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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키 원
니콜라스 스파크스 지음, 김진주 옮김 / 퍼플레인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낡은 공책 혹은 일기장을 뜻한다는 <노트북>.. 그 영화를 보면 참 느리다. 너무나 일상적일수도 있겠고 그다지 이렇다하게 다가오는 느낌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게는 너무나도 특별하게 그리고 커다란 느낌을 전해주었던 영화였었다. 노년의 신사가 같은 양로원에 있는 한 여인(할머니)에게 낡은 공책속에 담겨진 오래된 사랑이야기를 정기적으로 읽어주지만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잠시 뿐.. 그들이 서로 사랑했던 사이였다는 것을 그 여인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그녀의 곁을 떠나지 않았던 그 노년의 신사이야기가 실화였다는 것에 정말 놀라움을 금치 못했었다. 그렇게 소설같은 사랑이야기가 실제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도 놀라움이었다. 얼마전에 '하이디'라는 소녀가 실제적인 인물이었고 목동과의 사랑을 가슴속에 깊이 묻은 채 살았다는 기사를 읽어보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런 것이 진정한 사랑일까? 단지 <노트북>을 쓴 작가라는 말 한마디에 선택했던 작품 <럭키 원>에는 <노트북>에서 느낄 수 있었던 잔잔한 사랑에 대한 것을 되찾을 수 있어 좋았다.
부적이라는 게 있다. 사랑의 부적이라면 그 사랑에 좋은 일만 있어 달라는 마음속의 주문이 들어 있을테고 일상적인 부적이라면 내 삶속에 나쁜 일이 끼어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담고 있을 것이다. 미신이라고 해도 어딘가에 그렇게 자신의 믿음을 움직이지 않게 붙잡아놓을 수 있다면 그것 또한 행복한 일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전쟁중에 모래밭속에서 주웠던 사진 한장이 그에게는 그렇게 다가왔다. 아니 그에게가 아니라 그의 주변이 그것을 그의 부적처럼 여기며 전쟁중의 힘겨움을 버텨냈다. 함께 죽음의 문턱까지 넘나들었던 유일한 친구 빅터에게서 운명적인 사랑을 믿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조차도 그는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었다. 정말 우연히 찾은 한 장의 사진은 그에게 부적이었을까? 그 사진속의 한 여인은 그에게 정말 운명적인 사랑이었을까? 타고 있던 배를 보트가 달려와 두동강 내버리고 같은 배에 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만 살아남게 된 로건 타이볼트는 결국 친구 빅터의 죽음과 함께 그 운명을 찾아나서기로 한다. 머나먼 여정.. 어딘가에서 분명히 자신과 만날 수 밖에 없을거라 믿어지는 한 여인을 향해서..
모든 죽음의 상황속에서 그에게 행운처럼 삶을 선사했던 한장의 사진과 그 사진속의 여인은 과연 그와 만날 수 있을까? 책을 읽는 내내 궁금했어야 했는데 아쉽게도 작가는 처음부터 이미 다 보여주면서 시작할 낌새다. 로건 타이볼트의 과거와 현재, 그녀가 찾아가고 있는 여인 엘리자베스의 현재와 과거를 겹치기로 보여주면서 느낌은 당신의 몫이라고 떠넘기고 있다. 읽다보면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그건 정말이지 당연하다. 너무나 일상적인 모습들만이 책속에서 그려지고 있는 까닭에.. 하지만 이 책의 부제에서처럼 '찾아가는 운명' 로건 타이볼트와 '다가오는 사랑' 엘리자베스의 사랑은 은근한 속살거림으로 나에게 찾아온다. 아무것도 정말이지 아무것도 특별할 것 없이 찾아오는 그들의 사랑이 정말 운명적인 사랑이었을까?
사랑에는 참 많은 길과 종류와 방법이 있는 것 같다. 빠른 사랑도 있고 지독한 사랑도 있고 집착하는 사랑도 있고 오래도록 기억되어지는 사랑도 있고.. 그중에서도 처음 사랑, 첫사랑에 대한 것만큼은 우리에게 정말 관대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아련한 감성을 자극하면서.. 친구와 연인의 차이는 무엇일까? 좋아한다는 것과 사랑한다는 것에 대한 차이점은 얼만큼이나 되는 것인지? 사람이 자기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 마음의 문을 열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는지? 같은 공간속에서 살아도, 서로가 좋은 감정을 갖고 있다고해도 마음의 문이 열리지 않는 상태는 존재한다. 그러니 사랑이라는 게 참 묘한 감정이 아닐 수가 없다. 그러나 너무 쉽게, 너무 빨리, 너무 크게 다가오는 사랑앞에서는 나 역시도 왠지 주춤거릴 것만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로건 타이볼트와 엘리자베스가 서로의 사랑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부터였을 것이다. 이런 느낌, 어디선가 강하게 내게 다가왔던 것만 같다는.. 아주 잔잔하게 그러나 지독하게 찾아왔던 짧은 사랑이 있었는데, 짧았다고 생각했던 사랑이 아주 오래도록 가슴속에 살아남아 가슴 벅찬 사랑의 아픔을 선사해주었던 또하나의 이야기가 있었는데.. <메디슨카운티의 다리>를 기억한다. 중년의 사내와 여인이 아주 짧은 동안 지독한 사랑을 이야기하던 그 영화였었다는 걸 이내 찾아냈다. 오랜동안 그 사랑의 여운이 머리속에서, 가슴속에서 떠나질 않았던 그 이야기의 여운을 <럭키 원>이라는 작품속에서 만난 로건 타이볼트와 엘리자베스가 전해주고 있었던 거다.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었던 그들의 사랑이 왜 그토록 크게 보였을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가 꿈꾸는 사랑의 저편에는 편안하게 쉴 수 있는 한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존재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우리는 모두가 이해받고 싶어하고 인정받고 싶어하는 속성을 갖고 살아가는 탓일런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편안함, 그 편안함속에 모든 것을 내려놓아도 불평없이 안아줄거라는 믿음, 바로 그런 것들이 사랑의 속성은 아닐까?
운명적인 사랑이 아니어도 좋았다. 그것이 첫사랑이 아니어도 좋았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해주고 받아들이며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편안함과 믿음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좋았다. 첫눈에 불꽃튀는 사랑이 아니었다해도 말이다. 결국 그들의 사랑은 좋게 결실이 맺어졌지만 그렇게 되기까지는 희생되어야 할 그 무엇도 있었을게다. 어찌보면 진부하고도 지루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괜히 봤다고 후회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 읽고 난 후 잔잔하게 남는 그 느낌이 좋았다. 화려하지 않아도, 포장되어지지 않아도 서로에게 아름답게 보여질 수 있는 그런 사랑이면 나는 괜찮을 것 같다.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