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정원
최영미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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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면서 청동거울이란 말이 떠올랐다. 거울이긴 한데 비춰볼 수 없는 거울. 그저 상징적인 의미로써의 역할만 하는 거울. 그러나 우리는 안다. 그 거울이 안고 있는 커다란 의미를. 그런데 청동정원이란다. 제목부터가 알 수 없는 쓸쓸함을 만들어내고 있다. 박제되어진 듯한 냄새를 풍기며 내게 다가왔던 이 책속의 배경이 나를 저 먼 기억속으로 이끈다. 80년대... 7080세대, 7080문화... 어쩌자고 다시 그 시대인가! 옳다고 믿었던 것만을 좇았다. 그리고 그것을 향해 움직였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까지는 어떤 이유가 분명히 있었다. 앞장섰든, 뒤로 숨었든 그것은 하나의 방편이었을 뿐 그것으로 인해 어떤 의무감이나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었다는 말이다. 소개글을 보니 이런 말이 보인다. 데뷔 이후 20여 동안 작가가 유일하게 청탁을 거절해온 주제라고.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주제가 아니라는 말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가슴속에 숨겨두기만 할 이야기도 아닌 것이다.

 

영화 <26년>이 생각났다. 그 시절을 온 몸으로 겪어냈던 세대를 부모로, 형으로, 누나로 두었던 그들의 이야기. 주머니에 29만원밖에 없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던 그 남자가 그들에게는 용서할 수 없는 존재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속에서는 그 남자를 다루지 않는다. 시대의 흐름에 맞춰 흘러가야 했던 청춘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같은 시대를 겪어냈다는 이유만으로 나도 어쩌면 작가처럼 미안함 하나쯤은 표현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최루탄 냄새에 눈물 콧물 흘리면서 뿌연 시내를 바라보던 그 때의 시민들을 나는 보았었다. 앞장 서지는 않았지만 조용히 동조하던 그들의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두려움의 대상중 하나다. 그들이 만들어낸 시간과 공간을 바탕으로 지금의 시대가 서 있다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소설이다. 그런데 마치 소설을 빙자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아무리 소설이라해도 주제가 주제이니만큼 자전적인 요소가 분명 ​있을 것이다. 그 때에 감히 앞으로 나서지 못했던 자신을 돌아보며 빚을 진 듯한 느낌으로 살아왔던 것일까? 어쩌면 모두가 갚아야 할 마음의 빚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념'이란 말이 이제는 먼나라의 이야기처럼 들려오는 작금의 시대에서 우리에게 잊혀져가고 있는 건 무엇인지 다시한번 짚어보고 싶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책속에서 보여지고 있는 상황들이 전체적인 모습은 아닐 것이다. 우리에게는 일부의 이야기가 늘 회자되어진다. 그러나 그 일부로 인해 전체적인 모습이 바뀌기도 한다. 미안하게도 이토록이나 서럽고 쓸쓸한 이야기속에서 나는 지나간 20대의 추억을 더듬게 된다. 책속에서 언급하고 있는 노래 'One way ticket' 은 '날보러 와요' 라는 가요로 불리워지기도 했다. 'One Summer Night' 라거나, Scorpions의 'Holiday', Black Sabbath의 'She's Gone', Kansas 의 'Dust In The Wind', John Lennon 의 'Imagine' 같이 팝송은 지금까지도 즐겨듣는 노래들이다. 80년대라고 해서 아픔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젊은이들의 문화는 오히려 지금보다도 더 개성있었다. 저마다의 특성과 의미를 부여할 줄 아는 문화였다는 말이다. 서로 다름을 인정할 줄 알았고 그 다름을 존중해줄 줄 아는 그런 시대이기도 했다. 청춘뿐일까? 모든 세대는 그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할 수 밖에 없다. 그 흐름을 거부하며 저마다 내가 살아온 시대만을 목소리 높여 이야기한다면 서로에게 간격이 생기고 다툼이 생겨나는 건 불보듯 뻔한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고는 해도 잊어야 할 것과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분명히 존재한다. 앞선 세대가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지금의 세대가 겪어야 할 시대의 모습이 생겨나는 까닭이다. 영화속에서조차 차마 죽일 수 없었던 그 남자의 존재는, 영화라는 이름을 빌렸음에도 불구하고 그 남자를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은, 그 아픔을 간직한 채 살아왔던 많은 사람을 위해 잊어서는 안되는 일이었던 까닭이다.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함에도 책임지지 않는 우리 사회의 부조리함에 대한 항거이기도 할 것이다. 청동정원... 박제되어진 채 늘 우리 곁에 머물. 그 봉인이 풀릴 날이 오기는 올까?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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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정의 편지
지예 지음 / 북스타(Bookstar)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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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제목부터가 눈길을 끌었다. 이 무슨 에로틱한? 이라고 생각할 찰나 책표지의 그림에 그만 섬뜩해지고 말았다. '에로틱 서스펜스' 라는 새로운 장르라는 말이 보인다. '에로틱 서스펜스'라... 그렇다면 맞는 듯 하다. 책을 읽는 내내 긴장감을 놓치지 않았으니. 이 내용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분명 19금딱지가 붙을거라고 생각하며 혼자 피식거린다. 그 판단기준이란 걸 생각하면 할수록 괴리감이 느껴지는 게 사실이니 말이다. 상당히 도발적인 느낌을 주지만 그러면서도 왠지 지적인 느낌까지 뱉어내는 작가의 분위기가 이채로웠다. 마치 달관한 듯 아무렇지도 않게 써내려가는 장면들이 작가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다.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책을 다 읽은 후 작정하고 찾아보니 다른 작품은 보이지 않고 23세에 국내 최연소 칼럼리스트로 데뷔했다는 말이 눈에 들어온다. 솔직하고 감각적인 글쓰기로 주변에서 '뇌가 섹시한 여자' 라고 불린다는 소개글에 어영부영 나도 한표.

