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 한국 3대 문학상 수상소설집 7
오정희 외 지음 / 가람기획 / 199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윤동주의 참회록을 통해 바라본 오정희의 동경

 

 

  처음, 오정희의 ‘동경’이란 제목을 보았을 때, 문득 나는 윤동주 시인의 ‘참회록’의 시 한 구절이 떠올랐다.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만 이십사년 일개월을

  무슨 기쁨으로 바라 살아 왔던가

 

 

  그렇지만 오정희의 ‘동경’은 저자 자신도 밝혔듯이 자신의 늙은 조부모에 대한 안타까운 심경과 시선으로 써내려간 노년의 고독과 죽음에 관한 문제이다. 그러하기에 아무리 위대한 시인이었다고 해도 이제 갓 24살 된 청년의 눈에 비친 윤동주의 ‘동경’이 오정희의 ‘동경’과 같을 리는 만무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노년의 눈으로 아직 세상을 쉬 바라보기를 꺼리는 아니, 아직 그럴 수 없는 나는 윤동주의 ‘동경’을 통해 오정희 ‘동경’을 이해해보고자 한다.

 

 

  오정희의 ‘동경’ 속에서 거울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것은 지난날을 바라다보는 자기반성의 의미를 지니면서도 동시에 지난날에 대한 회피를 의미한다. 왜냐하면 노인들은 반성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반성을 요구하는 새로운 삶이 그들에겐 기다리고 있지 않다. 그러하기에 자신의 과거를 자꾸 들추는 옆집 계집아이의 거울 빛은 그들에겐 거북스럽고, 두려운 빛일 뿐이다. 왜일까? 그들의 아들인 영노를 자꾸 되새기기 때문에? 아니면 더 이상 같이 산 지난 세월이 기억이 나질 않아 꿈같다는, 그것도 마치 흉몽스러워 맥을 자꾸 빚어야 잠을 들 것만 같은 이유 때문에? 아니면 아직도 익숙지 않은 자신의 틀니처럼 혹은 아내의 백발처럼, 그렇지만 받아들여야만 하는 미구의 죽음을 직면해야 하는 두려움을 회피하고 싶어서? 쉬 공감이 가지 않는 이 이유들을 잠깐 접어두고 다시 윤동주의 ‘참회록’으로 넘어가 본다.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한다

  -그 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오정희의 ‘유년의 뜰’에서 거울은 집안에서 유일하게 닳지 않은 가구로 집안에 놓인 것이 아니라, 마치 모든 집안을 그 속에 넣고 있는 듯 묘사되어지고 있다. 물론, 오정희의 다른 소설에서 ‘거울’의 이미지를 가져오는 것은 부질없는 짓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를 통해 여성 작가인 오정희에게 있어서 ‘거울’은 남다른 의미가 있음을 짐작해 볼 수가 있을 것이다. 어머니가 자신을 가꾸던 공간, 집안에서 유일하게 빛나던 물건. 이러한 귀중한 물건이 그렇지만 ‘동경’ 속에선 무덤의 이미지와 엇물려 표출되고 있다. 특히, 영노를 묻었을 때를 회상하는 장면 속에서 그는 그의 아들의 육체를 묻은 것이 아니라 한 조각 거울을 묻은 것은 아닌지 반추하고 있다. 여기서 어떤 도식처럼 그 상징하는 바를 도출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그것은 기억이다. 가장 빛났기에 부끄럽고 아팠던 그런 고백이다.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분명, 글 속에서 그는 노인들은 반성할 것이 없다고 하였다. 그렇지만 역으로 생각해 보면 그들은 너무 오랫동안 자신들의 거울을 봐온 것 아닐까? 그래서 이제는 그 거울 속에서 어떤 찬연한 빛을, 온 집안을 집어 삼킬 듯한 그 빛을 보기보다는 오래 전 그 어느 때부터 그 어느 것도 지속시키지 못한 빛의 속성, 기억이라는 찬란하지만 찬란하기에 순간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그런 빛과 같은 기억의 속성들을 이미 깨달아 버린 것은 아닐까? 아니, 그 강렬한 빛에 너무 오래 노출되어 이젠 자연스럽게 시력을 잃게 되어 거울을 바라볼 수 없게 된 건 아닐까? 그렇지만 그 오래 닳고 닳은 거울 속에 묻어버린, 그렇게 사라져버린 어떤 흐릿한 윤곽의 뒷모습이 왜 소설을 보는 내내 아른거렸던 걸까?

 

 

  거울 속 볼 수 없는 뒷모습은 슬프다. 게다가 그 거울이 천연덕스럽게 번들거리는 빛이 아니라 오래된 구리거울이라면 그 흐릿한 윤곽만큼 뒷모습을 슬프게 비출 것이다. 그러하기에 어쩌면 그 오래되고 외로운 그 뒷모습을 이미 알아버린 사람이라면 더 이상 거울을 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눈을 감아도 이미 어른거릴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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