼팽과 퀴리부인의 박물관이 있기도 하지만 내게는 우리의 옛날 이야기와 비슷한 바르샤바의 전설이 살갑게 다가온다. 폴란드인들이 날마다 꽃을 바치고 있다는 바르샤바의 수호신 인어상의 이야기다. 만세를 부르던 유관순을 떠올리게 한다. 반면에 예술가들의 사랑은 애절하게 보이지만 다분히 이기적이기도 한 것 같다. 프라하에서 만난 모차르트나 베토벤처럼 폴란드의 쇼팽에게도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으로 인한 곡들이 많다. 조르드 상주를 향한 진실한 사랑을 담았다는 <빗방울 전주곡>이나 마리아 보진스키와의 사랑이 담긴 <이별의 왈츠>는 폴란드의 아침풍경과도 같은 느낌은 아니었을까?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의 지동설을 듣다보니 아우슈비츠다. 저자의 기억처럼 <쉰들러 리스트>나 <피아니스트>,<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영화는 내게도 안타까움으로 남겨진 영화이기도 하다. 그런데 왜 아우슈비츠였을까? 늘 궁금했던 것에 대한 답을 얻는다. 지리적 조건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곳이 폴란드에서 가장 중요한 중화학공업지역이었으며 야전군 사령부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교황 바오로2세를 바도비체에서 알현하고 물총 세례를 받기전에 얼른 자코파네를 빠져 나온다.

슬로바키아... 사전정보없이 무방비상태로 맞닥뜨렸다는 도시 브라티슬라바 거리의 조각상들은 흥미로웠다. 우리의 거리를 걸으면서도 저런 조각상을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맨홀 뚜껑을 열고 머리를 내밀어 몸을 걸친 채 지나가는 여인들을 바라본다는 조각상은 생각하는 것만으로 즐겁지 않은가 말이다. 베토벤이 사랑했던 여인 줄리에타 귀차르디에게 주었다는 <환상곡 풍의 소나타>를 태어나게 한 돌나 크루파 마을 브룬스비크성에서 이 여행은 끝났다. <환상곡 소나타>는 우리에게 <월광> 혹은 <달빛 소나타>로 잘 알려진 곡이기도 하다.

여행가는 말한다. 일생에 한번은 동유럽을 만나라고. 그리고 찾아가는 그곳에서 당신을 반겨줄 천재적인 음악가들의 사랑이야기를 들어보라고.. 아마도 내게 있어서는 가장 세세하게 읽은 여행서가 아닐까 싶다. 그림보다는 글이 더 많은 여행서.. 그러나 그 글속에서 마음속에 풍경하나씩을 그려보게 된다. 저자를 통해 떠났던 또하나의 문학기행, 정말 좋았다. 손빨래로 여독을 푸는 여행자의 모습, 바짝 마른 옷감이 살갛에 닿을 때의 느낌이 상쾌하다고 말하는 여행자의 순수함이 너무 좋았다. 여행이 건네주는 선물은 우리를 너무나도 행복하게 한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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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곁에서 만나는 동서양 신화 사계절 1318 교양문고 10
이경덕 지음 / 사계절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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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라는 말을 듣게 되면 떠오르는 이름이 있다. 이윤기.. 이윤기의 그리스로마신화를 읽어보고 신화에 대해 또 다른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해도 나에게는 틀린 말이 아니다. 아마도 내게 신화속으로의 여행을 부추킨것도 이윤기의 책일 것이다. 이후로 나는 여러나라의 신화와 만났다. 한편으로는 조금 어이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신화를 더 많이 보게 된듯도 하지만... 북유럽신화를 시작으로 이집트신화, 켈트신화 등등 신화는 읽으면 읽을수록 흥미로웠다. 그러다가 우리신화를 찾게 되었고 일본이나 중국신화에도 관심을 가지게 된 것 같다. 처음 그저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처럼 생각되어졌던 것들이 하나하나씩 신화로 재창조되어질 때의 흥분이라니! 어찌보면 아주 단순한 옛날 이야기처럼 보여지기도 하는 신화가 나는 왜 그리도 좋았던 것일까?