 

우리는 살아가면서 예상치 못한 일을 많이 겪는다. 알게 모르게 남에게 노출되어지는 나의 모습과 보고 싶지 않아도 보여지는 타인의 생활이 가끔은 당혹스럽기도 하지만 이미 소통의 부재를 외치는 사회속에서 그런 게 무슨 상관인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그 소통의 부재라는 게 그렇게 쉽게만 판단할 수 있는 주제가 아니라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소통하지 못한다는 건 무엇인가. 서로를 향한 마음의 문을 열지 않고 그저 형식적으로만 대한다는 말일터다. 마음없이 상대방을 대한다는 게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문득 일전에 보았던 <숨바꼭질>이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그 영화를 보면서도 이 책을 읽을 때처럼 긴장감이 따라왔었는데 소통의 부재를 겪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바라보는 것만 같아 영 개운치가 않았었다. 우리는 어쩌다가 남에 대한 배려를 잃어버린 것일까? 우리는 어쩌다가 모든 걸 내식대로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을까? 우리는 어쩌다가 나만이 옳다고 여기며 살아가게 된 것일까?

 

놀라운 반전이다. 이야기를 그렇게 끌어가리라고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음에도 알 수 없는 공감대가 생겨나던 그 순간은 뭐란 말인가! 슬쩍 생각해보게 된다. 내가 이사한 집으로 먼저 살던 사람이 나는 그곳에서 이렇게 저렇게 살았었습니다, 하며 편지를 보내온다면 어떤 기분일까? 그다지 기분좋을 일은 아닌 건 분명하다. 그래서 어쩌라고? 누군가의 사랑을 갈구하고, 누군가의 배려를 꿈꾸지만 거기에 나는 없다. 피동적인 생각일 뿐이다. 누군가를 사랑해주고, 누군가를 배려해주는 일속에서 나는 숨쉰다. 작금의 대한민국을 보게 된다. 내 탓은 없고, 오로지 남의 탓만 있는 사회. 관심과 배려는 없고 원망과 갈등만 부추기는 사회. 하나가 아닌데 하나인듯 하나처럼 살고 싶어하는 우리의 현실. 너도 없고 나도 없는 씁쓸한 현실. 그런 씁쓸함이 이 책속에 녹아있다. 비틀지 않고 솔직하게, 숨기려 하지 않는 감각적인 문체로 다가가는 '그 집' 의 여운이 길게 남을 듯 하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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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지식 ⓔ 3 - 소중한 문화유산 EBS 어린이 지식ⓔ 시리즈 3
EBS 지식채널ⓔ 제작팀 지음, 민재회 그림 / 지식채널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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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이들은 나 어릴적에 배웠던 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학습을 하고 있다. 그러니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에서도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그렇다고는해도 일단 쉬워진 용어는 좋았다. 마제석기니 타제석기니 하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뗀석기, 간석기라고 말하는 게 훨씬 좋아보여 하는 말이다. '페이지'라는 말을 쓰는 세대와 '쪽'이라는 말을 쓰는 세대는 달라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을 하니 왠지 우습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하다. 계백장군의 선택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던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전쟁터로 떠나기 전에 굳이 가족들을 죽여야만 했는지, 만약 너였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지 묻는 선생님의 말씀에 너도나도 자신의 의견을 쏟아내던 아이들의 모습이 어찌나 이쁘던지. 그러나 한편으로는 현장학습(혹은 체험학습)이란 이름표를 달고 너무 형식적으로만 다가서는 게 아닌가 싶어 안타까울 때도 많다. 근래에 부쩍 역사속의 인물에 대해 재평가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누군가는 그랬지. 역사는 편협된 생각으로 바라보면 안되는 거라고. 그리고 역사는 여러 각도에서 바라봐야 하는 거라고. 그래서 궁금했다. 아이들에게 다가갈 우리 문화유산의 모습은 어떤 것일지. 요즘은 경복궁이나 창덕궁만 가보더라도 어린이용 안내서가 따로 배치되어 있는 걸 볼 수 있다. 역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는 작금의 현실속에서 한쪽으로만 치우친 역사관으로 우리의 아이들에게 다가서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욕심을 가져본다.

 

