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노후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2
박형서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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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속도가 세계 1위인 나라. 최고, 최대를 좋아하는 나라답게 역시 1위다. 우리나라 이야기다. 일본보다도 빠르다고 하니 나같은 낀세대에게는 불안감 백퍼센트다. 이미 2000년에 노인 인구가 전체 인구의 7%였다고 한다. 그리고 올해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고령사회에 대한 준비가 얼만큼이나 되어 있을까? 내가 보기엔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은 듯 하다. 나라에서 그러니 대한민국 국민은 제 앞길 제가 닦아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다보니 엄청나게 보험가짓수만 들어난다. 그나마도 믿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게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이다. 의무사항이긴해도 그것마져 없다면 그야말로 노를 잃어버린 배와 같을 것이다. 게다가 늘어난 노인들과 젊은이들의 대립각은 이미 시작되었다. 사실 어디 외출이라도 할라치면 젊은이보다 더 많이 보이는 게 노인들인 게 현실이다. 언론에서 초고령사회를 앞두고 우려의 목소리를 낸다고는 하지만 정작 들어야 할 사람들은 귀막고 눈막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렇게 찰떡같이 믿고 있는 국민연금이나 건강보험은 그런 사회를 제대로 뒷받침해주기는 할까?  내는 사람보다 받는 사람이 더 많은 구조라면 다시한번 생각해 볼 문제다. 바로 그 불안감에서 이 소설은 출발한다. 황당하지만 무계하지 않다는 말을 보면서 무릎을 쳤다. 이렇게 정확한 표현이라니!  실제 사정으로 봐도 이건 소설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이미 우리에게 닥친 현실이다. 베이비부머세대가 정년퇴직을 시작했으니 국민연금이나 건강보험은 이제 받을 것보다 줄 게 많아진 상태다. 그러니 이 책속에 등장하는 모든 상황들이 단지 소설에 불과할 뿐이라고 말할 수는 없게 되었다. 다만, 제발 현실로 다가오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부질없이 두 손을 모아 볼 뿐이다.

 

이 책의 주인공 장길도는 온 힘을 다해 국가와 조직을 위해 충성했다. 정년퇴직하는 그 날까지 그래야 한다고, 그래야만 하는거라고 믿으며. 그러나 그 믿음은 사랑하는 아내가 국민연금 수급자가 되었다는 축하메세지를 받기 전까지였다. 그가 평생을 바쳐 일해왔던 곳이 바로 국민연금공단이었다!  슬프게도 아내는 병으로 오래전부터 요양원 신세를 지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이쯤에서 이게 현실인지 소설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우리가 살아가야 할 노후는 뻔하다. 사느라고 노후를 준비할 틈이 없었던 사람이 늙은 몸으로 살아가야 할 시간은 자꾸 늘어만 간다. 제 스스로 죽을 수 없다면 그렇게 죽을 때까지 살아져야만 한다. 슬픈 현실이다. 昨今의 우리 주변을 둘러봐도 책속에 등장하는 노인들의 모습은 너무도 흔하게 볼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니 정말 이런 상황이 오지 말란 법도 없지 않을까 싶은 우려가 생겨난다는 말이다. 어쩌면 청년 3명이 아니라 1명이 노인 7명을 먹여살려야 할 지도 모른다. 그만큼 우리의 고령화 현실은 급박하다. 이 급박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만 하는 것일까?

 

"왜 안 죽어? 응? 늙었는데 왜 안죽어! 그렇게 오래 살면 거북이지 그게 사람이야? 요즘 툭하면 100살이야. 늙으면 죽는 게 당연한데 대체 왜들 안 죽는 거야! 온갖 잡다한 병에 걸려 골골대면서도 살아 있으니 마냥 기분 좋아? 기분 막 째져? 어제도 출근하다 보니 어떤 노파가 횡단보도를 점거하고는 5분 동안 건너더라고. 영락없이 지각을 해서 이사장님한테 꾸중 들었지 뭐야. 나라 전체가 그래. 사방이 꽉 막혀서 썩어가고 있어. 하는 일이라고는 영혼이 떠나지 않도록 붙들고 있는 게 전부인 주제에 당신들 대체 왜 우리 사회에 아직 남아 있는 거야!"  (-126쪽)


"곰곰이 따져보면 자네들도 가망 없긴 마찬가지야. 시간이 노인의 편이 아닌 것처럼 젊은이의 편도 아니지. 시간은 결국 살아 있는 모두를 배신할 걸세. 싸우다 고개를 들어보면 어느덧 자네들도 맥없이 늙어 있을테니까." (-134쪽)

 

