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가능성의 거리 문예중앙시선 6
박정대 지음 / 문예중앙 / 2011년 5월
평점 :
품절


 

 

 

모든 가능성의 거리 - 감정 공산주의를 중심으로 내 감정 공산주의에 대해

 

 

 

 인은 이미지 자체가 한 편의 시다. 나는 솔직히 파르동, 박정대의 (미한지만, 박정대) 시가 좋은지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의 시를 읽는 동안 내내 그가 분명한 시인이며, 집시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의 시가 마치 격렬한 쿠바 음악 같고, 때론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그의 ‘인터내셔널 포에트리 급진 오랑캐’ 밴드의 음악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니, 알고 있다. 시가 본질적으로 현재형이며, 앞으로도 내내 우리의 피에 흐르고 있는 미래지향적 음률이라는 측면에서. 그렇지만 지금 내가 그의 시를 빌어 쓸 이야기는 그의 시와는 전혀 상관없는 시에 대한 무한한 내 동경이거나, 동시에 그로부터 비롯된 깊은 좌절감일 터이다. 파르동, 여전히 시를 꿈꾸기만 시인이 되지 못한 이여.

 

 

  감정이 확장되어 감정의 무한에 당도할 때도 감정 공

산주의는 태동하지 않는다, 해상의 수평선과 지상의 지

평선에 당도했을 때 나의 생각이 그러했다

 

 

  어느 꿈결에 시가 물결처럼 내게 밀려들었을까? 고등학교 적 일기를 시의 형식으로 빌려 쓰기 시작한 그때부터? 아니면 혼자 룰루 여행을 떠나, 길에서 노래를 부르고 싶으면 부르고, 길에서 잠들고 싶으면 잠들었던 그때? 그 어느 때 나의 감정이 무한에 당도하여, 해상의 수평선과 지상의 지평선에 당도해 보았을까? 공간을 한정 없이 떠돌았을 때 나는 홍길동이 되어, 축지법을 쓰고 있다, 착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러한 공간이동 속에서 오히려 내가 느낀 것은 중력의 축복이었다. 결국 어딘가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그곳에서 감정은 무한하게 피어오른다. 무거운 중력으로 애련히 끓어오르는 감정의 확산, 세상 모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에 대한 애도의 일기, 나의 생각이 그러했다.

 

 

  나는 자생적 감정 공산주의자

 

 

  감정의 무한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려는 것은 나의 본

질적 욕망일 뿐 소립자의 세계사 그 어느 페이지에도 감

정 공산주의는 기록된 바 없다

 

 

  나는 알고 있다. 아무리 중력이 축복이라 말한들, 누군가의 표현으로 확장하여 중력이 은총이 된다고 한들, 세상 그 누구 하나 나와 공감해줄 이 없다는 그 사실을. 오래된 일기장 같은 곳에 볼펜을 휘휘 휘갈기며, 누군가를 위한 시를 쓴들, 사랑하는 이에게 바치기 위한 고결한 시를 써본다 한들, 그 누구도 나의 휘휘 휘갈겨 날려 쓴, 그래서 휘휘 날아 가버린 글씨를 알아볼 길이 없으며, 그 어느 누구의 배고픔도 결코 중력이 축복이 될 수 없으며, 중력이 내린 고통일 뿐이라는 그 사실을. 그렇게 나의 시는 의미 없이 사라져버릴 나의 욕망일 뿐이라는 그 사실을.

 

 

  담배를 피워 물고 저녁마다 감정의 확산을 꿈꾸는 나

는 자생적 감정 빨치산

 

 

  잠이 오지 않는 깊은 밤마다 온 세계를 나의 감정으로

물들이려는 나는 극렬 감정분자

 

 

  그래도 갖은 욕망으로 쉬 잠들지 못하는 밤들, 피어오르는 것이 욕망인지 감정인지 구분할 수 없는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밤들, 나는 결코 닿을 수 없는 그대라는 타자인 대상에 나의 욕망을 투사하여, 나의 생명이 되지 못한 정액들로, 때론 쓸데없이 붉게 미처 날뛰는 나의 심장의 피로 그대라는 온 세계를 물들일 수 있기를 얼마나 바랐는지. 그렇게 단 한 밤, 단 한 밤, 그대의 품속으로 뛰어들어, 모든 날들이 그대의 날이 되어, 타자인 그대에게 투사된 내 모든 욕망들이 완벽히 소멸해버릴 수 있기를, 얼마나 꿈꿨는지. 불꽃처럼 피어올라 덧없이 사라지는 담배연기처럼, 그렇게 얼마나 나와 그대의 간격의 생멸을 꿈꿨는지.