책장을 넘기며 주제를 살펴보다가 나도 모르게 집중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여러 방면으로 짚어준 내용들이 참 좋았다. 연대나 늘어놓으며 인물과 사건만을 중시하기보다 시대적인 흐름을 읽을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편집이 괜찮았다. 보화각의 주인 간송 전형필의 바보같은 행동속에서 우리의 아이들이 느낄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최초의 국어사전을 만들기 위해 여러 사람이 한뜻으로 뭉쳤던 <말모이 대작전>과 같은 이야기는 요즘처럼 우리말이 처참하게 망가지고 있는 때에 적절했다. 이제는 사진으로밖에 확인할 길이 없는 중앙청, 그 안에 얽힌 슬픈 역사는 너무나도 많다. 그 한장의 그림을 들여다보며 아이들이 경복궁의 아픔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대여형식으로 우리나라에 돌아온 의궤를 너희들이 더 많이 연구하고 분석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우리것이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경고장 하나쯤은 날려줘도 괜찮을 걸 그랬다. <비밀의 항아리>를 통해 우리 음식에 대해 접근한 것과 경부고속도로가 생겨나게 된 배경과 그 과정을 통해 하나로 뭉친 역사적인 현장속으로 안내한 것은 상당히 이채로웠다. 그 두가지 이야기가 주던 감동은 생각보다 컸다. 경제성장만이 능사가 아니라 서로 마음을 나눌 때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다는 부분도 넣어줬으면 참 좋았을 걸 그랬다. 생각보다 깊이있는 책이 아닌가 싶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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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의 생각
이이화 지음 / 교유서가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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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이란 이름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홍길동전>이고, 그 다음이 그의 누이 허난설헌이다. 고려와는 달리 조선은 여성의 삶을 위축시켰다. 성리학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그런 세상에서 오로지 글재주만으로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알렸다는 건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씁쓸하게도 그녀의 글재주는 조선보다 중국과 일본에서 더 많이 추앙을 받았다. 열등감에 사로잡힌 남편으로 인해 그녀의 삶이 고달팠을수도 있겠으나 시절을 잘못 만난 탓이 더 클 것이다. 그런 그녀였으니 동생 허균의 사상이야 어떠했을지.... 허균을 시대의 이단아라 하는 이유는 뭘까? 유복한 집안에서 자랐으나 굴곡진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던 그의 일생을 이 책을 통해 다시 보게 된다. 자유분방한 삶을 살았다는 허균, 파격적인 학문과 정치를 추구했다던 허균. 책을 통해 들여다 본 그의 삶은 끝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천하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는 오직 민중뿐이다" 로 시작하는 호민론. 놀라웠다! 민중을 '호민', '怨民', '恒民' 으로 나누어 나름대로 그들의 성향을 분석했다. 항민은 자기의 권리나 이익을 주장할 의식이나 지식이 없어 가장 좋은 수탈의 대상이 된다. 원민은 수탈당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나 스스로의 처지가 부당하다는 것을 깨닫는 무리다. 그러나 그런 의지를 밖으로 표현하지 않으니 지금의 소시민이나 자기의 안일만을 찾는 나약한 지식인에 견주어진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호민은 어떤 존재일까? 한마디로 말해 혁명가다. 부당한 대우나 사회의 부조리에 도전하는 무리. 사회개조를 지향하는 무리. 결정적인 때가 오면 혁명의지를 실현코자 하는 무리. 여기서 중요한 것은 호민이 들고 일어났을 때 좋은 협조자가 될 수 있는 원민과 항민으로 보인다. 그러니 올바른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말에 공감하게 된다.