신화속에 존재하는 신들은 인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비록 인간을 만들고 지배를 하기도 했지만 인간과 함께 어울리며 도움을 주고자 했다. 인간이 힘겨움을 호소하면 그것을 해결해주기도 했고 희노애락을 함께 나누어 가질 줄도 알았다. 그랬던 신들이 왜 인간을 버렸을까? 아니 왜 인간을 떠나게 된 것일까? 그것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욕망, 욕심..... 지금의 이 세상을 멍들게 하고 있는 욕심이 그 시대에도 우리에게서 신을 떠나게 만들었던 것이다. 인간의 역사속에서도 욕심으로 인하여 멸망하게 되는 과정은 흔히 만날 수가 있다. 신이 이 세상을 창조할 때, 그리고 처음의 세상속에는 선과 악의 구분이 없었다고 한다. 먼저 아는자, 프로메테우스에 의해 끝까지 살아남았던 데우칼리온과 피라가 신에게 소원했던 것은 이 세상에서 인간이 살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만큼 신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것이 어쩌면 우리 인간일런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이 치매에 걸리면 가장 먼저 잊는 것이 명사라고 합니다. 뒤집어 생각하면 우리 생활에서 명사가 가장 불필요한 것이라는 말이지요. 가장 늦게까지 남아있는 것은 바로 동사입니다. 신화도 명사가 아닌 동사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신화는 굳어버린 이야기가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205쪽)  놀랍다. 그리고 공감한다. 신화는 살아 움직이는 것이라는 말... 단순한 옛얘기가 아니라 신화가 안고 있는 것들은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 너무 황당한것 같아 신화를 아이들에게 읽히지 않는다고 하기에 꼭 읽혀야 하는 것이 바로 신화라고 말해주니 의아해하던 후배의 표정이 생각난다. 마음속의 편견을 버리고 신화를 다시 보라고.. 그 안에 내재되어 있는 물질적, 정신적인 것들을 놓치지 말라고.. 어쩌면 신화는 지금처럼 복잡하고 미묘한 세상에서 버텨낼 수 있도록 해주는 하나의 길라잡이일런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신화는 멀리있지 않다. 아주 먼 시절에 쓰여진 이야기지만 지금 우리 곁에 아주 가까이 존재한다. 일주일이 신들의 이름에서 왔다는 것은 기본적인 신화이야기에 불과하다. 단순히 토테미즘이라고 치부해버리기에는 뭔가 안타까운 것들이 그 속에 존재한다. 신화속에는 한 시대가 들어있고 그 시대를 이루게 되는 배경이 들어있고, 그 시대의 사회적인 모습이 들어있고, 그 시대를 풍미하던 정신적인 흐름이 들어있다. 그리고 그 시대를 말해주는 일상적인 것들이 녹아있기도 하다. 이 책을 통해서도 신화와 어울어진 우리의 일상과 만날 수가 있다. 영화나 그림속에서 혹은 길을 걷다가도 만날 수 있음을 말해준다. 가끔 찾아가는 절에서도 신화를 만날 수 있으며 포크나 저울, 사과나 옥수수같은 우리의 생필품이나 먹거리속에도 신화는 숨어있다. 단지 우리가 그것을 굳이 찾으려하지 않을 뿐이다. 그리고 저자는 서양의 신화와 동양의 신화를 서로 비교해주었다. 어찌보면 일맥상통하는 이야기지만 분위기와 느낌은 많이 달랐다. 오랜만에 마주한 우리신화 이야기가 반가웠다.