 

 

  확장된 감정이 끝내 무한의 감정에 당도했을 때에도

나의 감정 공산주의가 한 일은 별을 향해 센티멘털 로켓

을 발사한 것

 

 

  그러니 언젠가 그 로켓이 또 다른 별에서 감정의 동무

들을 데리고 지구로 귀환하리라는 것을 안다

 

 

  꿈을 꿈꾸며, 존재하지 않는 그대를, 나의 누이를, 꿈꾸던 그 밤, 그 밤 내 꿈속에 홀연히 나타난 그대는 내가 밤새 뿌리쳐 내지 못해 뿌리내린 그대라는 환영, 잔상, 사념들, 그 모든 허튼 망상에 나는 ‘몽원’이란 이름을 붙여, 꿈속에서만의 바람이거나, 꿈속에서도의 바람이라고, 혹은 꿈의 근원이라고, 여전히 꿈동산에 머물러 그대에게 무한의 텔레파시를 보낸다. 그대는 아직도 간직하고 있을까? 그때 내가 부끄럽게 건넸던 그 편지를, 수줍게 띄웠던 엷은 미소를, 도망치듯 흘렸던 말들을, 시간이 지나도, 한 세월이 지나 꿈을 깨어도, 여전히 그대는 늙지 않고 그 모습으로 그 자리에 있다는 그 사실을, 그대는 알고 있을까? 영원히 고착해버린 내 감정의 센티멘털을.

 

 

  본질적 고독이 세계를 물들이리라는 것을 나는 안다

 

 

  파르동, 먼저 이렇게 인사를 할 수밖에, 그대여! 한 낮의 꿈을 꾸고서 깨어나 보니, 한 세월이 지나고도 또 한 세월, 더 이상 그 어느 누구의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세월의 시대, 이제 그대를 향한 내 모든 시에, 나의 열정에, 그렇게 꼿꼿했던 내 고개에, 내 허리에 만성 통증이 생기고, 더 이상 잘라지지 않는 흰 수염이 자라나, 이제 그대는 나의 애도의 대상, 하지만 누군가의 말을 빌어 말할게요. <내가 뭘 잘못 했길래?> 그리고 이 말도 빌어 말할게요. <뭐 그래도 안녕> 더 이상 날 찾지 말아요. 어차피 난 혼자인 걸요. 그래도 혼자인 날 위해, 그대를 위해, 마지막으로 오랫동안 미루어두었던 시 하나는 여기에 남기고 싶어요.

 

 

  만약에 그대가 진정 시인이라면

  매일 동네 어귀에 트럭 한 대 대놓고서

  20년 동안 한결같이 회를 팔아온 아저씨의

  파닥파닥 물차 오르는 생선 대가리에

  탕탕 칼을 쏘고 쓱싹쓱싹 배 가르는 소리를

  시에 담아

  다리에 실금이 가 입원한 어느 어머님의

  못난 아들을 위해 따뜻한 밥 한 끼

  차려주고 싶은 마음으로 병원에서 몰래 나와

  둔탁둔탁 걸어오는 석고붕대의 저린 발자국 소리에

  눈물 한 방울 떨어뜨리고

  영원히 가 닿을 수 없는 타인인 그대와 나의

  엷디 엷은 층층 사이 사이에 긴 다리를 놓아

  그대와 나의 체온 사이로 영혼의 습도를 녹여서

  겨울에 성에 낀 버스 창가에 그대 입김으로

  한여름 하염없이 창밖에 뛰어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깊은 한 숨을 내쉬는 어느 아픈 소년의 숨결을 섞어

  시를 적어 놓을 수 있을 텐데

  만약에 그대가 진정 시인이라면

  그렇게 세상의 모든 고통의 멍에와 슬픔의 결들 사이에서

  한 마리 날아오르는 새가 되어 꿈이 되어

  차창 밖 갇혀버린 풍경들 속에 풍경화가 되어버린

  우리들의 잃어버린 표정들을 환하게 비추어

  되살려 놓을 수 있을 텐데

 

 

  그대가 진정 시인이라면.

 

 

 

 

 P.S.

 

 

  굵은 글씨는 시인 박정대의 시집 ‘모든 가능성의 거리’와 ‘체 게바라 만세’에서 인용한 글귀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