 

나라를 생각함에 있어 이이와 허균을 비교분석한 점이 흥미롭다. 임진왜란을 예견했던 이이와 병자호란을 예견했던 허균. 굳이 차이점을 들라면 이이는 벼슬자리에 있었고 허균은 벼슬자리에 있지 않았다는 점이요, 군정의 어지러움을 보고 추상적으로 예견한 것이 이이라면 허균은 구체적으로 누가 침략해 올것인지를 가리켰다는 점이요, 이이가 나라안의 사정만 보고 이론을 세웠다면 허균은 나라 안팎의 사정을 살펴보고 적의 침입 경로까지 예견했다고 하니 놀라울 뿐이다. 그런데도 이이보다 허균의 이름이 높지 않음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그의 자유분방한 삶과 파격적인 학문때문이었다.

 

허균이 말한 학문은 두가지다. '자기 몸을 위한 공부(爲己之學)'와 '남을 위한 공부(爲人之學)'로 저 혼자만의 안위를 위한 공부가 '爲己之學'이요, 후세에 남김이 있게 한다는 것이 '爲人之學'이다. 허균은 세상에 쓰이지 못할 학문을 하지 말라는 '爲人之學'을 중시했다. 허균이 추구했던 학문은 인과 덕을 배경으로 했던 요순시대에 배경을 두었다. 이이나 조광조처럼 도학정치와 이상정치를 추구했으나 그들과는 달리 현실에 뿌리를 두었다. 또한 유교뿐만 아니라 불교나 도교같은 학문도 깊이있게 받아들였다. 당시에 허균이 불교와 도교에 빠졌다는 것은 유교로 인한 폐단이 두드러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허균은 소승불교보다 대승불교에 뜻을 두었다. 그것은 남을 위한 공부를 중시했던 그의 학문과 일맥상통하는 듯 하다. 부처를 믿는 것이 아니라 그 문장을 즐겨보았을 뿐이라던 그의 말속에서 불교를 하나의 학문으로 보았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그 때 그의 나이가 불혹이었으나 세상의 비난쯤은 그다지 무서워하지 않았다고 한다. 기복불교를 나무랐고 참진리를 강조했다. 자기를 이롭게 하기보다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을 중시했다. 그것으로 인해 관직에서 물러나야 했음에도 불교를 향한 그의 관심은 꺾을 수 없었다. 다른 종교에 비해 포괄적인 성격을 보였다던 도교를 종교로써보다는 생활의 방법으로 받아들인 점이 많았다고 하니 도교 역시 하나의 학문으로 받아들였음이 분명해 보인다. 현실이 각박할수록 사람들은 신선사상에 물들었다고 한다. 그런 흐름을 간파한 불교가 칠성각이나 산신각을 지어 도교를 포용한 점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귀거래사를 남긴 도연명이나 물속의 달을 잡으려다 빠져 죽은 이태백, 그리고 귀천을 가리지 않고 사람을 사귀었다는 소동파를 마음의 벗으로 삼았다는 허균은 은둔의 삶을 갈망했으나 그렇게 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제명을 다 살지 못했다. 문득 김시습을 떠올리게 된다. 한사람은 최초의 한글소설을 쓴 사람이요, 한사람은 최초의 한문소설을 쓴 사람이라는 점이 신비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나라에 천주교에 관한 책을 가장 먼저 들여온 사람이 허균이라는 사실을 이제사 알게 된다. 중국사신과 접촉할 기회가 많았고 두번이나 중국을 다녀왔으니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누이 허난설헌의 작품을 중국 사신 주지번에게 건네준 것도 그 무렵이다.

