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살기 온우주 단편선 2
곽재식 지음 / 온우주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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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살기 - 잘된 이야기, 담화란 무엇일까?

 

 

  너무 오래간만에 읽은 또, 뜻밖에 너무 재미있던 소설이라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모르겠다. 사실, 보통의 경우, 글을 읽고 나면, 글의 전체적인 맥락과 그림이 잡히고, 그 다음 그 글에 대한 비평의 질문들을 다듬어가기 마련인데, 이번 경우와 같이 시간에 쫓겨서 읽은, 그런데 너무 재미있었던 글에 대해서 평하기란 여간 난감하기만 하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이 경우엔, 지금과 같이 글을 써가면서 이 글에 대해 비평을 해나가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는 듯하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이 글에 대해 내가 비평하기 까다로운 또 다른 이유는 이 글이 지금까지의 시적인 형상화 작업을 담아내려 했던 단편들과 달리, 하나의 이야기 그 자체로 글을 풀어내는 장편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글이 왜 내게 그토록 재미있고 잘된 글이라고 느껴졌고, 또 그 때문에 왜 비평하기가 까다로워진 것일까?

 

 

  첫째로, 서두에도 잠깐 읊었지만, 이 글이 하나의 잘 짜인 이야기라는 점이다. 그것도 어떤 시적 형상화라든가, 어떤 교훈을 억지로 담아내려고 하지 않은, 이야기 그 자체로 승부수를 건 글이라는 점에서 이 글은 여타 다른 소설보다 더욱 소설의 본질인 이야기 구조 즉 담화 자체에 충실한 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맨 처음 이 글을 읽어내려 갈 때는, 조의 우랑의 충직함과 고구려라는 사회 구조의 모순을 대비시키면서, 현재 우리 사회에 대한 풍유적인 글이라고 예상하고 읽어내려 갔다. 그런데 이야기가 중후반 부를 넘어가면서 또 하나의 의로운 대인이라 할 수 있는 “안국군”이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꼬여 들어가기 시작했다. 게다가 여기에 정당한 법제도로 대변되는 고구려라는 사회와 야만성을 대변하는 숙신족이 교묘하게 대비되면서, 이야기의 갈피를 어디로 잡아야 할지 더욱 어려워졌다. 그리고 솔직히 이 부분에는 묘한 민족적 감정도 뒤섞여, 글의 어떤 명확한 방향을 의도적으로 흩트리는 점도 있다. 어찌됐든 이런 양극의 모순 속에서, 글이 더욱 모순으로 치닫고 있는 것은 초두부터 의인으로 대두되던 “조의 우랑”과 “안국군”의 어떤 인간적인 면모의 부각에 있다. 사실, “조의 우랑”의 경우, 어떤 면에선 마지막까지 이 부분이 드러나지 않고 숨겨져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그가 믿는 고구려의 법대로 의롭게 행동했을 뿐인데, 너무나도 억울한 일들을 지속적으로 당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는 이 글의 또 다른 측면에서 의인이라 말할 수 있는 “안국군”을 계략에 빠뜨려, 억울한 죽음에 이르게 한다. 물론, 여기엔 “안국군”의 잘못이 크기는 하다. 그는 그의 형수를 너무나 연모하여, 그것이 잘못인지 알면서도, 형수의 사치와 개인적 호사로운 생활을 묵과하였다. 아울러, 고구려에 대한 지나친 충성심으로 숙신족에 대해 너무나 가혹한 처사를 행함으로써,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한 많은 원한들을 샀다. 이 때문에 그는 “조의 우랑”의 계략에 말려들을 수밖에 없었고, 또 그 때문에 그 계략에 대해 변명할 수조차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조의 우랑”의 모든 행위가 옳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것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하기엔 “안국군”의 고구려에 대한 행적과 충심은 너무나 절실한 진심인 까닭이다. 때문에 우랑은 한 여인에게 시를 통해 읊게 함으로써 안국군에게 경고하지만, 안국군은 이를 무시하고 지나친다. 왜냐하면 안국군이 비록 개인적인 모순은 있다 할지라도, 고구려에 대한 그의 충심은 진심이기에, 그는 스스로 부끄러울 까닭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그의 이런 지나친 충성심에 대한 떳떳함은 스스로의 덫이 된다. 왜냐하면 그는 그 충성심 때문에 숙신족에게 너무 가혹했고, 또 그 떳떳함으로 인해 스스로에게 너무 자만했던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한 것은 “조의 우랑”도 그러한 부류의 인간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러하기에 그는 아마도 “안국군”의 이런 성격을 더욱 잘 알아, 계략으로 이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어떠하든지 간에 “안국군”의 고구려에 대한 충심은 과거의 우랑 자신과 같이 진심이건만, 그는 그의 개인적 원한으로 인해 한 나라의 너무나 커다란 한 인물을 모함에 빠뜨려 죽음에 이르게까지 한다. 때문에 그는 스스로 벼슬길을 마다하고 숙신족과 함께 산속의 동물을 사냥하며, 생을 연명해 간다. 그리고 그 어느 해 너무 추운 겨울 날, 동물 한 마리 잡기도 어려워져, 그가 죽인 “안국군”이 다스리던 단로성으로 다시 복귀한다. 거기에는 오랜 세월 그가 처음 단로성을 왔을 때 구해준, 바로 그 때문에 이 모든 복잡한 사건의 발단이 된 숙신족의 한 여인이 이제는 목소리를 잃은 벙어리가 된 채 바둑알을 귀에 걸고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서로를 알아 본 그 둘은 마치 이 모든 사연의 설움을 풀어내기라도 할 듯이 한참을 부둥켜안고 서러워 우는 것이다. 한바탕 덧없는 긴 생의 걸진 놀이마당을 끝내고자 하는 엔딩 신처럼.

