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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식당 - 요리사 박찬일의 노포老鋪 기행
박찬일 지음, 노중훈 사진 / 중앙M&B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食道樂이란 말이 있다.
한마디로 먹는 걸 즐긴다는 말인데 그런 사람이라면 이런 주제에 눈이 커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속에는 요리나 식당보다 그곳에서 찾을 수
있는 오래된 이야기들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요리사가 찾아간 식당 이야기는
재미있을까?' 하는 편견이 없었다고 한다면 거짓말일게다. 그럼에도 老鋪기행이라는
말이 흥미로웠다. 노포라 함은 식당뿐만이 아니라 대체적으로 오래된 가게를 말한다. 오래된 가게.... 우리나라에서 오래되었다고 한다면 얼만큼의
세월을 지나야 하는 것일까? 문득 원조라는 말이 생각났다. 장충동에 가면 이집이 족발의 원조요~ 하고 말하는 간판이 수두룩하고, 전주에 가면 이집이 비빔밥의 원조요~ 하고 말하는 간판 셀
수 없이 많다. 그것뿐일까? 하다못해 이제는 원조의 원조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 원조의 의미가 아니다.
얼마나 진솔한 마음으로 음식을 대하는지, 그리고 그 맛을 얼만큼의 세월동안 지키고 있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우리나라에 그런
집이 얼마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조바심이 나기도 했다. 더구나 취재를 하기 위해 찾아갔던 곳에서 저자가 보아야했던 식당주인들의 깊은 상처는
못내 안타까웠다. 맛있다고 소문난 집을 그냥 두었을리 없을테니 그동안의 부조리한
일들로 인해 얼마나 마음이 상했으면 저리도 막무가내일까 싶어 가슴 한켠이 얼얼하기도 했다. 그러니 직접 찾아간 사람의 마음은
어떻겠는가!
우리가 전통을 이야기하고 문화를 이야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일단
잘살아보자고, 가난을 밀어내보자고 모든 걸 다 뒤엎고 난 뒤에야 그 소중함을 알게 되었으니. 책을 읽으면서 다시 상처가 도진다. 피맛골
이야기다. 그 안에서 살아 숨쉬던 모든 이야기가 높게 올라선 빌딩 아래로 짓밟혀
무너져내리고 우리는 이렇게 또다시 그리움이란 열병을 앓고 있는 것이다.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닌데 말이다. 옛날에 서울에 설렁탕 잘하는 집이 있었단다. 염천교
앞에 복순옥, 시내에 대림옥, 세운상가 앞 감미옥 같은 집들, 하지만 지금은 볼 수 없는... 그 피맛골에서 쫓겨났지만 지금도 새 터전에서 그
맛을 잃지 않고 있다는 청진동 해장국이나 구수한 빈대떡을 부쳐내는 열차집은 한번 가봐야지 벼르게 된다. 대를 이어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집이
대부분이었다. 주방장마저도 대를 이어가고 있다는 청진동 해장국의 이야기는 놀라웠다. 주인자리를 물려받았던 아들에게 그냥 그분들이 있을 때까지
있게 하라 말씀하셨다던 아버지의 정신은 정말 본받을 만 하지 않은가
싶다.
우리가 흔히 오뎅이라고 불렀던 어묵의 '혼란사'도 재미있다. 나 어릴적만 해도 정말
끝내주는 반찬중의 하나가 바로 오뎅볶음이었다. 그 '오뎅'과 '어묵'과 '덴뿌라'의 차이라니! 그러니 부산어묵에
관한 이야기 또한 빠뜨릴 수 없는 음식사일 것이다. 시장에 나가 보라, 죄다
부산어묵일테니! 추어탕을 즐겨먹진 않지만 그것이 왜 보양식인가를 이제사 알게 되었다. 지방별로 각각의 추어탕이 있긴 하다지만 그 의미야 변함이
없을테니 말이다. 한장의 사진에 눈길이 머문다. 낙서 가득한 열차집의 벽이다. 그 별것 아닌 벽에 눈길이 머무는 것은 아마도 그 안에 담겨있을
많은 사람의 이야기때문 아닐까? 그만큼 오래된 것속에는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수많은 의미들이 담겨 있는 것이다. 책을 덮기 전에 '우리는 왜
노포를 찾아나섰나' 그 이유를 말해주던 첫장으로 다시 돌아갔다. 맛있어서 오래된 식당, 그것을 우리는 노포老鋪라고 부른다 라는 말에
공연히 울컥해진다. 우리에게는 왜 백년된 식당이 없는 것일까? 아니 식당뿐만이 아니라 가업을 잇는다거나 하는 일을
찾아보기가 어려운 현실이다. 방송을 통해서 수없이 보아왔던 다른 나라의
이야기들을 우리에게서는 왜 찾을 수 없는지.... 모든 것을 다시 바라다보고 다시 생각해야 할 싯점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무조건 사람의
편리성에 맞추기보다는 그것 자체로써 존재해야 하는 의미를 인정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울퉁불퉁하고 삐뚤어진 것이라해서 지금의 시선에 맞춰 무조건
반듯하고 평평하게만 만들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단언컨데, 문명은 자연스러움을 이기기 못한다.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