書劍恩仇錄(上,下冊)서검은구록(상,하책)
김용 지음 / 광주출판사(廣州出版社) / 200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원앙도를 통해 바라본 김용의 무협세계

 

 

 

  ‘김용’하면 우선 떠오르는 작품은 ‘영웅문’이다. 중학교시절 쯤, 폭발적인 유행을 했던 그 작품을 나는 어리석게도 고3, 그것도 수능 한 달 앞두고서 읽었다. 사실, 그래봤자 지가 그냥 무협지지라는 생각으로 얕잡아보고 덤볐던 것이 그야말로 낭패를 본 셈이었다. 왜냐하면 그래봤자인 줄 알았던 그 작품이 그때까지 최고의 책 중 하나로 꼽던 삼국지 못지않게 재미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내용의 길이 또한 삼국지 못지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 내용은 삼국지보다 더 길었다. 1부 사조영웅문, 2부 신조협려, 3부 의천도룡기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각 부가 약 300-400페이지 분량의 6권의 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실 지금도 내용이 너무 길다고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나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지 않고 있는 판인데, 이 책은 그 당시 어찌나 술술 읽히던지. 수능이 바로 코앞인데 공부는 팽개치고서 새벽 4시까지 몰래 그 책들을 한 번도 아니라 2-3번 읽었던 것이 기억이 난다. 그러고도 원하는 대학에 붙었으니, 사실 나는 운이 좋은 놈이다.^^:

 

 

  여담은 이쯤으로 해두고, 이제부터 ‘원앙도’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사실, 제목을 듣는 순간 딱 떠올랐던 것은 영화 ‘절대쌍교’였다. 아마 이 작품도 고등학교 때 비디오로 빌려본 작품으로 기억하는데, 다 보고나서 그 당시 홍콩 코미디의 그 유치함에 치를 떨면서 절대 보지 말아야할 영화가 ‘절대쌍교’라고 떠벌리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문득 세월이 지나 몇 년 전 TV에서 그 영화를 다시 보니 그 유치하게만 느껴지던 코미디가 어찌 그리도 친숙하고 재밌던지. (또 삼천포로 빠졌다.^^;) 그리고 그 당시 정말 유치하게 느껴졌던 것은 코미디도 코미디였지만 ‘남녀합심검’이란 말도 안 되는 무술로 악의 화신인 무림지존을 격파하는 유덕화와 임청하를 보면서 혀를 끌끌 찼었다. 그런데 이 역시 나중에 세월이 지나서 보니, 무술에 관한한 밑도 끝도 없는 중국의 어마어마한 뻥들에 비하면 이 무술이 그래도 훨씬 더 일리가 있어 보이는 것이었다. 음양의 조화와 이치라는 동양의 사상에 입각해 봐도 그렇고, 남녀가 사랑을 하여 서로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으로 싸우는데 어떤 고수가 그 앞을 가로막을 수가 있겠는가? 사랑엔 국경도 시간도 없다고 하는데, 무술 또한 초월 못 할리 없지 않겠는가? 이런 점에서 미루어 볼 때, 원앙도는 이미 어느 정도 그 신빙성을 갖추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렇지만 무협이라는 장르가 단순히 이러한 판타지와 비슷한 무협 세계에서만 끝난다면,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뭐? 그냥 무협에 사랑을 짬뽕시킨 이야기인데 대체 뭘 어쩌라고? 그러하기에 지금부터 원앙도 속에 축약된 김용의 세계를 아주 대략적으로나마 살펴봄으로써 무협이 그러한 판타지 외적으로 어떤 풍자적 기능을 지닐 수 있는지 잠시 생각해 보고자 한다.

 

 

  먼저, 처음에 등장하는 주위신과 태악사협의 존재를 통해서 보여주듯이 김용의 무협세계는 정과 사의 세계가 불분명하다. 무릇 일반적인 무협 소설에서는 정과 사로 나뉘어,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을 주요 골조로 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데 김용 소설의 캐릭터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정파에 유려한 외모에도 불구하고 사기꾼에 난봉꾼이고, 아주 거칠고 극악한 캐릭터로 보이는 사파가 기실 알고 보면 정의의 편에 가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비단, 이 소설에서도 주위신과 태악사협 뿐 아니라 끊임없이 부부싸움을 하는 임부부를 보아도 이건 영 정파의 기운을 느낄 수가 없다. 그리고 여주인공인 소중혜의 아버지 소반화는 어떠한가? 어떤 무협 소설에서 근엄한 영웅의 상을 태감으로 표현한 적 있단 말인가? 이렇듯 김용 소설의 캐릭터들은 정과 사로 나뉠 수 없는 무언가 인간군상의 모습을 각자 뚜렷하게 구현하고 있다. 그렇다면 김용의 소설 속에는 정의란 것은 없단 말인가? 그것은 아니다. 분명하게 김용은 나름의 정의를 그의 소설 속에 구현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그의 소설 속의 정의는 과연 무엇일까? 주인공인 소중혜와 원관남의 첫 등장은 주인공임에도 역시 무언가 정의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소중혜는 왕께 상납하러 가는 원앙도를 훔치려하고 있고, 서생으로 등장하는 원관남 또한 자신의 무공을 숨기면서 무언가 석연치 않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이 남녀 둘이 각자 다른 이유로 원앙도라는 천하무적 검을 갖기 위해 싸움을 벌여가는 과정 속에서 사랑하는 연인 사이가 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초반에 무언가 정의의 기세를 역력히 비추던 주위신과 탁천옹 무리는 그들을 억압하는 무지막지한 공적으로 그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남녀의 사랑이라는 情이란 문제 앞에선 모든 정의는 악으로 평가 받아도 상관없단 말인가? 사실, 그냥 표면적인 부분만 놓고 보아도 황제에게 원앙도를 바치려고 하는 주위신과 탁천옹이 그것을 훔치려고 하는 소중혜와 원관남보다 대의와 명분을 지니고 있는 것은 자명하다. 그런데 왜 그들은 결국 공적으로써, 그것도 사파로써 그려지게 되는 것일까?

