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강 밤배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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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모토 바나나란 작가의 책은 많이 봤지만 읽어보기는 처음이다.
작가도 그리고 책제목도 어떤 끌림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책소개글에서 문득 다가가고 싶은 글을 만났던 까닭이었다.
"그러니까,언젠가 깨어나리란 것을 믿고,지금은 푹 주무세요" -작가의 말중에서-
몽롱한 의식으로 사는 사람들의 강함과 약함을 그리고 싶었다고,
구원해주고 싶었다던 작가의 그 말한마디가 강하게 와닿았는데...
알 수 없다.
강함과 약함을 동시에 갖은 사람들의 마음.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작가는 또다른 의미로 그들에게 말을 하고 있었다.
불현듯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꿈꾸는 모습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마음이 지치고 힘겨운 사람들 곁에서 잠만 같이 자줄뿐이라던 시오리의 말처럼
그런 사람들은 잠을 자다가도 놀라 깨어날 수 있는 거니까 그런때에
옆에 내가 있으니 괜찮다고 웃어줄 수 있는 그런 일을 할 뿐이라던 시오리의 서글픔처럼
어쩌면 모든 사람들은 그런 위안과 위로를 꿈꾸면서 살아가는건지도 모를일이라고..

나는 가끔씩 영매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과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들이 정말 살아있는 우리와 이미 없어져 돌아올 길 없는 사람들의 영혼을
하나처럼 그렇게 묶어줄 수 있는것인지 한번쯤은 만나 이야기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아니 정말 그럴수만 있다면 나도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 있었던 때문이겠지.
남들에게 인정받지 못할 죽음을 택해야만 했던 오빠를 보내놓고서
나는 몇날인지 모를 많은 시간속에서 그저 멍한 눈길로 살아야 했었다.
왜 그랬는지 나는 오빠를 보낼 수가 없었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했던 내 자신이 얼마나 미웠었는지 모른다.
꿈속이었을 게다. 그렇게 넋을 놓아버린 채 지내던 날 중에서 나를 찾아왔던 오빠의 모습.
하얗게 웃고 있었던 것 같다. 그저 바라보기만 하면서.
그리고는 떠나갔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채로.
그렇게 나는 다시 나의 넋을 되돌려 받았었던, 그런 때가 내게도 있었음이다.
세편의 이야기속에서 만나지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차라리 강함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약함을 앞세운 강함으로 자신의 테두리를 지키려 애쓰던 사람들이 아니었나 싶다.
결국 죽음을 택해야 했던 그들.
그들에게는 다른 이에게 전하지 못한 그들만의 아픔이 있었으리라.
서글프게도 그들은 알지 못했다. 남아 있는 자들의 아픔을.
떠나는 자, 이미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비웠겠지만
남아야 하는 자, 그래서 그가 버렸던 모든 것들을 주워담아야만 하는...
책을 읽는 내내 너무도 아련했다.
너무 멀리 돌아와 이미 되돌아갈 길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그렇게 가슴이 시렸었다.
죽음이란 건 과연 어떤 의미일까?

바나나를 좋아해서 필명을 바나나로 지었다던 작가의 엉뚱함이 왠지 정겹게 다가왔다.
일본쪽 소설을 읽게 되면서 공통적으로 느끼게 되는것은
하나의 풍경화를 보고 있는 것처럼 이쁜 감촉들이 아닐까 싶다.
적어도 내게만큼은 그렇게 느껴진다는 말이다.
어렵지 않으나 가볍지 않게 느껴지는 손끝의 감촉이 참 좋다.
밝음보다는 맑음에 가깝다고나 할까?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생각났던 문구.
외로운 사람은 사랑을 하고 있는 까닭이라던...
사랑하기 때문에 외로운 거라던 그 말의 아이러니를 이 책에서도 만나게 된다.

