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희 : 중국인 거리 Chinatown 바이링궐 에디션 한국 대표 소설 11
오정희 지음, 브루스 풀턴.주찬 풀턴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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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거리 - 시적인 무엇과 같은 글의 파장이 주는 충격과 여운!

 

 

  이 기묘한 파장과 같은 충격과 여운을 뭐라 표현하면 좋을까? 근래 청원경찰 일을 하면서 제법 익숙해진 까닭에 나는 오전 9시 이전 그리고 오후 4시 이후 남는 시간에 하루에 단편 두 편 정도를 읽을 시간이 생겼다. 그래서 그동안 놀려두었던 바이링궐 에디션 한국 대표 소설을 한 권씩 보고 있다. 사실, 처음 이 에디션을 산 이유는 한강의 ‘회복하는 인간’을 읽고서 받은 어떤 여운 때문이었다. 게다가 말 그대로 Bilingual이라는 사실이 영어 과외를 하는 내 입장에선 매력적이게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다시 쉬 오래도록 붙잡을 수 없었던 까닭은 한국문학에 대한 내 깊은 불신과 편견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체 왜 그렇게 된 것일까? 사실 생각해보면 이유는 간단하다. 너무 재미없고, 진부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십대가 되기 전까지는 그런 생각조차 할 만한 견식이 내겐 없었다. 거의 수능 첫 세대였음에도 나는 남들처럼 한국문학 단편집을 제대로 읽은 적조차 없다. 물론, 그렇다하여 남들보다 덜 읽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은근히 내 자랑이지만 이것저것 마구잡이식으로 많이 읽다 보니, 굳이 수능을 대비해 무언가 따로 공부할 필요가 없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다보니 역으로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배운 것도 안 것도 없게 되어버렸다. 그런데 이십대 초반에 지식을 폭식하면서 접하게 된 서양문학은 내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사실 여기에 근본적인 이유는 내가 신학을 전공했고, 그 때문에 관념적인 내용이 풍부한 소설에 끌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십대 중반쯤 접하게 된 일본문학은 내게 완전히 우리나라 문학에 대한 패배감과 절망감을 가져다주었다. 쪽바리라고 무시하며 깔보았던 그네들은 벌써 20세기 초에 페티시즘에 관한 소설을 쓸 만큼 자유로웠던데 비해, 민주화를 달성한 90년대 중반을 지나서도 여전히 민주화 운동에 대한 후일담 혹은 항상 그 비슷한 패턴들의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고 있으니, 이런 내 절망감은 아주 쉽게 우리 문학에 대한 깊은 불신으로 이어질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그 이후 나는 거의 한국문학을 보지 않았다. 때문에 실제로 지금 현재 내 한국문학에 대한 수준은 교과서에 실린 소설을 조금 더 아는 수준일 뿐이다. 이로 인해 내가 참여하고 있는 문학 모임에서도 언제나 나는 우리나라 소설가들 이야기나 작품 이야기가 나올 때는 말을 아낀다. 뭐 아는 소설가가 없고, 아는 작품이 없으니 어쩌겠는가? 때문에 할 수 없이 이런 나의 콤플렉스를 극복하고자 겨우 손에 붙잡게 된 책이 이 에디션에 있는 이청준의 ‘병신과 머저리’였다. 그나마 이청준 작가에 대해서는 나도 조금이나마 접해본 경험도 있고, 나름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있었던 까닭이다. 