영화를 통한 신화읽기는 재미있다.  <반지의 제왕>은 켈트신화를 바탕으로 깔았던 작품이다. <메트릭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이 세계와는 다른 또하나의 세계가 있으며 그것을 통해 또하나의 자신과 만나는 것을 그려주고 있다.  세상의 종말을 그렸던 <딥 임팩트>, <아마게돈>, <하드 레인>처럼 종말을 예고하는 신화도 참 많다. <트로이>, <페드라> 같은 경우에는 신화를 영화로 옮긴 것이라고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그다지 신화적이지 않다고 한다) 그런가하면 절에서 만날 수 있는 신화로써 귀면상을 예로 들어주는데 그 귀신형상같은 얼굴이 왜 우리와 정면으로 마주서야 했는지를 신화를 통해 알 수 있게 해준다.  요즘 들어 부쩍 이슈화되고 있는 '가이아 이론' 또한 그렇다. 대지의 여신이 바로 '가이아'인 까닭이다. 살아 숨쉬며 대지위의 자연이 파괴될 때마다 몸을 흔들어 자신을 보호하려 한다는... 우리는 그것을 자연재해라고 부르지만 말이다. 또한 저자는 아이가 어른으로 변하는 과정 역시 신화속에서 찾아냈다. 호루스의 저울은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사람이 죽어 저세상으로 가면 한쪽에 신의 깃털이 올려진 저울에 인간의 선악을 저울질 한다는... 그리하여 거짓을 고한 사람은 돼지로 다시 태어난다는... 그렇게 신화는 우리의 정의까지 심판하고 있음이다.

이렇게 신화는 화석화된 이야기도 아니고, 따라서 있을 수 없는 일이나 거짓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신화는 늘 우리 주위에 어슬렁거리고 있습니다. 다만 이야기로서만 보려고 하고 명사로서만 신화를 보려 하기 때문에 보지 못하고 만나지 못할 뿐입니다. (-206쪽) 

