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설턴트 - 2010년 제6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회사 3부작
임성순 지음 / 은행나무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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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설턴트 - 훌륭한 기획과 다른 마케팅으로 나온 작품에 관한 개인적 생각들

    

 

  여러 차례 이야기한 바 있지만 나는 보통 책을 읽을 때 서평과 저자 약력을 잘 보질 않는다. 물론, 처음 페이지를 넘길 때 나오는 저자 사진과 나이 정도는 봐둔다. 뭐랄까? 첫 인상에 대한 호기심과 더불어 어떤 세대인지에 대한 궁금증? 그래서 이번에 읽을 때도 역시 저자의 사진과 더불어 나이를 보았다. 1976년생, 나와 같은 나이, 그리고 다소 동안으로 보이면서, 유약해 보이는 사진. 하지만 여기서 내가 뒤에 덧붙인 유약해 보인다는 이미지는 방금 떠오른 이미지이다. 사실, 그냥 처음 보았을 때는 조금 꽁생원처럼 보였을 뿐이었다. 그런데 막상 글을 보니,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군더더기가 없는데다 대담하게 살인자에 관한 이야기를 써내려 가는데, 같은 세대이기에 공감할 수 있는 여러 소소한 이야기까지 곁다리로 펼쳐지면서, 사진으로만 판단했던 첫 인상을 완전히 뒤집었다. 하지만 글을 다 읽고서 품평을 써 내려가는 지금 나는 왜 갑자기 꽁생원과 비슷한 어감의 유약하다는 이미지를 떠올리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초반부 글을 읽었을 때 몰두했던 흥미로움은 어느새 사라지고 왜 씁쓸하고 텁텁한 느낌 비슷한 개운치 못한 뒷맛에 한참을 이 품평을 쓰는 것에 대해 주저하게 되었을까?

     

  처음 이 글을 읽으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욕망에 관해 아주 깔끔하게 다룬다는 점이었다. 특히, 이 부분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지점은 이 글의 화자가 어느 콘도에 갇혀 정체모를 회사로부터 거액의 고료를 받고서 추리소설을 쓰는 장면이었다. 화자는 여기서 세 개의 추리소설을 쓰는데, 사실 뭐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어느 정치인의 인슐린 과다복용으로 인한 쇼크사와 유명 목사의 개인적 불륜으로 인한 추락사, 그리고 무더운 날씨로 인해 발생한 메탄가스 폭파사로 죽은 어느 농부의 이야기. 하지만 화자가 이 세 가지 이야기를 만드는 그 바탕이 된 출발점이 권력욕, 명예욕 그리고 개인적 죄과였다는 사실은 자못 흥미로웠다. 물론 세 번째의 개인적 죄과는 결국엔 거짓이었고, 경제적 이익의 문제였다는 사실이 드러나지만... 여하튼 이렇게 볼 때 이 세 소설 모두 결과적으로 추리소설 공식의 출발점인 인간의 욕망으로부터 시작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리고 여기서 내가 떠올린 추리소설은 화자가 직접 글에서도 언급한 시드니 셀던의 작품들이었다. 물론, 화자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어릴 적 셜록홈즈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과 만화를 보았다. 하지만 그 이야기들은, 이제와 잘 기억도 안 나긴 하지만, 분명 인간 욕망의 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추리의 과정 그 자체에 중점을 두는 소설이거나 만화들이었다. 그런데 시드니 셀던의 작품들은 전혀 판이하다. 왜냐하면 이 소설들은 기본적으로 추리보다는 인간의 욕망에 대해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또한 빛바랜 기억임에는 틀림없다. 군대를 의가사제대 하고서 요양 삼아 시골에 내려갔을 때 삼촌들의 서재에 꽂힌 아주 누렇고 빛바랜 그 책들의 양질만큼. 하지만 내가 분명히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 화려했던 표지들이다. 부를 상징하는 사람 옆에 너무한 섹시한 여자와 혹은 겜블러들의 그림들이 가득했으니까. 그리고 내 기억들에 남아 있는 그 책의 결말들 대부분은 비극적 자살이거나 욕망이 얽힌 관계 속의 타살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어떤 추리소설이 주는 반전의 짜릿함보다는. 그런데 이 소설은 여기서 한 단계 진일보하여, 그러한 비극적 자살과 욕망들에 의한 타살의 배후에 존재하는 회사를 등장시키고 있다. 그리고 이 회사는 누구나 읽다 보면 자연히 알아차릴 수 있는 현재 우리 사회의 거대 자본주의이거나 구조주의에 관한 상징이다. 그러니 극적인 서사로 가득했던 시드니 셀던의 소설에서 분명 한 단계 진일보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현재 사회는 그러한 극적인 서사를 보여주는 사회도 아니고, 실제로 일어나는 사회도 아니니까. 만약 정말로 어떤 죽음에 궁극적인 원인을 따지고 들어가게 된다면, 분명 그것은 어떤 극적인 서사보다는 거대 자본주의라는 구조에서 기인한 문제가 대다수일 것이다. 그러니 이러한 죽음을 기획하는 컨설턴트를 설정하여, 사회의 구조에 대해 냉정한 시선으로 파헤치고 들어간 내용은 내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그런데 소설이었기 때문이었을까? 그래서 꼭 극적인 서사가 필요했던 것일까? 그것도 다소 신파적인 설정부터 너무나 착하기 그지없는 콩고라는 설정까지? 왜 그런 설정들이 필요했던 것일까?