그러고는 외로워서 미칠 듯한 기분이 된다.
왜, 이 사람과 있으면 이렇듯 외로운 것일까.
둘 사이에 있는 복잡한 감정 때문인지도 모르고,
내가 우리 둘의 관계에 좋아한다는 것 외에
아무런 감정도 품고 있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하고 싶다든지 하는 그런 분명한 감정을.
다만 한가지, 이 사랑이 외로움 덕분에 유지되고 있다는 것은,
내내 알고 있었다.
빛처럼 고독한 이 어둠속에서 둘이 말없이,
저릿한 마음을 떨치지 못하는 것.
그것이 밤의 끝이다. <16쪽>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사람은 누구나 외롭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라던 정호승 시인의 말처럼.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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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철학 스케치 2 - 이야기로 만나는 교양의 세계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지음 / 풀빛 / 2007년 2월
평점 :
절판


우리가 잘알고 또한 자주 쓰고 있는 스케치 Sketch가 어떤 뜻일까?
어떤 사건이나 내용의 전모를 간략하게 적는 것,
또는 문학적으로 줄거리나 내용에 작위성이 없는 단편,
미술적으로 말하면 실재하는 사물을 보고 모양을  간추려서 그린 그림이란 뜻으로 나온다.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의 제목안에 왜 스케치라는 말이 들어가게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조목조목 그림을 그려주듯하는 설명을 따라 시대를 가로질러 가는 나의 모습을 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친절한 안내인을 만난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렇다면 철학이란 건 또 무엇일까?
철학의 형식적 정의를 따져보자면 철학에는 일정한 대상도 일정한 방법도 없거니와,
철학이 무엇이라는 것을 규정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하지만 무엇을 연구해도 거기에는 철학이 담길수가 있단다.
인간이 살아감에 있어 반드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가장 근원적인 문제와
대결하려고 하는 마음가짐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처음에 한국철학하면 무엇이 떠오르냐고 묻길래 나는 유교를 떠올렸었다.
아마 나뿐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그렇지 않았을까 싶은데...

이 책의 말미쯤에 어떤 집안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집한채를 두고서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어머니의 대립적인 구도를 그리고 있다.
할아버지는 그냥 조금만 수리를 하면 될 것 같다고 말하고
아버지는 겉은 한옥으로 놔둔채 안은 양식으로 바꾸자한다.
어머니는 물론 겉과 안을 모두 양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하나의 주제를 두고 바라보는 시선과 생각이 그만큼 다르다는 것이다.
시대에 따라 밀려드는 변화의 물결에 대처하는 우리네의 모습같기도 하고.

늘상 유교적인 우리네 생활습성이 너무 완고한 건 아닌가 싶은 생각에
나는 그런 삶의 모습이 너무도 싫었었다.
변화가 오고 그 변화를 따라야 한다면 굳이 옛것만을 고집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적어도 변화의 물결을 받아들이면서 나의 것을 지켜나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아집아닌 아집속에 묻혀살았다고 말해도 틀린 말은 아닌 까닭이다.
책속에서 만나지는 우리의 의식과 관념조차도 시대에 따라 변하고 있었다.
그 변화의 중심점에는 현실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
늘 현실과 함께 하고 모두의 문제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것.
그런 것들이 녹아져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현실성을 앞세운 생명력있는 철학 혹은 생각들은
내면보다는 형식과 허식에 치우친 유교적인 철학에 밀리고 만다.
왜 그랬을까? 왜 그래야만 했을까?

우리나라의 역사속을 되짚어 올라가게 되면 유교, 불교, 도교를 만나게 된다.
유교는 사회여러계층의 생활에 영향을 미쳤고, 불교는 종교과 예술 방면에,
그리고 도교는 천문학등 과학적인 쪽으로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불교와 도교가 유교의 힘에 눌려야 했을까?
내가 가장 궁금하게 생각했었던 문제가 아닐까 싶어 긴장감을 느끼며 글자를 따라갔다.
백성이 주된 나라가 아니었기에, 깨어있는 백성이 아니었기에 그랬던 것은 아니었을까?
나중에 조금씩이나마 백성들이 깨어나기 시작하니 과연 민중봉기도 일어나고
민중속에서 생겨나는 종교나 학문도 생겨난다.
어느책에선가 고집스런 양반님께서 독백으로 뱉어내던 문구가 생각이 났다.
백성이 글을 깨우치게 되면 말이 많아지고 세상이 시끄러우니 백성은 그저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를 위해 더 좋은 일이라던 말이..