그리스 신화에서 보여준다는 네 시대에 대한 이야기(237쪽~240쪽)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다.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행복한 시대였다는 '황금시대', 그런데 그 좋은 시대에 인간은 너무 흥청거리며 마셔댔다. 제우스는 그들을 지구 밑바닥으로 가라앉게 만들었다. 다음으로 '은의 시대'가 왔다. 은의 시대가 되면서 인간은 먹기 위해 땅을 갈고 씨를 뿌렸다. 하지만 인간은 하찮은 일에도 불평을 터뜨렸고 사소한 일로도 싸웠다. 제우스는 인간을 모두 멸종시켰다.  다음은 '청동시대', 이 시대에 계절이 생겨났고 인간에게 처음으로 절망적인 겨울의 추위가 닥쳤다. 예전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해야 먹고 살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기술과 능력이 발달했고 더 많이 갖기 위해 서로 싸우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전쟁을 일으켜 서로 죽이고 시대를 마감했다. 그 다음 '철의 시대'가 되자 인간은 욕망을 알게 되었고 죄악이 세상에 넘쳐났다. 이 때 제우스가 보낸 여인이 판도라다. 결국 인간을 벌하기 위해 보낸 여인이 판도라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신들에게 절망만을 안겨주었고 마침내 신들은 하나씩 하늘로 돌아갔다. 이 때  인간이 올바른 가치판단을 할 수 있도록 정의의 여신 아스트라이아는 홀로 남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의 저울은 점점 악한 쪽으로 기울어졌고 아무리 바로 잡으려해도 소용이 없자 그녀마저 인간을 외면해 버리고 말았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는 말을 남기고...  이 이야기는 나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었다. 끝없을 것같은 인간의 욕망.. 그 욕망으로 엮여지는 죄악들.. 이제 인간은 마음속에 저마다의 신을 품고 산다. 그리고 절망의 순간이 올 때마다 저마다의 신을 부른다. 신은 끝내 인간을 버릴까?  종말을 이야기하는 이 시대를 살면서 정화되어지지 않을 인간의 욕망에 대해 생각한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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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령 카툰 - 보이지 않는 영과 혼의 세계를 찾아가는 카툰 라이프
오차원 지음 / 펜타그램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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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들은 이야기인데 사람이 오른손으로 악수를 하는데는 이유가 있다고 한다. 氣의 흐름을 볼 때 오른손으로 氣를 빨아들이고 왼손으로는 氣를 방출한다는 말이 있는 까닭이다. 그러니 왼손과 오른손으로 서로 악수를 하게 된다면 당연히 왼손을 내미는 쪽이 氣를 빼앗기는 것이 될 테다. 책을 읽는 중에 '에너지 뱀파이어' 이야기가 나오는데 거기에 대해서도 어느정도는 수긍을 하게 된다. 쉬운 예로 이야기 상대가 되어주는 아르바이트를 하던 학생이 그 아르바이트를 다녀오는 날이면 초죽음 상태가 되어버린다던 예를 들어본 적이 있음이다. 단지 이야기를 들어주었을 뿐인데...그 반면에 상대방은 그 학생과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컨디션이 아주 좋아졌다고 한다. 그만큼 상대에게 氣를 빼앗겼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내게 영적인 존재가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있다'고 대답할 것이다. 무슨 종교적인 의미가 아니라 단순히 우리 곁에 머무는 영적인 존재가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사실 그런 현상을 내가 직접 겪어보기도 했고 친정엄마와 이야기하다보면 그런 존재가 아주 없지만은 않다고 결론을 내리게 된다. 그것이 단순히 꿈속에서 일어난 일이라 할지라도 실제와 연결되는 부분이 생겨난다면 부정만 할수도 없는 일인 것이다. 이 책속에서도 다루고 있는 이야기지만 친정엄마를 통해 할아버지 묘의 이장과정을 들으면서 속으로 놀랐던 적이 있었다. 물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꿈속에서 몇 번씩이나 보신 엄마는 아무래도 뭔가 이상스럽다하여 아버지께 말씀 드린 후 할아버지의 묘를 파 보았더니 물이 가득 차 있더라는 말은 실제로 겪으신 엄마의 경우이니 완전 무시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느닷없이 갑짜기 죽음을 맞이하면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하게 되어 이승도 아니고 저승도 아닌 중간계에 머문다는 말은 많이 들어 보았다. 그것이 실제가 되었든 상상이 되었든 그런 소재를 바탕으로 한 영화나 소설도 꽤나 된다. 또한 무언가 마음속에 미진한 것이 많은 채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어도 그 중간계에 머물러 이승으로 왔다갔다 한다는 소재도 많다. 그런데 희안한 것은 그 세계를 그리는 사람들의 표현이 너무나도 상반된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향기좋은 아름다운 세상을 그리고 어떤 이는 무채색의 삭막한 세계를 그린다. 그것은 왜 그런 것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름대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책장을 펼치자마자 보여지던 유치한 그림을 보면서 흔하디 흔한 심령체험인 모양이라고 편견을 가졌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서서히 커져가는 공감대를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그런 것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려고 하지 않은 채 전적으로 무시해버리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에 놀랐다. 자신의 생체에너지가 약해 氣가 허한 사람들이 그런 상황과 자주 마주친다는 말도 그렇지만 나무가 방사하는 '에테르오라'를 통해 에너지를 보충할 수 있다는 W.E.버틀러의 방법은 흥미로웠다. 역시 사람은 자연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모양이다. 동물조차도 자신에게 이상이 생기면 치유할 수 있는 풀을 찾아 뜯어먹는다고 하지 않는가 말이다. 

우리 몸의 여러곳에 있는 정신적 힘의 중심점이라는 차크라 chakra 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눈썹과 눈썹 사이에 위치해 있는 아즈나 차크라라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그곳에 영계를 볼 수 있는 제 3의 눈이 있다는 말을 보면서 인도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보게 된다. 그들이 양미간에 점을 찍는 이유가 바로 제3의 눈을 의식하라는 뜻이라는 말을 들었던 적이 있었던 까닭이다.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는다하여, 아니 증명할 수 없다하여 무조건 터부시할 수 없는 것들이 아닐까 싶다. 책을 읽으면서 일전에 읽었던 <괴물전-악몽일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책의 저자는 자신의 악몽과 싸워 이기기 위하여 그렇게 기록을 해 놓았다고 했는데 이 책의 저자 역시 남과 다른 자신의 상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무던한 노력을 하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남들과 다른 氣를 가졌기에 너무나도 힘겨웠지만 그것을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았으니 더욱 더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하나씩 자신의 힘겨움으로부터 벗어나는 저자의 모습을 본다. 그러면서 세상사람들이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 그 어떤 세계에 대한 눈을 뜨게 되는 과정이 이채로웠다. 그 과정을 쫓아가는 나 역시도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게 되는 부분이 참으로 많았다.

