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사 - 작가와 함께 대화로 읽는 소설
오정희.이태동 지음 / 지식더미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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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희의 별사 - 홀린 글 읽기를 정리하며



 알람이 채 울리기도 전 오전 6시 30분쯤 눈이 번뜩 뜨였다. 무언가 꿈속에서 예지와 전조로 가득찬 어떤 계시라도 받은 듯 아련한 떨림이 온몸을 감싸 돌고 있었다. 그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 지난밤의 아련한 기억을 더듬어 올라가보기도 전에 책상 위 모니터 앞 책 한권이 눈에 들어왔다. ‘무정’, 춘원 이광수가 썼다는 우리나라 최초의 장편소설, 파란 커버의 두꺼운 책 한 권이 놓여있었다. 내 기억에는 이 소설을 산 적도, 읽은 적도 결코 없었다. 그렇다면 아직도 꿈일까, 잠시 몽롱한 정신을 가다듬으려 할 때, 어머니가 불현듯 들어왔다. ‘벌써 일어났니? 밖에 누가 책을 많이 버려놨더라.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네가 책을 좋아하니까, 깨끗한 걸로 하나 주워왔다.’ 평소 어머니는 내가 책을 사 모으는 것을 마뜩치 않게 여기셨다. 방 두 면이 책장으로 가득차 있는 것도 모자라, 내 방 발코니에 또 책장이 두 개나 더 비치되어 있으니, 어머니로선 책 좀 그만 사라고 성화를 부리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게다. 그런 어머니께서 갑자기 책을 구해오시다니, 그것도 우리나라 최초의 장편소설인 ‘무정’을. 깰 때부터 무언가 전기에 지린듯한 전율로 가뜩이나 몸서리치며 일어났기 때문이었을까? 그 책이 마치 기억할 수 없는 지난밤의 계시를 증명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천천히 책의 커버를 살펴보았다. 고교생이 읽어야할 논술필독서, 평소 같으면 그냥 넘어갔을 책 커버 귀퉁이의 광고멘트 같은 조그만 그 글귀에 눈이 멎었다. 그리고 갑자기 5년 후에 논술카페를 운영하면서, 고교생을 가르치고, 글을 쓰고 있는 내 모습이 선연히 눈에 그려졌다. 5년, 내가 이제껏 내 마음대로 산 대가로 진 빚들을 갚아야할 5년이라는 시기, 그렇지만 사실 그 5년이란 기간은 빚을 갚기에도 빠듯한 시간이다. 그런데 5년 후 내가 어떤 돈으로 카페를 운영하면서 고교생들에게 논술수업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예감이며, 환시였다. 그 때문이었을까? 그때 머릿속에서 떠오른 생각은 5년 후 결혼을 했을 때라는 가정이 따라붙었다. 사실 그 가정 속엔 어머니가 평소 늘 하시던 말씀이 포함되어져 있었다. ‘네가 결혼만 하면, 집이든 뭐든 다 해주겠다.’라는 어머니의 입버릇 같은 말씀들, 평소 그 이야기들을 나는 늘 흘려들었다. 왜냐하면 애당초 결혼할 마음이 티끌만큼도 없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제까지도 온갖 방황과 낭만이라는 미명 하에 얼마나 나는 어머니의 속을 끓이고, 또 얼마나 금전적으로 손을 벌려왔단 말인가? 그런데 왜 그때 그 순간 나는 아주 당연하게 결혼과 어머니로부터의 도움을 떠올리고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5년이라니? 내 삶 가운데 단 한 순간이라도 이제껏 내가 그러한 기간을 두고 무언가를 계획했던 적이 있단 말인가? 물론, 내 앞에 그 어떤 다른 명제보다 가혹한 현실이란 벽이, 대출과 빚이란 생생한 이름의 상황이 5년이란 기간 동안 놓인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껏 나는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그런 식으로 기간을 두고 계획을 하는 삶을 살아온 적이 없었다. 그것은 내게 있어서 구속이란 이름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날 나는 아주 사소한 전조만으로도 이제껏 품어온 나의 모든 가치관을 뒤집어 엎어버릴 만큼 뇌파에서부터 시작된 아드레날린이 온몸 구석구석까지 차고 넘쳐났다. 그렇게 그 상태 그대로 출근을 했다. 그리고 오전에 은행이 영업을 시작하기 전, 남는 시간에 읽고 있었던 오정희의 단편집 ‘유년의 뜰’을 펼쳤다.