철학이나 사상이라는 것이 그때 그때의 사회상에 따라 변하는 것 같다.
특별히 이것이다,라고 내세운 주제가 아닌 다음에는 변하는 것이 어쩌면 옳은일인지도
모르겠지만 어찌되었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와 동떨어진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배부른 자들의 말놀이쯤이라고나 해두고 싶은 생각이 앞선다.
이언적과 조한보의 논쟁이나 이황과 기대승의 논쟁 장면은 차라리 아름다웠다.
종교든 철학이든  제것만이 옳다고 우겨대며 한치의 양보조차 없는  세상속에서조차
나이를 초월한 그들의 논쟁모습은 진정 아름답게 보였다.

역사책에서 그저 피상적인 낱말로만 다가왔던 말들이 아하! 이런 뜻도 숨어있었던거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책이 아니었나 싶다.
오래된 옛날부터 시작하여 근대적인 시기까지 우리곁을 맴돌며 우리의 생각속에 머물렀던
수많은 것들의 진정한 존재의미를 다시한번 되새겨볼 수 있어서 좋았던 시간이었다.
사실 우리가 살아왔던 혹은 살아가는 삶속에서 속속들이 알 수 있는 것들은 많지가 않다.
껍질을 까보지 않았는데 그 속을 어찌 알까?
살아가면서 모든 것들의 껍질을 까볼 수 있는 기회가 그리 많지는 않은 듯 하다.
또 그럴만한 마음의 여유조차도 갖고 있지 않음을 부정할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도 이 책은 나에게 아주 좋은 길라잡이 역할을 해 주었다.
약간은 늘어지는 대목도 있었다는 걸 인정한다해도 말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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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위한 마시멜로 이야기
호아킴 데 포사다 지음, 임정진 글, 원유미 외 그림 / 깊은책속옹달샘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어른을 위한 마시멜로 이야기를 미처 읽지 못했다.
마시멜로 실험에 관한 이야기는 떠도는 풍문으로 익히 알고 있었던 탓에
그저 계발서이거나 혹은 뻔한 이야기일거라고만 추측하기를 몇번.
어린이를 위한 마시멜로 이야기...
제목은 이렇다. 그래서 아들녀석을 위한거라고 핑게를 댔다.
하지만 이 책은 아들녀석이 아니라 엄마인 나를 위해서 필요한 책이었다는 거다.
마시멜로를 먹어본 적은 없다.
그래서 그것이 얼마나 달콤하고 맛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일곱가지 색깔에 비유해가며 하나씩 열려지던 문들.
그 문안으로 들어설 때마다 내 가슴은 쿵쿵거렸다.
놓치고 있었던 것들, 놓치고 후회했던 것들이 거기에 있었다.
맞벌이를 한다는 이유만으로 아이에게 소홀했던 점들.
피곤하고 힘겹다는 이유로 아이를 챙겨야하는 일들이 귀찮고 짜증났었던 날들.
결국 게임광이 되어버린 지금의 아들녀석을 보면서 얼마나 많은 후회를 했었는지..
이 책을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하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오래전에 알았다해도 나에겐 아무런 변화가 없었을테니까.
문제가 이미 닥쳐와 현재상황으로 보여지고 있는 지금에야 알게되는 아픔.
그랬구나.. 그래서 그랬던거구나.. 그렇게 해야만 했었던 것을...
책을 덮고도 나는 한동안 그렇게 멍하니 앉아 있어야 했다.
이 책이 배달되던 날의 아들녀석 표정이 생각났다.
우와~ 엄마 이 책은 뭐가 이렇게 멋지게 포장되었어요? 어린이책이잖아요.
어 그래, 이 책은 엄마랑 너랑 같이 볼거야.
우와~ 엄마 여기에 이건 또 뭐죠? 작은 수첩을 보며 아들녀석이 물었다.
어 그거, 선물이야. 우리 아들한테 이 책이 주는 선물.