옛말에 처녀 시집 안간다는 말, 장사가 밑졌다는 말, 노인이 죽고싶다고 하는 말은 모두 거짓이라고 했다. 그런데 주변의 노인들은 정말 죽고싶다고 한다.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게 지금의 세상이라는 거다. 그래서 나는 안락사에 적극 찬성한다. 그래야 한다. 죽고 싶은 사람은 죽을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 사람이 사람으로써의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면 그건 사람이 아니라는 게 나의 지론인 까닭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저렇게 무서운 세상이 만들어지게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아닌 '나'를 모든 것의 중심에 두고 사는 까닭이다. 세상은 '나' 하나로 만들어지는게 아니다. 책을 읽으면서 등골이 서늘했다. 저 무서운 현실을 코앞에 두고 있는 내가 마치 크게 한 방 맞은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노후는 암울하다. 요양원에 계시는 어느 노인의 말씀이 생각난다. 사람 목숨도 유효기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던 그 목소리에는 슬픔이 가득했었다. 오래 산다고 다 좋은 건 아니다. /아이비생각


 

육십세에 저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젊어서 못간다고 전해라
칠십세에 저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할일이 아직남아 못간다고 전해라
팔십세에 저세상에서 날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쓸만해서 못간다고 전해라
구십세에 저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알아서 갈테니 재촉말라전해라
백세에 저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좋은날 좋은시에 간다고 전해라

팔십세에 저세상에서 또데리러 오거든
자존심 상해서 못간다고전해라
구십세에 저세상에서 또데리러 오거든
알아서 갈테니 또왔냐고 전해라
백세에 저세상에서 또데리러 오거든
극락왕생 할날을 찾고있다 전해라
백오십에 저세상에서 또데리러 오거든
나는이미 극락세계 와있다고 전해라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웃지 못했었다. 오죽했으면 저런 노래가 나올까 싶었다. 그야말로 요즘 말처럼 웃픈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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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파리를 흔드는 저녁바람이 - 열두 개의 달 시화집 六月 열두 개의 달 시화집
윤동주 외 지음, 에드워드 호퍼 그림 / 저녁달고양이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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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이 열 개인 것은

어머님 배속에서 몇 달 은혜 입나 기억하려는

태아의 노력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며칠전 신문을 읽다가  문득 스치던 글자에 눈길이 멈추고 말았다. 함민복 시인의 '성선설'이라는 詩였다. 늘 읽어보던 詩코너였는데도 쉽게 시선을 뗄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저 짧은 詩를 읽으면서 너무나도 많은 느낌이 나를 찾아왔었다. 세상에~ 열 달을 자신의 배속에 품어주신 어머니의 고마움을 저렇게도 표현할 수 있는거구나 싶어서 묘한 감정에 사로잡히고 말았었다. 그렇듯이 詩는 참 묘한 매력을 가졌다. 짧은 단어속에 어쩌면 그리도 많은 뜻을 담아낼 수 있는지... 짧은 단어속에 어쩌면 그리도 깊은 뜻을 넣어둘 수 있는지... 詩를 사랑한다는 건 어떤 마음일까?  가끔 묻기도 하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삐딱하다면 저렇게 아름다운 글이 만들어지지 않을거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이 책속에는 18명의 시인들이 등장한다.   詩는 알아도 누구의 작품인가는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은 까닭에 가끔 이렇게 찾아오는 詩集이 반가울 때가 있다. 그런 연유로 그 詩人이 누구인가를 찾아보는 수고를 한번쯤은 하게 되니 一石二鳥랄까?  순전히 나만의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古池や蛙飛び込む水の音
오래된 연못/ 개구리 뛰어드는/ 물소리 퐁당

일본의 하이쿠다. 그 중에서도 내가 처음으로 만나고 지금까지 좋아하는 마쓰오 바쇼의 작품이다.  이 작품을 처음 읽었을 때의 느낌은 정말 신기했다. 그냥 읽었을 뿐인데도 눈앞에 영상이 펼쳐지는 듯 했었다. 놀라웠다. 아마 그 후로 하이쿠를 좋아하게 된 것 같다. 그런데 반갑게도 이 책에서 나는 하이쿠를 만났다.