 別辭, 다소 생소한 한자가 하나 눈에 들어왔다. 앞의 별자는 알겠는데, 뒤의 글자가 도통 무언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그래서 한자사전으로 찾아보니, 말씀 사자였다. 별사(別辭), 이별의 말, 벌써 제목부터 무언가 심상치가 않았다. 그리고 처음부터 글은 그러한 심상치 않은 구석을 전혀 숨길 의도를 감추지 않고서, 묘지를 향해 시나브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나아가고 있었다. 그렇지만 내가 멈춘 곳은 ‘신작로가 세 갈래로 갈라지는 지점이었다.’ 딱 그 시각이 은행영업 시작을 위해 내가 마지막 점검을 하는 시각이기도 했고, 이상하게도 그 지점이 아침부터 마법에 걸린 내게 무언가 앞으로의 새 길을 제시할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마침 그날은 구정연휴를 앞둔 날이었다. 그러하기에 어떤 의미로 새해를 앞둔 마지막 날이 되기도 할 것이라고 나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뇌까렸다. 그리고 평소처럼 후문을 연 뒤, ‘정문 오픈합니다.’란 멘트를 외치고서, 정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거의 대부분 신권을 찾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그날 우리 은행에선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만 원짜리 신권이 발행되질 않았다. 때문에 신권을 찾는 많은 사람들이 그냥 헛걸음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날은 여느 날과 다르게 오전부터 은행에 사람들이 쉬지 않고 붐볐다. 대기표는 계속 열 명을 넘어서, 스무 명 가까이 됐고, 기계들은 그날 내 기분처럼 미쳐 돌아가는지, 번호표 모니터가 고장 나고, 세금공과기마저 전혀 돌아가질 않았다. 아마 평소라면 이 대란에 여기저기서 불평불만을 토하는 고객들로 넘쳐나고, 나도 쉴 새 없는 고객들의 요청에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날은 정말로 내가 그 모든 상황을 조정할 수 있을 것처럼 여겨졌고, 아니 나를 위해서 마치 그 상황이 조성된 것처럼 여겨졌고, 실제로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그 어떤 고객도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고, 오히려 고장 난 기계 덕에 내 할 일이 줄어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실제로 그랬을 거라 여겨지진 않는다. 하지만 사람은 한 번 어떤 믿음에 불타오르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그 자신의 힘을 뛰어넘는 힘과 열정을 발휘하기 마련이다. 사실, 나는 이 말을 쭉 불신해왔지만, 그리고 여전히 의구심을 갖고 있지만, 그날의 일들은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 바쁜 와중에도 나는 고객들에게 커피를 타주거나 차 한 잔을 대접할 여유까지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날따라 몸이 불편한 손님들이 많이 왔는데, 그때마다 창구의 한 여직원과 눈이 마주쳤다. 평소 같으면 다소 차가운 느낌의 그 아가씨와 그런 눈맞춤에도 나는 별 느낌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은 이상하게 그때마다 그녀가 나의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해결사처럼, 몸이 불편한 손님들을 자신의 창구로 모셨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면서 문득 나는 내 논술카페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그녀의 모습을 상상하게 되었다. 근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감정이 생기게 된 것이다. 그것도 갑작스럽게 뜨거운 마음으로.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녀에 대한 그 불현듯한 감정으로 아침부터 시작된 내 막연한 예감에 대한 궤짝이 맞아 들어갔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그날 모든 상황은 내가 마음먹은 대로, 나를 위해서 운명처럼 예비된 기분이었다. 그 때문에 하나도 힘들지 않았고, 힘든 기분조차 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날은 시간마저 내가 조정하고 있는 기분마저 들었다. 누군가가 말한 시간의 상대성 이론처럼 시간은 내가 마음먹는 순간 천천히 가기도 하고, 눈 깜짝할 새 흐르기도 하는 느낌이었다. 한 마디로, 전혀 현실적일 수 없는 하루였다. 그렇게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르게 점심시간인 12시가 되었다. 평소대로라면 나는 중국집에서 간짜장을 먹은 뒤, 커피 한 잔에 담배를 태우면서 시간을 때우다, 1시 정각에 은행에 들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그날은 오전부터 내내 오정희의 별사의 ‘신작로가 세 갈래로 갈라지는 지점이었다.’는 글귀가 목구멍에 걸려, 책을 들고서 전에 딱 한 번 가본 적이 있던 멸치국수 집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점심을 먹으며, 나는 다시 책을 펼쳤다. 그런데 그 안엔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이야기가 전개되어져 나갔다. 낚시를 하러가서 사라진 한 남자와 낚시를 하러가서 돌아오지 않는 남편의 무덤을 방문한 여자의 이야기, 그런데 이야기는 교묘하게도 두 남녀의 이야기가 한 날 벌어지는 것처럼 써서 두 남녀가 전혀 관계가 없는 듯 표현하면서도, 두 남녀의 이야기의 교합지점을 만들어놓음으로써 두 남녀의 이야기가 하나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그리고 종국엔 그날의 이야기가 백중에 벌어진 일이라 하면서, 우란분재, 망자의 날, 달은 밝아 만월이라 정리하고 있다. 마치 두 남녀 모두 망자이었어도 전혀 상관없었을 것처럼, 덩달아 나도 망자인 것처럼, 그날 숱하게 은행을 혼령처럼 떠돌던 손님들이 내게 있어 망자였듯이.