나는 정말로 이 책을 아들녀석에게 선물하고 싶다.
내일부터는 시간나는대로 아들녀석에게 한단원씩 읽어주려 한다.
물론 혼자서도 충분히 읽을 수 있겠지만
그때 그때 아들녀석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까닭이다.
책 읽어주던 엄마의 목소리를 되찾게 될 아들녀석에게 주는
엄마의 작은 선물이 되지 않을까 싶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몇번을 읽어도 손해보지 않을 책인것만은 확실하다. /아이비생각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가장 중요한 순간에 실수를 많이 한단다.
  침착한 사람들도 중요한 순간이 오면 덤벙대지.
  판단하고 결정하고 실천하는 일들도 늘 연습이 필요한 모양이야.
  생각만으로 갑자기 잘하게 되는 건 아니더구나." <-165쪽>

"아빠, 좋은 것은 왜 이렇게 하기 힘들고 나쁜 일은 하기가 쉬운거죠?"<-1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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푼돈의 경제학 - 삶을 바꾸는 작은돈의 기적
장순욱 지음 / 살림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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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경우 하나.
지갑에 남아있는 잔돈과 가계부의 잔액이 딱 맞아떨어져야 하는 후배가 있었다.
십원하나라도 틀리면 왜 틀렸는지, 무엇에 썼는지를 골똘하게 생각하고
끝내는 그 십원의 출처를 밝혀내야만 했던 ...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모두 입을 모아 이렇게 말했었다.
"너 왜 그렇게 살아? 정말 대단하다!"

경우 둘.
단 한번도 어긴적이 없었다. 단 한번도 빼먹은 적이 없었다.
그 사람은 매주 복권 사는 것을 대단한 일처럼 챙기고 있었던 거다.
그래서 복권이 한번이라도 맞았느냐구?
맞긴 맞았다. 오백원짜리, 그리고 오천원짜리 두어번..
우리는 또 입을 모아 말했다.
"너 왜 그렇게 살아? 정말 대단하다!"

경우 하나는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마주칠 수 있는 모습은 아니다.
그러나 경우 둘만큼은 우리 주변에서 항상 마주칠 수 있는 모습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나는 어느쪽일까? 사실 이쪽도 저쪽도 아니다.
나는 저렇게 십원짜리 하나를 맞춰가며 살만큼 알뜰(?)하지도 않고
또한 매주 복권을 사야할만큼 마음속에 일확천금을 꿈꾸며 살지도 않는다.
그저 내가 노력한만큼의 댓가가 주어지려니 하면서 사는쪽이다.
<푼돈의 경제학>을 택하게 된 이유는
푼돈을 어떻게 모으면 부자가 되나가 궁금했던게 아니라
나는 어느정도의 경제관념을 가지고 있는가를 알고 싶었던 까닭이었다.
나의 경제에 관한 관심도가 몇퍼센트나 될까?
부분 부분을 체크해가며 책을 읽고나니 참 놀라웠다.
경제관심도는 꽤 높았다.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 물론 계발서의 모든 책들이 말하는 그것이
역시 내게도 부족했음이었다.
모든 것은 <알고 있다>는 것보다 그것을 <실천하느냐,안하느냐>가 문제인거였다.
그렇다고 지금의 생활패턴을 바꿔가면서까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건 아이러니일까?

살림을 하는 주부로써 나는 사실 푼돈에 관한 집념이 엄청 강하다.
항상 계획을 세워서 움직이는 까닭에 충동구매라는 것도 나와는 거리가 좀 멀다.
하지만 아주 가끔씩은 그 푼돈이 나를 서글프게도 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어떤때는 슬며시 치밀어오르는 화를 삭이지 못하고 확 내질러버리고 마는 경우도 있다.
그야말로 요즘 청소년들의 말마따나 느닷없이 '지름신'이 강림하실때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거둠신'보다는 '지름신'을 맞이하는 게 훨씬 기분 좋다.
하지만 살면서 어찌 우리가 늘 기분좋은 일만 만나면서 살 수 있으랴!
그렇게만 된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은 일이겠지만
산다는 건 어떤 요행에 의해 만들어지는 게 아니니 좀 더 다독이며 살수밖에....