名を聞いてまた見直すや草の花

이름을 듣고/ 또다시 보게 되네/ 풀에 핀 꽃들

하이쿠에 대한 글을 찾다가 류시화시인의 하이쿠 해설집을 보게 되었다. 그 책을 통해 만나 내 수첩에 적어두었던 또하나의 하이쿠가 이 책속에 있었다. 반가워라!  이 하이쿠를 읽으면 망설임없이 튀어나오는 우리의 詩가 하나 있다.  나석주 시인의 '풀꽃' 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詩 자체만으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하고, 많은 그림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묻는다. 너는 어떠냐고. 그래서 나는 詩가 좋다.  하지만 모든 詩가 다 좋은 건 아니다.  너무 어려운 말로 꽈배기처럼 꼬아놓은 글보다  쉬운 말로 누구에게나 전달되어질 수있는 글과 이미지를 보여주는 詩가 더 좋은 건 어쩔 수가 없다. 어떤 것에 대한 느낌을 저 혼자만 아는 말이나 글로 표현하는 것보다는 여러 사람이 함께 느낄 수 있도록 표현하는 걸 더 좋아한다는 말이다. 詩의 매력이 바로 그런 점이 아닐까 싶어서 하는 말이다.

 

며칠동안  이 책을 가방에 넣고 다녔다. 크기도 작고 가벼워서 가방에 넣기에 딱 좋았다. 지하철을 타거나 버스를 타고 움직일 때, 혹은 누군가를 기다릴 때 꺼내 읽기에도 딱 좋았다.  '열두 개의 달 시화집' 이라는 시리즈 중에서 6월편이라고 하는데 그 열두 개의 달을 모두 읽어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다정히도 불어오는 바람,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이파리를 흔드는 저녁바람이.... 각각의 달마다 붙여진 제목도 참 이쁘다. 책방에 가면 한번 찾아보리라 다짐하면서 책꽂이에서 내게 눈짓하고 있는 지나간 詩集을 꺼내 내가 좋아하는 詩들을 다시한번 찾아본다. 역시 좋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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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렉터스 컷 - 살인을 생중계합니다
우타노 쇼고 지음, 이연승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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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였는지 소설이었는지.... 인터넷과 연결하여 조회수가 많아지면 사람이 죽어가도록 만든 살인범의 이야기를 본 기억이 있다. 조회를 하면 할수록 피해자가 죽어가는대도 사람들은 궁금증을 이기지 못해 조회를 하고... 그런 상황이라면 살인자는 과연 누구일까? 그런 장치를 만들어놓은 사람이 살인자일까? 조회하면 죽는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조회수를 늘려가는 사람이 살인자일까?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모순의 쳇바퀴일지도 모르겠다. 인터넷의 익명성에 대한 말이 종종 이슈가 되기도 한다. 실명제를 해야 한다느니, 그러면 안된다느니...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실명제를 했으면 좋겠지만 어차피 가상의 세계라는 점을 보면 익명성도 어느 정도는 보장이 되어야 옳은 것도 같다. 우리 사회의 딜레마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러나 익명성 뒤에 숨어 옳치않은 일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엄중한 처벌이 따라야 한다고 본다.

 

이 소설은 바로 그 인터넷과 방송의 의미, 혹은 역할에 대해 깊이있는 물음을 던지고 있다. 갈 길을 잃고 헤매는 방송이 가야할 길과 제대로 된 인터넷의 용도는 과연 무엇일까? 또한 무의미한 가상세계안에서 허우적거리는 현대인을 꼬집고 있다.  이 세상에 진짜가 있기는 한거야? 책을 덮으면서 제일 먼저 떠올랐던 생각이다. 그리고 짜증이 났다. 기분도 나빴다. 도대체 이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이 모양이냐 싶었다. 단지 소설일 뿐이라고? 그렇게 말하기에는 뭔가 찜찜하다. 거짓이 난무하는 세상, 말로써 말을 이기는 세상, 진심은 없고 가식만 떠다니는 세상. 모두가 그런 세상이 싫다고 말하면서도 그런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나도 그렇게 살고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세상이 나를 그렇게 만들고 있다고.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런 세상으로 우리가 만들어가고 있다는 거다.

 

