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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국은 왜 실패하였는가? - 태평양 전쟁에서 배우는 조직경영
노나카 이쿠지로 외 지음, 박철현 옮김, 이승빈 감수 / 주영사 / 2009년 6월
평점 :
답답하다. 지루하게 책과 싸웠던 시간이었다. 반복되어지는 말들이 너무나도 나를 힘겹게 했다. 과거의 성공에 얽매인 조직에겐 미래가 없다며 한국어판을 펴내게 된 이유를 설명하던 발행인의 말이 없었다면 용서되지 않을 책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읽으면서 나는 일본을 본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모습을 보았다. 스스로 진화하지 않으면 도태되고 과거의 진화유형에 너무 적응해 버려도 적응능력이 사라져 죽어버린다는, 새롭게 변화를 추구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상황에 맞지 않는다면 기존의 것이라 할지라도 과감하게 버릴 필요가 있다는, 일본군의 실패를 통해서 배울 수 있는 진리를 이책에서 만날 수 있는 까닭이다. 실패했던 군대조직이 기업조직으로 이름을 바꾸어 세상을 지배했다. 전후의 발전을 꾀했고 성공했지만 군사조직에서 실패했었던 이런 저런 점들이 고스란히 기업조직으로 넘어왔던 탓에 일본은 '잃어버린 십년'의 불황을 겪었다는 말이 왠지 섬뜩했다.
태평양 전쟁중에서 일어났던 여섯가지의 사례를 들어주고 있었다. 노몬한 사건, 미드웨이 작전, 과달카날 작전, 암팔 작전, 레이테 해전, 오키나와 전투.. 그 하나씩의 사건과 작전마다 어느 부분의 실패였는지를 짚어주고 있음이다. 미드웨이 작전과 과달카날 작전을 통해 해전과 지상전의 전환점이 되었으며 노몬한 사건은 실패의 서곡에 불과했다는.. 지루하게 넘어가는 책장을 붙들고 있으면서도 나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에게는 우리를 되돌아보게 할 만한 이런류의 책이 얼마나 있는가? 한사코 기존의 것을 버리지 못해 안달하며 살아야했던 우리의 선조들이 얼마나 우매했던가를! 일본과 우리의 상황이 결코 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이렇게나마 우리를 돌아보게 해 줄 수 있는 책이 없다는 건 슬픈 일이다.
처음엔 실패의 사례를 연구했고 다음으로는 왜 실패했는가 실패의 본질을 파헤쳤으며 그 다음으로는 그 실패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에 대하여 말하고 있었다. 전시였음에도 일본의 육군과 해군은 서로의 적이 달랐다. 육군은 소련이었지만 해군은 미국이었으니 서로의 의견이나 전략을 인정해주지 않았다. 소통의 부재였음이다. 지극히 '일본인다운 집단주의' 라고는 했지만 인맥편중의 조직구도가 실패였다. 일본과 미국의 시스템이 똑같이 관료적이었지만 일본은 학력주의였고 미국은 능력주의였다. 인사권마져도 미국은 능력있는 자가 행세를 했다. 그러나 일본은 어떤가? 아니 일본을 말하기전에 우리를 바라보아도 결론은 똑같다. 일본을 지적하기 이전에 상하관계만이 허락되어지던 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정보나 문제제기는 먹혀들지 않았고, 아이디어나 어떤 과정을 촉진하는 것들은 허용되지 않았다. 위로부터의 말에 거부를 할 것 같으면 바로 잘라내는 그런 식이었던 거다. 책속의 말처럼 '말을 빼앗긴 것이다'.. 말이 말을 억누르고 오직 말만이 살아 날뛰는 그런 상황을 우리는 우리의 역사속에서도 지겹게 봐오지 않았던가!
일본이 과정이나 동기를 중시한 평가를 했던 반면 미군은 결과를 중시했다. 결과를 중시했다는 말에는 책임을 진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미군이 사실을 직시하고 정보와 전략에 의해 조직을 움직였다면 일본은 사실보다는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상황을 전제로 움직였다. 정보를 가볍게 여겼고 실패를 거울삼아 더 나아지려는 자세가 없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철저하게 만들어진 패러다임에 의존했다는 말이다. 어떤 강력하고 일관된 '생각'에만 집중을 한 채 다른 것은 인정조차하지 않았으며 그 '생각'에 짜맞추기 위해서 노력했다. 이것 역시 우리의 역사속에서 많이 보아왔던 상황이다. 모든 사물이나 현상을 특정 패러다임의 틀로만 일원적으로 해석해 그 패러다임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을 모조리 묵살해 버리는(-403쪽) .. 우리에게 있어서는 유교적인 관념이 여기에 해당되는 하나의 예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더군다나 상하 관계로 움직여지던 조직이었으니 위의 말만 있고 아래의 말은 없었다는 서러운 현실이 존재한다.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라는 책을 읽었을 때 이미 실패할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족에게는 피신을 권하며 전쟁속으로 떠났던 장교의 입장이 이제사 이해가 되었다고 하면 억지일까?
실패한 사례를 보여주며 왜 실패했는가 본질을 따져묻고 거기에서 교훈을 얻어낸다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앞으로의 일본을 위해서.. 책을 읽으면서 장로체제라는 말이 내 가슴 한쪽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상하관계를 중히 여기다보니 횡적으로 인맥형성이 되지 않았다. 또 거기에 인정주의까지 겹쳐 그놈이 그놈인 꼴이 되고 말았다. 그러다보니 변화를 꽤한다거나 상황에 맞춰 진화를 해야하는 데 걸림돌이 되었다. 위의 사람이 사라져야만 그 아래사람이 위로 올라갈 수 있다는 상황은 정말 모순이 아닐수가 없다. 잘못이 있어도 추궁해봐야 허점만 드러날 뿐이니 상명하복의 형태에서는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 미국의 최고 경영진과 비교해볼 때 일본은 나이가 너무 많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왠일인지 내게는 너무나도 크게 울렸다. 그것은 단순히 나이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것이기 때문이다.
"반드시 승리할 수 있는가?"
"반드시라고는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다만 이길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 꼭 이긴다고는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281쪽)
정보도, 첩보도, 수색도, 학습도 경시하며 오로지 정신력에만 의존했다던 일본군 조직속에서 저런 말이 나왔다는 건 지금도 의문이다. '승리할 확률이 우리쪽이 많을지라도..' 같은 따위의 말이 나왔다는 건 정신력 자체도 그다지 강하지 않았다는 말은 아닐까 싶기도 하고.. 전쟁과 같은 치열한 경쟁의 시대에 우리는 미군과 같이 성공할 것인가? 일본군처럼 실패할 것인가? 라는 말을 책표지에서 볼 수가 있었다. 어떻게 하면 성공할 것인가? 일본이 되었든 다른 나라가 되었든 성공할 수 있다면 배울 건 배워야 한다. 과거에 얽매인 채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는 현실을 부정하거나 묵인할 수는 없는 일이기에..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