    

  바로 위에서 나는 여러 가지 의문들을 던졌지만 사실 이 글에 관한 가장 큰 의혹은 마지막 질문에 있다. 왜 그렇게 너무나도 거대하게 착한 콩고라는 설정을 두었냐는 점이다. 사실, 소설이기에 어느 정도 서사는 기본적으로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그 설정에 다소 신파적이기는 하지만 현경과 예린의 대비되는 등장은 나쁘지 않았다. 이로써 얼마든지 회사와 개인의 얽힌 문제들을 풀어갈 수도 있었고, 또 회사의 실체에 대해 궁극적인 질문들을 던질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왜 하필 콩고로 화자는 떠나버린 것일까? 여기에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글에서는 이렇게 나온다. 고릴라를 보고 싶었다고. 이 부분은 이 글 전체를 읽다보면, 어느 정도 공감이 가는 바가 있다. 고릴라가 의미하는 바가 처음에는 매우 원초적이고 욕망으로 대변되는 모습으로 나오다가, 나중에는 순수로의 회귀를 의미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여기서 왜 생뚱맞게 콩고란 말인가? 물론, 저자가 이야기하고 싶던 바는 알고 있다. 저자는 거대 자본주의 담론에 대해 다루고 싶었고, 그래서 굳이 애초부터 고릴라라는 복선을 깔아 콩고까지 가야만 했을 것이다. 그로써 콩고가 가진 자본주의의 모순에 대해 보여주고 싶었을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누가 그걸 모른단 말인가? 왜 갑자기 그렇게 착한 척을 해야 한단 말인가? 이제까지 실컷 인간의 욕망에 대해서 떠벌려놓고, 그 실체이면서 허상인 회사에 대해 말해놓고서. 갑자기 무슨 구호단체 광고처럼 콩고의 절망과 대비되는 우리 사회의 위선에 대해서 떠벌린단 말인가? 왜 그냥 어쩔 수 없다는 말로 그렇게 쉽게 무마해버린단 말인가? 조금 더 인간의 욕망에 대해 그리고 그에 대비되는 회사의 실체와 허상에 대해 파헤쳐 들어갈 순 없었단 말인가? 글을 다 읽고 나서, 이런 상념들에 휩싸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아니, 솔직히 너무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또 한 가지 내 머릿속을 휩싸이게 한 상념은 이렇게 착한 글에 대해 그리고 착한 글을 지향하는 저자에 대해 실망하는 내 자신이었다. 왜냐하면 최근 나는 도덕적인 끈을 풀어버렸을 때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몸소 체험한 바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소한의 도덕적인 끈이라는 것이 어떤 자명한 논리가 없더라도 존재할 수 있도록 그 당위성에 대해 생각할 필요를 느꼈다. 그런데 착한 글을 보고 실망해버린 것이다. 그러니 분명히 이것은 자가당착이다. 그럼에도 개운치 못한 이 뒷맛에 지금도 실소 비슷한 허망한 마음을 지울 길이 없다. 그렇다면 만약 이 글이 콩고라는 설정이 없이, 현경과 예린으로 조금 더 회사의 실체와 인간의 욕망의 부분에 대해 파고들었다면 달랐을까? 물론, 이는 콩고라는 뜬금없는 설정보다 더 어려운 작업임에는 분명하다. 더 치밀해야 하고, 더 밀도 있는 서사가 필요할 테니까. 하지만 그랬다면 지금 느끼는 이 씁쓸한 뒷맛과는 조금은 달랐으리라 예상해본다. 물론, 그렇다하여 화자 말대로 거대 자본주의에 대해, 이 거대한 구조주의 사회에 대해 어떤 경종을 울릴 수 있는 것도, 서사가 주는 짜릿한 쾌감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오히려 이도저도 아니게 되어 결론이 흐지부지한 글이 될 공산이 클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어떤 글이 하나의 지향성을 갖고 그 방향으로 치달을 때 갑작스러운 반전으로 도피하여 독자를 허망하게 만드는 글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소설이기에 오히려 서사로써 조금 더 회사의 실체와 허상에 대해 접근했다면, 생각해볼 거리를 더 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제 대충 글을 마무리해야할 것 같다. 분명 재미있고 흥미 있는 글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너무나 착한 반전 때문에 김이 다 빠진 콜라를 마신 기분이었다. 그리고 이 때문에 역으로 개인적으로 글을 쓸 때 범하지 말아야할 반전이란 미학의 우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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