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렉터스 컷 - 살인을 생중계합니다
우타노 쇼고 지음, 이연승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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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였는지 소설이었는지.... 인터넷과 연결하여 조회수가 많아지면 사람이 죽어가도록 만든 살인범의 이야기를 본 기억이 있다. 조회를 하면 할수록 피해자가 죽어가는대도 사람들은 궁금증을 이기지 못해 조회를 하고... 그런 상황이라면 살인자는 과연 누구일까? 그런 장치를 만들어놓은 사람이 살인자일까? 조회하면 죽는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조회수를 늘려가는 사람이 살인자일까?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모순의 쳇바퀴일지도 모르겠다. 인터넷의 익명성에 대한 말이 종종 이슈가 되기도 한다. 실명제를 해야 한다느니, 그러면 안된다느니...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실명제를 했으면 좋겠지만 어차피 가상의 세계라는 점을 보면 익명성도 어느 정도는 보장이 되어야 옳은 것도 같다. 우리 사회의 딜레마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러나 익명성 뒤에 숨어 옳치않은 일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엄중한 처벌이 따라야 한다고 본다.

 

이 소설은 바로 그 인터넷과 방송의 의미, 혹은 역할에 대해 깊이있는 물음을 던지고 있다. 갈 길을 잃고 헤매는 방송이 가야할 길과 제대로 된 인터넷의 용도는 과연 무엇일까? 또한 무의미한 가상세계안에서 허우적거리는 현대인을 꼬집고 있다.  이 세상에 진짜가 있기는 한거야? 책을 덮으면서 제일 먼저 떠올랐던 생각이다. 그리고 짜증이 났다. 기분도 나빴다. 도대체 이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이 모양이냐 싶었다. 단지 소설일 뿐이라고? 그렇게 말하기에는 뭔가 찜찜하다. 거짓이 난무하는 세상, 말로써 말을 이기는 세상, 진심은 없고 가식만 떠다니는 세상. 모두가 그런 세상이 싫다고 말하면서도 그런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나도 그렇게 살고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세상이 나를 그렇게 만들고 있다고.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런 세상으로 우리가 만들어가고 있다는 거다.

 

소설책을 읽고 이렇게 흥분하다니! 그런데 픽션이라기보다 팩트에 가깝다는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나만 그런걸까? 가상의 세계를 이용하여 연쇄 살인을 저지르고 있는 살인범은 멀리 있지 않았다. 좀 더 자극적인 방송소재를 찾기 위해 사람을 동원하여 억지로 상황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그들이 어떤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지 인지하기는 할까? 실제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그 '악마의 편집'이 소설속에서 시커먼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 혹은 유튜브와 같은 SNS매체를 통해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실시간으로 타인에게 전송되어지는 우리의 일상처럼 가상세계를 통해 전해지고 있는 살인의 과정들... 도대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그저 펜이 굴러가는대로 글을 썼다는 저자의 말처럼 이야기의 숨고르기는 약간 거친 듯 하다. 다듬어지지 않아서일까? 픽션인지 팩트인지... 무슨 까닭인지 변별력을 상실해버리고 말았다.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고, 어떤 사건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되어진다는 말이 무섭다. 반전에 반전을 넘어서며 누가 살인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 다시한번 묻는 저자의 치밀함이 한편으로는 두렵다. 살인을 당할 뻔 했다는 사람이 살인자가 된다는 설정이 왠지 억지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건 또 왜일까?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라는 책으로 저자를 기억하고 있었다. 반전의 묘미를 잘 살리는 작가라는 말도 기억한다. 현대인들이 죽고 못사는 SNS라는 공간과 아무 생각없이  SNS의 뒷꽁무니만 좇아가는 방송 세계의 뒷이야기는 엄청나게 씁쓸하다. 이미 오래전부터 제 갈길을 잃어버린 방송매체의 민낯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아울러 점점 늘어만가는 소시오패스에 대한 두려움이 밀려오기도 한다. 우리가 지금 만들어가고 있는 세상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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