그리고 다행히도 이청준 작가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아니, 이제까지 내가 본 그의 작품 중 ‘병신과 머저리’는 단연 손에 꼽을 만한 작품이었다. 때문에 나는 자연스럽게 청원경찰이 되면서 남는 시간에 이 에디션에 실린 작품들을 읽게 되었다. 하지만 역시나 내가 알던 한국문학 그대로의 자화상과 마주하는 기분을 지우긴 힘들었다. 만약 내가 오정희 작가의 이 ‘중국인 거리’를 읽지 못했다면, 아마도 나는 그런 기분 때문에 이 에디션을 읽는 것을 중도에 포기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오정희 작가의 ‘중국인 거리’가 준 기묘한 파장과 같은 충격과 여운을 마주하고서, 그동안 내가 편파적으로 대했던 우리 문학에 대해 반성할 시간을 갖게 되었다. 동시에 이 설명할 수 없는 여운에 대해 설명하고, 앞으로 내가 편파적이었기에 제대로 마주할 수 없었던 감정들에 대해 내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설명해야할 당위성을 느끼게 되었다. 물론, 얼마나 제대로 설명할 수 있을지, 그리고 얼마나 끈기 있게 해나갈지 자신은 없지만, 이 과정을 겪어야 내 글이 한 발자국 나갈 수 있을 거란 생각이 지금 이 순간은 가득하기에, 가능한 한 이제야 우리 문학을 공부하기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몇 개의 글들을 써내려가고 싶다. 하지만 그 첫 발, 그 첫 발이 오정희란 사실은 내 발걸음을 망설이게 한다. 왜냐하면 오래도록 무엇을 써야할지 알 수 없었던 이유로, 나는 지금 서론에서부터 무언가 빙빙 돌려가며 내 망설임을 주절거리고 있는 까닭이다. 왜 하필 오정희일까? 그리고 왜 하필 이 ‘중국인 거리’란 말인가? 또 이 설명할 수 없어 횡설수설하는 기분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오정희란 작가를 내가 처음 접한 것은 지금 속한 모임에서 ‘동경’이란 작품으로 합평을 했을 때였다. 아마 거의 5년 전쯤으로 기억한다. 사실 지금보다 그때는 더욱 한국 작가에 대해 알지를 못해서, 내 한국 문학에 대한 이해수준은 고교생 수준에 불과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오정희라고 했을 때, 당연히 누구를 말하는지도 몰랐고, 동경이라고 했을 때 먼저 떠올린 단어는 윤동주의 ‘자화상’의 구릿빛 ‘동경’이었다. 그리고 그 때문이었는지 실제로 품평을 썼을 때 나는 오정희 작가의 ‘동경’을 윤동주 시인의 ‘동경’과 빗대었다. 하지만 실제로 그 동경의 이미지는 전혀 공유되지 않는 대칭선상에 자리하고 있다. 다만, 노년의 입장에서 더 이상 무언가 반성할 것이 없어 마주할 수 없는 ‘동경’에 대해 젊은 내가 이러니저러니 쓴다는 발상 자체가 너무 어불성설이라 느껴, 젊은 윤동주의 감성으로 ‘동경’을 이해해보고자 했던 발로였다. 하지만 어찌됐던 그 과정 속에서 나는 오정희란 작가가 무언가 특별한 감성이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차후 읽어보아야겠다고 속으로 새겨두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다시 마주하기까지 5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중국인 거리’, 사실 제목 자체에서는 별 기대감이 없었다. 그리고 서두에서도 별다른 기대를 갖기엔 무언가 주목을 끌만한 인상적인 요소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가졌던 오정희 작가에 대한 기대, 그리고 무언가 한 문장 한 문장 예스럽지만 단아한 느낌이 드는 문장에 홀려 한 장 한 장 넘겨갔다. 그럼에도 사실 내용은 별다른 내용이 없었다. 그저 그 시대의 작가들이 매상 그랬던 것처럼 자기네들만의 추억담일 뿐. 게다가 여성 작가라서 그런지, 어떤 내용의 기승전결도 무언가 뚜렷이 없어서 도대체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은 것인지도 잘 파악이 되지를 않았다. 그런데 단 한 문장, 마지막 단 한 문장이 이 모든 소설에 대한 내 인상을 바꾸어 버렸다.