한번 더 생각해 본다. 과학만이 살 길일까? 우리의 진화는 오로지 과학적인 것을 통해서 오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편리를 위해서만 변하는 것이 진화라면 그것은 진정한 진화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증명할 수 없다고 하여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닐테니 말이다. 진실을 알기 위해 표류했으며 또 표류한다던 작가의 말을 떠올린다. 자신이 경험했던 모든 일을 기억해내고 이책을 읽는 사람들에게도 전하고 싶은 메세지가 있었다던 그의 마음을 읽을 수가 있었다. 돌아가신 후 삼칠일을 지내는 동안 내 곁에 아주 가까이 붙어 계셨던 아버지의 형상을 기억한다. 실제로 살아계신 것처럼 너무나도 똑같은 느낌을 주었던 아버지의 형상.. 나는 너무 무서워서 울었다. 주변사람들은 내가 아버지를 보내주지 않아 그렇다고 말했지만 실제적으로 당하는 나는 얼마나 끔찍스러운 공포였는지 모른다. (나는 사실 아버지를 무척이나 많이 미워했었다! 돌아가신 그 순간까지도!) 어찌어찌해서 다행히 아버지의 형상은 보이지않게 되었지만 오랜 시간이 흐는 지금까지도 그 기억은 나를 섬뜩하게 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누구나 한번쯤은 겪어봄직한 이야기들이 많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저 우연이겠지,하며 지나쳤던 일들... 과장이나 거짓이 없어보이는 작가의 이야기속에 흠뻑 빠져들었었다. 공포보다는 신비롭게 보여지기까지 했던 책 속 여행이었다. 靈의 공격... 그리고 그 靈의 공격을 느끼거나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세상을 떠도는 靈중에도 좋은 靈과 나쁜 靈이 있다는 이야기.. 사람마다 자신을 지켜주는 보호靈이나 수호천사가 있다는 이야기.. 기회가 된다면 氣체험을 한번쯤 해보고 싶어진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와는 다른 또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 정말 흥미롭지 않은가! 아주 오래전에 보았던 <사랑과 영혼>이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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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 경성을 뒤흔든 사람들 - 의열단, 경성의 심장을 쏘다! 삼성언론재단총서
김동진 지음 / 서해문집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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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집어든 독자 가운데는 거의 처음으로 김상옥과 황옥, 김시현, 김원봉의 이름을 접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260쪽)

바로 내가 그렇다. 나는 정말로 이 책을 보고서야 그런 사람들이 있었구나 했다. 어디 그들 뿐이겠는가? 앞장서지 않았을 뿐 뒤에서 묵묵히 대한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이름들이 얼마나 많았을런지 그것은 짐작조차도 못할 일이다. 무관심이라는 말은 참말이지 무서운 말이다. 오죽했으면 사랑을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잊혀지는 것이 가장 두렵다고 했을까? 문화 유적의 흔적을 찾아 돌아다니다보면 표지석 하나만 덩그마니 서있는 것을 볼 때가 있다. 무슨 무슨 표지석이라고 아주 간단히 한두줄 적어 놓기는 했지만 그것에 관심을 갖고 바라보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역사가 아무리 승리한 자에 의해 쓰여진다고는 하지만 우리처럼 우리의 역사에 대한 흔적을 도외시하는 민족도 없을 듯 싶다. 신문을 읽다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되는 갯수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그리고 그것을 제대로 품어안을 수 있는 우리의 자세가 더 중요하다는 말을 보게 된다. 보여주기 위함보다는 받아들여 인식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다시한번 생각하지 않을수가 없다.