 

 

  소설의 말미에 이르면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해답이 나온다. 그들, 주위신과 탁천옹은 청을 위해 무공을 바친 한족의 배신자들이다. 그러나 소중혜와 원관남은 누구이던가? 그들의 아버지는 원래 각각 원앙도를 지니고 있던 무림고수로서 청 황제에게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이들이다. 즉, 회자정리와 인과응보의 불교정신과 더불어 중국인들을 지탱하는 역사의식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중화사상이 이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는 것이다. 물론, 이 소설 속에선 나중에 인자무적이라는 유교의 사상을 통해 청과 그의 세력들이 어질지 못했음을 은근히 우회하여 풍자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다른 소설 속에선 자연 친화주의에 가까운 도교의 사상도 자주 엿볼 수가 있다. 또, 그의 마지막 대하무협소설인 ‘녹정기’에서는 그의 기존의 모든 중화사상과 유교, 도교 사상을 뒤집는 인물인 ‘위소보’란 일종의 안티 히어로를 주인공으로 전면에 내세우면서, 당대에 한족의 세태와 비리를 은근히 풍자하고 있다. 즉, 김용에게는 단순히 무협이 판타지의 기능의 차원에서 머물지 않고, 탄탄한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한 풍자적인 기능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이야기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김용의 무협소설은 역사 소설과는 차별화되어 있지만 역사의식을 고취하는 가운데, 남녀 간의 정의 문제와 온갖 인간 군상들의 풍경을 화려하고 기치 있는 필체로 그려내고 있다. 이 ‘원앙도’는 비록 짧은데다가 그의 초기 작품이지만, 그러한 김용의 세계관을 매우 잘 드러내고 있는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이러한 김용의 소설이 우리에게 어떤 시사점을 주고 있는지 하는 문제이다. 2000년대 초반 잠깐 정치를 풍자한 무협 소설이 등장하기도 했지만, 그 전후로 해서 우리나라의 무협 소설이 과연 우리나라의 역사의식을 담아낸 우리다운 무협소설을 혹은 현실의 세태를 날카롭게 풍자하는 내용을 그린 정말 무협소설다운 무협소설을 등장시킨 적 있는지, 한 번 반성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끝으로, 개인적으로 김용의 소설 가운데 가장 재미있게 읽은 ‘신조협려’ 가운데 있는 시 한 편을 여기에 소개하면서 글을 마치고 싶다. 왜냐하면 아무리 내가 여기서 판타지적 기능이니 뭐 풍자적 기능이니 떠들긴 했지만, 역시 무협은 재밌어야하고 감동적이어야 하는데, 그러한 재미와 감동을 준 작품이 내 개인에겐 ‘신조협려’였고, 그 긴 ‘신조협려’를 여기에 다 쓰기엔 너무 힘에 부쳐서, 그냥 축약된 시로 남겨두는 것이 왠지 운치가 있을 거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원앙도의 내용과는 약간 다른 분위기이지만, 왠지 비슷한 맥락도 있는 거 같기도 하고 해서.......

 

 

 

세상 사람들에게 묻노니,

정이란 무엇이기에 생사를 가늠하느뇨?

천지간을 나는 두 마리 새야

너희들은 얼마나 많은 여름과 겨울을 함께 맞이했는가?

사랑의 기쁨과 고통 가운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여인이 있어

임께서 응답해주시면 좋으련만

아득한 만리에 구름 가득하고,

온산에 저녁 눈 내릴 때,

한 마리 외로운 새 누구를 찾아 날아갈지를.......

 

 

 

P.S.

 

 '신조협려'에 나오는 시인 '정한가'는 약간 내 개인적 의도에 따라 아주 살짝 의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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