 

  내가 낮잠에서 깨어났을 때 어머니는 지독한 난산이었지만 여덟 번째 아이를 밀어내었다 어두운 벽장 속에서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절망감과 막막함으로 어머니를 불렀다. 그리고 옷 속에 손을 넣어 거미줄처럼 온몸을 끈끈하게 죄고 있는 후덥덥한 열기를, 그 열기의 정체를 찾아내었다.

  초조(初潮)였다.

 

  초조? 초조했다는 말을 하기 위해 이제까지 그런 이야기를 쓴 건가? 처음에 나는 한문을 잘 몰라 초조가 초조한 감정을 표현하는 초조(焦燥)라 생각했다. 하지만 무언가 그렇다하기엔 이야기 전체가 버성거리게 느껴져, 허무한 감정까지 들었다. 그래서 한문으로 초조(初潮)를 찾아보았다. 그랬더니 초경이라는 의미로 쓰이는 초조라 사전에 나와 있었다. 그리고 바로 이로 인해 무언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묘한 파장 같은 충격과 여운을 갖게 되었다. 대체 왜 초경이라는 그 사실 하나로 이 소설이 내게 그런 감정을 느끼게 한 것일까?

 

  이야기를 제대로 풀어가지 못하리라는 예감을 다시 한 번 가지며, 먼저 두 가지 내 개인적 취향을 전제해두고 싶다. 하나는 여류소설에 대한 내 지나친 환상과 호감이다. 이는 아마 내가 가지고 있지 못한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감정에 대한 내 개인적인 목마름과 그리움의 이유 때문이라 생각해본다. 다른 하나는 기승전결이 뚜렷하지 않은 소설에 대한 내 개인적 선호도이다. 이 또한 사실은 설명하기 애매모호한 점이 없지 않아 있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처음 글이라는 것을 시작했을 때 시(詩)라는 기반에서 시작했고, (비록 그것이 고교생의 일기장에 서사형식 대체형식으로 쓰인 것뿐에 불과할지라도) 그 때문에 여전히 나는 시적인 글쓰기를 갈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시적인 글쓰기라니? 대체 이것이 무슨 어불성설이란 말인가? 일찍이 이십대 초에 오에겐자부로를 통해 나는 ‘시적인 무엇과 같은 글쓰기’에 대한 열망을 접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매우 이론적인 열망이었다. 실제로 오에겐자부로 글들은 전혀 시적이다 말할 수 없다. 다만 그의 역작이라 내 개인적으로 평하는 ‘타오르는 푸른 나무’에서는 그러한 열망이 담긴 상징적 요소들이 종교적 코드와 함께 글속에 살며시 비쳐져 있을 뿐이다. 다른 글들은 전혀 아니다. 하지만 그의 그 열망만은 내게로 고스란히 전이되어 오랫동안 나는 그러한 글들을 찾아 헤매왔다. 그리고 이는 나의 어떤 개인적인 방황과 함께 궤를 같이 하여, 틀이 없고 정형화되지 않은 글에 대한 탐독으로 바뀌어갔다. 더불어 매우 관념적이고 추상화된 방향으로 흘러가버렸다. 그래서 이제까지 내가 ‘시적인 무엇과 같은 글’이라 느낀 글이나 영화는 몇 편 되지 않고, 그나마도 매우 관념적인 종교적 색채를 짙게 띠고 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우리나라 정서의 시가 아닌 이계의 말로 적혀진 시의 정서인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 흔히들 이야기하듯이 시는 번역이 불가하다. 그런데 어떻게 그 정서를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물론, 시의 정서란 언어를 초월하여 존재하는 것이고, 그러하기에 우리는 랭보니 보들레르니 하는 시인들의 시에 경탄하며, 그들의 비극적이었던 삶에 대해 깊이 연민할 수 있는 것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정말로 그들의 시대에서부터 문화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을 총체적으로 아울러 하나하나 새겨진 그들만의 언어를 우리가 이해한다고 쉽게 말할 수 있을까? 아니, 우리 문화와 시대가 아닌 그들의 시대와 문화로 빗은 시를 더욱 잘 이해한다 할 수 있을까? 아니, 더 좋아할 수 있을까? 물론, 있을 것이다. 분.명.히. 이제까지 내 경우에는 분.명.히. 바로 이 경우에 해당한다. 하지만 오정희 ‘중국인 거리’를 접한 지금 나는 처음으로 우리 문학에서의 ‘시적인 무엇과 같은 글’을 마주했노라고 말하고 싶다. 아니, 이제야 ‘시적인 무엇과 같은 글’이 이런 글의 형태가 아닐까하는 의문을 감히 던져본다.