 

그가 생각하는 문학은 어땠을까? 여러 방면으로 사람들의 지탄을 많이 받았음에도 그의 글재주만은 인정했다는 말이 보인다. 시를 통해 현실의 모순에 저항했으며 제도 따위는 인간의 참모습을 막을 수 없다며 그런 것에는 전혀 얽매이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의 나약함을 어쩌지 못하고 시를 통해 세상을 비웃기도 했다니 그것은 어쩌면 현실도피였을 것이다. 자신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상을 원망했기에 은둔을 꿈꿨을 것이다. 형식이나 수사에 얽매이지 않고 표절이나 답습은 삼가야 한다는 말로 독창성을 강조했다는 그의 문학정신을 보니 <홍길동전>이 태어나게 되는 배경을 익히 짐작하겠다. 문장은 알기 쉽게 상용어를 써야 한다는 주장을 폈듯이 그는 어쩌면 자신의 본성과 감성에 충실한 삶을 살았던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쩌면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을 홍길동이 되어 멋지게 펼쳐본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허균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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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질 때마다 일어서면 그만,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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寸鐵殺人... 한 치밖에 안 되는 칼로 사람을 죽인다는 뜻이다. 이외수라는 이름을 들으면 생각나는 말 중의 하나다. 한 치밖에 안 되는 칼로 사람을 죽인다는 뜻이지만 짧은 말 한마디나 한줄의 문장만으로도 사람을 움직일 수 있다는 말도 될 것이다. 그를 추종하는 이들은 많다. 어쩌면 어렵지 않은 말로 다가오는 그의 감성에 공감하는 바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가끔 이런 생각도 해본다. 너무 시대의 흐름에 편승해도 보기에 좀 껄끄럽다고. 존버... 책을 읽으면서 계속 부딪히는 이 말때문에 곤혹스러웠다. 존버? 존버가 뭐지? 생각하다가 요즘 유행처럼 번져가고 있는 말줄임의 한 예가 아닐까 싶어 짐작해 보았다. 존재하며 버티기? 존재하기에 버틴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넘어갔다. 그런데 또 나오는 존버. 결국 책을 읽다말고 존버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다. 존나게 버티기, 조낸 버티기... 존나게? 아이들이 하도 많이 써서 어쩌면 표준어로 오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그 존나? 깜짝이야~~ 내가 내 맘대로 끄적거리는데 뭔 상관이냐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그러나 그런 유행어 안만들어도 충분히 인기있는 분이지 않나? 이외수님의 말처럼 그 말속에 담긴 의미를 몰라서도 아니고 어쭙잖은 애국심으로 그러는 것도 아니다. 가뜩이나 정도를 넘어서고 있는 말줄임의 세상인데 굳이 이런 말을 만들어야만 했는지 안타까운 마음에 딴지 한번 걸어보았다.

