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조네 사람들 김소진 문학전집 1
김소진 지음 / 문학동네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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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조네 사람들 - 똥뚯간에서 반짝이는 별 이야기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다는 속담이 있다. 아마도 이러한 속담이 나오게 된 그 저변은 무언가 기대치가 높을 때 그 기대만큼 채워지지 않는 우리들의 심리 때문일 것이다. 사실, ‘장석조네 사람들’의 경우, 예전부터 많이 들어오던 작품이라 내게도 이러한 기대치가 작용했다. 그리고 다행히도, 이 작품에게서 만큼은 이 속담이 내게 적용되지 않았다. 그만큼 읽는 재미가 쏠쏠하였고, 아직 이 작품을 되새기기엔 이른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무언가 가슴 속에 남는 작품이었던 거 같다. 뭐랄까... 걸지게 한 판 놀아재낀 기분이라고 하면 맞을까? 그러면서도 가슴 한 편에서 짠하게 남아 있는 여운은 우리네 특유의 해학과 설움이 곁들어진 마당놀이라도 본 기분마저 들게 한다.

 

 

  자기보다 곱절은 어린 성금 어매를 얻어 전전긍긍 눈치 보며 살아가는 오영감, 흑산도에서 논다니를 하던 여자를 들어앉혀 놓고 의처증에 걸린 겐짱 형제, 똥을 푸며 살고 있는 광수 애비와 비운의 육손이 광수형, 왕년에 갱도에서 광부로 일하던 폐병쟁이 진씨, 노름에 빠져 허망하게 돼지꿈을 날린 양씨, 반병신이 된 남편과 함께 살고 있는 쌍과부집 택이 엄마, 양공주 딸내미 때문에 코쟁이 사위를 맞이할 수밖에 없는 욕쟁이 함경도 아즈망, 일찍 지아비를 여읜 며느리와 함께 사는 길노인 그리고 양은 장수 끝방 최씨와 나주댁까지, 장석조네 아홉 집 식솔들의 이야기는 집안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변소에 아침이면 줄줄이 서서 기찻길을 만드는 우스꽝스런 풍경처럼 체면과 비위를 따지지 않는 원초적이고 진솔한 이야기이다. 그러하기에 어떤 의미에서 이 소설을 꿰뚫는 무언가를 발견하는 일은 전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변소라는 본능적인 장소 앞에선 누구나 각자 나름의 치열한 이유가 있고, 급박한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혹자는 이야기한다. 얘들 먼저 변소에 보내야 한다고. 그렇지만 아이들은 학교에 가면 더 깨끗하고 정돈된 변소를 사용할 수 있다. 그러하기에 지저분하고 더러운 변소는 어른들의 몫이면 족할 일이다. 즉, 그들의 시대로 끝을 맺어야 하는 바로 변소 같은 그렇고 그런 이야기가 장석조네 사람들 이야기인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변소 같이 더럽고 추접한 삶이라고 해도 꿈도 없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여기에도 다른 하늘과 마찬가지로 나름의 별이 뜨고, 별이 진다. 그리고 지금부터 나는 그 별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돌산 아래 채석장에서 채석장이 일을 하고 있는 박씨와 똥지게꾼 광수 애비 그리고 양은 장수 끝방 최씨가 모여, 나름의 사연을 갖고서 술 한 판을 벌인다. 박씨는 여름내 짬짬이 일군 무밭이 얘들 서리에 엉망이 되어 말짱 도루묵이 될까봐 전전긍긍하는 심정으로다, 최씨는 오영감네 성금 어매를 길쌈했을 때 품었던 흉금스러운 마음 때문에, 그리고 광수 애비는 장석조네 아랫집 갑석 아범네서 어수선하게 벌어지고 있는 굿판의 가짜 무당과 벌인 낯 뜨거운 정사와 밀약 때문에 무언가 켕기는 심정으로다 술을 마시고 있다. 그런데 이 게 일이 꼬일라믄 꼬인다고 그저 그 여편네와 다시 한 번 살갗이나 부빌 심산으로다 시키는 대로 한밤에 택이네에 몰래 사람 모양의 제웅을 파묻은 건데, 그걸로다 이 여편네가 지가 무신 영험한 신이라도 씐 양 무당 행세를 하는 것이다. 거기다 굿을 한답시고 그 집안사람들 몽땅 바깥으로 물리고선, 쇠붙이들을 모아 이불에 덮어두라고 하더니, 돈 되는 건 죄다 들고 튀어버린 게 아닌가! 그런데 요거일랑 상황이 매우 재미있다. 보통 다른 소설 같으면 여기서 켕기는 게 많은 광수 애비가 제 몸 하나 집어넣기 힘든 쥐구멍에 긴 꼬랑지랑 늘어뜨리고 숨던가, 가타부타 다른 상황이 주어져야 하는데, 되레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는 게 아닌가! 그것도 전혀 켕기는 거 없는 사람만치로. 이쯤이면 남사시럽기라도 해야 할 텐데... 한 술 더 떠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별을 안주삼아 이바구를 까대는 것이다. 그것도 하나 남부끄러울 거 없는 박씨는 그저 무수한 별을 헤아리며 감탄만 할 뿐인데, 이 잡것들 같은 두 인사는 여기다 개똥철학까지 덧입히는 꼴이 제깐엔 여간 시답다. 양은 장수 최씨는 별은 자기 쟁개비들이라믄서 지가 물건 하나를 팔아도 그게 시시껍절하게 파는 게 아니라, 솥아! 국자야! 잘 가그래이, 가서 그 집 살림살이 본때 있게 빛내거라고 빌고 또 빈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기가 파는 쟁개비들은 모두 그냥 국자나 솥이 아니라 오롯이 빛나는 별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한 술 더 보태서, 똥지게꾼 광수 애비는 별을 똥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자신이 거름으로 뿌린 똥을 먹고 자란 배추랑 무들이 밤새, 별이 내린 이슬을 먹고, 바람을 먹어가며 물이 차오르는데, 그런 별의 선물을 먹고 우린 또 똥을 누니까 별이 똥이라고 박박 우겨대는 것이다. 참 기가 찰 노릇이다. 그렇지만 그 밤 아이러니하게도 하늘에서 별똥 같은 별똥별이 떨어지고, 이에 셋은 기분이 달떠, 누구랄 거 없이 함성을 내지르며 자기 집으로 돌아간다.