1923년 경성을 뒤흔든 사나이 김상옥과 황옥의 이야기는 놀라웠다. 단순히 이러이러한 항일투쟁이 있었다고만 말할 수 없는, 뭔가 안타까웠기에 저자도 이렇게 책으로나마 그들을 알리고 싶어 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립운동가들은 많았다. 그런데 의열단이 무엇일까? 1919년 11월 만주 지린성에서 조직된 항일비밀결사단체다. 암살과 파괴, 테러와 같이 과격한 방법만이 식민통치에서 헤어날 수 있다고 믿었던 그들.. 그랬기에 그들은 폭탄제조법을 배웠고 실패를 하지 않기 위해 폭파 실험도 하며 그 위력을 살펴보기도 했다. 그 폭탄을 국내로 들여오는 기발한 작전도 도모했다. 아쉽게도 성공하지 못했지만 만약 그들의 계획이 실패하지 않고 성공했더라면 지금의 우리 모습이 많이 달라져 있지 않았을까?

3.1운동으로 한바탕 호되게 당했던 일제는 기만적인 '문화정치'를 내세워 우리 민족을 두갈래로 찢어 놓았다.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앞뒤 가리지 않게 만들었다. 물론 살기 위해 그랬을테지만 그들의 기만은 친일파를 만들었고 우리 민족의 분열을 불러왔다. 그렇게 그들의 손안에서 놀아난 우리의 현실은 참담했다. 항일의지를 불태우며 투쟁을 감행했던 사람들이 있었는가 하면 같은 민족이면서도 그들을 밀고했던 자들이 있었으니 말이다. 김상옥과 황옥의 이야기는 읽는 내내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경성 삼판통에서 벌어졌던 김상옥 최후의 순간은 보는 내내 가슴을 졸였다. 제발 빠져나갈 수 있기를.... 총에 맞았으면서도 입 밖으로 고통의 소리를 내지 않았다던 김상옥의 결의가 느껴지는 듯 했다. 그런가 하면 황옥은 또 어떤가? 겉으로는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하면서 속으로는 우리의 의열단과 함께였다. 그러니 그의 투쟁의지 또한 대단했을 것이다. 그랬던 그도 감옥에서 얻은 병마로 인하여 쓸쓸히 여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앞서 말했던 삼판통은 지금의 용산구 후암동이라고 한다. 일제의 총독부는 우리의 지명조차도 자기식으로 편하게 고쳐 불렀다. 서울의 행정명인 한성부를 경성부로 부르기도 했고 정, 정목, 통 등의 한자를 붙여 각 지역의 이름도 고쳐 불렀다고 한다. 서울의 황토마루(지금의 광화문)는 광화문통, 구리개(지금의 을지로)는 황금정, 웃다방은 다옥정, 명동은 명치정 등으로 바꿨다. (- 68쪽)  그렇다면 광화문이라는 말이 일제의 잔재였었나?  황토마루라는 멋진 이름이 아쉽다. 뭐 따지고보면 현재까지도 남아있는 일제의 잔재는 수없이 많겠지만 말이다.