 

  석탄을 나르는 화차가 석탄가루를 바람에 실어 온 동네를 까맣게 만들고, 겨울방학이 끝나면 여선생은 이 거리의 까맣게 화장한 아이들을 모두 불러 모아 얼굴 화장을 벗긴다. 해안촌 혹은 중국인 거리라 불리는 동네, 아이들 얼굴의 탄가루만큼 아이들 내장에 가득할 회충들을 잡아 없애기 위해 해인초를 끓이는 냄새와 석회 냄새가 뒤섞인 거리, 그 냄새는 이상하게 나도 거리도 모두 노란빛의 회오리 같은 기억 속으로 젖어 들어가게 한다. 그 때문일까? 어렵사리 피난하듯, 트럭 뒤꽁무니 이삿짐들 틈에서 줄줄이 일곱째를 밴 어머니와 나머지 육남매 사이에 끼어 온 동네임에도 낯설지가 않았다. 그리고 마치 그 몽롱한 노란빛 냄새 때문에 꿈인 뜻 마주한 젊은 남자의 창백한 얼굴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집 앞에 사는 치옥이네 이층집엔 매기 언니가 검둥이들과 함께 세 들어 살고 있다. 때문에 아침에 치옥이와 학교 가기 위해 치옥이네에 가면 은빛 가위로 콧수염을 가다듬는 거대한 검둥이를 만날 수 있다. 그리고 방과 후엔 치옥이네 이층집엔 매기 언니의 딸 제니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치옥이와 나는 매일 그곳에서 매기 언니의 신기하고 예쁜 물건들을 이것저것 만져보며, 5살이 되도록 말 못하는 인형 같은 제니를 돌본다. 그때마다 치옥이는 말한다. 나는 커서 양갈보가 될 테야, 매기 언니가 미국에 가기 전 자기 물건들을 전부 나한테 준다고 했어. 그런데 어느 날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내며 미국 지프차가 치옥이네 집으로 달려왔다. 헤드라이트의 쏟아질 듯 밝은 불빛 속에 매기 언니가 반듯이 누워있었고, 검둥이는 술에 취해 있었다. 단추를 풀어헤치고 검둥이는 낄낄거리며 지프차에 실려 떠났다. 그리고 매기 언니의 모든 물건은 매기 언니 동생이 가져가버리고, 남겨진 제니는 수녀가 죽을 때 유난히 종소리를 크게 울리는 수녀원의 고아원으로 넘겨졌다. 그 때였을까? 아니면, 아이들과 미군의 칼을 장대에 꽂아 죽은 고양이의 시체를 꽂고서 긴 행렬을 하던 그때였던가? 아니면, 할머니가 죽은 다음 할머니의 물건들을 맥아아더 장군의 동상에서부터 숲으로 할머니의 나이였던 예순 여섯 발자국 걸어서 닿은 나무 아래 묻었을 때였을까? 그것도 아니면, 그 모든 날들이었을까? 나는 이층의 덧문을 열고 슬픈 듯, 노여운 듯 어쩌면 희미하게 알 수 없는 눈길로 우리를 혹은 나를 바라보던 그를 다시 본 적이 있었다.