 

 

  이쯤 되면, 아마 이 소설이 이야기하고 싶은 바를 대강은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우리네 오만군상들이 각자 하나쯤은 숨기고 싶은 더러운 똥둣간 같은 이야기들을 품고 살지만, 여기선 그것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찍찍 휘갈겨 쌓은 똥들이 이곳에선 별이 되어 하늘에서 총총거리며 되살아나는 까닭이다. 사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그 숱한 별들을 다 헤아릴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수많은 별들은 우리들이 찍찍 갈겨놓은 똥인 동시에 우리들에게 되돌아온 별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사실, 헤아린다 하여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 숱한 사연들을 다 모른다고 해도 누구도 탓할 이유는 없다. 그렇지만 유독 별이 총총히 빛나는 밤, 왠지 모르게 달떠오는 우리네 심정은 무슨 까닭일까? 그것은 아마도 그 별에 환히 내비쳐진 자신의 사연들이 그 수많은 별들 중 하나 밖에 지나지 않는 실은, 그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에 왠지 모르게 위안을 얻는 까닭이 아닐까? 그러니 누가 돈을 갖고 튀고, 흉금스러운 마음을 품었다고 하여, 문제가 될 이유는 별로 없다. 오히려 그러한 사연들은 이곳에선 별처럼 반짝거리고 달떠 오른다. 비록 그것이 씻을 수 없는 것이라도 그 밤 그 순간만큼은 별똥 같은 별똥별이 되어 사라져갈 것이다. 그러면 그 밤 우리는 아무 이유도 없이 좋아서 거리를 내질러 보는 것이다. 비록 다음날이면 다시 그 아름다웠던 별똥별이 그득한 똥뚯간에 기차 모냥으로다 전전긍긍하며 줄을 서겠지만, 그 날 그 순간만큼은 잠시 내려두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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