책의 서두에서 역사가 궁극적으로 '기억하는 자의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후손들이 기억해 줄 때에 그 역사는 살아있는 것이다. 그것이 찬란한 순간이었든 처절한 아픔의 순간이었든 기억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라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우리의 정부가 역사적으로 중요한 유적지들을 허술하게 다루고 있다는 말에도 적극 공감한다. 핑게없는 무덤이 없다는 말을 되새겨보게 하는 우리 정부의 반응은 볼 때마다 안타깝다. 물론 역사인식이 제대로 되지않은 탓도 있겠지만 앞장서야 할 정부가 그 모양이니 두말 할 필요가 없는 듯 하다. 개발만이 능사는 아닌데..... 언제쯤이면 우리가 '보여주는 것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헤어날 수 있을런지... 서울성곽의 흔적위에 세워진 집들,  도로를 만들기 위해 뚝 끊겨져버린 남한산성의 성곽길 (그 도로는 통행량이 그다지 많지도 않아 보인다. 살펴보면 성곽을 끊어버리지 않고도 도로를 낼 수 있는 방법은 있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되었다는 전탑의 어깨를 스치듯 휘돌아나가던 열차의 철로, 문화재 밑으로는 지하철이, 위로는 고가도로가 지나가는 우리의 현실속에서 잠시나마 우리의 미래를 위해 싸웠던 그들의 이름을 불러본다는 것은 지금 우리가 다시 새겨야 할 역사의 아픔이 아닐까 싶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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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화의 진실 - 조선 경제를 뒤흔든 화폐의 타락사
박준수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나 어렸을적에는 50환짜리 은전이 있었다. 지금은 없어진 5원짜리 동전과 같은 의미였다. 1원짜리 은전도 사라졌고 백원과 오백원짜리 지폐도 지금은 사라져  모두 옛일이 되어버렸지만 처음 오백원짜리 동전이 나왔을 때의 신기함은 아직도 기억속에 남아있다.  지금의 아이들에게는 돈이라는 가치로써 따지기조차 힘든 십원짜리 동전이 아주 작은 크기로 바뀐 것도 얼마되지 않은 일이다.  돈의 가치보다 돈을 만드는 비용이 더 많이 들어 작아진 십원짜리 동전을 보면서 옛날 학창시절에 썼던 토큰이 생각났었다. 버스 안내양이 콩나물 시루같은 버스에 우리를 밀어넣으며  "오라이~" 를 외쳤던 그 시절... 엽전같이 생겨 여러개를 한꺼번에 사서 줄에 꿰고 다녔었는데 그 모양이 정말 옛날의 엽전같아 우리끼리는 엽전꾸러미라고도 불렀었다. 호지키스라고 불렸던 스테이플러로 한쪽 구석을 콕 찍어서 갖고 다녔던 종이로 된 회수권보다는 이용하기가 훨씬 수월했던 것도 같다. 만원버스에 몸을 구겨넣으며 죽네사네 했었지만 그래도 그 시절이 참 좋았었다.

시장은 통通하는 곳이다. 사람들이 모여들어 서로 소통하고 물화가 모여들어 사방으로 흩어지니, 막힘이 없는 곳이다. 또한 시장은 욕망이 들끓고 서로 이익을 다투는 곳이다. - 그리고 시장은 언제나 다시 가고 싶은 곳이다. (-139쪽)
그 통通함을 좀 더 편리하게 만들기 위해 돈이 생겨났다. 돈이라는 것이 가진 의미가 오로지 편리함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시장에서 일어나는 그 모든 것들을 통제할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그 당시의 사람들은 몰랐다. 대저, 진화라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이 편리함을 추구하며 변해가는 것이다. 좀 더 간편하게 그리하여 좀 더 편리하게... 하지만 '당백전'만큼은 달랐다. 간편과 편리를 위해 생겨난 것이 아니라 한사람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생겨났다. 그 돈이 생겨남으로써 겪어야 할 수많은 폐단들을 미리 알고 있으면서도 그들은 그렇게 했다. 그리하여 수많은 백성들은 울부짖었다. 그리고 서로 통하여 언제나 다시 가고 싶은 시장이 그들에게는 더할 수 없는 고통이 되었다. 어찌 생각해보면 변화에 민감한 시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니 그들이 이상하게 보일런지도 모를 일이다. 만약 지금과 같은 세상속에서 '당백전'과 같은 돈이 생겨난다면 어떤 반응이 일까?