  해가 바뀌어 나는 육학년이 되었다. 거리는 많은 집들로 새로워졌지만 해인초 끓이는 냄새는 빠지지 않는 염색물감처럼 여전히 거리를 노랗게 착색시키고 있었다. 제분 공장에 다니던 치옥이의 아버지가 피댓줄에 감겨 다리가 끊긴 후 치옥이의 부모가 치옥이를 미장원에 맡기고 이 거리를 떠난 것은 지난겨울이었다. 나는 매일 학교를 오가는 길에 미장원 앞에서 유리문을 통해 미장원 바닥 머리카락을 쓸고 있는 치옥이를 보았다. 수천의 깃털이 날아오르듯 거리는 노란빛으로 가득차 있었다. 언제였지, 언제였지, 나는 좀체로 기억나지 않는 먼 꿈을 되살리려는 안타까움으로 고개를 흔들며 집을 향해 걸었다. 그리고 집 앞에 이르러 언덕 위의 이층집 열린 덧창을 바라보았다. 그가 창으로 상체를 내밀어 나를 손짓해 부르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코허리가 낮고 누런빛의 얼굴에 알 수 없는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는 내게 종이꾸러미를 내밀었다. 속에 든 것은 중국인들이 명절 때 먹는 세 가지 색의 물감 들인 빵과 용이 장식된 엄지손가락만 한 등이었다. 나는 그것들을 금이 가서 쓰지 않는 빈 항아리 속에 넣었다. 안방에서는 어머니가 산고의 비명을 지르고 있었지만, 나는 이 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숨바꼭질을 할 때처럼 몰래 벽장 속으로 숨어들어갔다. 한낮이어도 벽장 속은 한 점의 빛도 들지 않아 어두웠다. 나는 차라리 죽여 줘라 부르짖는 어머니의 비명과 언제부인가 울리기 시작한 종소리를 들으며 죽음과도 같은 낮잠에 빠져들어갔다.

  내가 낮잠에서 깨어났을 때 어머니는 지독한 난산이었지만 여덟 번째 아이를 밀어내었다. 어두운 벽장 속에서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절망감과 막막함으로 어머니를 불렀다. 그리고 옷 속에 손을 넣어 거미줄처럼 온몸을 끈끈하게 죄고 있는 후덥덥한 열기를, 그 열기의 정체를 찾아내었다.

  초조(初潮)였다.

 

  시적인 요소가 뛰어난 글이기에 문장이 주는 묘미가 커서, 내용을 재구성함에 있어서 될 수 있으면 작가 그대로의 문장을 가져다썼다. 특히 마지막 세 문단은 거의 원본 그대로를 베껴 썼다. 다만, 그 기승전결의 애매함 때문에 내용의 재구성은 다소간 내가 바라본 시적 재구성이 가미되었다. 주로 남자를 의식한 부분에 대한 대목과 노란빛과 냄새에 대한 문장이 나온 부분을 중심으로 재구성하였다. 사실 그 때문에 중간중간 띄어먹은 중요한 내용들도 꽤 많다. 사실, 이 글은 이야기 자체를 재구성한다는 게 힘들 만큼 어떤 면에선 다소간 산만하고, 방만한 점이 없지 않아 있다. 그렇지만 모든 문장은 한 소녀의 시선에 집결되어, 그 시선으로부터 발산되고 있다. 그리고 소녀이기에, 아직 소녀는 자신에게 집결된 시선을 이해할 길이 없으며, 동시에 자신이 바라본 풍경들을 이해할 방법을 배우질 못했다. 그 모든 것들은 때문에 매우 당연한 흐름처럼, 어쩌면 그냥 추억담처럼 막연하게 우리에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노란빛의 냄새로 가득한 거리에서 몽롱하게 마주한 낯선 남자와의 대면은 어쩐지 그냥 쉽게 넘어갈 수 없는 인상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동시에 그 거리에서 오래도록 살아서인지 누런빛으로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건네 준 선물은 왜 이 모든 결말에 대한 예감을 가져다주는 것일까? 노랗게 달떴던 유년의 빛이 붉고 끈적끈적한 풍경으로 바뀌던 날, 소녀는 벌써 예감하고 있었던 것일까? 여덟째를 밀어내는 어머니의 난산의 피비린내를. 혹은 이제 다시 돌아오지 않을 석회 냄새와 섞인 해인초 냄새의 노란빛의 회오리와 같은 향수를. 어쩐지 자꾸만 이해해보고 싶어진다. 소녀에서 여자로의 변신에 대해. 그 막연한 끈적끈적하고 후덥덥한 절망감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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