 그날 나는 점심시간에 마저 내친 김에 ‘어둠의 집’까지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어떤 까닭모를 공포와 대면했다. 그렇지만 동시에 그 근원을 알 수 없는 공포가 내게 어떤 전율을 가져다주리라는 사실을 넌지시 예감하며, 혼자서 환희에 떨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한 이삼 년 전 함께 모임을 하던 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평소에 무척이나 오정희를 좋아하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분명 생각이 났을 거다. 그렇지 않고선 일반적인 상태에서 나는 연이 끊긴 사람에게 먼저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보통 친구들에게도 특별한 용건이 있지 않는 한 전화를 걸지 않는다. 그런데 생뚱맞게 그날 오정희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그에게 전화를 걸어서 바로 저녁 약속을 잡았다. 그리고 몇 년 만에 소주 두 병을 혼자서 마시며, 그에게 주저리주저리 그날의 무섭고 생경한 그렇지만 희망으로 가득한 예감과 예지에 대해 떠들어댔다. 아침 일어나면서부터의 예감부터, 갑자기 생긴 결혼할 마음과 동시에 그날 전혀 생각지도 않게 눈에 들어온 한 여자에 대해, 그리고 도저히 예상할 수도 없는 5년 후의 이야기들에 대해, 혼령이 된 기분으로 주저리주저리 떠들어댔다. 그는 놀란 기색이 완연했다. 어쩌면 내가 술에 취해서 그런 것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날 나는 1시간 동안 소주 두 병을 들이켰지만 전혀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더 생생해지고 명료해지는 내 정신과 마주해야했다. 때문에 그날 내가 그에게 한 말은 그 어떤 거짓도 없다. 하지만 언제까지 반쯤 미친듯한 이야기를 혼자서 떠들 순 없는 법이었다. 그래서 그와는 6시쯤 만나서 10시쯤 헤어졌다. 그리고서 앞으로 새로운 길을 마주하게 될 5년이란 시간이 되기 전, 마지막 나락을 위해 나는 윤락업소로 발걸음을 향했다. 이것도 그날 오전부터 예견하고 있던 일이었다. 하지만 밤 11시부터 새벽 6시까지 나는 내 마지막 나락을 향해 있는 힘껏 몸부림쳤지만, 몸부림치면 칠수록 그날 불현듯 눈에 들어온 한 여자가 떠올랐다. 꼿꼿한 자세로 앉아서 카페를 지키고 있을 그녀의 모습, 그리고 오전엔 글을 쓰며, 오후엔 카페에 흡연실 대신 따로 마련한 조그만 칸막이 유리방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을 나의 모습을, 끊임없이 떠올렸다. 그 때문인지 새벽 6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역시나 쓸쓸하고 허무하기 짝이 없었다. 아니, 그 어떤 마지막 나락도 내게 주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예감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혹은 전날의 모든 예감들이 한낱 개꿈 같은 거짓된 예지와 예감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렸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다소 비참한 기분으로 집에 들어가, 죽음 같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 잠은 구정연휴 5일 동안 내내 계속되었다. 그리고서 다시 출근한 날 아침 나는 운명 같은 예감으로 좋아하게 된 여자가 이제 곧 결혼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듣게 되었다. 결국, 모든 것은 그날 아침부터 스스로 혼령이 된 내 자의식이 만들어낸 환몽이었을 뿐, 현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환기해야만 했다. 그렇지만 그 모든 예감과 전조들을 거짓으로만 치부하기엔 나는 여전히 몽환적인 인간이다. 때문에 아직도 신작로가 세 갈래로 갈라진 지점을 떠올리고 있다. 어디로 가야 그 망자의 날, 우란분재의 어원에 등장하는 목련존자처럼 아귀에 떨어진 중생(혹은 나락에 떨어진 내 자신)을 구하러 수행승에게 공양을 올릴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달은 밝아 만월이 되어 혼령이 되어버린 내 자신을 비추어 스스로 바라보고,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어쩌면 이별의 말이란 떠난 사람이 아닌 남겨진 사람의 절망을 위해 스스로를 안위한 후 떠난 사람을 침묵으로 보내주는 말이듯이, 내 자신의 새로운 날들을 위한 희망이 아닌 과거의 절망을 위해 이제 스스로에게 고해야할 침묵의 말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당분간 이별의 말로 절망하며, 다가올 희망에 대해 말없이 기다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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