"동전을 상평常平이라 이름 한 것은 항상 물건 값과 균형을 이루고자 함이다" (-250쪽)
역사팩션이라는 말은 다분히 유혹적이었다. 어떤 소재가 되었든 역사의 한귀퉁이를 찢어내어 자신만의 글로 승화시킨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거기다 배울 수 있는 점을 가미시켜준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말이다. 별전의 조각이 불러왔던 살인을 쫓아가는 주인공의 발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그저  아주 옛날에 대원군이라는 사람이  경복궁 중건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만들어냈던 것이 '당백전'이었다는 작은 상식의 틀을 깨기에 충분함이 느껴졌다. 하나의 돈이 만들어져 유통되기까지의 과정.. 그 흐름을 읽어내려가던 주인공의 해박한 지식을 얻을 수 있으니 책을 읽는다는 것 자체가 일거양득이었다. 오래도록 조선의 백성들 사이에 머물렀던 '상평통보'를 이겨내지 못하고 무너져내린 '당백전'의 결말은 어찌보면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자기가 배운 것을 올바르게 펴지 못하고 세상에 아부하여 출세하려는 태도나 행동을 가리키는 말, 곡학아세曲學阿世.. 세상을 어지럽히고 백성을  속인다는 혹세무민惑世誣民이라는 말.. 책을 읽는 내내 내 주변을 맴돌았던 말이다. 돈이 사람을 그렇게 만들었던 것일까?

'대체 간사한 짓을 하게 만드는 근원이 무엇일까? 그것이 돈일까? 그렇다면 돈의 유통에는 반드시 악의 유통이 뒤따르는 것일까? 세상 모든 사람들이 돈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그 근원은 돈이 아니라 오로지 이익만을 얻고자 하는 인간들의 그릇된 마음일 게야... 또한 오늘의 이런 한심스러운 세태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낸 결과물이기도 하고....'(-377쪽)
그랬다. 그 때나 지금이나 무에 다를게 있을까? 주인공의 생각처럼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이런 한심스러운 세상을 만들었을 것이다. 돈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이익만을 추구하는 인간들의 잘못된 마음이 원인일거라던 주인공의 말이 아프게 허를 찌른다. 금전만능주의라는 말을 겉으로는 혐오하면서도 속으로는 그렇지 않은 것이 바로 우리의 마음일테니... 가끔은 이런 생각도 해 본다. 진화하는 인간의 표본은 바로 욕망이며 욕심일거라고.. 글의 흐름속에서 저마다 누군가의 위에 서기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저마다 채우지 못한 자신만의 창고를 바라보며 좀 더 채우지 못해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일 것이다. 높이 올라야 하고 많이 가져야만 하는 것이 진정 약육강식의 생태일까?

언젠가는 알게될거라는 것이 진실이다. 하지만 그 진실도 때에 맞춰 나타나야 빛을 발한다. '언젠가는' 이라는 막연한 말로 치장한 진실은 제대로 된 진실이 아닐 거라는 말이다. 정랑 박일원이 찾아헤맸던 진실은 끝내 몸을 숨겼다.  단 몇사람의 입을 통하여 만들어지게 되었던 당백전의 진실.. 깨어진 별전 조각으로 인해 살인이 일어나야만 했던 그 순간조차도 어느 누구를 탓할 수 없는 어두운 진실은 숨어있었다. 그 진실을 찾아가는 일원의 발걸음속에서 많은 것을 본다. '당백전'이 생겨날 수 밖에 없었던 그 시대의 현실과, '당백전'을 통해 볼 수 있었던 (어느누구를 막론하고 내비쳤던) 사람들의 욕망과, '당백전'으로 인해 울고 웃는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과, 그리고 '당백전'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왔던 경제의식과... 이 책의 내용이 비단 그 시절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지금의 우리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은 까닭이다. 어떤 이유가 되었든 악화惡貨가 만들어지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한 개인의 잘못된 욕망으로 인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아파하는 일만큼은 생겨나지 않아야 할 것이다.

흥미로웠던 책이다. 역사적인 사실 한조각에 얹혀진 작가의 상상력이 참으로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풍성한 지식을 함께 할 수 있어 좋았다. 긴장감이 부족했던 것이 아쉬운 점으로 남지만 책장을 덮으면서 꽉찬 느낌을 안아든다. 추천인의 말처럼 묵직한 주제였을 테지만 그리 무겁지 않게 다가와 주었던 책이기도 했다. 복잡한 이 시대를 바라보며 역사속에 모든 정답이 들어있다던 어느 명사의 이야기가 다시금 떠오른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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