소설책을 읽고 이렇게 흥분하다니! 그런데 픽션이라기보다 팩트에 가깝다는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나만 그런걸까? 가상의 세계를 이용하여 연쇄 살인을 저지르고 있는 살인범은 멀리 있지 않았다. 좀 더 자극적인 방송소재를 찾기 위해 사람을 동원하여 억지로 상황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그들이 어떤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지 인지하기는 할까? 실제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그 '악마의 편집'이 소설속에서 시커먼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 혹은 유튜브와 같은 SNS매체를 통해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실시간으로 타인에게 전송되어지는 우리의 일상처럼 가상세계를 통해 전해지고 있는 살인의 과정들... 도대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그저 펜이 굴러가는대로 글을 썼다는 저자의 말처럼 이야기의 숨고르기는 약간 거친 듯 하다. 다듬어지지 않아서일까? 픽션인지 팩트인지... 무슨 까닭인지 변별력을 상실해버리고 말았다.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고, 어떤 사건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되어진다는 말이 무섭다. 반전에 반전을 넘어서며 누가 살인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 다시한번 묻는 저자의 치밀함이 한편으로는 두렵다. 살인을 당할 뻔 했다는 사람이 살인자가 된다는 설정이 왠지 억지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건 또 왜일까?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라는 책으로 저자를 기억하고 있었다. 반전의 묘미를 잘 살리는 작가라는 말도 기억한다. 현대인들이 죽고 못사는 SNS라는 공간과 아무 생각없이  SNS의 뒷꽁무니만 좇아가는 방송 세계의 뒷이야기는 엄청나게 씁쓸하다. 이미 오래전부터 제 갈길을 잃어버린 방송매체의 민낯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아울러 점점 늘어만가는 소시오패스에 대한 두려움이 밀려오기도 한다. 우리가 지금 만들어가고 있는 세상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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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끄러운 원숭이 잠재우기 (리커버 특별판) - 마음속 108마리 원숭이 이야기
아잔 브라흐마 지음, 각산 엮음 / 나무옆의자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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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절집에 가면 올라가면서 볼 수 있는 작은 조형물이 있다. 바로 원숭이 세마리다. 그런데 한마리는 입을 막고, 한마리는 귀를 막고, 한마리는 눈을 가리고 있다. 말하는 것, 듣는 것, 보는 것 모두를 조심하라는 뜻이다. 이 책에서도 말하고 있지만 시끄러운 원숭이라는 것은 바로 우리의 마음이다. 이 나무, 저 나무를 쉬지않고 건너다니는 원숭이의 부산스러운 모습에 빗대어 우리의 마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부정적인 생각보다는 긍정적인 생각이 도움이 된다고 우리는 수도없이 말하지만, 내 것인데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게 마음인지라 늘 말뿐인 진리다. 특히나 너무도 흔하게 겪고 있는 머피의 법칙은 우리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하는 일마다 왜 그리도 운이 안따르는지... 하지만 언젠가부터 우리는 그것을 거꾸로 생각하기 시작한 것 같다. 아침에 무슨 일어나면 음, 이것으로 오늘 액땜했군. 하는 것처럼.

 

이 복잡하고 분주한 세상을 살면서 마음의 평온을 찾는다는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세상은 우리를 편하게 놔두지 않는다. 그런데 가만히 돌이켜보면 세상이 그런게 아니라 내가 그런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걸 금방 알 수 있는데도 우리는 쉽게 그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그런 까닭으로 이런 종류의 책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얼마전부터 열리고 있는 '멍때리기 대회' 도 우리에게 쉴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싶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온전히 쉰다는 게 그만큼 어렵다는 말일 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우리가 마음의 고요를 찾는게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아주 작은 이야기를 통해 그 안에 담겨진 의미를 말해주고 있다. 작은 우화나 일화를 읽으며 슬며시 웃고 있는 내 모습을 보았다.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게 되는 이야기들... 가장 먼저 다가온 이야기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좋을지 나쁠지 누가 알겠는가' 라는. 아무일 없겠는가?, 확실한가? 왕의 계속되는 물음에 의사는 이렇게 말했지. 좋을지 나쁠지 누가 알겠습니까?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야말로 愚問에 賢答이 아닐 수가 없다.

 

마음다스리는 방법중 하나로 나는 종종 詩集을 꺼내서 읽기도 한다. 한 편, 한 편 詩를 읽으면서 차분하게 가라앉는 마음이 느껴질 때 그 순간이 좋아서. 책을 읽다가, 혹은 우연한 기회에 좋은 글귀나 말을 듣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을 메모해 두었다가 생각날 때마다 한번씩 읽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한번 깨닫게 된 것은 모든 것의 근원은 바로 '나'라는 것이다. 모든 일은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지만 항상 누군가에게서, 무언가에게서 원인을 찾으려고 했었다. ~~만 아니었다면 이렇게는 안됐을거야, 라고. 다시한번 마음속에 각인시킨다. '내려놓기'가 필요하다고. 놓아버리지 못할 때 마음이 시끄러워짐을 잘 알기에. 이 책은 늘 가까이 두어야 할 것 같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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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좋은 날, 경복궁 - 경복궁에서 만난 비, 바람, 땅, 생명 그리고 환경 이야기
박강리 지음 / 해나무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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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사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아직 남산에 가보지 않은 사람 손들라고 하면 없을까? 당연히 없을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천만에! 의외로 많다. 그것처럼 서울에 산다고해서 경복궁에 다 가보았을거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왜그럴까? 가까이 있으니 언제라도 마음만 있으면 갈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것도 아니면 너무나도 많은 정보때문에 가보지 않아도 안다고 생각해서?  어찌되었든 나는 아직까지 경복궁에 한번도 가보지 않은 사람이 많다는 걸 알았을 때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하긴, 뭐 그럴수도 있는 일이다. 관심이 없는데도 굳이 남이 갔다고 나도 가 볼 필요는 없을테니까.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창덕궁에 다녀왔다는 사람중에 경복궁엔 가보지 않은 사람이 꽤나 많았다는 거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창덕궁은 세계문화유산이라서, 라고 말한다. 하지만 경복궁과 창덕궁은 정말 다른 곳이다. 얼굴은 비슷해도 각자가 안고 있는 개성은 정말 다르다. 경복궁에는 없는 것이 창덕궁에 있고, 창덕궁에 없는 것이 경복궁에는 있다. 시간을 내서라도 5대궁궐을 한번쯤은 다녀오길 권한다.