푼돈을 아끼는 습관을 갖는다는 건 중요하다.
그러나 그 푼돈을 어떻게 아끼느냐가 더 중요한 듯 하다.
모든 것들은 참고 기다릴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한 듯 하다.
인간관계가 그렇고, 경제적인 면들이 그렇고....
생활속에 모든 진리가 들어있다는 말을 새삼스럽게 되돌아보게 해 준 책이었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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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이치는 강가에서
온다 리쿠 지음, 오근영 옮김 / 노블마인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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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처음 대했을 때 제목과 그 밑의 그림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왠지 모르지만 그 소녀들의 이미지가 눈길을 끌었던 까닭이다.
책장을 처음 열면 한장의 그림이 나온다.
앞면에는 연두색바탕에 엉겅퀴꽃, 그리고 나비 두마리(노랑나비와 흰나비이다)
뒷면에는 진초록색위에서 얼굴이 보이지 않는 회색톤의 소녀 네명이 손을 잡고
빙빙 돌고 있다. 그리고 주위를 흐르는 검은 강물.
나는 그 그림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끝까지 읽지 않고는 책의 흐름을 짐작하지 못하게 한다.
치밀한 스토리구성이 참 맛깔스러웠고
이런 장르였다고 딱히 한마디로는 정의를 내릴 수 없을 것 같다.
모든 상황에 대한 묘사가 사실처럼 느껴져
내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같은 환각이 생겨나기도 했고
작자의 주도면밀한 심리묘사에서는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이제까지 만난 일본소설중에서 마력같은 끌림을 주는 책이 아니었나 싶다.

어린 날의 기억을 위해 모인 네명의 소녀와 두명의 소년이야기.
그러나 그들은 사실 소년,소녀가 아니다.
어른이 되기 위해 탈피를 시도하는 나비와도 같은 모습이다.
나비는 고치를 뚫고 나오는 역경을 이겨내야만 진정한 나비로서의 삶을 살 수 있다고 한다.
하물며 우리 인간이야 말해 무엇할까?
연륜과 경륜을 무시하지 못하는 까닭도 거기에 있을것이다.
후반부로 갈수록 빠져드는 힘이 상당히 강함을 느끼며
그 아이들의 행동 하나 하나가 나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과거에 있었던 기억의 실타래는 엉켜있는 듯 보여지지만
사실은 이미 한쪽끝을 잡고 잡아당기기만 하면 되는 상황.
그러나 그들은 방황한다. 그들은 진정으로 생각속에 빠진다.
고치를 뚫고 나오는 역경을 이겨내는 나비처럼 그들은 아파한다.
네개의 커다란 단락으로 나누어져 회상신으로 이끌어가고 있었지만
이미 그들에게는 과거가 아닌 현재로 느껴질 수 밖에 없는 지난날의 아픔이 아니었나 싶다.
지나간 일들은 많은 시간이 흘러 돌아보았을 때
아름다웠거나 혹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둘 중 하나이다.
그들에게는 유년의 기억이 아름다움이었을까?

옮긴이의 소감을 읽고난 후 나는 다시 처음의 그림앞으로 되돌아왔다.
무엇일까?
이 그림으로 작자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나는 이렇게 결론을 내려버리고 말았다.
지나간 시절은 아름다워야 한다고,
유년의 기억은 생각할때마다 미소를 띄울 수 있어야 한다고.
연두색 잔디위를 날아다니던 두마리의 나비처럼 그렇게...
그러나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들이 어디 그렇게 아름답기만 할까?
때로는 가슴속에서 지워지지 않을 아픔으로
차마 서로의 얼굴을 마음으로 바라보지 못할 그런 기억도 있는거라고.
책속의 아이들은 어른이 되기 위해 혹독한 시련을 견뎌냈던 거라고
나는 감히 생각한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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