 

각설하고, 나는 이외수라는 이름보다 그가 보여주는 글이 좋다. 책을 펼치면 보여지는 공백, 그 공백을 볼 때마다 거기에 내 나름의 무언가를 채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무심한 듯 끄적거린 글 속에서 세상을 향한 일침을 들을 수 있어 좋다. 최근에 보았던 <아불류 시불류>나 <하악하악> 부터 <외뿔>, <내가 너를 향해 흔들리는 순간>, < 내 잠속에 비 내리는데> 등등 정말 많은 책이 있지만 오래전에 보았던 <사부님 싸부님>의 여운은 지금까지도 내 가슴속에 남아 있다. 그 올챙이의 팬이 된 것도 꽤나 오래된 일이지 싶다. 짧은 문장속에 어쩌면 그리도 많은 것을 담아낼 수 있는지 볼 때마다 놀라울 뿐이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듯 하면서도 나름대로의 법칙을 고수한 느낌이 좋다. 지면을 꽉 채우지 않아 좋다.

 

나만 다양성에 포함되어 있다는 생각은 버리자. 나와 반대되는 의견을 가진 사람도 다양성에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어째서 나만 정당하고 나와 반대되는 의견을 가진 사람은 부당한가. 나만 옳다는 견해를 굳히고 내미는 다양성. 웃긴다.(-38쪽) 멋진 한방이다. 개성시대라고 말은 하면서도 천편일률적인 얼굴과 복장을 한 모습처럼 어쩌면 우리의 사고도 그렇게 변해가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었다. 이렇게 시원할 수가! 자신이 올바른 삶을 살고 있는가를 알고 싶다면 자연과 견주어보면 된다. 자연과 어울리는 삶을 살고 있다면 올바른 삶을 살고 있는 것이고 자연과 잘 어울리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면 잘못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손대지 말라. 자연은 아무 문제가 없다. 오직 인간이 문제일 뿐. (-107쪽) 백퍼센트, 아니 이만퍼센트 공감한다. 자연스럽게 사는 게 순리다. 그 순리를 거스르며 억지로 꾸며대는 자연을, 인간의 편리에 짜 맞춘 자연을 자연이라 말하는 건 분명 억지다. 자연은 그대로 두고 거기에 인간이 맞춰 살면 되는 것이다. 말은 자연사랑인데 행동은 자연파괴인 사회현상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러니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없는 게 아닐까? 재미있는 이야기가 보인다. 늙은 침팬지가 젊은 침팬지의 손금을 봐주면서 근심스럽게 말한다. 최악의 손금이야. 말년에 너는 인간으로 진화할지도 몰라. (-122쪽) 인간으로 진화할지도 모를 최악의 손금이란 말에 가슴이 먹먹해지고 말았다. 부끄러운 일이다.

 

창문을 흔들고 있는 태풍에게 나한테 볼일 있냐고 묻는, 다른 모습을 보여줄 때마다 자기를 배반했다고 말하는 독자에게 그럼 나는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란 말이냐고 들이대는, 방충망에 붙어 있는 나방들에게 전생에 나이트 죽순이 죽돌이로 살았다고 말하는 그의 감성을 사랑한다. 그리움이 석쇠에 꽁치 굽는 냄새처럼 번지는 시간(작가의 표현) 에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 지나가던 개가 전봇대에 오줌을 누며 꽃도 피지 않고 열매도 열리지 않는 이 쓸모없는 것을 인간들은 왜 뽑아버리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중얼거렸다는 말속에 숨겨둔 그의 일침이 서늘하다. /아이비생각

 

똥이 더러워서 당신이 피했다 하더라도, 당신의 아들, 당신의 아내, 당신의 친구나 이웃이 밟을 수도 있다. 똥을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똥밭의 면적은 늘어난다. 결국 온 세상이 똥밭이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2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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