 

이 지구에서 제일 잘생긴 것, 제일 못생긴 것, 가장 예쁜 것, 가장 안예쁜 것이 과연 있기나 할까? 세상에 그런 것이 있다면 그건 사람이 만든 것이다. 우리가 소비사회의 그물을 치고 살면서 마치 그런 것이 실제로 있는 것처럼 끝없이 부추겨지고 있을 뿐이다. 저마다의 개성을 두고 잘나고 못난 것을 순서 짓고, 인위적인 아름다움을 포장하여 돈으로 사고팔 수 있는 것처럼 마음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자연스럽지 않은 것에 익숙해진 우리는 어느새 자연스러움 그 자체가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자주 잊는다. (-185쪽)

 

경복궁을 바라보면서 환경을 이야기하는 '환경에세이'라는 말에 눈길이 갔다. 우리문화재를 바라보는 시선이 다양한 각도로 시도되고 있다는 말은 들었으나 그다지 마음이 가지 않았었는데, 은근슬쩍 궁금증이 일었다. 편년체 역사에 길들여져 있던 우리와는 다르게 요즘의 아이들은 여러 방면으로 생각할 수 있는 역사를 배우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지 싶은 생각도 든다. 저자를 따라 경복궁으로 들어가면서 문득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 지금까지 미루었던 한가지가  떠올라 아쉬움이 밀려왔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 경복궁에 찾아가보리라 했던 나와의 약속을 아직까지 지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근정전 앞 마당에 깔린 박석이 받아내는 빗물을 보고 싶어서였는데... 올 여름에는 기필코 그 약속을 지켜야지 다짐해본다.

 

유가와 도가의 출발점은 다르지 않았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다. 전체와 부분의 관계처럼 상호 관계 안에 있는 일부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연스러운 본성이 있고, 인간이라면 모름지기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배웠다. 그러나 어떻게 사는 것이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것인지, 구체적인 실천 방법을 두고 유가와 도가의 선택은 전혀 달랐다. (- 292쪽)

도가와 유가는 가는 길은 달랐으나 자연과 인간이 하나 되어 살고자 했던 뜻은 같았다. 자연을 인간에게 억지로 맞추려고 하지 않았고 인간의 삶을 자연과 합치하고자 했다.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깨닫는 것만큼이나 그러한 삶을 현실로 세우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다. 유가와 도가의 자연 공부는 서로 충돌하지 않으면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경복궁의 얼굴을 더욱 자연스럽고 풍성하게 만들었다. (-295쪽)

 

우리 전통가옥은 멀리서 보면 더 멋지다. 자연과 어우러진 모습이 마치 한폭의 그림같기도 하다. 그런데 그 안으로 들어가보면 밖에서 보았던 자연을 안으로 다시 끌어들인 듯한 느낌을 주곤 한다. 들어열개문만 보더라도 그렇다. 그래서 나는 '차경'이라는 말, '대청마루'라는 말이 참 좋다. 경복궁에 갈때마다 나는 일부러 시청역에서 내려 걸어가곤 한다. 경복궁과 경복궁을 안고 있는 북악산을 멀리서 바라보면서 걷는 기분이 꽤나 괜찮은 까닭이다. 책속에서 보여지는 부분이 있다. 생각해보기, 이야기해보기, 해보기, 얼굴 마주보기.... 단지 듣고 보는 것으로 만족하기 보다는 그것에 대해 생각해보고, 서로 이야기해보고, 직접 해 본다는 전제가 얼마나 멋진 일인지... 눈에 보여지는 건축물과 함께 그 주변에 있는 나무 한그루, 꽃 한송이, 그림 한조각을 함께 바라보자고 이야기하는 저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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