 

 

  부차적으로, 이 글이 잘된 글이라고 여긴 두 번째 이유는 개인적으로 읽어 내려감에 있어서 역사적 배경지식이 크게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럴듯하게 읽혔다는 점이다. 이는 글쓴이의 충분한 역사적 배경에 대한 검토와 적용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글이 그러한 점이 부족할지라도, 어디까지나 이것은 하나의 역사적 담론을 숙고하기 위한 소고가 아니라, 소설이라는 점에서 그럴만한 개연성을 글 안에 담아내기만 한다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즉, 소설적 이야기 형식 속에서 역사라는 틀을 빌려, 삶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여줄 수만 있다면, 소설은 충분히 그 기능을 다한 것이라고 보아도 좋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다만, 그러한 이유로 마지막 부분에서의 감동적인 삽입은 개연성이란 측면에선 다소 부족해 보이는 지점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은 이 글이 현대의 배경이 아닌 과거의 역사란 모티브를 가져다가 쓴, 그리고 복잡한 현대를 살아가는 현재 우리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나라의 설화를 풀어가는 전통적인 방식을 재현하려 했다는 점에서, 마지막 부분은 하나의 한풀이나 살풀이 혹은 한바탕 걸지게 논 놀이마당을 끝내는 뒤풀이로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덧붙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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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 2015-01-14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졸저의 작가 곽재식입니다. 심도 있고 훌륭한 글에 진심으로 감사 말씀 올립니다.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었습니다. 글 읽다 보니 한가지 기억나는 것이, 이 책으로 출판되기 1~2년 전에 다른 출판사에서 책을 내려고도 준비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재미있었던 것이 그때 출판사에서 같이 읽으셨던 분들이 여자는 안국군이 더 멋있다, 남자는 우랑이 그래도 더 멋있다로 성별로 양분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애초에 제가 글쓰기 시작할 때는 우랑이 그래도 착한 주인공역할, 안국군은 어쨌거나 그래도 악당 역할로 정해 놓고 시작했는데,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살을 더해서 꾸미다 보니, 나중에 독자님들이 보시고 말씀해 주실 때에는 안국군도 나름대로 비극적인 주인공 느낌이 난다고 하셔서, 그 점도 재밌었습니다.

몽원 2015-01-14 15:36   좋아요 0 | URL

먼저, 저자가 친히 읽으주시고 칭찬해주시니 영광스럽고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이 글을 읽었을 때는 수도원에서 몇 개월 살다가 잠깐 내려와서 수도원에 올라가기 전 참가하던 문학 모임에서 합평작으로 이 글을 선정해서, 휴가나왔다 급하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모임 앞두고 한 두세 시간 전에요^^;; 그래도 재밌게 읽었던 탓에, 나름 재밌게 글을 써내려갔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래도 한 가지 죄송한 것은 그 때가 2년 전인데 책이 아직 출판되지 않았던 탓인지, 제가 수도원에서 내려와 급했던 탓인지, 직접 책을 구입해서 읽지 못하고, 모임에서 누군가 올려준 필사본인지, 아님 인터넷 주소에 올라온 글인지, 하하;; 한글판으로 올라온 글을 프린트 해서 읽은 점이 좀 죄송스러운 마음이 있습니다. 책은 웬만하면 사서 보는 게 예의일 텐데 말이죠.^^;

여하튼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좋은 글 계속 부탁드립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